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하지 않는 즐거움
모두 소유하려 혈안이다. 아흔아홉을 가진 사람은 백을 채우고자 한다. 사무실에 화분이 큰 것, 작은 것 합하여 스물 두 개 있다. 그럼에도 새 화분을 찾는다. 눈에 띄는 화분이 있으면 갖고 싶어진다. 화원 앞을 지나면 유심히 본다. 목대가 두터운 열대나무가 눈길을 끈다. 잎도 넓적하고 품격 있어 보이는 나무이다. 가격을 물어 보았다. 예상대로이다. 눈으로만 보고 말았다.
무언가 수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어떤 이는 담배파이프를 수집한다. 어떤 이는 우표를 수집한다. 돈을 수집하는 이도 있다. 심지어 자동차를 수집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결코 만족하지 않는다. 아흔아홉칸 집에 사는 사람이 백칸을 채우고 싶어 하듯이 늘 두리번거린다. 돈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에 들어 갔었을 때의 일이다. 잡지 부록에서 일억원 모으기 프로젝트를 접했다. 일억원을 모으기 위한 구체적 플랜이 적혀 있었다. 주로 저축하는 방법이다. 성장의 시대에 일억 모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책에 쓰여진대로만 시행하면 가능한 것이다. 사람들은 왜 자꾸 모으려 할까? 그것은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것은 노후대책이다. 노후를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재산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젊은 나이임에도 노후를 걱정하여 미리 준비하고자 한 것이다.
노후대책은 수험생에게서도 볼 수 있다. 공무원시험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청년 상당수가 공무원시험준비에 올인하고 있다고 한다. 목적은 “연금 그거 하나 바라보고”라 했다. 공무원이 되면 신분보장이 되고, 고용이 보장이 되고, 정년이 보장된다. 더구나 연금도 보장 되어서 ‘요람에서 무덤까지’ 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그래서일까 우리나라 청년 상당수가 ‘연금 그거 하나 바라보고’라며 공무원시험 준비에 올인하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스님들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스님들 상당수가 개인사찰이나 토굴갖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월암스님은 교계신문에서 “너도 나도, 어른도 아이도 사설사암이요, 토굴이요, 아파트다. 개인주의가 팽배해 대중생활은 이뤄지지 않고 승가공동체의식은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라고 개탄한 바 있다. 사설사암을 가지고 있으면 노후가 보장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개인토굴이라도 있으면 이리저리 떠돌아 다닐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오피스텔이나 아파트도 토굴개념에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개인수행처로서 토굴이 이제 노후보장용으로 변질된 것이다.
허정스님이 쫒겨났다. 종단에 쓴소리 한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할말이 있어도 꾹 참고 있었다면 천장사 주지직에 재임 됐을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입이 근질근질 했던 것 같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 현실에서 교계신문에 글을 발표한 것이 화근이었다. 사설사암 갖기, 개인토굴장만하기 등 ‘각자도생’하는 스님들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승가공동체 붕괴의 위기를 본 것이다. 권력지향의 일부스님들이 암묵의 카르텔을 형성하여 종단의 요직을 독점한 것이다. 그리고 돈이 되는 목좋은 사찰을 나누어가졌다. 그결과 부자스님들과 가난한 스님들로 나누어졌다. 승가에서도 세속에서와 마찬가지로 부익부빈익빈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무엇보다 승가공동체의 붕괴이다. 한국불교의 현실에서 절망을 본 것이다. 승가공동체회복을 위하여 총무원장 직선제를 제시했다. 그러나 되돌아 온 것은 주지연임 거부라는 보복적 인사조치였다. 급기야 살고 있는 절에서 쫒겨나는 신세가 되었다.
10월 21일 저녁 사찰음식전문점 ‘마지’에서 허정스님 환송회가 열렸다. 천장사에서 쫒겨나 떠돌이 신세가 된 허정스님은 미얀마 출국을 앞두고 있다. 십일 후면 약 삼개월 일정으로 미얀마에서 한철을 보낼 것이라 한다. 모임에는 불교계 재가단체의 리더들과 재가횔동가들, 그리고 천장사신도들 이십명 가량 모였다. 천장사에서 마지막 일요법회를 했으나 서울에 있는 사람들이 아쉬웠던 것 같다. 김형남변호사가 ‘어! 이제 시작인데?’라는 포스터를 배포하며서 모임이 급작스럽게 이루어졌다. 부제는 ‘직선제 공약(空約)을 진심으로 믿은 스님, 허정당송별회’라고 되어 있다.
허정스님은 직선제가 진심으로 될 것이라 믿고 있었을까? 그렇게 믿고 있었다면 순진한 사람이다. 총무원장 직선제가 되건 안되건 행위를 하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 안될 줄 알기 때문에 포기하고 가만 있는 것보다 안될 줄 알면서도 하는 것이 더 나은 것이다. 법화경 방편품에 따르면 한아이가 나무가지로 모래 위에 부처님 형상을 그리기만 해도 성불한 것이나 다름 없다고 했다. 부처의 그림을 그린 인연으로 언젠가 성불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가 술을 잔뜩 마시고 불상 앞에서 ‘부처님’하며 횡설수설해도 성불할 것이라 했다. 부처님을 부른 그 인연으로 언젠가 성불할 것이기 때문이다. 총무원장 직선제는 한국불교 현실에서 요원한 일이다. 직선제가 실현될 것이라 보는 사람은 순진한 사람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직선제 운동을 했다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 그런 직선제가 이미 된 것이나 다름 없다. 직선제운동을 한 인연으로 언젠가 직선제가 실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세간이나 출세간이나 모두 노후걱정을 하고 있다. 노후를 대비하여 돈을 모으고 집장만을 하는 것이다. 세간에서는 청년들이 공무원시험 준비에 올인하고 있다. 연금 그거 하나 바라보고 인재들이 공무원시험준비를 하고 있다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스님들이 노후대책용으로 사설사암이나 개인토굴에 집착한다면 승가공동체는 붕괴될 것이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하여 지나치게 물질적 욕망에 탐착한다면 불행한 삶이다. 그러나 모든 것을 버린 수행자는 자유롭다. 가진 것이 없기에 어디든 다닐 수 없다. 소유한 것이 없기에 할 말 하며 살 수 있다.
소욕지족의 수행자는 물질적 욕망에 집착하지 않는다. 아무리 재산을 많이 모아도 내 것이 아니다. 재산은 왕이 빼앗아 갈 수 있고 도적이 가져 갈 수 있다. 또한 재산은 아무리 많이 가져도 ‘잉여’에 지나지 않는다. 은행에 돈을 넣어 두면 은행 것이고 대여한 집은 살고 있는 자의 것이다. 장부상으로만 내 것일 뿐 베풀지 않으면 그들의 것이다. 세상사람들이나 스님들이나 미래를 위하여 노후를 위하여 돈벌기선수가 되어 돈벌기에 올인 하지만 그 과정에서 무수한 악업을 짓는다. 설령 재산을 모았다고 하더라도 지켜내기 힘들다. 누군가 빼앗아 가 버린다. 중병이 들면 병원비로 다 써버린다.
늦은 나이에 후회한다. 나이 육십이 되었을 때 ‘인생 헛살았다’고 한탄한다. ‘인생비육십(人生非六十)’이라 한다. 나이 육십이 되어 지나온 삶을 되돌아 보니 잘못 산 것이다. 남들처럼 세상의 흐름에 따라 살아 왔지만 이루어 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 젊었을 때 모아 놓은 재산도 없고 청정한 삶도 살지 않았다. 마치 말라버리 호숫가에 날개 부러진 백로와 같은 신세이다. 또 쏘아져 버려진 화살 같은 신세이다. 오로지 욕망으로 분노로 어리석음으로 살아 온 지난 날을 생각하니 한심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욕망에서 자유로우면 삶이 넉넉해진다. 부자가 되겠다는 욕망 하나만 내려 놓아도 삶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모른다. 미래의 일은 알 수 없다. 가 보아야 알 수 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염려할 필요는 없다. 재가자나 출가자나 욕망을 줄이면 행복한 삶이 된다. 소유하지 않는 즐거움이다. 소욕지족(小欲知足)의 삶이다. 한평 누울 공간만 있으면 된다. 한벌 옷만 있어도 된다. 오늘 한끼의 밥만 먹어도 얼굴은 맑고 깨끗하다.
“마라의 군대를 항복받기 위해
분소의를 입은 수행자는
전쟁터에서 갑옷으로 무장한
왕족처럼 빛난다.
세상의 스승께서도
까시의 비단 옷 등을 버리고
분소의를 입으셨거늘
누가 그것을 입지 못할까?
그러므로 비구는 스스로
서원한 말을 기억하여
수행자에게 적합한
분소의 입는 것에 즐거워할지어다.”(Vism.2.22)
2016-10-22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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