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차별을 말한다면 그는 악마
제일야당 대표로 여성정치인이 선출 되었습니다. 여성대통령과 여성야당대표, 한국은 여인천하가 된 듯 합니다. 여인천하는 한국만이 아닙니다. 대만총통도 여성입니다. 독일은 여성총리가 장수하고 있습니다. 브라질은 여성이 대통령입니다. 미국은 여성대통령탄생이 기정사실화 되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여성국방장관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 세상의 반은 남성이고 이 세상의 반은 여성입니다. 그렇다면 남성과 여성의 능력에 대한 차이는 있을까요?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남성들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특히 불교계에서 그런 것 같습니다. 운문사 일진스님이 동국대 다닐 때 “비구니 백년을 해 봐라”라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스님이 오대산 적멸보궁으로 기도하러 가는 도중에 건장한 젊은 비구스님들이 지나가면서 한 말이라 합니다. 이 말에 자극받아 도서관을 뒤져 남녀차별에 대한 자료를 찾기 시작했고 남녀에 어떤 능력의 차이가 있는지 초기경전을 근거로 논문을 썼다고 합니다.
남녀평등시대라 하지만 성의 차이는 눈에 보이지 않게 있습니다. 마치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인정하지 않지만 은근한 차별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지역차별 역시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사회에서 이 정도라면 종교계에서 성 차별은 노골적이라 볼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불광사에서 열린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에서 총무원장스님은 “비구니스님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라 했습니다. 비구니스님들에게 직접선거 투표권을 주면 한국불교가 망하는 것으로 본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상당히 놀랐습니다. 사회에서라면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총무원장스님의 발언은 분명히 남녀 성차별 입니다.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인식하여 남성 보다 못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사회에서라면 페미니스트의 공격을 받아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을 것 입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한국불교에서는 문제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하여 교계신문에 기고문도 작성했지만 아무런 반향이 없습니다.
남성중심의 세상에서 과연 여성은 열등한 존재일까요? 분명한 사실은 능력에 있어서 그 어떤 차별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성적 특징의 차이로 인하여 남성이 더 강해 보이기 때문에 이런 점을 들어 남성이 더 우월하다고 본다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 받을 것입니다.
초기경전을 보면 여성차별을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마 부처님 당시 시대상황을 반영한 것이라 봅니다. 수행녀에게 악마가 나타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빠삐만]
“성자만이 도달할 수 있을 뿐
그 경지는 성취하기 어려우니
두 손가락만큼의 지혜를 지닌 여자로서는
그것을 얻을 수가 없네.” ( S5:2)
악마 빠삐만은 숲에서 수행하는 수행녀에게 지혜가 없다고 말합니다. 고작 두 손가락 벌린 만큼의 지혜에 지나지 않음을 말 합니다.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으로 잴 수 있는 만큼의 크기로, 아주 작은 양을 뜻합니다.
부처님 당시 고대인도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한 존재로 보았습니다. 악마 빠삐만의 말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정말 여성들은 열등한 존재일까요? 수행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쏘마]
“마음이 잘 집중되어
최상의 진리를 보는 자에게
지혜가 나타난다면
여성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랴?"
이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에게
나는 남자다 나는 여자다
그렇지 않으면 도대체 무엇이다라고 말해야 한다면,
그는 악마일 뿐이리.”(S5:2)
진리를 추구하는데 있어서 남녀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깨달은 자는 성이나 어떠한 규정도 초월한다는 것입니다. 수행녀 쏘마는 이미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했습니다. 그래서 남녀 차별을 이야기하는 자들은 모두 악마(māra)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남녀차별을 얘기 하는 사람은 악마입니다. 비구가 비구니에게 “비구니 백년을 해 봐라” 라고 말하는 것도 악마의 말이고,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스님이 “비구니스님들에게 투표권을 주면 한국불교 망합니다”라고 말하는 것도 악마의 말 입니다.
이 세상에 차별은 분명히 존재 합니다. 다만 드러내 놓지 않을 뿐 은연중에 은근하게 차별합니다. 피부색이 다르다고 하여 차별하고, 성이 다르다고 차별하고, 지역이 다르다고 하여 차별합니다. 그러나 능력에 있어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습니다.
부처님은 모든 땔감에서 불이 붙는 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출생을 묻지 말고 행위를 물어야 하리. 어떠한 땔감에서도 불이 생겨나듯 비천한 가문에도 지혜로운 현자가 생기네. 부끄러움으로 자제하는 자가 고귀하네.” (S7.9) 라 했습니다.
전단향 고급목재 땔감에서 붙는 불이나, 소똥을 말려서 만든 땔감에 붙는 불이나 화염과 광채와 광명에 있어서는 차별이 없습니다. 누군가 인종차별, 성의 차별, 지역차별을 말한다면 그는 악마임에 틀림 없습니다.
2016-08-30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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