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백년대계

안하는 것인가 못하는 것인가, 불교리더들의 게으름과 무능력

담마다사 이병욱 2016. 8. 16. 15:37

 

안하는 것인가 못하는 것인가, 불교리더들의 게으름과 무능력

 

 

 

 

 

현재 교계신문사이트에는 글이 세 개 돌고 있습니다. 불교닷컴에 자현 스님의 갑질은 언제까지(2016-08-11)’라는 제목으로 기고문이 실렸습니다. 그리고 불교포커스에는 공멸로 이끄는 조직침묵(2016-08-11)’라는 제목으로 역시 기고문이 실려 있습니다. 미디어붓다에는 어리석은 자라 하는가(2016-08-160”라는 제목으로 칼럼이 실려 있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어느 불자는 댓글에서 불닷과 미붓에서 종횡무진이라고 표현 했습니다. 쓰다 보니 교계신문 세 군데에서 글이 돌게 되었습니다.

 

보통불자의 글쓰기에 대하여 같잖게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자신 보다 못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대한 비판보다는 이런것은 오지랍이 넓은것도 아니고 그냥 똥인지 된장인지도 구분 못하는 어리석은 중생의 글에 불과하다네라며 깍아 내리려는 경향이 농후합니다. 또 어떤 이는 왜 같은분들만 자주 실리는것 아닌가요? 좀 다양하고 많은분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데라고 하기도 합니다. 이에 또 어떤 이는 자승당에게 해종으로 찍혀서 불교바닥에서 쫓겨날까봐 기고를 다 고사했답니다라고 표현 하기도 합니다.

 

인터넷에 글을 쓴다는 것은 욕먹을 각오 해야 합니다. 불자라고는 하지만 별의별 인생이 다 있기 때문에 반드시 좋은 이야기만 듣는 것이 아닙니다. 욕설이나 인신공격, 중상이 아닌 글은 그저 그러려니 하며 넘어 갑니다. 그럼에도 때로 격려의 글도 받습니다. 어떤 이는 연꽃님은 비판세력의 말에 개의치 말고 올곧게 자기 길을 잘 갈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라고 힘을 실어 줍니다.

 

불교닷컴에 조직침묵에 대한 글을 기고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어느 네티즌은 능동적침묵에 대하여 이야기 했습니다. 어느 큰스님과 기자의 일문일답에서 기자가 용주사, 동국대 사태에 따끔한 말씀을 해주시는 어른이 안 계신다.”라고 물었다고 합니다. 이에 큰스님은 공부한다고 그런 데에 관심이 없다. 마음 쓸 시간도 없다 거기에 대해서는 노코멘트다.”라 했다고 합니다. 수행에 열중하다보니 종단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심 두지 못함을 말합니다. 이를 이름하여 능동적침묵이라 합니다.

 

침묵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체념적 침묵, 방어적 침묵, 능동적 침묵이 거론 되었습니다. 종단과 관련해서 지적해 보면 불의에 대한 침묵이라 볼 수 있습니다. 불의에 대한 침묵은 범죄행위에 대하여 동조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잘못된 것에 대하여 잘못됐다고 다수가 지적하면 악행하는 자는 움찔 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계신문에 기고하는 행위는 종단의 잘못된 행위나 관행을 알려 주기 위함입니다. 설령 지금 당장 시정이 되지 않다고 하더라도 이런 견해가 있다는 것만 알려 주어도 언젠가는 바로 잡아 질 것입니다. 그럼에도 대다수가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불의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초기경전에도 침묵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맛지마니까야를 보면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수행승들이여, 믿음으로써 집에서 집 없는 곳으로 출가한 그대들 훌륭한 가문의 자제들이 법담을 위하여 모였다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수행승들이여, 모임은 두 종류로 이루어져야 한다. 법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고귀한 침묵을 지키는 일이다. (M26)

 

 

부처님은 법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라고 했습니다. 법담은 허용하지만 잡담은 허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르침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그 외에는 입을 다물어야 함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항상 묵언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고귀한 침묵이라 하여 명상주제를 닦는 것을 말합니다. 주석에 따르면 두 번째 선정을 선정을 성취할 수 없는 자들에게 근본적인 명상의 토대를 닦게 함으로써 고귀한 침묵을 유도한다.” (Pps.II.169)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두 번째 선정과 근본적인 명상주제가 모두 이 고귀한 침묵에 해당됩니다.

 

고귀한 침묵은 결국 명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명상주제를 정하여 명상토대를 닦는 것이 고귀한 침묵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큰스님이 말한 능동적 침묵과 어느 정도 일치하는 말입니다. 큰스님이 공부한다고 그런 데에 관심이 없다. 마음 쓸 시간도 없다 거기에 대해서는 노코멘트다.”라고 말한 것이 틀리지는 않는 말이 됩니다. 그럼에도 반드시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사는 것은 조직침묵임에 틀림 없습니다. 승가화합이라는 것이 잘못된 것을 감추고 덮어 주는 것이 아니라 여법하지 않은 것을 쳐내는 것이 승가화합이기 때문입니다.

 

보통불자가 인터넷에 매일 글을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계신문에 종종 기고하고 있습니다. 기고하다 보니 세 군데에서 글이 실려 있습니다. 이런 행위에 대하여 시기하는 자들은 같잖게생각하여 흠집내기로 일관합니다. 그러나 대다수는 격려의 메시지를 보냅니다. 불교계 스님들과 불교계 지성인들에게 묻습니다. 한국불교 미래를 염려한다면 기고를 해야 합니다. 기고를 함으로 인하여 여법하지 않은 집단에 대하여 움찔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여법한 승가공동체, 여법한 사부공동체를 실현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게으름과 무능력이라고 탓할 수밖에 없습니다. 해야 할 일을 안하는 것은 게으름이고, 해야 할일을 못하면 무능력이라고 밖에 볼 수 없습니다.

 

 

2016-08-16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