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속에서 등불을 본 것처럼, 노법사의 위빠사나 강연을 회향하며
미붓아카데미에서
도이법사의 위빠사나 강좌가 회향되었습니다. 지난 3개월간 매주 화요일 저녁에 열린 강좌였습니다. 시작할 때는 반팔차림의 옷을 입었으나 회향할 때는 두툼한 겨울옷에 목도리까지 두를 정도로 추웠습니다. 불과 3개월만에 극적인 계절의 변화를 보게 된 것입니다.
강좌가 시작 될 때는 십이삼명 가량 되었습니다. 종로3가 종로오피스텔에 있는 미붓아카데미의 강연장입니다. 장소가 비좁은 관계로 10명 한정 했으나 나중에 남아 있는 사람은 본인과 C법우님 단 두 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최후까지 남은 두 사람과 미붓아카데미운영자인 미디어붓다 대표기자 이학종님까지 모두 세 명이서 마지막 강좌를 들었습니다.
미붓아카데미는 마지막 강의를 끝으로 폐쇄 되었습니다. 지난 2년 동안 가르침에 목말라 하는 불자들에게 법석을 마련해 주었으나 활용빈도가 현저하게 떨어지는 바람에 운영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 재계약을 하지 않은 것이라 합니다. 누구나 강좌를 개설할 수 있고, 누구나 강좌를 들을 수 있도록 일종의 ‘불교사랑방’ 개념의 아카데미를 개설하였으나 사용자가 없어서 더 이상 유지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마치 현재 보여지고 있는 한국불교의 안타까운 현실의 축소판 같습니다.
반토막났다는데
한국불교가 위기입니다. 이는 통계로도 나타납니다. 그러나 아직 종교인구총조사가 발표 되지 않았습니다. 들리는 소식에 따르면 올해를 넘기지 않을 것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불교인구는 얼마나 될까요? 충격적 결과가 나올 것이라 합니다. 매 10년 마다 종교인구 총조사가 발표 되는데 불교의 경우 지난 2005년과 비교하여 거의 ‘반토막’이 났다는 것입니다.
2005년 당시 종교총조사당시 불교인구는 1,080만명 가량이었습니다. 전체국민의 23% 가량 차지 하여 1등 종교이었습니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2015년 정기총조사에서 5백만 이하로 집계되어 종단지도부에서는 충격에 빠졌다고 합니다. 이런 결과를 승복하지 않고 조사가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고 합니다.
2005년 당시 종교인구 조사할 때 가가호호 방문하여 개별적으로 문의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대답하는 사람의 의사가 그대로 반영되어 가족 모두가 불자로 집계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할머니가 답변 했을 때 가족 모두가 불자로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2015년 조사에서는 개별방문이 아닌 샘플링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여론조사 방식 같은 것입니다. 다만 대상을 대폭 확대한 것이 다릅니다. 이렇게 하여 조사 되었는데 개신교의 경우 불과 몇 십만 줄어 팔백만명대이고, 천주교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오백만명대라 합니다. 불교의 경우 반토막이 나서 사백만명대라 합니다. 종단 지도부에서는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조사가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다 합니다.
주변을 보면 온통 십자가천지입니다. 사람이 사는 곳에 교회는 넘쳐 납니다. 동마다 하나 씩 있는 성당은 크고 우람합니다. 그런데 사람 사는 것에 절은 보이지 않습니다. 있더라도 점집 수준의 작고 초라하고 보잘것 없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산에나 가야 절을 볼 수 있지 사람 사는 곳에 절구경하기 힘듭니다.
사람 사는 곳, 도시나 농촌에 불교는 없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설령 있다고 하더라도 정법과 크게 어긋난 것입니다. 친구들을 만나 보아도 불교를 종교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 드뭅니다. 대게 교회나 성당 다니는 친구들이 대부분입니다. 집안에서도 그렇습니다. 친지나 친척들 역시 교회나 성당에 다니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불교를 종교로 갖는 학생들 역시 드뭅니다. 어느 곳에서나 불교를 종교로 갖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사는 곳이나 주변에서 불교인을 보기 어렵습니다. 이런 현상이 고스란히 종교인구조사에서 반영된 듯 합니다.
어쩌다 이렇게
한국불교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요?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직접적으로 승려들의 범계행위를 들 수 있습니다. 그동안 세간을 떠들썩 하게 했던 승려도박사건, 승려밤샘술판사건 등 부끄럽고 창피한 일들이 수 없이 있었습니다. 더 거슬러 94년과 98년에 일어난 종권다툼이 있었습니다. 특히 98년에 일어난 종권분규는 참혹했습니다. 각목을 든 스님들이 총무원청사를 두고 탈환과 수성과정이 모두 TV로 생중계 되었습니다. 수 많은 국민들이 등을 돌렸고 신심 있는 불자들도 불교를 떠났습니다.
한국불교가 망가진 요인은 너무나 많습니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범계승에 의한 종권탈취입니다. 허물을 많이 가진 스님들이 하나의 카르텔을 형성하여 총무원, 종앙종회, 교구본사 등 종단요직을 장악한 것입니다. 또한 돈이 되는 목좋은 사찰을 차지 하여 자립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신도의 보시가 없어도, 신도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생존해 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놓은 것입니다. 등산로를 막아 놓고 사유지를 지나간다고 하여 문화재관람명목의 입장료를 징수하는가 하면, 문화재를 관리한다는 명목으로 국가로부터 보조비를 받아 내는 것입니다.
종단은 허물을 가진 일부 권력승들에 의해 완벽하게 장악되었습니다. 신도의 보시가 없어도, 신도가 없어도 생존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신도가 다 떨어져 나가도 생존하는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절만 지키고 있으면 됩니다. 신도가 줄어들거나 한국불교가 망해도 그들의 관심사는 아닙니다. 돈이 되는 절을 차지하고 있으면 됩니다. 신도가 없어도 한국불교가 망해도 끝까지 남는 것은 절을 장악하고 있는 권력승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불교를 ‘절망적으로’ 봅니다.
한국불교가 중흥하려면
서구에서는 불교가 르네상스라 합니다. 서구 어느 나라든지 불교가 관심을 받고 있고 불교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 합니다. 반면 전통종교라 볼 수 있는 기독교는 날로 쇠퇴하여 그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불교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불교의 독특한 수행법도 한 몫하고 있다고 합니다. 존 카밧진 교수가 개발한 ‘MBSR’같은 것입니다. 서구에서 명상수행 붐이 일어나고 있는 것과 괘를 같이 합니다. 전세계적으로 불교가 주목받는 것은 부처님원음과 독특한 명상수행법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불교도 이제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할 때입니다.
한국불교가 중흥하려면 근본적으로 바뀌어져야 합니다. 그것은 기존방식에서 과감하게 탈피하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부처님 그분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또 부처님 그분이 어떤 가르침을 설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한국불교에서는 부처님 그분이 누구인지, 부처님 그분이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알려 주는 사람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불교에 대하여 무지하게 되었습니다.
성직자들은 신도들이 많이 아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도들이 무지할수록 성직자들의 권위는 높아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유럽에서 중세시대 라틴어로 된 바이블을 읽는 사제들로 알 수 있습니다. 한국불교가 중흥하려면 불자들이 깨어 나야 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부처님 원음을 접하는 것입니다. 부처님 그분이 누구인지 알아야 하고, 부처님 그분이 어떤 말씀을 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불자들이 깨어나면 날수록 한국불교는 중흥합니다.
어둠속에서 등불을 본 것처럼
도이법사로부터 지난 3개월간 위빠사나 강좌를 들었습니다. 법문과 경행, 좌선, 점검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코스입니다. 비록 두 명에 지나지 않지만 수 십명 앞에서 강연하는 것 못지 않게 열과 성을 다해 지도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부처님 원음은 전파 되고 있었습니다.
노법사는 컴퓨터를 전혀 사용하지 못합니다. 법문을 하기 전에 프린트물을 나누어 주었는데 모두 손으로 쓴 것입니다. 늦은 나이에 불교에 입문하여 수 많은 스승을 찾아 다니고, 수 많은 강연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행위에 대하여 ‘법거지’라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배울만한 곳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 가는 것입니다. 심지어 미얀마에 까지 건너 가서 배워 오기도 했습니다. 배우고 익힌 것을 친필로 작성하여 매 강좌마다 법문하는 형식으로 설명 했습니다.
최후까지 함께 남은 C법우님은 이번 강좌를 듣고 발심 했다고 합니다. 남은 여생을 가르침을 실천하면서 수행자로 살기로 한 것입니다. 재가수행자로서 삶입니다. 법우님에 따르면 이전에 접한 불교에 대하여 “진전이 없었습니다.”라 했습니다. 수 십 년 동안 불교를 접했지만 매번 그 자리에 머물고 말았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번 강좌를 통하여 체계적으로 접하고 보니 눈이 뜨였다고 합니다. 부처님 그분이 어떤 분이고, 부처님 그분이 어떤 말씀을 했고, 부처님 그분이 어떤 수행법을 가르쳤는지 명쾌 하게 알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초기경전에 귀의문이 있습니다. 이교도가 부처님 법문을 듣고 재가신자로서 삶을 맹세하는 것입니다. 감동적인 귀의문 정형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C법우님도 아마 귀의문에서 처럼 어둠속에서 등불을 본 것 같습니다.
“세존이신 고따마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신 고따마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신 고따마시여, 마치 넘어진 것을 일으켜 세우듯이, 가려진 것을 열어 보이듯이, 어리석은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듯이, 눈을 갖춘자는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 등불을 들어 올리듯이, 세존이신 고따마께서는 이와 같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진리를 밝혀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세존이신 고따마께 귀의합니다. 또한 그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또한 그 수행승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세존이신 고따마께서는 재가 신자로서 저희들을 받아주십시오. 오늘부터 목숨 바쳐 귀의하겠습니다.”
(귀의문 정형구, 전재성님역)
반드시 알아야 할 것
세상을 살다보면 몰라도 되는 것과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몰라도 되는 것을 굳이 알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술이 어떤 것인지 술을 마셔 보는 것, 담배가 어떤 것인지 알려고 담배를 피워 보는 것, 마약이 어떤 것인지 마약을 먹어 보는 것, 범죄의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려고 일부로 죄를 지어 보는 것 입니다. 살아 가면서 알아야 할 것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불교에서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사성제’입니다.
사성제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부처님도 입문자에게는 사성제법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시계생천’이라 하여 가장 먼저 하늘나라에 태어나는 법문부터 했습니다. 보시와 지계의 가르침입니다. 이런 바탕하에 차츰 차츰 더 높은 가르침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런 가르침의 정점에 사성제가 있습니다.
사성제는 불자라면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 노법사의 필기 자료에 따르면 고성제에 대하여 “반드시 알아야 한다.”라 했고, 집성제에 대하여 “반드시 버려야 한다.”라 했고, 멸성제에 대하여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라 했고, 도성제에 대하여 “반드시 닦아야 한다.”라 했습니다. 이는 경전적 근거를 갖습니다.
Abhiññeyyaṃ abhiññātaṃ,
bhāvetabbañca bhāvitaṃ;
Pahātabbaṃ pahīnaṃ me,
tasmā buddhosmi brāhmaṇa.
“나는 곧바로 알아야 할 것은 곧바로 알았고,
닦아야 할 것을 이미 닦았으며,
버려야 할 것을 이미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바라문이여,
나는 깨달은 자입니다.” (Sn3.7)
숫따니빠따와 맛지마니까야 셀라의 경에 실려 있는 게송입니다. 부처가 되는 것은 알아야 할 것을 아는 것입니다. 고성제를 말합니다. 닦아야 할 것은 도성제입니다. 버려야할 것은 집성제입니다. 이렇게 알아야 할 것을 아는 자, 닦아야 할 것을 닦는 자, 버려야 할 것을 버리는 자가 되어야 깨달은 자라 했습니다.
“아유 완노 수캉 발랑”
사성제법문을 끝으로 노법사의 위빠사나 강좌가 모두 끝났습니다. 서울 한복판 종로의 작은 오피스텔 방에서 노법사에게 감사의 예를 올렸습니다. 감사의 표시로 준비한 공양금을 C법우님과 함께 올렸습니다. 그리고 삼배를 올리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노법사는 한사코 거절 했습니다. 그 대신 서로 맞보고 일배의 예를 올렸습니다.
노법사는 “아유 완노 수캉 발랑”하며 축원해 주었습니다. 내용은 “장수하고 아름답고 즐겁고 건강하기를!”라는 뜻입니다. 테라와다불교에서 공양하는 자에 주는 축원문이라 합니다. 또 그 동안 지은 모든 공덕을 모든 뭇삶들에게 회향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두! 사두! 사두!”하며 축원을 마쳤습니다.
2016-11-23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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