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되지 않은 삶 헛되지 않은 인생, 치악산 정상에서
치악산에 올랐습니다. 이전에 가 본 적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힘들었다’는 기억만 남아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우리나라 3대 악산이라 하듯이 고행길 입니다. 해발 1,288미터 높이의 치악산, 어떤 이는 치가 떨리도록 악소리 난다고 합니다. 온통 뾰족바위 투성이에다 끝모를 너덜길,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악산 입니다.
기분이 잡쳤는데
치악산 국립공원은 광활합니다. 고속도로 인터체인지가 북원주에서 남원주에 걸쳐 있을 정도로 넓습니다. 여러 코스가 있지만 구룡사길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등산로 입구에서 기분이 잡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문화재관람료라는 명목의 입장료 때문입니다. 안내판을 보니 사유지라서 받는 이유도 있다고 합니다. 순수하게 등산목적의 사람들에게도 징수 하는 것입니다.
문화재관람료 징수에 대하여 반발이 거셉니다. 도로를 막아 놓고 도로통행료를 받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10년을 해 왔습니다. 국립공원 관람료가 10년 전에 폐지 되었음에도 절에서는 문화재관람료를 계속 받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축적된 원성이 자자 합니다. 불자도 불쾌하게 여기는데 일반사람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입장료가 면제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신도증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조계종신도증을 제시하면 프리패스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조계종신도증을 만들 생각은 없습니다. 신도증이 있으면 프리패스하고 신도증이 없으면 누구나 예외없이 돈을 내야 하는 것은 많은 저항감을 일으킵니다.
절 땅을 지난다고 하여 예외없이 입장료를 징수 하는 행위는 반드시 시정 되어야 합니다. 절의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으면 문제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등산로를 막아 놓고 징수하는 행위는 불교의 위상만 낮추어 놓을 뿐 입니다.
금년 말 종교인구 총조사 발표를 앞두고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그것은 한국불교인구가 2005년 총조사당시와 비교하여 거의 ‘반토막’났다는 흉흉한 소문입니다. 지난 10년간 입장료와 관련된 마찰의 영향도 크게 작용했을 것입니다.
지난 날을 되돌아 보니
매표소를 지나 등산로 입구에 들어 섰습니다. 구룡사까지는 평탄한 길 입니다. 세렴폭포까지는 탄탄대로의 길 입니다. 길을 걸으면서 인생길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떤 이는 지나간 시절을 후회합니다. 되돌아 보니 잘못살았다는 것입니다. 지나온 삶을 통째로 부정했을 때 허무할 것입니다. 그러나 떠 어떤 이는 지나온 삶을 든든하게 여깁니다. 마치 은행에 적금 부은 것처럼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지나온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말합니다.
지나간 시절이 허무한 것이라면 잘 못 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온 시절이 확보된 것이라 여긴다면 잘 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돈 벌기에 올인하는 삶은 후회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베풀고 나누고 보시하는 삶은 확보된 삶입니다. 결국 자신에게 베푸는 삶입니다. 공덕이 복리로 늘어 나는 것과 같습니다.
두 갈래 길에서
치악산은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세렴폭포 입구에서 능선길과 계곡길, 두 갈래 선택이 있습니다. 두 코스 모두 약 2.7Km 로서 약 다섯시간 내지 여섯 시간 걸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내판을 보니 “탐방구간 매우 어려움”이라 써 있습니다. 마치 험난한 앞길을 예정하는 것 같습니다.
치악산 매표소에서 세렴폭포까지 2.5Km 걸어 왔습니다. 그야말로 평탄한 탄탄대로 였습니다. 그러나 두 갈래 길을 마주 하고 나니 고생문이 훤한 것 같습니다. 능선길로 올라가기로 했습니다. 내려 올 때는 계곡길입니다. 그런데 세렴폭포 다리를 건너자 마자 계단길 입니다. 탄탄대로가 끝나니 험한 가시밭길이나 다름 없습니다.
원활한 삶과 고단한 삶
인생길에는 탄탄대로도 있고 가시밭길도 있습니다. 남보다 좋은 조건으로 태어 났다면 탄탄대로이기 쉽습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월등하다면 세상을 원활하게 살아 갈 수 있습니다.
타고난 머리를 가진 사람은 정해진 코스를 밟아 갑니다. 소위 일류대학을 나와 소위 성공한자들의 길을 밟아 갑니다. 그 자리, 그 위치, 그 지위를 물려 받는 것입니다. 이전에 잘 나갔던 사람들이 그랬듯이, 이 땅의 기득권층으로 한평생 살아 갑니다.
한평생 험난한 길을 걷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전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역시 힘겹게 인생을 살아 갑니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열등하기 때문에 주어진 운명대로 살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종종 개천에서 용나듯이 출세하기도 하지만 드문 일입니다. 탄탄대로의 길이냐 험난한 가시밭길이냐는 육체적 정신적 능력의 차이로 결정 됩니다.
사다리병창길
치악산 능선길은 고행의 연속입니다. 처음부터 계단길 입니다. 그런데 계단길은 정상까지 이어졌습니다. 본격적 산행이 시작되는 세렴폭포에서 해발 1288미터의 비로봉 정상까지 경사도는 25도에서 35도에 이릅니다. 오로지 오르막만 있을 뿐 입니다. 내리막길은 없습니다. 거의 세 시간 약 30도 가량의 경사를 끝모르게 올라가야 합니다.
능선길을 ‘사다리병창길’이라 합니다. 마치 사다리꼴 모양의 바위길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해서 붙인 이름입니다. 그것도 뾰족한 칼바위길 입니다. 계단을 만들어 편의를 제공하고 있지만 오로지 오르막만 있을 뿐 내리막은 없습다. 특히 정상에 가까우면 평군 35도의 오르막길입니다.
힘들면 쉬어가면 되고
인생길이 처음부터 끝까지 30도 경사길이라면 너무나 고달플 것입니다. 정상에 올라야 오르막이 끝나듯이 죽어야만 고달픈 인생이 끝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정상에 오르는 길은 헛되지 않습니다. 험난한 인생여정길이 힘들기는 하지만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헛된 것은 아닙니다. 한발 한발 무거운 발걸음 옮길 뿐 입니다.
힘들면 쉬어 가면 됩니다. 쉬면 새로운 힘이 솟아 납니다. 그 힘으로 또 다시 앞으로 나아갑니다. 이러기를 수 없이 반복하다 보면 마침내 정상에 이를 것입니다. 인생길도 마찬가지 이겠지요.
시계제로의 전망대에서
해발 천미터가 되었습니다. 운무가 점점 짙어 집니다. 오르면 오를수록 운무로 인하여 회색의 실루엣입니다. 푸른 소나무 저 멀리 첩첩산중이 마치 흑백수묵화를 보는 듯합니다.
올라도 올라도 끝은 보이지 않습니다. 내리막은 없습니다. 오로지 오르막만 있을 뿐 입니다. 천미터에 이르니 시계는 점차 짧아 집니다. 경사는 더욱 가파러져 갑니다. 한발 한발 떼기가 천근만근 입니다. 그렇다고 여기서 그만 둘 수 없습니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정상 입니다.
정상에 가까울수록 이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듯 합니다. 정상 못 미쳐 전망대가 있습니다. 날씨가 좋을 때라면 시계가 무한대일 것입니다. 그러나 전망대에서는 시계 제로 입니다.
살다보면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 입니다. 물에 빠진 자가 바닥을 알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시계 제로의 전망대와 같습니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습니다. 더욱 가속될 뿐 입니다. 그러나 정상을 향하여 한발 한발 내딛는 자에게 추락은 있을 수 없습니다. 비록 시계제로의 안개일지 모르지만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정상에 서서
전방에 무언가 희끄무러한게 보였습니다. 커다란 돌탑입니다. 드디어 정상에 도달한 것입니다. 바람은 세차게 불고 가는 비가 몰아 칩니다. 그러나 더 이상 올라가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 내려 가는 일만 남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내려 올걸 산에 뭣하러 올라가느냐고. 올라 갔다가 내려 올 것이라면 굳이 애써 힘들게 올라갈 필요가 없음을 말합니다. 그래서인지 대부분 사람들은 산에 가도 초입에 머무르고 맙니다. 대부분 산 근처에도 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올라 갔다가 내려 올 것이라면 굳이 힘들게 올라갈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폭력을 일삼는 자는 힘들게 산에 오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을 편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눈으로, 귀로, 코로, 혀로, 감촉으로 즐기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산행은 미친짓일 것 입니다.
헛되지 않은 인생
힘겹게 산에 오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지금 내가 밟고 올라온 길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고. 뒤를 돌아 보니 대견 합니다. 발 아래 저 멀리 아득한 곳에서부터 이곳 정상까지 한발한발 올라온 것입니다.
힘들면 쉬어가고 쉰 힘으로 오르다 보니 정상에 이르렀습니다. 정상에 서니 더 오를 곳이 없습니다. 다리는 뻐근하고 몸과 마음은 몹시 지쳐 있었지만 ‘해냈다’하고 강한 성취감을 느낍니다.
지금 여기에서 인생을 되돌아 봅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남보다 월등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힘겹게 고단하게 살 수밖에 없는 조건을 타고난 것 입니다. 때로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가혹한 운명에 때로 절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조건과 운명을 한탄하지 않습니다.
산정에 올랐을 때 지나온 족적을 보면 스스로 만족합니다. 비록 올라 갔다 내려 오는 산행이지만 결코 헛된 것은 아닙니다. 목적을 가지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한발 한발 올랐을 때 많이도 올라 왔음을 실감 할 것입니다. 인생도 그럴 것입니다. 헛되지 않은 삶, 헛되지 않은 인생입니다.
2016-11-05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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