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중한 멘토
이 세상에는 갖가지 직업이 있습니다. 집에서 집없는 곳으로 출가한 수행자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은 직업을 갖습니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닙니다. 실업자도 있고 능력이 안되어 타인의 힘으로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생계를 위한 한가지 이상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인쇄회로기판설계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전문용어로 ‘PCB artwork’라 합니다. 모든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것이 인쇄회로 기판 입니다. 십년전 직장을 그만두고 생계를 위하여 하는 일 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불교에서 금하는 오종 직업에 해당되지는 않습니다.
“수행승들이여, 재가의 신자는 이와 같은 다섯 가지를 판매하지 말아야 한다. 다섯 가지란 무엇인가? 수행승들이여, 무기를 파는 것, 사람을 파는 것, 고기를 파는 것, 술을 파는 것, 독극물을 파는 것이다.” (A5.177)
앙굿따라니까야 ‘판매의 경’에 실려 있는 가르침 입니다. 무기, 사람, 고기, 술, 독극물 파는 직업을 가져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모두 오계와 관련 되어 있습니다.
무기와 고기와 독극물을 파는 일이라면 살생과 관련 있습니다. 사람을 파는 것은 매춘같은 것이어서 음행과 관련 있습니다. 술을 파는 것은 오계를 어기는 근본 원인이 됩니다. 이런 이유로 오종판매업을 금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농부나 어부로 사는 것에 대해서는 적용되지 않는 듯 합니다. 생계가 아닌 판매하는 것에 대해 적용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다섯 가지를 판매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은 불교에서 금하는 오종직업이 아니어서 다행 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종종 무기에 들어가는 인쇄회로기판을 설계하기 때문 입니다. 미사일을 직접 만들지 않지만 미사일에 들어가는 부픔을 만든다면 무기를 파는 일에 종사하는 것이 될 것 입니다. 이런 식으로 따진다면 그 어떤 직업도 오종직업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 입니다.
오종직업에서 자유로우려면 수행자의 길을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직업도 갖지 않고 어떤 일도 하지 않고 탁발에 의존하는 것 입니다. 그러나 현실을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재가자들은 생계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해야 합니다. 설령 그것이 오종직업에 해당 되는 것일지라도 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그럴 경우 한달에 한 두번 정도라도 팔재계를 지키는 삶을 산다면 어느 정도 용인 되지 않을까요?
생계를 위하여 어쩔 수 없이 택한 직업이 인쇄회로기판설계업 입니다. 전자제품개발 과정에서 중요한 업무중의 하나 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하이테크를 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종의 기능직이라 볼 수 있습니다. 시간투자해서 벌어먹고 사는 직업입니다. 제조업처럼 큰 것 한방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쏟은 만큼 수입이 보장 되는 것 입니다.
일을 하면서 늘 느끼지만 마치 밭을 매는 것 같습니다. 호미를 들고 밭고랑 매는 것을 말 합니다. 밭을 맬 때 호미질을 무수히 반복 하듯이 수천, 수만번 클릭 해야 합니다. 어느 때는 손가락이 아파서 일을 못할 때도 있습니다. 모니터 앞에 앉아 밭고랑 매듯이 오로지 손가락과 팔의 힘으로 먹고 삽니다.
이 일을 한지는 오래 되었습니다. 캐드시스템이 도입되기 이전부터 했습니다. 초창기에는 수작업으로 아트웍 했습니다. 그러다 캐드시스템을 이용하여 설계하게 되었습니다. 시대에 따라 기술의 진보에 따라 적응해 나간 것 입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본격적인 디지털화 시대가 도래 함에 따라 한계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캐드시스템 버전이 높아 질 때마다 적응하지 못 한 겁니다. 이럴 때 도움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종의 ‘멘토’ 입니다.
멘토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사전적 의미는 ‘조언자’를 뜻합니다. 넓게 보면 선배나 스승도 해당 됩니다. 조언받는 자를 ‘멘티’라고 합니다. 멘토와 멘티의 관계는 수직적이고 종속적 관계일까요? 저에게 있어서는 문자 그대로 조언자 관계 입니다. 일을 하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고 있기 때문 입니다.
일을 하다 막히면 ‘미스터 B’에게 전화 합니다. 언제든지 해결 해 줍니다. 전화로만 말해 줘도 대부분 해결 됩니다. 어려운 것은 파일을 보내 요청 합니다. 이제까지 모든 문제는 다 풀렸습니다. 그리고 많은 노우하우를 축적 했습니다. 그 힘으로 지금까지 십 년 동안 먹고 산지 모릅니다.
멘토는 나 보다 나이가 젊습니다. 아마 열살 차이 나는 것 같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가 90년대 끝자락 모 벤처회사 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그의 나이는 20대 후반 이었을 겁니다. 그는 캐드를 능숙하게 다루는 전문가 이었습니다. 그 때 인연이 지금까지 유지 되고 있습니다.
막히면 B에게 전화 합니다. 어떤 어려운 문제도 다 해결 됩니다. 만일 B가 없었다면 일하는데 꽤 애로를 겪었을 겁니다. 그런 B는 아직도 노총각 입니다. 이제는 같이 늙어 가는 것 같습니다.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점심을 근사하게 샀습니다. 법우님이 운영하는 식당에 가서 최고의 메뉴로 대접 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멘토’라고 선언 했습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언제든지 물어 볼 수 있는 그는 나의 소중한 멘토 입니다. 멘토를 위하여 이 글을 씁니다. 여러분들도 멘토가 있으신가요?
2016-06-29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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