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무원장직선제는 명분이 있어야
“뗏목을 불살라 버렸습니다.”지난 4.13총선을 앞두고 정치인 안철수가 한 말 입니다. 오로지 승리를 위해 올인하겠다는 각오를 밝힌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캐스팅보터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생즉사 사즉생(生則死 死則生)’라 합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움에 임하면 살 것이고, 살고자 한다면 죽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불퇴전의 결기라 볼 수 있습니다. 불교포커스 정성운 주간의 글에서 ‘“우리는 낡은 것으로 되돌아갈 수도 없다. 우리는 이미 배를 불태워 버리고 말았다. 용감해지는 수밖에 없다.” 라는 구절 역시 불퇴전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니체의 글로서 더 이상 물러 설 수 없음을 말합니다.
뗏목을 태워버렸다는 말은 오로지 앞으로만 가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강을 건넜다’라고도 표현 합니다. 위빠사나수행처에서 갈애를 설명할 때 “루비콘강을 건넜다.”고 표현 하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위빠사나수행처에서는 늘 알아차리라고 합니다. 느낌을 알아 차리라는 말 입니다. 고수, 낙수, 불고불낙수입니다. 이 세 가지를 알아 차리지 못했을 때 갈애를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갈애는 집착으로 전개됩니다. 결국 업을 짓게 되어 윤회의 원인이 됩니다. 갈애는 호불호에 대한 것 입니다. 이렇게 느낌을 알아차리지 못하여 갈애로 넘어 갔을 때 “루비콘강을 건넜다.”고 합니다.
케사르가 루비콘강을 건넜을 때 오로지 로마로 향해 진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달리 선택이 없습니다. 이성계가 위화도회군을 했을 때 목적지는 개경이었습니다. 그런데 강을 건넌 것이나 회군하는 것은 명분이 있었습니다. 명분이 있었기 때문에 반란군이 되지 않고 정부군이 됐습니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패했습니다. 세계최강 일등국가가 무기도 변변치 않은 약소국가에게 패한 것 입니다. 미국은 명분없는 전쟁을 했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소수의 이익과 기득권 수호에 올인한 미국과 월남정부는 명분에서 이미 진 것입니다.
남북전쟁에서 북군이 이겼습니다. 노예해방이라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수의 이익을 추구하는 남군은 명분이 없었습니다. 명분에서 밀린 것입니다. 중국에서 국공내전도 마찬가지 입니다. 민중편에 섰던 모택동군이 소수를 위한 장개석군에게 명분에서 이겼습니다. 모든 내전에서 명분 있는 곳이 승리합니다.
총무원장직선제 실현은 기득권층과 명분싸움입니다. 명분에서 밀리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다행히도 대중들은 지난 여덟 차례 사부대중공사에서 61%로 직선제를 지지했습니다. 이를 반대할 명분은 없습니다. 명분에서 이미 이긴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뗏목을 불살랐다는 것은 루비콘강을 건넌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이런 현실을 서글프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국불교 100년 대계를 위한다면 갈애의 루비콘강을 건널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로 다수가 직선제를 바란다는 명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명분에서 이기려면 그들에게 빌미를 주지 않아야 합니다. 폭력적 모습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안에서 “이럴 때 부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접근해야 합니다. 불교인 60프로가 직선제를 찬성하고 있습니다. 총무원직선제는 한국불교 100년 대계를 위한 시대의 요청입니다.
2016-05-24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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