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투스(sanctus) 공연을 보고
쌍투스, 상투스가 아니라 쌍투스입니다. 오늘 아침 TV에서 ‘다큐 공감’을 보았습니다. 낙원상가에서 악기를 파는 상인이야기 입니다. 우연히 본 프로에서 ‘쌍투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악기를 파는 상인은 쌍투스 7기라 했습니다. 한때 대학가요제에서 입상도 했다 합니다. 부모의 반대로 가수가 되는 길을 포기 하고 평범한 샐러리맨으로 살다가 이제는 낙원상가에서 기타를 파는 상인으로 삶을 살고 있습니다.
윤형주의 ‘젊음의 광장’에서
쌍투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 보는 말입니다. 발음이 특이해서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학교시절 TV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마 1974년이었을 것입니다. 그때 중학교 2학년 이었는데 윤형주가 진행하는 프로가 있었습니다. ‘젊음의 광장’이라는 프로입니다. 뿔테안경을 쓴 얍상하고 지적인 이미지의 윤형주의 젊은 시절 모습이 떠오릅니다.
윤형주가 진행했던 ‘젊음의 광장’에서는 주로 대학생들이 출연 했습니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쌍투스’입니다. 그때 당시 흑백TV이었는데 쌍투스멤버들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마 외국곡이었던 같습니다. 남녀 대학생들이 기타를 치며 서서 노래 했습니다. 그 중에 여성멤버를 클로즈업 시켰습니다. 긴 생머리에 얼굴이 동그랗고 복스럽게 생긴 이미지의 여자대학생이 외국곡 노래를 기타 반주에 맞추어 부르는 노래가 신선했습니다. 노래가 끝난 다음에 사회자의 질문에 ‘쌍투스’라 했습니다.
흑백TV에서 쌍투스공연을 보고 대학생활을 동경했습니다. 당연히 대학에 가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남녀대학생들이 기타치며 외국곡을 부르는 것이 너무 좋아 보였습니다. 더구나 이름도 생소한 ‘쌍투스’라 했습니다. 그때 당시 지도를 열심히 보고 있었기 때문에 브라질의 도시 이름 ‘상투스’가 떠 오르기도 했지만 그룹이름이었습니다.
중노년의 멤버들이
다큐 공감에서 본 낙원상가 상인은 과거 쌍투스7기 멤버라 했습니다. 프로에서는 옛쌍투스 멤버들의 공연모습도 보여 주었습니다. 지금은 모두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이지만 아직까지 열정이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머리가 허옅게 센 중노년의 멤버들이 낙원상가앞 무대에 섰습니다. 딸과 같은 멤버 들과 노래 부르는 모습에서 세월의 무상함을 보았습니다. 젊은 여성들을 보니 74년에 보았던 그 이미지 그대로 입니다.
단어하나로 연상작용이
중학교 2학년 시절 ‘쌍투스’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말을 접할 때 중학교 2학년 시절에 보았던 여성 쌍투스 멤버의 얼굴이 떠 오릅니다. 단어 하나로 인하여 연상작용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갑자기 쌍투스라는 말이 떠 올랐을 때 자동적으로 이미지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는 ‘꿀과자의 경(M18)’에서 “정신과 사실을 조건으로 정신의식이 생겨나고”(M18) 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대상을 보거나, 듣거나, 어떤 대상이 떠 올랐을 때 자동으로 연상작용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단어를 들었을 때 이미지가 떠오르는 것에 대하여 경에서는 “접촉을 조건으로 느낌이 생겨나고, 느낀 것을 지각하고, 지각한 것을 사유하고” (M18)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온의 작용으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TV를 보았을 때 느낌이 일어나고, 느낌은 과거의 기억을 되살립니다. 이것이 상온입니다. 이름 붙여지고 개념화된 것입니다.
쌍투스라는 말을 들었을 때 과거 이미지가 떠오른 것은 상온의 작용입니다. 그래서 74년 당시 보았던 장면, 즉 윤형주의 얼굴, 윤형주가 진행 했던 프로이름인 ‘젊음의 광장’, 그리고 쌍투스 여성 멤버의 얼굴, 그리고 대학생활 동경 등의 이미지와 생각이 자동으로 떠오르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접촉에 따른 것입니다. 아침에 TV를 보지 않았다면 과거의 일도 떠 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쌍투스(sanctus)는?
중학교시절 TV에서 보았던 쌍투스, 쌍투스는 어떤 것일까요? 다큐 공감에 따르면 동아리성격의 쌍투스는 1971년 결성되었다고 합니다. 1974년에 TV를 보았을 때 아마 결성 당시 멤버들이 노래를 불렀던 것 같습니다. 인터넷시대에 쌍투스에 대하여 인터넷검색을 해 보았습니다. 검색해 보니 ‘대학연합합창단 쌍투스코러스’라 합니다.
소개한 글을 보면 “쌍투스코러스는 1971년 4월, 건전한 노래를 창작, 보급하여 사회를 밝고 명랑하게 만드는 봉사 활동에 참여한다는 취지로 발족”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쌍투스(sanctus)라는 말은 라틴어로 ‘거룩하다’라는 뜻을 가진 가톨릭 전례음악을 나타내는 고유명사라고 되어 있습니다. 가톨릭 계통의 대학생연합합창모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낙원상가 실버극장
매주 화요일 낙원상가 앞을 지나갑니다. 모든 것이 헐리고 새로 짓는 시대에 아직까지 낙원상가는 건재합니다. 도로 가운데 건물이 서 있는 낙원상가는 세운상가처럼 헐리는 대상이었음에도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악기상가 거리로 잘 알려져 있는 낙원상가는 또한 실버의 거리이기도 합니다.
낙원상가에는 실버극장이 있습니다. 노인들의 천국인 종로3가에서 노인들을 위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실버극장 앞에는 커다란 여배우 사진이 있습니다. 젊은 시절 오드리 햅번입니다. 그러나 왠지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실버극장 앞에 서 있는 노인들의 모습이 남루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노인은 히피 같습니다. 젊은 시절을 엿볼 수 있게 하는 모습입니다.
콘서트7080
지나간 과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과거로 되돌아 갈 것인지 묻는다면 “No”할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지나간 과거의 노래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콘서트7080’역시 자주 보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 때 그 시절의 정신상태로 딱 멈추어 있는 듯 하기 때문입니다. 머리가 허옅게 세었음에도 대학생 시절에 불렀던 노래를 지금까지 부르고, 더구나 아직까지 기타를 놓지 못하는 모습이 조금은 안쓰럽게 여겨집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여기까지 떠 밀려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부분 세월에 떠밀려 갑니다. 그럼에도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면 현재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현재를 살고 있다면 마음이 굳이 과거에 가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콘서트7080을 보면 과거에 불렀던 노래를 들으며 추억을 회상하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이미 중년이 되어 노년을 바라 보지만 그 노래를 들음으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떠 올릴 것입니다. 대부분 좋았던 기억일 것입니다. 그러나 좋지 않았던 기억도 많을 것입니다. 과거 그 시절로 되돌아 갈 수 있다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입니다. 그럼에도 과거의 노래를 들으며 과거에만 머물러 있다면 불선업이 되기 쉽습니다.
날게 부러진 왜가리
지나간 과거는 행복했던 것이건 불행했던 것이건 추억으로 남습니다. 기억하기 싫은 것도 지나고 보면 추억이 됩니다. 그렇다고 늘 추억에 빠져 살 수 없습니다. 마음이 과거에 가 있다면 날게 부러진 왜가리 신세이기 쉽습니다. 종로3가 낙원상가 실버극장 앞에서 본 초라한 노인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보았습니다. 마음이 늘 과거에 가 있는 사람에게는 다음과 같은 법구경 게송이 딱 맞을 것입니다.
“젊어서 청정한 삶을 살지 않고
재산도 모으지 못했으니
고기 없는 연못에 사는
늙은 백로처럼 죽어간다.”(Dhp155)
법구경 ‘늙음의 품’에 실려 있는 게송입니다. 날게 부러진 외로운 늙은 백로가 말라 버린 호숫가에 서 있다고 했습니다. 거의 절망적 상황입니다. 죽을 날만 남은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젊은시절은 교만이기 쉽습니다. 젊음의 교만과 건강의 교만입니다. 젊음의 교만으로 세월을 보낸 자는 날게 부러진 백로와 같습니다. 아무것도 이루어 놓지 못한 것입니다. 그저 세월만 보낸 것입니다. 젊은시절, 좋았던 시절을 회상에 보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법구경 게송을 보면 “쏘아져 버려진 화살처럼 누워서 옛날을 애도한다.”(Dhp156) 라 했습니다. 낙원상가 실버극장 앞에서 담배를 빠는 남루한 차림의 노인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봅니다.
담마관련 노래를 들으면
아침 TV를 보다가 쌍투스라는 말을 듣고 옛날을 회상해 보았습니다. 중학교 다녔을 때 보았던 젊은 시절 윤형주의 검은 뿔테 안경의 모습이 떠 올랐고, 쌍투스 여성멤버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었습니다. 낭만적인 대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대학생활을 동경했습니다.
세월이 한참 흘렀습니다. 세월에 떠 밀려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더 이상 세월의 흐름에 맡겨 두지 않습니다. 세월을 극복하기 위하여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비록 오늘 실패 했다고 하더라도 내일은 성공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많은 시간, 많은 세월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도전할 만한 것이 있다는 것은 삶의 활력소입니다. 지나간 과거를 회상하기 보다 가르침과 함께 하는 것이 더 났습니다.
콘서트7080의 노래를 들으면 과거가 회상되어 마음이 과거로 가게 됩니다. 그러나 담마와 관련된 노래는 늘 현재에 있게 해 줍니다. 오늘도 학의천을 걸어 오면서 ‘라따나숫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작업하면서 ‘자야망갈라가타’를 듣습니다. 스스로 선곡한 담마관련 노래를 들으면 마음은 늘 현재에 있게 됩니다.
2016-11-04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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