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여열반이 단멸론이라고? 강병균교수의 유전자윤회론
가장 혐오스런 말이 단멸이다. 끊어져 없어진다는 뜻의 단멸론은 최악의 악취나는 견해이다. 단멸론이나 창조론이나 불교적 입장에서 본다면 모두 사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내세를 믿는 창조론에서는 봉사하는 삶과 도덕적인 삶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멸론에서는 내세와 윤회를 부정하기 때문에 보시 공덕 등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가르침을 따르는 불자들은 착하고 건전하게 산다. 그것은 내세에 대한 믿음이다. 설령 내세가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지만 반반의 가능성이라면 믿고 사는 것이 훨씬 더 낫다는 것이다.
악취나는 견해
몸이 무너지면 정신도 함께 무너져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는 견해가 있다. 단멸론이다. 한마디로 ‘죽음과 함께 모든 것이 끝난다.’는 견해를 말한다. 그런데 사람들 상당수가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종종 이야기 하는 것을 들어보면 “천국이 어디 있고 지옥이 어디 있어? 죽으면 그만이지.”라며 말한다. 또 ‘돌아간다’라는 말도 한다. 사람이 죽으면 ‘돌아 가셨다’라 하는데 죽으면 어디로 돌아 가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돌아간다’는 말은 지수화풍 사대로 돌아가는 것을 말한다. 이는 초기경전에서 유물론에 대한 것을 보면 “네 가지 광대한 존재(사대)로 이루어진 사람의 그 목숨이 끝날 때에 땅은 땅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물은 물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불은 불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성분으로 돌아가고, 모든 감각능력은 허공으로 돌아간다.”(S24.5) 라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지수화풍 사대라 하면 부처님당시 육사외도를 떠올리게 한다. 이른바 ‘적취설’이라 불리우는 유물론적 허무주의를 말한다. 몸이 무너지면 정신도 함께 무너져서 지수화풍 사대로 흩어져 버린다는 말이다.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으므로 허무주의적 견해임에 틀림 없다.
부처님당시에는 갖가지 사상이 난무했다. 크게 전변설과 적취설로 나눌 수 있다. 전변설은 브라만교와 같은 영원주의를 말한다. 오늘날 유일신교 종교가 이에 해당된다. 적취설은 요소설이라고도 하는데 육사외도의 견해를 말한다. 대개 유물론, 숙명론 등이다. 전변설이 영원주의적 견해라면 전변설은 하무주의적 견해에 해당된다. 부처님은 연기의 가르침으로 영원주의와 허무주의적 견해를 논파했다. 이런 과정이 초기경전에 자세히 묘사 되어 있다.
최악의 견해가 단멸론이다. 죽으면 끝이라는 견해는 필연적으로 허무주의적 견해를 갖게 된다. 그래서 ‘오직 한번 뿐인 이 목숨 즐기며 살자’라는 견해를 갖게 된다. 만일 인생이 원타임(One time)에 불과한 것이라면 보시를 하는 등 공덕을 쌓을 필요가 없다. 물론 선한 마음을 내는 자는 착하고 건전하게 살 것이다. 그러나 마음을 계발하지 않으면 악하고 불건전한 방향으로 향하게 되어 있다.
단멸론을 가지게 되면 시계생천의 가르침은 모두 소용없는 일이 된다. 지계도 없고 보시도 없게 된다. 오로지 이 한몸 먹고 마시고 즐기며 살면 된다. 즐기며 살되 남에게 폐끼치지 않고 착하게 살면 된다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즐기는 삶은 악하고 불건전한 삶이 될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견해가 단멸론이다. 만일 내생이 있다면 단멸론자들은 악처에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간난아이론
종교에서는 천상과 지옥을 이야기한다. 마치 사실처럼 경전에 묘사 되어 있다. 그러나 단멸론자들은 믿지 않는다. 직접 눈으로 보았느냐는 것이다. 아무도 천상과 지옥을 직접 본 사람이 없다. 다만 전승되어 온 가르침에 따를 뿐이다. 그렇다고 천상과 지옥이 없다고도 볼 수 없다. 단멸론자들이 천상과 지옥이 없다고 말하지만 이를 증명하지 못한다.
단멸론자들은 내세와 윤회를 부정한다. 아무도 직접 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 한다. 설령 윤회가 참이라도 우리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말한다. 윤회하여 태어나도 지금 여기서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기억’의 문제를 들고 있다.
유전자윤회론을 주장하는 강병균교수에 따르면 ‘간난아이론’을 말한다. 태어난 아이가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윤회가 참이어도 소용없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를 확장하면 천상이나 지옥도 의미가 없다.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의 나와는 무관한 것이다. 천상에 태어나 복락을 누리가나 지옥에 태어나 고통받는 것은 나와 관련 없는 일이다. 이런 논리라면 천상에 태어나기 위한 보시공덕을 지을 필요도 없고 지옥에 태어나지 않기 위한 지계를 할 필요도 없다.
죄악의 문제
강병균식 유전자 윤회론의 치명적 약점이 있다. 그것은 죄악의 문제이다. 창조주를 상정한 영원주의 종교에서도 죄악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전지전능한 신의 창조물인 인간들이 죄악을 저질렀다. 전지하고 전선하고 전능한 창조주의 작품에서 왜 이런 일이 생겨난 것일까? 이에 대하여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유전자윤회론도 마찬가지이다. 죄악의 발생에 대하여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강병균식교수는 이렇게 설명한다.
“현대 진화생물학과 뇌과학의 발전은, 권선징악적인 인과론(因果論)이나 윤회론이 아니더라도, 인간이 보통의 선행과 악행을 하는 이유를 설명 가능하게 한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가 걸어온 길을 즉 ‘왜 우리가 지금의 우리인지’를 설명해주지만, ‘우리가 갈 길’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진화에는 정해진 방향성이 없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46억 년 전에 지구가 생긴 시점에서, 그리고 35억 년 전에 지구상에 최초의 생명이 생긴 시점에서, 지금의 인간이 생기기로 미리 정해진 바가 없었다. 그러므로 불교에서 우리가 배워야할 것은 절대적인 선이다. 그런데 자연계가 지닌 놀라운 쌍대성으로 인하여, 인간이 지닌 본래 악한 모습은 전범, 흉악범, 학살범, 연쇄살인범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지극히 선한 행과 지극히 악한 행은 놀랍게도 평범한 사람들 중에도 생각보다 흔하게 나타난다. 소위 선과 악의 평범성(banality of good and evil)이다.)"
(강병균교수, 윤회(輪回), 2015-11-16, 불교닷컴)
우리 인간에게는 쌍대성원리에 의해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음을 말한다. 더구나 진화의 방향이 어디로 갈지 모른다고 한다. 진화의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에 지나간 과거는 알 수 있지만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화론을 보면 인류가 아주 작은 미생물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인간의 의식 역시 진화론의 산물이라 한다. 물질이 있고 나서 정신이 생겨났는데 의식도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진화론의 범주에 생체유전자(DNA)뿐만 아니라 문화유전자(Meme)까지 넣어 대상을 확장하고 있다. 그러나 모두 물질에 기반한 것이다.
물질에 기반한 강병균식 유전자윤회론에서는 죄악의 문제를 설명하지 못한다. 단지 쌍대성 원리에 의해 악이 선과 함께 공존하고 있음만 설명하고 있다. 만일 누군가 죄악을 저질렀을 때 어떤 과보를 받아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다. 물론 사회법으로 처벌 받으면 죄악의 문제가 해결될지 모른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살인한 자가 완전범죄에 성공하여 한평생 잘 먹고 잘 살다 죽었을 때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강병균식 유전자윤회론에 따르면 살인자는 죽음으로써 해방된다. 누구도 범죄에 대하여 책임을 묻지 않기 때문이다.
살인자의 자식
지금 누군가 도둑질을 하여 큰부자가 되었다면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음행을 일삼는 자가 수 많은 여인을 성폭행하고도 잘 산다면 또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잘 살다가 죽으면 끝나는 것일까? 유전자윤회론에 따르면 오계를 지킬 필요가 없다. 범죄를 저지르고 발각만 되지 않으면 된다. 내세와 윤회가 없기 때문에 어떤 과보도 받지 않는다. 설령 윤회가 참이라고 할지라도 간난아이로 태어나면 전생을 하나도 기억할 수 없다. 그러니 마음 놓고 범죄를 저질로도 될 것이다.
히틀러나 폴포트 등 전쟁범죄자들이 있다. 이들로 인하여 수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이외 인류가 시작된 이래 수 많은 전쟁광들이 있었다. 이들 전쟁광들은 어디로 갔을까? 죽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끝난 것인가? 강병균식 유전자윤회론에 따르면 “그렇다”라고 말 할 수 있다. 설령 그들이 지옥이 있더라도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다.
강병균식 유전자윤회론에 따르면 생체유전자와 문화유전자가 윤회한다고 했다. 생체유전자는 DNA를 말한다. 이 이론에 따르면 부모가 잘못한 것은 자식이 받아야 한다. 살인 등 죄악을 저지른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유전자가 윤회 했으므로 살인자의 피가 흐르는 것이다. 부모가 저지른 죄악을 자식이 받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되었을 경우 살인자를 부모로 둔 자식은 매우 억울할 것이다. 단지 살인자의 피를 물려 받았다는 것 하나로 살인자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런 죄악의 문제에 대하여 유전자윤회론자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무여열반이 단멸론이라고?
유전자윤회론은 죄악의 문제를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부처님 가르침을 부정한다는 사실이다. 물질의 죽음과 함께 정신도 죽는데 이때 유전자만 남긴다고 한다. 유전자는 물질이다. 물질에 기반한 유물론은 단멸론으로 귀결된다. 문화유전자(Meme)을 말하지만 구색용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같은 단멸론에 대하여 강병균교수는 자신의 칼럼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무여열반(번뇌가 다해 몸과 마음이 둘 다 삼계에서 사라지는 것)에 들어 이 세상에서 사라지자”라는 교리는 결과적(혹은 궁극적) 단멸론(斷滅論)이다. 결국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강병균교수, ‘무여열반과 단멸론’ 2014-11-10, 불교닷컴)
불교의 궁극적 목적은 열반이다. 모든 오염원을 소멸하여 다시는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가르침을 실천해야 한다. 계정혜 삼학을 닦아야 한다. 단번에 되지 않기 때문에 여러 생이 요청된다. 예류자가 되면 최대 일곱생 이면 완전한 열반에 들 것이라 한다. 그러나 강병균식 윤회론에 따르면 무력화 된다. 여러 생에 걸쳐 계정혜 삼학을 닦아 무여열반에 든 자나 이 생에서 죽어 단멸하는 자나 단멸하기는 마찬가지라 한다. 마치 현명한자나 어리석은 자나 죽으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다는 초기경전의 유물론의 주장과 매우 유사하다.
부처님도 단멸을 설했다
부처님도 단멸을 말씀 했다. 앙굿따라니까야에 따르면 바라문 베란자가 부처처님에게 “존자 고따마께서는 단멸을 설합니다.”(A8.11) 라 했다. 이에 부처님은 단멸을 설한다고 했다. 어떻게 말씀 했을까? 부처님은 누군가 부처님이 단멸을 설한다고 말하면 그런 이유가 있을 것이라 하면서 “바라문이여, 나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단멸을 설하고 여러가지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의 단멸을 설합니다.” (A8.11) 라고 대답했다.
부처님이 설한 단멸은 탐진치의 소멸이다. 탐진치가 소멸된 상태가 열반이다. 오온이 있는 상태에서 열반을 유여열반이라 하고, 오온이 소멸된 상태에서 열반을 무여열반이라 한다. 무여열반이 되면 불사가 되어 죽음도 없고 태어남도 없다. 그런데 강병균교수는 무여열반과 일반사람의 죽음을 동일시 하고 있다. 그래서 “이 점에서는 일반적인 단멸론과 다를 바가 없다. 열심히 수행해서 사라지나, 한 생만 살고 사라지나, ‘사라지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단지 “언제 사라지냐”는 시간차이가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강교수의 주장은 놀라운 놀랍다. 수행해서 몇 생에 걸쳐 열반을 증득하여 완전한 열반에 든 아라한이나 범부들의 죽음이나 단멸에 있어서는 아무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강병균교수의 주장대로라면 계정혜삼학을 닦을 필요도 없고 불교를 믿을 필요도 없다. 오로지 한번 뿐인 인생 즐기며 살면 되는 것이다. 즐기는데 있어서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문제 되지 않는다. 살인을 해도 도둑질을 해도 강간을 해도 발각만 되지 않으면 된다. 어차피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데 굳이 지계하고 보시하는 등 도덕적인 삶과 봉사하는 삶을 살 필요가 없다.
가르침을 조롱하는
강병균교수는 자신의 칼럼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조롱하고 있다. 그 절정을 보면 다음과 같다.
“그런데 무여열반을 목표로 하는 ‘궁극적 단멸론’과, 원하건 원치 않건 ‘이번 생이 즉 한 생이 모든 생’이라는 ‘현실적 단멸론’은, 사실여부는 차치하고, 어느 것이 더 인류라는 군집에 혜택을 줄까?
궁극적 단멸론에 의하면, 중생은 무여열반에 이르기 전까지는, 이 고해(苦海)로 개처럼 자꾸 끌려나와 윤회를 해야 한다. 그리고 그리 끌려나와 윤회를 하는 것은 다 ‘자기가 못난 탓’이다.”
(강병균교수, ‘무여열반과 단멸론’ 2014-11-10, 불교닷컴)
강교수에 따르면 계정혜삼학을 닦아 완전한 열반에 이르는 길에 대하여 못난 짓이라 했다. 내세도 없고 윤회도 없는데 쓸데 없는 짓 한다는 것이다. 수행한다고 법당에 앉아 있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젊은 나이에 출가하여 모든 감각적 쾌락을 포기 하고 사는 삶은 한심한 것이다. 가르침을 실천하여 도와 과를 이루는 행위에 대하여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설령 윤회가 참이라 해도 이전 생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이전 생에 이루어 놓은 성과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철저한 단멸론이고 철저한 허무주의라 볼 수 있다.
유전자윤회론자에 따르면 윤회를 믿자는 어리석은 자에 지나지 않는다. 더구나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미래생을 위하여 지계를 하며 보시를 하며 공덕을 쌓는 행위, 그리고 계정혜 삼학을 닦아 완전한 열반을 추구하는 행위는 못난 자나 하는 것이다.
단멸론이 득세하면
강병균교수의 유전자윤회론은 불교닷컴에 ‘환망공상시리즈’로 연재 되어 있다. 최근에는 ‘기이한 세상’이라는 이름으로 책이 출간된 바 있다. 수학을 전공하는 과학자의 눈으로 종교를 해부한 것이다. 특히 진화론에 근거하여 윤회를 설명했다. 이를 유전자윤회론이라 하다. 생체유전자와 문화유전자를 들어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상 물질에 기반한 단멸론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단멸론은 유물론에 근거한다. 유물론에 따르면 정신도 물질에서 나온다. 정신도 진화과정의 산물로 보는 것이다. 진화론에 따르면 인류는 박테리아와 같은 아주 미세한 물질로부터 진화해 왔다고 한다. 그러나 진화가 어떻게 전개 될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어디서 왔는지는 알 수 있지만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는 것이다. 진화에는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이라 한다.
모든 것을 물질로 환원했을 때 유물론이 된다. 정신도 물질에서 나왔기 때문에 물질이 사라지면 정신도 사라진다. 유전자윤회론 역시 마찬가지이다. 생체유전자와 문화유전자만 남기고 단멸하는 것으로 본다. 여기에 부처님 가르침이 자리 잡을 여지가 없다.
단멸론에 따르면 내세와 윤회가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계를 지킬 필요도 없고 보시할 필요도 없다. 선과 악이 반반씩 내재 하고 있다면 악이 발현될 가능성이 더 높다. 범죄를 저질러도 발각 되지 않는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인생이 원타임이라면 도덕적으로 금하는 것도 서슴없이 자행할 것이다. 살인, 도둑질, 강간, 거짓말 등 오계를 어기는 사회가 된다. 단멸론이 득세하면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모르는 사회가 될 것이다.
유전자 탓으로
단멸론은 최악의 견해이다. 그런데 강병균교수는 유전자윤회론이라 하여 단멸론을 주장하고 있다. 더구나 부처님 가르침을 왜곡하고 부정하고 심지어 조롱하고 있다. 가르침을 실천하여 열반에 이르려는 행위에 대하여 부질 없는 짓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강병균교수는 불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유전자윤회론에 따르면 몸이 무너져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 무여열반이나 일반죽음이나 단멸하는 것은 똑같다는 것이다. 이는 초기경전에서 유물론자들이 “어리석은 자나 슬기로운 자나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단멸하여 존재하지 않게 된다.”(S25.5)라는 견해와 매우 유사하다.
어느 바라문이 부처님에게 물었다. 바라문은 “존자 고따마여, 어떠한 원인과 어떠한 조건 때문에 인간의 모습을 한 인간들 사이에 천하고 귀한 차별이 있습니까?”(M135) 라고 물었다. 사람의 얼굴이 모두 다르고 사람의 성향이 다르다. 또한 온전한 신체적 조건과 정신적 능력을 갖추어 태어난 자가 있는가 하면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결핍되어 태어난 자들도 있다. 왜 이런 차별이 있을까?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업이 주인임을 강조하면서 “업이 뭇삶들을 차별하여 천하고 귀한 상태가 태어납니다.” (M135) 라 했다. 이전에 지은 행위에 대한 과보로 얼굴이 다르고 성향이 다르고 육체적 정신적 능력이 다름을 말한다.
부처님은 업과 업의 과보로 차별이 있음을 설명했다. 그러나 강병균교수의 유전자윤회론에 따르면 모든 것을 ‘유전자 탓’으로 돌리고 있다. 만일 유전자윤회론이 참이라면 살인자를 부모로 태어난 아이는 살인의 피가 흐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살인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파렴치한 강간범의 자식으로 태어난다면 음탕한 피가 흐르고 있을 것이다. 도둑놈의 자식은 도둑놈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도둑놈이 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 이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 살인, 도둑질, 강간 등 범죄를 저지른 자가 발각되지 않고 죽음을 맞이 했을 때 죄악의 문제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것이 알고 싶다.
2016-10-08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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