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백년대계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담마다사 이병욱 2016. 6. 12. 18:22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소통과 공감, 이 시대의 키워드이다. 불통하였을 때 어떤 결과가 오리라는 것은 이 시대의 대통령을 보면 알 수 있다. 가장 가까운 수석참모조차 가까이 할 수 없다면 불통을 너머 먹통에 가깝다. 그 결과는 각종 오해와 의혹으로 나타난다.

 

시대는 소통을 요구한다. 소통하지 않고 침묵하였을 때 필연적으로 오해가 뒤따른다. 침묵도 대화라 했다. 긍적적, 부정적 요인을 모두 가지고 있는 침묵은 매우 가공스런 것이다. 때로 침묵은 왕따로서 작용하기도 한다. 부처님이 찬나에 대한 침묵의 벌(brahmadaṇḍa: 梵罰)’대표적이다. 율장에 따르면 사실상 죽은 목숨과 같다고 했다. 요즘 청소년들이 왕따로 자살하는 것도 불통과 침묵과 왕따 때문이라 볼 수도 있다.

 

시대는 소통뿐만 아니라 공감을 요청한다. 일방적 소통은 소통이 아니다. 아무도 공감하지 않는 소통은 소통이 아니라 불통이고 먹통이다. 자신의 할말만 하고 타인의 말을 들어 주지 않았을 때 아무도 공감하지 않는다. 두 손바닥을 부딪쳐야 소리나듯이 주고받아야 대화가 성립된다. ‘좋아요이모티콘 하나만 날려도 소통이 된다.

 

스마트폰 시대이다. 모든 것이 문자로 소통되는 시대이다. 문자로만 소통하면 불통이 되기 쉽다. 침묵도 대화라 하는데 긴 침묵으로 이어졌을 때 불통을 너머 먹통이 되기 쉽다. 필연적으로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소통을 시도한다. 공감있는 소통이다. 공감 없는 소통은 넋두리에 지나지 않는다. 소통과 공감, 문자의 시대에 키워드이다.


한나라의 지도자가 소통을 거부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잃어버린 일곱 시간’이 될 것이다. 각종의혹과 오해가 봇물 터지듯이 나옵니다. 외국에 까지 알려져 국가망신을 초래 한다. 한종단의 지도자가 소통을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 역시 각종의혹과 오해로 점철 된다. 한사찰의 스님이 대화를 거부하였을 때 지루한 소모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서로 소통하면 속시원하게 해소 될 터인데 불통함으로 인하여 긴장과 갈등만 초래하고 있다.

 

2주전 소통을 시도한 적이 있다. 당돌하게 총무원장스님을 만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담당 여행정관 단계에서 막혔다. 이 땅의 보통불자로서 보고 듣고 느낀 것에 대하여, 누가 임명하지는 않았지만 불자대표로서 건의 드리고 싶었다. “부디 역사에 남는 총무원장님이 되십시오.”라고. 그러나 여행정관 단계에서 막혔다. 극히 성의 없는 말투로 힘들다는 말만 되풀이 하였다. 만일 정부의 힘있는 자나 종단의 고위직에 있는 자라면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할 수 없이 편지를 전달 했다. 간접 전달한 그 편지가 원장스님의 손에 들어 갔는지 알 수 없다.

 

돈키호테식의 소통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소통을 시도하려는 것은 그들에게 ‘이런 움직임도 있다’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입니다. 아무리 글로서 기고해도 요지부동이라면 직접 만남을 시도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지금 설득해야 하고 설명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직접 소통하는 것 이다.

 

청정도론 자애명상 아홉 단계에서 최종은 “보시를 통하여 성냄을 제거 한다.”라 했다. 원한 맺힌 자에게 자애의 마음을 방사하는 것도 좋지만 궁극적으로 만나는 것이다. 만나서 선물하는 것이다.

 

 

“보시는 조어되지 않은 사람을 조어하고

보시는 모든 이로움을 성취시킨다.

보시와 상냥한 말씨를 통해 시주자는 편안해지고

시물을 받는 자는 머리를 숙인다.

(청정도론 2, 9)

 

 

 

 

 

종회에서 염화미소법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 여론을 의식하여 선거인단 숫자를 늘려 꼼수를 부려 보고 있지만 그들만의 리그에서 권력카르텔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 할 것이다. 추첨민주주의라 강변하지만 제비뽑기방식은 세간의 조롱거리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대다수는 침묵하고 있다. 긍정의 침묵일까 부정의 침묵일까?

 

다수의 침묵은 긍정 또는 부정 두 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다. 갈마에서 제안과 제청으로 결정이 이루어진다. 이견이 있으면 말하고 이견이 없으면 침묵함으로써 결정이 이루어진다. 이때의 침묵은 긍정이다. 그렇다면 종회에서 수정염화미소법을 발의 하였을 때 대다수의 침묵에 대하여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동의 하는 것으로 여길지 모른다. 아무도 이의제기 하지 않았을 때 찬성하는 것으로 자의적 해석할지 모릅니다.

 

 

[세존]

그것에 대하여 그대들은 사실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사실이 아니라고 이와 같이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그것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그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라고 설명해 주어야 한다. (D1)

 

 

사람들은 불법행위에 대하여 침묵한다. 이런 경향은 불교인이라 해서 다르지 않다. 비법이 횡횡 해도 침묵한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그 결과 비법이 득세하게 된다. 부처님은 사실이 아닌 것에 대하여 사실을 말하라고 했다. 정법이 아닌 비법에 대하여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그것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그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라고.

 

 

2016-06-12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