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부채 없이 음식을 즐긴다” 부처님 유산상속자

담마다사 이병욱 2016. 9. 19. 15:51

 

부채 없이 음식을 즐긴다부처님 유산상속자

 

 

수행자는 굶지 않는다

 

수행자는 굶지 않는다. 어느 스님이 깊은 산중 토굴에서 정진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알았는지 어느 촌부가 지게에 쌀을 지고 열심히 올라가고 있었다는 말이 전설적으로 전해 오고 있다. 다만 수행자 뿐만 아닐 것이다. 공부하는 자들 모두에게 해당된다. 집안에 학생이 있으면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재워 준다. 설령 자신의 자식이 아니더라도 마을에 세칭 일류대학에 합격한 학생이 출현하면 마을 사람들은 내자식처럼 돌보아 준다. 학비를 대 주고 거처를 마련해 준다. 누군가 고시공부를 한다고 했을 때 아낌 없는 지원을 해 준다. 예로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공부하는 사람에게 아낌 없는 지원을 했다. 그것은 미래가 기대 되기 때문일 것이다.

 

옛말에 젊은 사람 무시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 별 볼일 없는 젊은 사람이라도 세월이 흘러 나중에 어떻게 성장해 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있듯이 시골에서 공부 잘한 학생이 판검사가 되어 출세했을 때 가문의 영광일 뿐만 아니라 마을에서도 자랑거리였다. 그래서 공부하는 학생에게 학비를 대주고 거처를 마련해 주는 등 아낌 없이 지원해 주는 것이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풍습이었다. 이런 풍습은 수행자라해서 크게 다르지 않다. 계행을 지키며 열심히 정진하는 스님에 대하여 신도들은 아낌 없는 지원을 한다. 깊은 산속 토굴에서 용맹정진하는 스님을 어떻게 알았는지 지게에 쌀 등 먹을 것을 잔뜩 짊어지고 험한 산길을 올라가는 것이다.

 

공부하는 사람은 굶어 죽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수행자 역시 굶어 죽지 않는다. 죽기살기로 공부하고 죽기살기로 수행하는 사람을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들이 공부를 마칠 때 까지 수행을 마칠 때 까지 돌보아 주는 것이다. 공부하는 사람은 누군가 도와 준다. 수행하는 사람 역시 누군가 도움을 준다. 공부하는 사람, 수행하는 사람은 절대로 굶어 죽지 않는다.

 

부채 없이 음식을 즐긴다

 

수행자는 굶지 않는다. 계행을 지키며 열심히 정진하는 자에게 먹을 걱정이 없다. 수행자에게 보시하면 커다란 과보를 받는다고는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수행자는 부처님의 공덕에 크게 의지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테라가타에 이런 게송이 있다.

 

 

Tādisa kamma katvāna

bahu duggatigāmina
Phu
ṭṭho kammavipākena

anao bhuñjāmi bhojana.

 

이와 같이 나쁜 곳으로 이끄는

많은 악업을 짓고

아직 그 업보에 맞딱뜨리지만

부채 없이 음식을 즐긴다.”(Thag.882)

 

 

 

Bhikkhu

 

 

이 게송은 맛지마니까야 앙굴리말라의 경(M86)’의 게송과 병행한다. 게송에서 부채 없이 음식을 즐긴다.(anao bhuñjāmi bhojana)라 했다. 이 말 뜻은 무엇일까? 이에 대하여 주석을 보면 네 가지 즐김이 있다. 1)도둑질 한 것을 즐김, 2)빚진 것을 즐김, 3)유산의 즐김, 4)자기 것을 즐김이다. 번뇌가 부수어진 즐김은 자기 것을 즐기는 것이다. 그리고 부채가 없는 음식을 즐기는 것은 바로 자기 것을 즐기는 것이다.”(Pps.III.343) 라 되어 있다.

 

수행자는 굶지 않는다고 했다. 일을 하지 않고 직업을 가지지 않는 수행자는 굶어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먹을 것 등 누가 보시해도 보시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열심히 정진하지 않는 자나 계행이 엉망인자가 시물을 받아 먹었을 때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주석에 따르면 도둑질 한 것을 즐김(theyyaparibhogo)’에 해당된다. 밥도둑이다. 밥먹을 자격도 없음에도 밥을 얻어 먹는 것은 음식을 도둑질 하는 것과 같다.

 

계행을 지키긴 지키되 아무 생각 없이 음식을 수용한다면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계행을 지키고 살지만 음식을 받아 먹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 반조하지 않는다면 빚진 것을 즐김(inaparibhogo)’에 해당된다. 그래서 음식을 대할 때는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내 덕행으로 받기가 부끄럽네.”라고 대승공양게에서 말하듯이, 이 음식을 먹을 자격이 있는지 반조해 보아야 함을 말한다.

 

부처님유산으로 알고

 

음식을 대할 때 유산으로 볼 수도 있다. 왜 유산인가? 그것은 부처님의 은혜와 관련이 있다. 음식을 부처님의 유산이라고 생각하고 먹는 것이다. 출가하면 먹을 것과 입을 것과 잠잘 곳이 제공되는데 이는 부처님의 유산이라 볼 수 있다. 주석에 따르면 유산을 향유할 수 있는 자는 아라한을 제외한 일곱 부류의 유학이 이에 해당된다고 했다. 그래서 전재성님은 청정도론을 인용하여 거룩한 님은 제외로 하더라도 계행을 지키는 수행승들은 지방에서 특별한 음식에 대하여 부처님의 유산이라고 생각하고 먹었다.”라 했다. 청정도론을 찾아 보니 관련구절은 다음과 같다.

 

 

eva satthu mahattapaccavekkhaatā, “saddhammasakhāta me mahādāyajja gahetabba, tañca na sakkā kusītena gahetu” nti

 

reviewing the greatness of the heritage thus: “It is the great heritage called the Good Dhamma that is to be acquired by me, and it cannot be acquired by an idler”(냐니몰리역)

 

나는 정법인 큰 유산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게으른 자는 받을 수가 없다.’라고 이와 같이 유산의 위대함을 반조함.

(청정도론 4 55, Vism.1.132, 대림스님역)

 

 

청정도론에 따르면 계행을 지키는 자로서 가르침을 실천하여 경지에 오른 성자는 부처님유산의 상속자라 했다. 따라서 시주가 보시한 음식물에 대하여 부처님유산으로 알고 수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유산의 즐김(dāyajjaparibhogo)’라 했다.

 

수행자들은 음식 등 시물에 대하여 부처님의 유산으로 보고 수용한다. 그러나 계행이 청정하고 성자의 반열에 들어간 유학에 해당된다. 아직 성자의 흐름에 들어 가지 못한 자들의 음식에 대한 수용은 빚진 것이나 다름 없다. 그래서 빚진 것을 즐김또는 빚낸 것의 수용이라 한다. 열심히 정진하여 성자의 흐름에 들어 가야만 부처님의 상속자가 되어 음식을 유산으로 여겨 즐기는 것이다.

 

번뇌가 부수어진 무학의 아라한에게 있어서 음식의 주인은 자기인 것이다. 아라한은 모든 오염원이 소멸되어 공양을 받을 만하기 때문에 자기의 것으로서 부채 없이 음식을 수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학의 아라한은 보시한 음식에 대하여 자기 것을 즐김(samiparibhogo)’이라 하는 것이다.

 

부처님상속자로서

 

수행자는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굶어 죽지 않는다. 한국스님들이 노후를 걱정하여 노후대책용으로 토굴을 장만한다든가 개인절을 갖고자 하는 것은 수행자의 모습으로서 바람직스럽지 않다. 만약 스님이 굶어 죽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한국불교의 수치일 것이다. 아마 한국불교의 신도들은 스님이 굶어 죽도록 절대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계행이 청정한 스님들은 부처님의 상속자들이다. 가르침을 실천하여 깨달은 스님들은 부처님의 유산을 상속 받았으므로 부채 없이 음식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계행이 청정하지 못한 자는 음식도둑과 같은 것이다. 계행을 지키며 정진하는 스님들은 채무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음식먹는 것에 대하여 빚진 것을 즐기는 것과 같다.

 

자식은 부모를 봉양하며 산다. 때에 따라 용돈을 드리고 먹을 것 등을 전한다. 이런 행위에 대하여 부모는 당연하게 생각한다. 그럼에도 부모가 자식에게 고맙다거나 감사하다라고 말하면 어떻게 보일까? 아마 매우 어색해 보일 것이다. 부모는 나를 낳아주고 키워 주고 교육시켜 주었기 때문에 시물을 받을 권리가 있고 시물을 즐길 권리가 있다. 이렇게 본다면 부모가 자식에게 받는 음식 등은 부채없이 즐길만한 것이고 자기의 것이라 볼 수 있다. 수행자도 역시 마찬가지 일 것이다. 

 

미얀마에서는 모든 것이 무료라고 한다. 도이법사의 미얀마수행기에 따르면 특히 외국인 비쿠와 수행자들이 불편함이 없도록 독방과 수행처가 마련되어 있고 1주일에 두 번의 수행에 대한 참문인 인터뷰와 한 번의 담마 스터디가 곁들인 문화가 연면하게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또 놀라운 것은 이런 체험을 하는 비용이 전부 무료라는 점입니다.” ([도이법사 수행기 Ⅲ] 2- 미얀마의 변화)라 했다. 비헹기 값만 있으면 의식주가 해결되는 것이다. 가르침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숙소를 제공하고 먹을 것을 주는 것은 부처님공덕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수행자로써 부처님이 남겨 주신 유산을 찾아 먹는 것이다.

 

어느 스님은 보시물을 받을 때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한다. 스님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매우 부자연스럽다. 당연히 받아야 할 보시물에 대하여 감사하다또는 고맙다라고 말하는 것은 세속에서 거래할 때나 하는 말이다. 스님들은 보시물에 대하여 당당하게 받아야 한다. 그것도 부처님의 상속자로서 받아야 한다. 따라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 아직 공부중인 학인이라면 시물에 대하여 채무의식을 가질 수 있지만, 가르침을 실천한 스님들은 부처님상속자로서 부처님유산으로 생각하고 시물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시주의 음식공양에 대하여 부채 없이 음식을 즐긴다.”라 했을 것이다.

 

 

2016-09-19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