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에게 빨대꼽는가, 암보험을 해약하며
이미 지난 일이네
“남자도 이미 지난 일이네.” 부처님 제자 수행녀 고따미가 한 말 입니다. 아들을 잃어 버리고 부처님의 교단에 들어온 수행녀에게 악마 빠삐만이 “혹시 남자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 (S5.3) 라고 물어 봅니다. 이는 여성의 모성심리를 자극한 말 입니다. 수행녀가 되었음에도 모성심리가 남아 있다면 남자를 찾을 것이기 때문 입니다. 악마 빠삐만이 수행녀를 유혹하기 위해 한 말 입니다. 이에 수행녀는 단호하게 이렇게 말 합니다.
“언제나 자식을 잃은 어머니도 아니고
남자도 이미 지난 일이네.
나는 슬퍼하지 않고 울지 않으니
벗이여, 그대를 두려워하지 않네.”(S5.3)
수행녀 고따미는 지난 일이라 했습니다. 이미 지나간 일에 집착하지 않을 것임을 말 합니다. 악마 빠삐만이 여성의 모성본능을 자극하여 유혹하지만 넘어 가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지나간 일에 대하여 후회하고 아쉬어 합니다. 대게 “그때 그렇게 했었어야 하는데.”라며 한탄 합니다. 그러나 일은 이미 벌어진 것입니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일입니다. 일은 벌어질 만 해서 벌어진 것 입니다. 현명한 주의기울임(yoniso manasikāra)이 없을 때, 지혜가 없을 때 미래 어느 때인가 고통을 유발하고 맙니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보험입니다.
암 걸릴 때까지
보험을 해약 했습니다. 따져 보니 10년 동안 매달 꼬박꼬박 20만원 가량 들었습니다. 시작은 15만원부터 시작 했으나 자동갱신 되면서 20만원에 이른 것 입니다. 그런데 S화재의 이 보험은 원금이 보장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암에 걸려야 지급되는 암보험 입니다. 더구나 만기도 없습니다. 암 걸릴 때까지 계속 내야 합니다.
최근 경제가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늘 경제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듣지만 요즘 만나는 사람들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그래서인지 거래처의 결재가 원활하지 않습니다. 이번 달에 결재 할 것을 다음달로 미루어 버립니다. 다음달에 가면 또 다음달로 미룹니다. 자재대금을 지급한 상태에서 돈이 들어 오지 않으니 자금압박을 받게 됩니다. 이럴 경우 마이너스 한도를 늘려서 급한 불을 끌 수밖에 없습니다.
통장내역을 살피다가 혹시 줄줄이 새는 것이 없는지 살펴 보았습니다. 들어 오는 것은 적은데 지출항목이 많을 때 적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최대한 지출항목을 줄여야 합니다. 그런 항목 중에 보험 하나를 발견 했습니다. 이제까지 무심히 지나쳤던 것입니다. 거의 20만원에 달하는 보험이 어떤 성격인지 궁금했습니다. 암과 관련된 보험입니다. 10년전 혹시 일어 날지 모를 일을 대비해서 들어 놓은 것이라 했습니다.
자꾸 찾아 오길래
보험에 대하여 좋지 않은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보험을 하나 해약했습니다. 친구가 자꾸 사무실에 찾아 오길래 들어 준 것입니다. 친구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습니다. 새롭게 일을 시작한 곳이 S화재 입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그렇듯이 친구나 지인을 찾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친구도 역시 찾아 왔습니다. 찾아 와서 세상돌아 가는 이야기를 하며 점심을 먹었습니다.
친구는 한달에 한번 가량 늘 점심 때 찾아왔습니다. 말은 하지 않지만 의도는 분명했습니다. 보험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체면치례로 삼사만원 가량 생각 했습니다. 그러나 소득 등을 따져 보더니 십만원 대를 이야기 하는 것 입니다. 마뜩치 않았지만 수락했습니다. 그러나 일년이 지난 시점에 그만 두었습니다. 지출이 늘어남에 따라 불필요한 지출을 줄여야 했기 때문 입니다.
친구가 권유한 보험은 사망관련 보험 입니다. 사망하면 가족에게 혜택을 주는 일종의 유산개념 입니다. 20년 납부가 목표입니다. 그런데 해약을 하고 보니 원금을 한푼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만 자주 찾아 오는 친구의 체면을 생각해서 들어 준 것 입니다. 그 친구는 지금도 한달에 한번 점심 때 찾아 옵니다.
아주 오래 전에 친구가 직장에 찾아 왔습니다. 90년대 중반의 일 입니다. 학교친구이자 군대 동기입니다. 갑자기 나타난 친구가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보험을 권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당시 대유행하던 종신보험상품을 소개 했습니다. 사망하면 보험금이 지급되는 유산개념의 보험입니다.
친구는 가족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 했습니다. 종신보험은 죽은 후에 유산개념으로 유족에게 남겨 줄 수 있음을 강조 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유산개념으로 남겨 줄 수 있다는 말이 솔깃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 당시 죽음이라는 말이 익숙하지 않았고 죽음은 남의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에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거듭되는 친구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매정하게 거절 했습니다.
불행해져야 탈 수 있는
보험에 대한 인식은 좋지 않습니다. 특히 암보험이나 사망보험이 그렇습니다. 도중에 해약을 하면 원금을 한푼도 찾을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이유 입니다. 또하나는 인간의 불행에 대한 것입니다. 암에 걸리거나 사망해야만 보험금을 탈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의 불행과 관련된 보험입니다. 불행해져야 탈 수 있는 보험이 유쾌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정해진 수명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인간은 업생(業生)이기 때문에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런 면으로 본다면 암보험이나 사망보험에 가입하는 것은 타당합니다. 그럼에도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대비하여 그것도 불행한 일을 가정하여 매달 상당한 금액을 꼬박꼬박 상당한 기간 납부해야 한다는 것은 부담스런 일입니다. 그것도 도중해약하면 원금을 찾을 수 없는 것에 대하여 도저히 받아 들일 수 없습니다.
보험은 필요합니다. 자동차보험은 없어서는 안될 보험입니다. 운전을 하다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아무리 주의해도 타인에 의해 사고가 날 수도 있습니다. 이런 측면으로 본다면 자동차보험은 타당 합니다. 원금이 보장되는 교육보험 역시 수긍합니다. 그러나 개인보험의 경우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암에 걸리거나 사망해야 탈 수 있는 보험, 도중에 해약하면 원금을 한푼도 탈 수 없는 보험, 불행해져야 탈 수 있는 보험은 아무리 생각해도 수용할 수 없습니다.
빨대 꼽는가
부처님 가르침에 지나간 과거를 후회하지 말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현재의 삶을 살라고 했습니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일 입니다. 후회해 보았자 소용 없습니다. 그때 그런 일이 일어날 만한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일어난 것 입니다. 과거의 조건과 지금의 조건이 다름에도 후회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불선업을 짓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염려 합니다. 암보험이나 유산개념의 사망보험이 좋은 예입니다. 그날이 언제 올지 알 수 없습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불행을 위해 미리 대비하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건강과 죽음의 심리를 이용하여 상술에 적용한다면 ‘반사기’에 해당될 것입니다. 요즘말로 서민들에게 ‘빨대’ 꼽는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
늦었지만 다행
10년간 부었던 20만원 가량 암보험을 해약 했습니다. 물론 원금은 한푼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 쓸모 없는 지출이 줄어 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금액만큼 남을 위해 쓴다면 보람 있을 것입니다. 귀촌한 해남친구의 황토농장에서 10키로에 3만원 하는 꿀고구마 6박스를 선물로 줄 수 있는 금액입니다.
사람의 운명은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보험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 않습니다. 원금보장도 되지 않은 보험을 드는 것보더 저축하는 것이 더 났습니다. 보험 드는 것 보다 이웃과 사회에 대하여 베풀고 나누며 봉사하는 삶이 더 좋아 보입니다.
이웃과 사회에 봉사하는 삶을 살면 죽어서 천상에 태어날 것이라 합니다. 사망보험을 들어 유족에게 유산으로 남겨 주는 것도 아름답지만, 더 아름다운 것은 이웃과 사회에 봉사하는 삶입니다. 10년 동안 들었던 사망보험을 해약 했습니다. 원금을 한푼도 받을 수 없지만 그 금액만큼 이웃과 사회를 위하여 사용하려 합니다. 늦었지만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지 말고
미래를 바라지도 말라.
과거는 이미 버려졌고
또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일어나는 상태를
그 때 그 때 잘 관찰하라.
정복되지 않고 흔들림이 없이
그것을 알고 수행하라.
오늘 해야 할 일에 열중 해야지
내일 죽을지 어떻게 알 것인가?
대군을 거느린 죽음의 신
그에게 결코 굴복하지 말라.
이와 같이 열심히 밤낮으로
피곤을 모르고 수행하는 자를
한밤의 슬기로운 님
고용한 해탈의 님이라 부르네." (M134)
2016-11-02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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