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을 화나게 하는 문화재관람료
지난 여름은 무척 더웠습니다. 1994년 이래 가장 무더운 여름이라 했습니다. 연일 계속 되는 무더위와 열대야에 사람들은 시원한 곳을 찾아 떠났을 것입니다. 특히 국민휴가철이라 볼 수 있는 팔월 첫 째 주에 산과 강과 바다를 찾아 많은 사람들이 떠났습니다. 그런 곳 중에 국립공원이 있는 명산도 찾았을 것입니다.
명산에는 반드시 절이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전통사찰이 900여 개 된다고 하는데 대부분 명당자리에 산사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사찰은 통행료를 내야 합니다. 문화재관람료라는 명목으로 절에서 징수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도로를 막고 돈을 걷어 갑니다. 절의 땅을 지나가기 때문에 일종의 통행료라 볼 수 있습니다. 이에 국민들의 원성이 자자 합니다.
통행료를 내라고?
국민휴가기간 동안 전국의 명산을 찾은 사람들은 문화재관람료라는 명목의 통행료 때문에 기분이 많이 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무더위가 한풀 꺽인 시점에 인터넷뉴스에서는 문화재관람료에 대한 비판적인 기사가 여러 개 떴습니다. 그 중에 하나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국립공원을 막아놓고 사찰을 방문하지 않는 등산객에게 무차별적으로 '통행세'를 내라는 것은 지나치다는 주장이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모임의 윤주옥 실행위원장은 "무분별하게 문화재 관람료를 징수하는 것은 시민의 기본권 침해"라며 "등산 목적의 입산객에게 관람료를 거두는 문화재 관람료 징수 방식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화재 관람료 갈등은 법원 판결이 나더라도 쉽게 해결 안 된다"며 "불교 문화재를 특정 종단 소유로 볼 게 아니라, 민족의 문화유산이자 국민 모두의 공공자원으로 접근해 중앙정부 차원이 대책과 결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절에 안가고, 문화재 안봤는데…문화재관람료 내야 하는 이유는, 연합뉴스 2016-08-30)
연합뉴스에 실린 기사의 일부입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사찰에 가지 않고 등산만 하는데도 관람료를 징수하는 것은 한국불교의 횡포라고 했습니다. 더구나 거두어 들인 관람료가 어떤 방식으로 정확하게 쓰이는지도 알 수 없다고 했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전국 64곳에서 관람료를 징수하고 있는데 매년 수입액은 수 백원에 달할 것이라 합니다.
왜 국민을 화나게 하는가
한국불교가 국민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습니다. 8월 30일자 뉴스를 보면 연합뉴스를 비롯하여, 서울신문, 한겨레신문, 문화일보 등 중앙일간지와 MBN, 채널A, JTBC 등 종편에서 일제히 보도 했습니다. 이외 크고 작은 언론 매체에서 마치 들고 일어난 것처럼 관람료 징수의 부당성에 대하여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기사 제목을 보면 ‘ “등산만 하는데 문화재관람료 왜받나” 사찰 횡포에 ‘부글부글’(종합)’라 하여 자극적 제목을 달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댓글을 보면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듯 보입니다. 댓글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댓글1)
“보지않은 문화재 통행료 절대 내지 맙시다.
지나가는데 길을 막고 통행료 내라니 이거 중들이 미친거 아닌지
부처님 말씀듣고 수행할 중들이 이거 이래서야 됨니까.”
(댓글2)
“지리산 횡단도로를 지나는데 천은사가 길가에 있어 천은사는 보이지도 않는데 길을 막고 통행료를 받라고요 어이가 없어요
중들은 왜 통행료를 받는지 이해가 안됨”
(댓글3)
“문화재는 어느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전유물이 아닐진데 그것을 이용해서 관람료를 내라는 논리는 누가 만든 것인가? 국보급문화재가 수십점이상 전시되고 있는 국립박물관도 입장료가 공짜거늘...”
(댓글4)
“문화재면 사찰을 국가에 헌납하고 승려들은 절을 떠나야 한다.만약에 사찰이 종교 시설이면 관람료를 징수하는것은 맞지 않다.국보급이라서 보존해야 한다면 소유권을 국가에 귀속시키고 문화재로써 만 보존 해야 할것이다.관람료 받는 절에서는 승려를 퇴출 시키고 사찰도 국가 소유로 해야 한다.”
(댓글5)
“문화재 구경않는 사람에게도 입장료 받는것은 도독놈이죠”
(댓글6)
“안보는데 왜 내야되는데~사찰 입구에서 받으면 될꺼아냐~~”
문화재 관람료 폐지 요구하는 시민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외 에도 수 많은 댓글이 올려져 있습니다. 국민들은 한국불교의 징수행위에 대하여 이해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성보문화재도 공짜로 관람할 수 있는데 길을 막아 놓고 입장료를 받는 행위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문화재를 국가에서 관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화재가 불교만의 문화재가 아니라 국가의 문화재이기 때문이라 합니다. 또 입장료를 받는 것에 도둑질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정 받으려거든 사찰 입구에서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분노가 댓글에서는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과 비방과 비난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총무원스님들과 중앙종회스님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벌써 9년 째 계속되는 관람료 시비에 귀를 막은 것 같습니다.
스님출입금지
문화재관람료와 관련하여 여러 차례 글을 썼습니다. 불자로서 사찰순례 하다 보면 ‘이런 곳에도 관람료징수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불국사나 해인사 등 관광지화된 대찰은 그렇다손치더라도 그다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사찰에서도 길을 막고 관람료를 징수하고 있습니다. 막상 들어가서 보면 그다지 볼 것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문화재 해설 해 주는 사람들도 없습니다. 입장료만 받아 챙길 뿐 아무런 설명도 안내도 서비스가 없습니다. 보통불자가 이정도 생각했다면 일반국민들의 정서는 거의 증오수준일 것입니다. 그래서일까 충청북도 영동에 있는 어느 사찰 입구에서는 한국불교를 맹비난 하는 플레카드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한국불교는 수억평에 달하는 토지와 각종 국보와 보물급 문화재가 수 백개 있습니다. 우리나라 문화재의 약 70% 가량이 불교와 관련된 문화재라 합니다. 이들 문화재를 관리하는데 있어서 관람료 명목으로 징수하고 동시에 정부에서 지원금을 타기 때문에 이중으로 돈이 들어 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돈이 되다 보니 스님들간에 목 좋은 사찰을 차지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합니다.
한국불교에서는 도로를 막고 돈을 받고 있습니다. 이런 행위에 대하여 어떤 네티즌은 스님들이 절 문밖을 나서 도시로 들어 올 때 통행요금을 받자고 했습니다. 불교와 국민들간의 감정이 골이 깊어지면 스님들이 서울에 발을 들여 놓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지 모릅니다. 조선시대 승려도성출입금지처럼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습니다.
언젠가 보도에서 ‘스님출입금지’라는 말이 이슈가 된 적이 있습니다. 가게에 스님을 들어 오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타종교인이 자신의 종교를 내세우며 말하는 형식입니다. 이는 불교와 스님을 혐오하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그래서일까 종종 스님에게 침뱉기 등 스님무시하기, 스님모욕주기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이번 문화재관람료 사건 처럼 국민감정이 악화 되면 스님출입금지가 전국적으로 퍼질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힌두교 문학작품속 실린 불교혐오
한국불교는 계를 지키지 않는 스님들 때문에 이미지가 많이 실추 되었습니다. 국민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 백양사승려도박사건, 마곡사 인근의 한국전통문화연수원에서 승려밤샘술판 사건 등 잊을 만하면 주기적으로 일어납니다. 여기에다 뜨거운 여름 날 관람료 징수로 인하여 국민감정이 악화 되었을 때 아마 스님혐오현상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이는 단지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증오수준이고 한국불교가 망하기를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한국불교와 스님들이 증오의 대상이 되었을 때 미래는 없습니다. 이런 현상이 인도에서도 있었습니다.
인도에서 불교는 망했습니다. 망한 이유가 여러 가지 있을 수 있지만 불교내부적으로 부패해서 망한 이유도 있습니다. 이런 사실이 인도 힌두문학작품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일아스님이 지은 책 ‘아소까’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만일 불교도와 접촉하면…,
그는 목욕을 해야 정화된다.”
(닐깐뜨의 ‘뿌라야쉬뜨 마유카’에서)
“불교사원에 가는 사람은 죄를 짓는 것으로
그 부정을 제거하기 위해 정화가 필요하다.”
(아빠라까의 스므리띠 브라다 하리뜨에서)
“신이나 조상에게 봉헌한 식사에 불교도나, 아위지까,
노예, 유배자를 대접하는 사람은 100빠나의 벌금이 부과된다.”
(까우띨야)
“불교 비구를 한번 보는 것만으로도,
심지어 꿈속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재수없고 보는 것을 피해야 한다.”
(야즈나발까, 유명한 힌두법전 문헌가)
“브라흐민이 불교도의 집에 들어가는 것은,
심지어 큰 위험에 처했을 때라도 죄가 된다.”
(아그니 뿌라나)
“하얀 이빨, 눈은 절제하고, 머리를 삭발하고,
노란 가사를 입은 이 노예들이 종교적인 행위를 거행할 것이다.”
(바유 쁘라나)
“불교로 개종하는 것은 죄를 짓는 것이며
머리 깍은 사문과 말하는 것만으로도 지옥에 떨어진다.”
(비누 쁘라나)
(아소까 412-413p, 일아스님지음)
힌두교 문학작품속에 실려 있는 불교와 비구혐오 문구를 보면 매우 의도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불교말살정책과 관련이 있습니다. 문학작품속에서조차 불교를 혹독하게 박해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인도불교가 스스로 자초한 면도 있습니다. 대승불교가 밀교화 되면서 대중과 유리되고 더구나 성적 에로티시즘을 표방한 좌도밀교 등으로 인하여 지탄 받은 것입니다.
종교가 타락하면 코미디프로 소재로 등장합니다. 종교가 희화화 되는 것입니다. 인도에서도 똑 같은 현상이 있었습니다. 대승불교가 밀교화 되는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부패했을 때 문학작품의 소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비구를 보는 것만으로도 재수 없다’든가, ‘머리 깍은 사문과 말하는 것만으로도 지옥에 떨어진다’라 하여 혹독하게 불교를 폄하한 것입니다.
오는 사람 막지 않는다 했거늘
불가에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제발로 사찰을 찾아 온다면 반가이 맞이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도로를 막고 관람료를 징수했을 때 사실상 오는 사람을 막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법화경 방편품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이들 장난으로
풀 나무 붓이거나
혹은 꼬챙이로
부처님 모양 그린 이들
이와 같은 여러 사람들
공덕을 점점 쌓아
큰 자비심을 갖추어 모두 성불하였나니”
(법화경 방편품)
아이들이 모래 밭에서 놀 때 여러가지 모양의 그림을 그립니다. 그런데 한아이가 막대기로 부처님 형상을 그렸을 때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법화경에서는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큰 의미를 두고 있습니다. 비록 아이가 장난으로 부처님형상을 그렸다고 할지라도 그 인연으로 언젠가는 성불하게 될 것이라 합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방편품에서는 “환희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찬탄하되 한마디만 하더라도 다 이미 성불했고”라 했습니다. 부처님 찬탄 게송 한마디만 해도 이미 성불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찬탄하는 게송 그 한마디가 인연이 되어 언젠가는 성불할 것이기 때문에 이미 성불한 것이나 다름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방편품에 따르면 마음이 산란한 자가 꽃 한송이 바치거나 불상 앞에서 합장 한번만 해도 성불한 것으로 봅니다. 누군가 술을 마시고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하며 횡설수설 해도 그 인연으로 언젠가는 성불하는 것으로 볼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오는 사람 막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불교에서는 마치 고속도로 통행료 징수하듯이 절땅을 지나갔다고 하여 돈을 받습니다. 그 원성이 하늘을 찌를 듯 합니다.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계속되어야 할까요?
국민과 싸우자는 건가요?
한국불교는 정부로부터 불교문화재관리 명목으로 지원금을 받고 있습니다. 금액이 적고 많음을 떠나 지원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 없습니다. 여기에 문화재관람명목으로 국민을 대상으로 돈을 받고 있습니다. 이처럼 이중으로 돈을 받는 것에 대하여 국민들은 물론 불자들도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전사찰에 대하여 관람료를 받지 말자는 것은 아닙니다. 성보박물관을 갖추고, 문화재해설사가 상주하고, 관광지화된 대찰 몇 개에 한해서 받자는 것입니다. 그것도 등산로를 막고 받는 것이 아니라 사찰출입이 시작되는 금강문이나 사천왕문 입구에서 받자는 것입니다.
한국불교는 현재 국민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옛말에 국민과 싸워서 이긴 자 없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한국불교는 지난 2007년 이래 9년 동안 관람료징수와 관련하여 국민들과 싸우고 있습니다. 10년 가까이 되는 세월동안 상처 받은 국민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이는 고스란히 한국불교의 업보로 나타날 것입니다. 매 10년 마다 종교인구조사가 발표 되는데 참담한 결과가 예상됩니다. 이 모든 책임은 오늘날과 같은 상황을 초래한 총무원스님들과 중앙종회스님들이 져야 할 것입니다.
국민들이 절로 찾아 오면 반갑게 맞아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불교에서는 국민들을 오히려 쫓아 버립니다. 해종행위와 같습니다. 국민들의 분노하면 할수록 한국불교의 세는 갈수록 약화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들이 적대감을 가졌을 때 힌두교 문학작품속의 상황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한국불교의 총무원스님들과 중앙종회스님들은 아무 말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목 좋은 사찰을 차지하고 나누어 갖습니다. 한국불교가 망하든 말든 오로지 이익만 챙기는 이익집단 같습니다. 한국불교 말아먹자는 건가요? 문화재관람료 받지 말아야 합니다. 국민이 분노합니다.
2016-08-31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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