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해탈을 추구하는 수행자에게 결혼이란

담마다사 이병욱 2016. 8. 5. 13:53

 

해탈을 추구하는 수행자에게 결혼이란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 합니다. 후회할 거라면 결혼해서 후회하는 것이 더 낫다라는 말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결혼을 하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외롭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다릅니다. 더구나 조건을 따져 만났을 때 조건이 소멸하면 헤어지기도 합니다. 그럴 경우 차라리 하지 않음만 못합니다. 그 사이에 자식은 태어나고 다투는 과정에서 수 많은 업을 짓게 됩니다. 이렇게 본다면 결혼은 어리석은 것이고 심지어 미친짓이라 볼 수 있습니다.

 

최봉수교수의 초기불교개론 11강을 보면 자이니즘을 결혼에 비유해서 설명했습니다. 거의 십년전 강좌를 유투브(최봉수교수의 초기불교개론-제11) 에서 볼 수 있습니다. 최봉수교수 특유하고 독특한 어법의 강의는 지루하지 않습니다. 듣다 보면 저절로 미소를 띠게 되는데 맛깔나게 이야기하기 때문 입니다. 아마 불교계 최고의 명강연자라 봅니다.

  

최봉수교수는 자이니즘에 대하여 지바(영혼)와 푸드갈라(육체)의 결합으로 설명합니다. 형이상학적 지바와 형이하학적 푸드갈라는 끊임 없이 갈등하는데 이를 결혼으로 비유 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혼자 살면 편할 것 입니다. 그러나 외로움을 느껴 결혼이 뭔지도 모르면서 결합니다. 지바와 푸드갈라가 붙으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결혼생활이 순탄치만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인격체의 결합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갈등합니다. 마침내 갈라서고 맙니다. 지바와 푸드갈라가 떨어졌을 때 이는 죽음과 같습니다.

 

이혼한 사람은 혼자서 살아갑니다. 결혼생활에 진저리 났기 때문에 다시는 결혼 같은 하지 않을 것이라 다짐 합니다. 결혼은 확실히 미친짓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외로움을 느낍니다. 그렇게 호되게 겪었던 일들을 잊어 버리고 단지 외롭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재혼하게 됩니다. 자유로운 영혼이 된 지바가 또다른 푸드갈라를 찾는 것과 같습니다.

 

재혼하여 행복하게 살아 갑니다. 그러나 오래 가지 않습니다. 또 다시 갈등 합니다. 그 과정에서 또 다시 무수한 업을 짓게 됩니다. 그렇다고 헤어질 수도 없습니다. 첫번째 결혼에서 실패 했는데 두번째에서도 실패할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저히 버틸 수 없어서 헤어지게 됩니다. 그러면서 두 번의 결혼생활에 대해 후회하게 됩니다. 이렇게 본다면 결혼 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 입니다. 그런데 더 어리석은 것은 이혼하는 것입니다. 더욱 더 어리석은 것은 재혼하는 것입니다. 최악은 또 다시 이혼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느니만 못합니다. 두 번의 결혼에서 남는 것은 상처밖에 없습니다. 고스란히 과보로 받아야할 무수한 업을 지은 것입니다.

 

지바와 푸드갈라의 결합도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는 것과 같습니다. 태어나는 것은 지바와 푸드갈라가 붙는 것이고, 죽는 것은 지바와 푸드갈라가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지바는 변치 않는 영혼 입니다. 푸드갈라를 찾아 붙어 살 때 마다 무수한 업을 짓습니다. 그런데 그 업은 계속 축적된다는 것입니다. 업의 세력이 너무 커서, 업이 너무 무거우면, 그 업의 힘에 압도 되어 버릴 것 입니다. 그 결과 업대로 살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자이니즘의 숙명론 입니다. 모든 것이 전생의 업 때문이라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더라도 전생의 원인 때문일 것이고, 주지 않는 것을 빼앗더라도 전생의 원인 때문일 것이고, 청정하지 못한 삶을 살더라도 전생의 원인 때문일 것이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전생의 원인 때문일 것이고, 이간질을 하더리라도 전생의 원인 때문일 것이고, 욕지거리를 하더라도 전생의 원인 때문일 것이고, 꾸며대는 말을 하더라도 전생의 원인 때문일 것이고, 탐욕스럽더라도 하더라도 전생의 원인 때문일 것이고, 분노하더라도 하더라도 전생의 원인 때문일 것이고, 잘못된 견해를 지니더라도 하더라도 전생의 원인 때문일 것이다.”(A3.61) 라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그 모든 것은 전생이라는 원인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라고 보는 것이 숙명론입니다.

 

모든 것을 전생의 업보 탓으로 보는 숙작인설, 모든 것은 신의 뜻이라 보는 존우화작설, 모든 것은 원인과 조건 없이 생겨났다는 무인론을 무작설이라 합니다. 업과 업의 과보를 부정하는 세 가지 무작설은 대표적인 외도사상입니다.  이에 반하여 원인과 조건과 결과에 따른 연기법으로 업과 업의 과보를 설명하는 것을 작론이라 합니다.

 

지바와 푸드갈라가 붙으면 숙세의 업이 축적되어서, 그 업의 힘에 압도 되어 숙명론자가 됩니다. 지바가 업의 세력으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은 푸드갈라를 괴롭혀 업을 소멸코져 하는 것입니다. 이는 다름 아닌 고행입니다. 고행을 통해서 숙세에 축적된 업의 세력을 남김 없이 없애고져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도 깨달음을 이루기전 몸을 학대하여 6년간 고행한바 있습니다.

 

자이니즘의 숙명론은 지바와 푸드갈라의 붙음으로 설명됩니다. 이를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재혼과 이혼으로 설명한 것은 흥미를 유발합니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 하지만 해탈을 추구하는 수행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미친짓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일반사람들에게 있어서 결혼은 해서 후회하는 것이 더 나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혼을 하여 후회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라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한번 혼쭐이 나고서도 단지 외롭다는 이유로 재혼하는 사람은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람이라 봅니다.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재혼한 다음에 또 이혼하는 사람입니다.

 

결혼을 해서 후회할 것이라면 홀로 살아가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일 것입니다. 해탈을 추구하는 수행자를 말합니다. 아마 전생에서 겪을 것 다 겪었기 때문에 이번생에서는 도만 닦을 일만 남았는지 모릅니다.

 

 

2016-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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