금자대장경과 금자탑, 블로그 누적조회수 5백만명을 맞이 하여
누적조회수 5백만명
조회수를 보니 ‘5006495’이다. 오백만이 넘은 것이다. 오백만을 막 넘은 시점에서 글을 쓰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6천명이상이 초과 되어 버렸다. 아마 4일 늦은 것 같다.
매일 글을 쓰고 있다. 이제 일상이 되어 버린 글쓰기이다. 보통불자에게 글쓰기는 존재 그 자체이다. 글쓰기를 하는 한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몇 일 글이 보이지 않으면 전화가 오기도 한다. 혹시 무슨 일 있었느냐고.
글을 쓰다보니 조회수 5백만이 되었다. 스스로도 놀라는 숫자이다. 아직까지 블로그 누적조회수가 5백만명을 넘은 것을 보지 못하였다. 아니 백만명도 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쓰다보니 5백만명이 되었다. 이런 글쓰기도 집착일까?
2005년에 처음으로 블로그를 만들었다. 2000년대부터 인터넷이 본격화 되어 2004년에 블로그가 히트상품으로 선정된 바 있다. 그런 영향으로 “나도 블로그라는 것을 해 볼까?”라며 가벼운 마음으로 블로그를 만들었다.
블로그 조회수가 급증한 것은 자신의 글을 쓰기 시작하고 나서 부터이다. 남의 글을 스크랩하여 올린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 주목을 받은 것 같다. 몇 차례 첫화면 메인 뉴스에 올라간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된다.
기록하는 습관
무언가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 이런 습관은 처음 입사한 회사에서 일본인 고문의 연구태도를 보고 나서부터이다. 테스트한 결과를 꼼꼼히 노트에 기록하는 것을 보고 감명 받았다. 이후 노트에 그날 있었던 모든 사항을 기록하였다. 회의내용은 물론 실험 등 기록할 수 있는 것은 다 기록하였다. 그렇게 20년 회사생활 동안 쌓인 노트가 책장으로 가득 되었다.
소감문을 남겼는데
2005년 월급쟁이 생활을 그만 두었다. 지금까지 일인사업자로서 12년 동안 생활을 하고 있다. 그중 10년은 글쓰기의 세월이기도 하다. 2006년부터 글쓰기를 하였으므로 10년 된 것이다. 기록하는 버릇이 이제 인터넷 글쓰기로 바뀌었다. 이런 기록습관은 블로그 1주년 될 때 소감문으로 남겼다. 매년 블로그 개설일이 되면 역시 소감문을 남겼다. 블로그 조회수가 올라 갈 때 마다, 십만 또는 백만, 이백만이 될 때 역시 소감문을 남겼다. 이를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블로그개설일 : 2005-08-02
2) 블로그개설 1주년 :2006-08-02
“인연(因緣)”
3) 누적조회 10만명돌파: 2006-11-13
4) 블로그개설 2주년: 2007-08-02
“넷심(Net心)이 바로 민심(民心)이다, 블로그활동 2주년을 맞아”
5) 블로그개설 3주년: 2008-08-02
“블로그 개설 3년, '쓰레기성 글'이 되지 않기 위해서’
6) 누적조회 100만명돌파: 2009-01-23
7) 블로그개설 4주년: 2009-08-02
8) 누적조회 200만명돌파: 2010-01-10
“블로그 누적조회수 200만명 돌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를 위하여”
9) 블로그개설 5주년: 2010-08-02
“매일 글을 쓰는 이유는, 블로그 만든지 만 5년 되는 날에”
10) 블로그개설 6주년: 2011-08-02
11) 누적조회 300만명돌파: 2012-05-26
“오늘도 내일도 쓸 뿐이다, 누적조회수 300만명을 맞이 하여”
12) 블로그개설 7주년: 2012-08-02
13) 블로그개설 8주년: 2013-08-02
“글쓰기도 중독이라고 볼 수 있을까? 블로그 개설일에”
14) 누적조회 400만명돌파: 2014-06-09
“시간은 지나도 글은 남는다, 누적조회수 4백만명을 맞이 하여”
15) 블로그개설 9주년: 2014-08-02
16) 블로그개설 10주년: 2015-08-02
“비주류비급삼류정신으로, 인터넷에 글쓰기 십년”
지난 12년 동안 직접 작성한 글은 모두 3,389개이다. 글이라고는 써 본적이 없는 보통불자가 직장을 그만 두면서부터 시간이 무한정 남게 되자 글을 쓰게 된 것이다. 그렇게 쌓이고 쌓이다 보니 3천개가 넘었고, 누적조회수는 5백만명에 달하게 되었다.
경전을 근거로 하여
글쓰기는 일인사업자로서의 일을 할 때 부터이다. 그러나 2004년 불교입문과도 관계가 있다. 2004년 강남의 능인선원 불교교양대학 저녁반 37기로 입교한 것이 불교와의 인연이다. 물론 삼십년 전 중학교 다닐 때 종립중학교인 동대부중에서불교와의 인연도 있다. 중학교에서 부처님의 일생을 배운 것이 결국 불교와 인연을 맺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2005년 이후 지금까지 일인사업자의 삶을 살면서 하루 일과 중의 반은 글쓰기로 보내고 있다. 처음 글은 단순하고 소박했다. 그러나 해가 갈수록 길어지고 현학적으로 되었다. 이는 경전을 근거로 글쓰기 하기 때문이다.
2009년 이후 본격적으로 초기경전에 의한 글쓰기를 했다. 글쓰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초기불교수행과 초기불교가르침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책장에는 청정도론, 아비담바, 사부니까야 그리고 율장에 이르기 까지 빠알리삼장을 갖추어 놓았다.
금자대장경경과 금자탑
금자탑(金字塔)이라는 말이 있다. 황금으로 쌓은 금자 모양의 탑을 말한다. 황금으로 쓴 글자라는 뜻도 있다. 일반적으로 후세에 오래 남을 뛰어난 업적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금자대장경’이라는 말도 있다. 이 말은 중국드라마 ‘대돈황(大敦煌)’에 나온다. 대돈황은 돈황 천년문화의 흥망성쇠를 다룬 대하드라마이다. 특히 장경동 폐쇄와 관련하여 금자대장경 이야기가 나온다.
서하의 칸인 이원호가 돈황을 넘보면서 드라마가 시작된다. 이원호가 ‘금자대장경’을 손에 넣고자 했기 때문이다. 금자대장경을 손에 넣으면 서역지배의 정당성을 띠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황의 관리는 돈황이 함락 위기에 처하자 막고굴에 새로운 동굴을 파고 그곳에 숨긴다. 동시에 3만여점에 달하는 경서도 숨긴다. 그리고 벽으로 막아 버리고 그곳에 벽화를 그려 넣는다.
드라마에서 보는 금자대장경은 우리나라 팔만대장경의 원형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금자대장경이 모두 금으로 만들어졌을까? 드라마 대돈황에 등장하는 금자대장경이 금으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정리 하여 일련의 장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기록해 놓은 것이 금자대장경이다.
부처님 말씀을 기록한 것은 모두 금자라 볼 수 있다. 금자가 모이면 금자탑이 된다. 팔만대장경이 그렇고 최근 빠알리니까야가 그렇다. 초기경전을 근거로 하여 글쓰기도 일종의 금자라 볼 수 있다. 금자가 모이고 모이면 금자탑이 될 것이다.
2016-05-24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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