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위신력으로 승리의 축복이 제게 임하소서!
아침에 일찍 출근하여 원두커피와 함께 하루일과를 시작합니다. 날씨가 많이 추워져서 히터를 틀어 놓았습니다. 열효율이 그다지 좋지 않은 선풍기형입니다. 그러나‘바이오 원적외선’이라는 말이 와 닿습니다. 빨간 선풍기형모양에 열을 방사하는 금속성방사판이 있어서 열기가 피부에 와 닿습니다. 마치 난로 옆에 있는 것같습니다.
음악을 틀어 놓습니다. “바훙 사핫삼 아비님미따 싸유단땅 기리메칼람 우디따 고라 사쎄나 마란~” 늘 그렇듯이 자야망갈라가타(Jayamangalatha)입니다. 컴퓨터를 켜자 마자 저장해 놓은 MP3파일을 여는 것입니다. 스스로 선곡한 곡에서 감동과 환희와 전율의 이미우이(Imee Ooi) 음악이 퍼질 때 마음이 안온 해집니다.
악마에 대한 승리
음악도 의미를 알고 들으면 더 좋습니다. 자야망갈라가타 첫 번째 게송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Bāhuṃ sahassam
abhinimmita-sāyudhantaṃ
Girimekhalaṃ
udita-ghora-sasena-māraṃ
dānādi-dhamma-vidhinā
jitavā munindo
Taṃ tejasā bhavatu
Me(te) jaya-maṅgalāni
“악마가 사나운 코끼리 기리메칼라 위에 타고
많은 손에 수 천의 무기를 들고 군대를 동원할 때
성자들의 제왕은 자애 등의 가르침으로 섭수하셨으니
이 위신력으로 승리의 축복이 제게 임하소서.”
(자야망갈라가타 1번 게송, 전재성님역)
자야망갈라가타를 전재성님은 ‘승리와 축복의 게송’이라 했습니다. 빠알리어 자야(jaya)가 ‘victory; conquest’의 뜻으로 승리 또는 정복을 의미합니다. 또는 ‘vanquishing, overcoming’ 뜻도 있어서 극복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악마, 즉 마라(Māra)에 대한 승리입니다. 마라쎄나(Mārasenā). 즉 악마의 군대, 마군에 대한 승리입니다.
마라쎄나(Mārasenā), 악마의 군대
전재성님이 편역한 ‘예경지송’에 따르면 사나운 코끼리 기리메칼라는 전설적인 악마코끼리로서 키가 150요자나 정도 된다고 합니다. 1요자나가 대략 15키로에서 20키로 사이라 하니 그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악마는 기리메칼라를 타고 명상하고 있는 부처님을 공격했습니다. 악마는 또한 수 많은 악마의 군대를 동원했습니다. 최상의 깨달음을 앞두고 있는 부처님을 향해 총공격이 개시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경지송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지나짜리따(Jinacarita)에 의하면 제석천에서 신들의 무리가 큰 축제가 벌리는 날, 악마가 생각했다. ‘싯다르타 왕자가 나의 영역을 벗어나려고 함으로 내가 그를 실패하게 만들 것이다.’ 악마가 많은 손에 수천의 무기를 들고 군대를 동원하여 사나운 코끼리 기리메칼라 위에 타고 많은 손에 수 천의 무기를 들고 군대를 동원했다. 악마는 험악한 얼굴을 하고, 불꽃과 같은 머리가 둥글게 붉어져 나오고, 입술을 깨무는 위협적인 얼굴을 하고, 뱀과 같은 팔을 한 각종 무기를 든 마군을 데리고 그 장소에 와서 무서운 고함을 지르면서 ‘싯다르타를 포박하라’고 외쳤다.”(예경지송 p26)
설명문에 따르면 악마의 영역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욕망으로사는 ‘욕계’의 세상입니다. 그런데 명상속의 부처님은 악마의 영역을 벗어나고자 합니다. 이에 악마는 실패로 만들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합니다. 게송에서는 악마의 군대, 마군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때로 미인계를 쓰기도 합니다.
미인계를 써 보지만
상윳따니까야 ‘악마의 딸들에 대한 경(S4.25)’에서는 악마의 딸들이 유혹합니다. 백명의 소녀의 모습으로, 백명의 처녀의 모습으로, 백명의 부인의 모습 등으로 변신하여 떼거리로 유혹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집착을 부수어 해탈을 이루었기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숫따니빠따에서는 “땅하와 아라띠와 라가를 보고 성적 교섭에 대한 욕망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오줌과 똥으로 가득 찬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두 발조차 그것을 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stn835) 라 했습니다.
머리끈을 질끈 동여매고
악마는 악마의 영역을 벗어나려는 부처님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마군을 동원하고 악마의 딸을 보내서 실패로 만들고자 했습니다. 최상의 깨달음을 방해하려는 악마에 대한 부처님의 싸움은 처절합니다. 이는 숫따니빠따 ‘정진의 경’에서 부처님이 악마의 군대 공격을 받자 이렇게 외쳤습니다.
“나무치여, 이것들은 그대의 군대,
검은 악마의 공격군인 것이다.
비겁한 자는 그를 이겨낼 수가 없으나
영웅은 그를 이겨내어 즐거움을 얻는다.”
차라리 나는 문자 풀을 걸치겠다.
이 세상의 삶은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가!
내게는 패해서 사는 것보다는
싸워서 죽는 편이 오히려 낫다.” (stn339-440)
부처님은 ‘문자풀’을 걸치겠다고 했습니다. 이는 전장에 임하는 각오를 말합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전장에 임하는 장수가 흰수건을 머리끈으로 하여 머리를 질끈 동여매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 문자풀을 걸쳤다는 것은 군인들이 전쟁터에 나설 때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 주기 위한 것이라 합니다. 그래서 머리나 무기에 문자풀을 묶었다고 합니다. 오늘날 굳은 결심을 할 때 머리를 싸매는 행위를 합니다. 중요한 시험을 앞둔 수험생이 흰 수건으로 머리를 싸 매는 행위도 이에 해당될 것입니다.
명상속의 부처님은 악마와 악마의 군대와 싸웠습니다. 불퇴전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 “내게는 패해서 사는 것보다는 싸워서 죽는 편이 오히려 낫다.”라는 구절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정진일 것입니다. 숫따니빠따 ‘정진의 경(Sn3.2)’에서 클라이막스라 볼 수 있습니다.
알면 사라진다
부처님은 악마와의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악마는 악마의 영역에서 벗어나려는 보살을 자리에서 끌어내려 했으나 모두 실패로 돌아 갔습니다. 최상의 진리를 깨달은 자에게 있어서 악마의 군대나 유혹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알아야 할 것을 알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알면 사라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궁금하고 답답한 것입니다. 그러나 알고 나면 마치 칠흑같이 어두운 빈방에 스위치를 켜는 것 같이 갑자기 환하게 밝아집니다. 모든 것을 알아 버린 부처님에게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상윳따니까야 마라상윳따(S4)에 따르면 “그때 악마 빠삐만은 ‘세존은 나에 대하여 알고 있다. 부처님은 나에 대하여 알고 있다.’라고 알아 채고 괴로워하며 슬퍼하며 그곳에서 즉시사라졌다.”(S4.20) 와 같은 정형구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들이 꽃송이가 되어
알면 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답답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알아 버린 부처님에게 악마의 공격은 더 이상 방해요소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경지송에서는 이렇게 설명해 놓았습니다.
“악마는 고약한 소음바람과 폭풍구름을 만들어내었으나 상서로운 고귀한 싯다르타의 옷귀퉁이도 날려보내지 못했다. 무서운 폭우를 보내서 세계를 파멸시키는 듯했으나 한 방울의 비도 불패의 님인 싯다르타를 근처에 떨어 뜨릴 수가 없었다. 그 기적을 보고 그는 슬퍼하면서 용암이 흘러내리는 무서운 불을, 재, 진흙, 칼과 같은 비, 숯불 같은 비, 모래 같은 비의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쏟아 부었다. 악마의 힘과 권능이 하늘을 뒤덮었지만, 덕성의 극치에 이른 싯다르타의 근처에는 그 떨어지는 것들이 모두 꽃송이로 변해 버렸다.”(예경지송 p27)
명상속의 부처님 앞에 모든 것들이 ‘꽃송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악마가 갖가지 방법으로 공격했으나 부처님 앞에서는 모두 꽃송이로 변해 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렇다고 물러설 악마가 아닙니다. 이번에는 온세상을 무간지옥 같은 칠흑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오로지 보살의 신체만이 천개의 떠오르는 태양같이 찬연하게 빛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악마는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악마는 부처님에게 ‘그 자리에서 일어나라’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그 자리에 앉겟다고 했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악마여, 그대는 그대가 이 자리를 차지했다고 하는데 누가 목격자들인가?”라며 물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악마는 마군들을 가리키며 마군들이 목격자라 했습니다. 이에 호응하듯이 마군들은 일제히 “내가 목격자”라며 일제히 소리쳤습니다. 악마가 악마의 군대에게 물어 보고 마군들이 대답하는 형식입니다.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의도를 가진 목격자들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은 부처님의 승리에 대하여 “악마여, 나는 의도를 가진 목격자가 없다.”라 했습니다. 이에 악마는 침묵했습니다.
부처님의 덕성에 감복하여
부처님은 침묵하는 악마에게 재차 “그대는 왜 침묵하는가?”라며 물었습니다. 땅을 진동하는 소리에 악마는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악마를 태운 키가 150요자나에 이르는 코끼리 기리메칼라가 갑자기 부처님 앞에 무릎을 꿇은 것입니다. 기리메칼라에 의지하고 있던 악마는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가장 가까운 측근이자 최고의 무기라 볼 수 있는 기리메칼라가 부처님에게 무릎 꿇은 것입니다. 이는 부처님이 승리 했음을 선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이 광경에 대하여 예경지송에서는 이렇게 표현 했습니다.
“그러자 악마가 타고 있던 코끼리 기리메칼라는 폭풍구름처럼 수백 번 포효하더니 땅에 무릎을 꿇었다. 그것을 보고 악마의 교만은 이빨이 빠진 뱀처럼 부수어졌고 수 많은 무기와 옷과 장식을 버리고 마군을 데리고 우주의 변방으로 도망갔다.”(예경지송 p27)
부처님과 악마와의 싸움에서 마침내 부처님이 승리했습니다. 악마가 타고 온 코끼리 기리메칼라가 부처님 앞에 무릎 꿇음으로써 부처님의 승리로 돌아 간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자야말갈라가타 1번 게송에서는 “자애 등의 가르침으로 섭수하셨으니”라 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싸움을 지켜 본 기리메칼라가 부처님의 덕성에 감복한 것입니다. 그러자 악마는 패배를 인정하고 저 우주 변방으로 달아났다고 했습니다. 인연담에 대한 출처는 자따까(Jat.I.72)와 지나짜리따(242-266)에 있다고 합니다.
결혼식이나 개업식에서
자야망갈라가타 1번 게송 마지막 구절은 “이 위신력으로 승리의 축복이 제게 임하소서!(Taṃ tejasā bhavatu (me)te jaya-maṅgalāni)”입니다. 키워드는 ‘승리 (jaya)와 축복(maṅgalā)입니다. 여기서 자야가 ‘victory; conquest’뜻이기 때문에 악마에 대한 승리, 악마에 대한 정복을 의미합니다. 부처님이 악마에게 승리 하였듯이 그 승리의 힘이 제게도 미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는 다름 아닌 행운과 축복입니다.
축복을 뜻하는 망갈라(maṅgalā)는 ‘auspicious; royal; lucky’의 뜻입니다. ‘상서럽다’거나 행운을 뜻하는 말입니다. 행운과 축복을 뜻하는 망갈라라는 말은 숫따니빠따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테라와다 예불문이자 수호경인 ‘위대한 축복의 경(Maṃgalasutta , Sn2.4)’이 그것입니다. 이 경에 대하여 어떤 이들은 ‘행복경’이라 명명하지만 원어와 어긋납니다. 행복이라는 말이 지금 여기서 즐거움에 대한 의미로 수카(sukha)의 의미가 크지만, 축복이라는 말은 지금 여기서 행복 뿐만 아니라 미래의 행복까지 포괄적입니다. 이는 결혼식장에서 축복을 연상하면 이해 하기 쉽습니다.
자야망갈라가타를 승리와 축복의 게송이라 합니다. 모두 여덟 가지 부처님의 승리가 여덟 가지 게송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 첫번째 게송이 악마에 대한 승리입니다. 악마에 대한 승리에 있어서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이 코끼리 기리메칼라입니다. 기리메칼라가 부처님의 덕성에 감응하여 무릎 꿇음으로써 악마와 악마의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승리와 축북의 게송, 자야망갈라가타는 테라와다불교에서 예불문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수호경입니다. 그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예경지송의 설명문에서 알 수 있습니다. 예경지송에 따르면 “결혼식이나 개업식이나 여행을 떠날 때 성공을 기원하기 위하여 지송되는 대중적인 게송이다.”(예경지송 p26)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결혼식장에서 축가로 자야망갈라타가 불려지고, 이사 갔을 때나 개업했을 때, 심지어 스리랑카의 경우 독립기념일에도 불려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 위신력으로 승리의 축복이 그대에게 임하소서!”
승리와 축복의 게송, 자야망갈라타를 매일 음악으로 듣습니다. 이 게송을 처음 발견한 것은 2006년 무렵입니다. 초기불교에 관심을 가지고 인터넷 검색하다 발견한 것입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1998년 무렵 전재성박사가 책에서 처음 소개했다고 합니다. 인터넷이 본격화 되면서 2000년대부터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게송은 음악으로도 만들어졌는데 수 많은 버전이 있습니다. 그 중에 중국계 말레이시아 불자 가수 이미우이가 부른 것이 유명합니다.
하루 일과를 자야망갈라와 함께 시작합니다. 여덟 가지 부처님의 승리와 그 승리의 힘이 내게로 임한다는 “이 위신력으로 승리의 축복이 제게 임하소서!(Taṃ tejasā bhavatu me jaya-maṅgalāni)”구절에서 크게 힘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me’를 ‘te’로 바꾸면 상대방에 대한 축원이 됩니다. 빠알리어 ‘me’는 ‘나에게’의 뜻이지만, 빠알리어 ‘te’는 ‘그대에게’의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하여 안녕을 바랄 때 “이 위신력으로 승리의 축복이 그대에게 임하소서!(Taṃ tejasā bhavatu te jaya-maṅgalāni)”라 고 축원해 줍니다.
2016-11-25
진흙속의연꽃
'담마의 거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체계적으로 배우는 붓다아비담마’ 논서를 접하고 (0) | 2016.12.08 |
---|---|
윤회의 쓰라린 고통을 잊지 말자 (0) | 2016.12.03 |
진리가 검증되는 순간, 제자들의 오도송 테라가타 (0) | 2016.11.24 |
담마를 기억하고 있으면 담마가 보호해 준다, 모든 수행은 기억력에서부터 (0) | 2016.11.09 |
시스터메틱(Systematic)한 부처님 가르침 (0) | 2016.10.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