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타향을 헤매던 나그네가
오해, 의심, 맹신, 비슷하면서도 상이한 말입니다. 오해는 잘못 알고 있음을 말합니다. 오해의 사전적 의미는 ‘사실과 다르게 해석하거나 이해함’입니다. 의심은 역시 잘못 알고 있음을 말합니다. 사전적 의미는 ‘믿지 못하거나 확실히 알 수 없어서 의아하게 여김’입니다. 맹신은 눈이 먼 믿음입니다. 사전적 의미는 ‘옳고 그름을 분멸하지 않고 무작정 믿음’입니다. 삶을 살아 가면서 다반사로 나타나는 일입니다.
결혼식장에서
지난 주 토요일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사촌조카의 결혼식입니다. 늦은 나이에 결혼하게 되었는데 사촌형님으로부터 갑작스럽게 연락 받았습니다. 사실 그 날 천정사신도들과 1박 2일 사찰 순례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선일스님이 주도하는 새로운 청규에 의하여 살아 가는 백장암승가공동체의 모습을 보기 위한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습니다. 거의 두 달 전부터 공지 된 것이라 꼭 참석하리라 마음 먹고 있었습니다. 더구나 허정스님이 주지연임을 거부당하고 떠나는 마지막 여행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형님으로부터 꼭 참석해달라고 문자가 온 것입니다.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두 개의 선택을 놓고 고민 했습니다. 오래 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사찰순례를 갈 것인가 집안 행사를 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입니다. 집안행사에 참석하기로 했습니다. 사찰순례는 다음 번에도 갈 수 있지만 결혼식은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혼식은 영통에서 열렸습니다. 외진 곳에 있어서 한적 했습니다. 도착하니 문이 잠겨져 있었습니다. 더구나 주변에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부산에서 온 백부 셋째 사촌형님도 서성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형님은 문이 잠겨 있다고 하면서 당황하는 듯 했습니다. 더구나 전화도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백부 넷째 사촌형님의 전화를 말합니다. 넷째 형님 딸의 결혼식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형님의 계속되는 걱정에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 했습니다. 급작스럽게 연락을 받았는데 혹시 무언가 잘못 된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 했습니다. 더구나 “일 난 것 같다”라며 연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주변에는 오는 사람도 없었고 썰렁하기만 했습니다.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았습니다. 온갖 좋지 않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습니다. 영화속의 한 장면을 연상하기도 했습니다. 이 결혼이 잘못 되었을 때 그 타격을 생각하니 아찔했습니다. 순간적으로 ‘패닉’에 빠진 것입니다.
패닉이 일어나는 원리
사람이 당황하면 제정신이 아닐 것입니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때 전혀 엉뚱한 길로 가게 됩니다. 망상이 일어나는 원리와 똑 같습니다. 경에서 ‘희론에 오염된 지각과 관념이 일어나는 것’(M18)로 설명됩니다. 과거에 경험했던 것을 바탕으로 생각이 가지를 쳐 나가는 것입니다. 더구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일까지 가미 된다면 상상속의 일이 현실화 된 듯한 착각을 가지게 합니다. 결혼식장 앞에서 패닉이 일어난 것도 희론에 오염된 지각이 발생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패닉(망상)이 일어나는 원리는 초기경전에도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경에 따르면 “시각과 형상을 조건으로 지각의식이 생겨나고, 그 세가지를 조건으로 접촉이 생겨나고,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고”(M18) 라 했습니다. 결혼식장에 도착 했을 때 문이 잠겨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좋지 않은 느낌이 생겨났습니다. 이는 눈으로 잠겨 있는 문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경에 따르면 “느낀 것을 지각하고, 지각한 것을 사유하고”라 했습니다. 문이 잠겨 있는 것을 보고 ‘왜 잠겨 있을까?’라고 계속 생각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어지는 경을 보면 “사유한 것을 희론하고”라 했습니다. 망상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 결혼식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 본 것입니다. 더구나 사촌형님이 ‘일 난 것 같다’고 말하며 ‘동생이 전화도 받지 않는다’고 했을 때 거의 굳어졌습니다. 틀림 없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기 시작 했습니다. 이어지는 경을 보면 “희론한 것을 토대로 과거, 미래, 현재에 걸쳐 시각에 의해서 인식되는 형상에서 희론에 오염된 지각과 관념이 일어납니다.”(M18)라 되어 있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느낌으로 다가 오고, 더구나 과거 영화속의 한 장면이 생각나는 가 하면, 결혼이 파토남에 따른 망신 등의 생각이 연속으로 일어났을 때 경에서 희론(망상)이 일어나는 과정과 매우 흡사 했습니다.
롤로코스터를 탄 듯
순간적으로 패닉에 빠졌습니다. 이 결혼이 파토 났을 때 당사자들이 어떻게 감당해야 될지 생각하니 아찔했습니다. 부산형님의 계속 되는 낙담의 말에 파토가 거의 기정사실화 된 것처럼 얼이 빠진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부산에서 백부 첫째형님이 도착하면서 급반전이 된 것입니다. 대로변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이면 도로에 정문이 있었던 것입니다. 정문으로 가니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 했습니다. 안으로 들어 가니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오로지 한타임 만 있는 결혼식입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패닉 상태이었으나 친지들의 얼굴을 보고서는 안심했습니다. 그야말로 지옥에서 천당으로 롤러코스터 탄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타성사람들을 보면
일가의 사람들을 만나면 반갑습니다. 아마 얼굴이 익숙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이 있듯이 혈족관계에 있기 때문에 더욱 반갑게 느껴집니다. 디엔에이(DNA)를 공유하고 있다는 그 사실 자체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하나’라는 공동체의식이 생겨납니다. 그래서일까 대게 비슷하게 생겼고 성향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조부모를 뿌리로 했다면 자손들에게서 조부모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정분량의 유전자를 공유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관계는 형제지간이고, 사촌지간도 그에 못지 않게 가깝습니다. 촌수가 멀어질수록 피도 옅어 지지만, 피가 한방울이라도 섞여 있으면 일가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친척은 다릅니다. 같은 성을 공유하고 같은 피가 흐르는 일가와 달리 친척은 혼인관계을 통해 혈연적으로 관계가 있는 일정한 범위의 사람들을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사위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식장에서 보는 사위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외국인 같습니다.
외국인과 한국인은 명확하게 구별됩니다. 한국인들은 서양사람들의 신체적 특징과 확연하게 구분됩니다. 식장에서 타성출신들의 사람들이 마치 외국인처럼 느껴지는 것은 디엔에이를 공유하는 일가사람들의 동질성과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장 크게 신체적 특징으로 나타납니다. 조부나 조부의 형제의 모습을 일가에서 발견할 수 있으나 타성사람들은 전혀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 식장에 가면 타성출신의 사위들을 보면 전혀 다른 인종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입지전적 인물
결혼식은 주례 없이 진행 되었습니다. 요즘 결혼식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입니다. 결혼식의 주인공들은 신랑신부입니다. 주례가 있으면 마치 주례가 주인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일까 어느 결혼식을 보면 주례 없이 신랑과 신부가 준비된 선언문을 낭독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대게 신랑측과 신부측의 부모가 당부의 말을 전하는 것으로 주례를 대신하기도 합니다.
주례 없는 결혼식에서 사촌형님이 준비된 원고를 읽었습니다. 대중 앞에 처음 서 보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차분하게 읽어 나갔습니다. 신랑측에서도 축사를 해야 하나 극구 사양해서 신부측에서만 말씀이 있었습니다.
사촌형님은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백부 7남매 중에서 넷째로 농촌에서 자랐습니다. 현재 대통령과 동갑입니다. 어느 농촌에서와 마찬가지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이 전부입니다. 그러나 군대를 갖다 와서 독학으로 중학교, 고등학교 검정고시로 학력를 모두 취득했습니다. 그리고 수 많은 기술 자격증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오랫동안 일을 해오고 있습니다.
무일푼에서 시작한 사촌형님은 딸을 잘 교육시켰습니다. 조카는 타고난 머리가 있어서일까 공부를 잘 했습니다. 반에서 일이등 했고 대학은 전액 장학금으로 의대에 갔습니다. 현재 정신과전문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역시 입지전적 인물입니다. 수 많은 혼담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형편이 너무 차이가 나서 부담스러웠다고 합니다. 이번 혼례는 서로 비슷한 환경이라 합니다. 신랑 역시 입지전적 인물로 변리사라 합니다. 늦은 나이에 결혼이지만 부담을 덜어 준 것 같습니다.
오랜 세월 타향을 헤매던 나그네가
경사나 조사가 닥쳤을 때 친지들을 봅니다. 특히 일가사람들은 반가운 얼굴들 입니다. 그것은 어렸을 때부터 보아 왔기 때문에 익숙해서 일 것입니다. 자주 보면 익숙합니다. 타성출신의 사람들 역시 자주 보면 익숙합니다. 성장과정을 함께 한 것이 가장 큰 이유입니다. 그래서 일가친척에 대하여 “그 업을 친지로 하는 자이며”(M135) 라는 말이 있습니다. 업에 대하여 ‘자신의 업을 소유하는 자’, ‘그 업을 상속하는 자’, ‘그 업을 모태로 하는 자’, ‘그 업을 의지처로 하는 자’라는 말과 함께 업을 설명할 때 쓰는 말입니다. ‘업을 친지로 하는 자’라는 뜻은 무슨 뜻일까요? 주석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 행위에 의해 생겨나는 업은 인과적 생성원리에 따라 윤회하는 동안 수반된다. 형제, 친척, 친지들은 모였다가 흩어지지만 업은 기나긴 생사여로의 윤회를 함께 하는 진정한 동반자로서 친지이므로 선업을 닦아야 한다. ‘오랜 세월 타향을 헤매던 나그네가 무사히 돌아 왔을 때 친척들이나 친구들이 귀환을 반기듯 공덕을 쌓고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갈 때 공덕들이 친지들처럼 사랑스럽게 그를 반긴다.”(M135, 2393번 각주)
업을 친지와 같다고 했습니다. 친지들은 이웃사촌과 달리 찢어 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잘못을 해도 일가는 갈라 설 수가 없습니다. 성장과정에서 함께 했던 친지들은 때가 되면 모입니다. 늘 함께 갈 수밖에 없는 공동운명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 일가친척들은 만나면 반갑습니다. 이에 대하여 “오랜 세월 타향을 헤매던 나그네가 무사히 돌아 왔을 때 친척들이나 친구들이 귀환을 반기듯”이라 했습니다.
먼 거리 여행을 할 때 돌아 갈 집이 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입니다. 일가친척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돌아 갈 집이 있듯이 친지들은 언제든지 사랑스럽게 맞아 준다고 했습니다. 경사가 있을 때나 조사가 있을 때나 일가친척들은 힘이 되어 줍니다.
알면 사라진다
한 순간 패닉에 빠졌습니다. 의문이 의문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마침내 있지도 않은 것을 기정사실화 했습니다. 왜 그런 생각이 일어났는지, 왜 그런 패닉에 빠졌는지 모릅니다. 아마 알지 못해서일 것입니다. 과거에 대한 경험과 미래에 닥칠 일 등이 오버랩 되면서 맹신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오해와 의심과 맹신은 망상을 일으키는 유사한 말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결혼식장에 들어서는 순간 깨끗이 사라졌습니다. 모든 의혹이 사라진 것입니다.
알면 사라집니다. 모르기 때문에 당혹스러운 것입니다. 미혹에 빠졌을 때 극단적인 생각이나 극단적인 행위를 하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습니다. 알고 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마치 캄캄한 방에 전등 스위치를 올렸을 때 일시에 환해지듯이, 이치를 알고 나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초기경에 따르면 악마 빠삐만은 알았을 때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빠삐만은 “ ‘세존은 나에 대하여 알고 있다. 부처님은 나에 대하여 알고 있다.’라고 알아채고 괴로워하며 슬퍼하며 그곳에서 즉시 사라졌다.”(S4.16) 라고 했습니다.
모처럼 일가친척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립고 반가운 얼굴들입니다. 오랜 만에 보니 다들 나이가 들어 보입니다. 세월의 흔적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함께 갈 수밖에 없는 친지들입니다. 타향살이 나그네가 귀향했을 때 반기듯 언제나 반가운 얼굴들입니다. 입지전적인 인물들의 앞날에 번영과 행운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2016-11-01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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