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진리가 검증되는 순간, 제자들의 오도송 테라가타

담마다사 이병욱 2016. 11. 24. 11:14

 

진리가 검증되는 순간, 제자들의 오도송 테라가타

 

 

테라가타 출간회 기자간담회에 참가 했습니다. 장로게송이라고도 불리우는 테라가타 출간회에서는 주요언론매체가 초대 됐습니다. 불교계에 수 많은 언론매체가 있는데 모두 초청할 수 없어서 BTN(불교TV), BBS(불교방송) 등 일부 매체 기자들이 참석했습니다. 그러나 제대로 연락이 되지 않아서인지 오지 않은 기자들도 있었습니다. 이에 인연 있는 언론매체에 연락해 보았습니다. 그 중에 한매체의 기자가 급히 달려왔습니다.

 

 

 

 

 

 

참석자는 모두 11명입니다. 장소는 인사동 처마끝 하늘풍경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식음식점입니다. 작은 방에서 조촐하게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그러나 테리가타(장로니게송)가 내년 2월 경에 출간되면 많은 사람들을 초청하여 여법하게 출간법회를 봉행하기로 했습니다.

 

 

 

 

 

내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테라가타 출간기자회견에서 전재성박사는 미리 준비한 자료를 나누어 주고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말은 내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왜 이렇게 중요한 경전이 번역되지 않았을까?”라 했습니다. 이는 전세계적으로 테라가타가 제대로 번역되지 않았음을 말합니다. 게송에 대한 번역은 있지만 주석에 대한 번역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설명문에 따르면 테라가타번역이 최초로 이루어진 것은 1889년이라 합니다. 독일에서 노이만에 의해서 최초번역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영역 된 것은 1913년 리스데이비스부인에 의해서이었고, 일역된 것은 1936년의 일입니다. 그러나 완전한 번역이 아니라 합니다. 일부 주석이 번역이 되었지만 300페이지 가량 되는 세 권의 주석서를 번역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완역된 전재성박사의 테라가타는 방대한 주석이 모두 번역되었습니다. 이는 세계최초의 일이라 합니다. 국내에서 번역된 것이 있기는 하지만 불완전한 것이라 합니다. 일역을 중역한 것이 있는가 하면 번역하다 만 것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그것도 세계최초로 주석까지 완전하게 번역한 것은 이번에 출간된 전재성박사의 테라가타가 처음이라 합니다. 그래서 왜 이렇게 중요한 경전이 번역되지 않았을까?”라고 의문 했을 것입니다.

 

 

 

 

 

 

 

교정작업을 했는데

 

테라가타 기자간담회는 편집자의 자격으로 참석했습니다. 테라가타 출간을 앞두고 교정작업을 했기 때문입니다. 전재성박사의 요청에 따라 추석연휴 때 십여일간 교정작업 했습니다. 처음으로 경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 보았습니다.

 

현재 서가에는 한국빠알리성전협회와 초기불전연구원의 사부니까야 번역서와 법구경, 숫따니빠따 등 쿳다까니까야 일부 번역서들이 있습니다. 빠알리번역서는 모두 사 모아 놓은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 다 읽어 보지는 않았습니다. 필요한 부분만 읽어 본 것입니다. 그런데 자주 열어 보다 보니 노랑면칠로 가득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노랑형광메모리펜의 면칠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모두 다 읽어 보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초기경전은 방대합니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출간된 것을 모두 사 모아 놓으니 율장과 경장, 논장 합하여 30권이 넘습니다. 금액으로 따져도 백 만원 어치 이상입니다. 이렇게 방대한 경전을 모두 다 읽어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굳게 마음 먹는다면 못할 리 없을 것입니다. 어떤 법우님은 맛지마니까야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고, 또 어떤 법우님은 상윳따니까야를 다 읽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테라가타 교정을 보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게 되었습니다. 오자와 탈자 등을 잡아 내기 위해서는 꼼꼼하게 읽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출간된 책을 열어 보았습니다. 두께는 법구경과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나 법구경 보다 페이지수가 많습니다. 법구경이 850페이지인데 반하여 테라가타는 1,300페이지에 이릅니다. 450페이지가 더 많습니다. 이는 종이질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종이가 얇고 미끌미끌한 고급지입니다. 그래서 같은 두께라도 페이지가 많은 것입니다.

 

책을 열어 보니 발간사는 조기성님으로 되어 있습니다. 추천사는 혜능스님이 썼습니다. 머리말에서 전재성박사는 이 테라가타가 나오기까지 교정에 힘써 주신 김광하 대표님과 이병욱, 이명옥선생님과 최훈동 원장님께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교정자로 실명 이병욱이 들어가 있는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성전에 실명이 실렸다는 것은 어쩌면 가문의 영광일 것입니다.

 

대미를 장식한 방기싸존자

 

이번에 출간된 테라가타는 1,300여 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입니다. 크게 게송부분과 주석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이런 구분 방식은 법구경, 숫따니빠따, 우다나, 이띠붓따까에도 볼 수 있습니다. 게송부분은 독송용으로 적합하고 주석부분은 의취를 이해하는데 적합하다고 봅니다.

 

테라가타구성을 보면 시수별로 구분 되어 있습니다. 앙굿따라니까야가 법수별로 구분되어 있듯이 시의 저자에 따라 시의 숫자로 구분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련시집의 경우 오로지 한 개의 시만 남긴 제자의 시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뒤로 갈수록 시수가 늘어납니다. 삽십련시집의 경우 한 제자가 30개의 시를 남긴 것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시수가 많을수록 불자들에게 익숙한 이름들입니다. 사리뿟따, 목갈라나, 깟싸빠, 아난다, 아누룻다 등입니다.

 

시수별로 구분되어 있는 테라가타에서 유명한 제자들의 경우 시의 수가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그렇다면 테라가타에서 시의 숫자가 가장 많은 제자는 누구일까요? 놀랍게도 방기싸입니다. 불자들이 알고 있는 십대제자 등과 같이 잘 알려져 있는 제자가 아니라 상윳따니까야 방기싸의 품(S8)’에 등장하는 시적 감수성이 예민한 것으로 묘사된 방기싸존자입니다.

 

테라가타에서 방기싸의 시는 대미를 장식합니다. 테라가타에서 대련시집이라 하여 무려 70개의 시가 소개 되어 있습니다. 테라가타는 264명의 등장인물에 총 1,291수의 시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 방기싸의 시는 5.4%를 차지합니다. 일부 시는 상윳따니까야 방기싸의 품에 있는 시와 병행하기도 합니다. 시적 감수성이 예민한 방기싸에 대한 주석을 보면 부처님의 제자 수행승 가운데 변재가 있는 님 가운데 제일이라 합니다.

 

깨달음의 환희 보다는

 

이제까지 테라가타를 단편적으로 접했습니다. 일아스님이 편역한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경전에서 테라가타의 일부 시가 소개 되어 있습니다. 일부시만 읽고서 테라가타에 대하여 부처님제자들이 해탈과 열반의 기쁨을 노래한 시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깨달음의 환희 보다는 수행의 어려움과 극복과정에 대한 것이 더 많습니다. 이는 해제의 설명문을 보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출가생활의 어려움에 대한 것을 보면 숲속에서 모기와 등에의 괴롭힘을 당하는 것이 묘사 되어 있습니다. 양가집 자제들이 안락한 삶이 보장되어 있음에도 모든 것을 버리고 숲속에서 살아 갈 때 닥치는 괴로움 같은 것입니다. 이는 한적한 숲 속에서, 삼림속에서, 동혈에서, 멀리 떨어진 처소에서, 맹수가 출몰하는 곳에서 살았다.”(Thag.602) 라고 한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테라가타에는 이교도의 개종이야기, 내적성찰과 마음의 제어 등 갖가지 수행생활에 대한 게송이 있습니다. 반드시 해탈과 열반의 노래뿐만 아니라 수행자들의 치열한 구도의 열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나까무라 하지메가 책의 제목으로 삼은 불제자의 고백이라는 말도 어느 정도 타당합니다. 수행과정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고백하는 형식으로도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최후의 밤은 다가오니

 

테라가타 교정작업을 하면서 노트를 해 두었습니다. 인상적인 구절과 주석을 컴퓨터에 입력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해제를 보니 일치하는 게송이 있습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시라 봅니다. 씨리만다존자의 시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습니다.

 

 

죽음과 질병과 늙음,

이 세 가지는 화마처럼 다가온다.

항거할 만큼의 힘도 없고

도망칠 만큼의 빠름도 없다.”(Thag.450)

 

하루를 적거나 많거나

헛되이 보내지 말라.

하룻밤이라도 낭비한다면,

그 만큼 그의 목숨이 줄어든다.”(Thag.451)

 

걸어가거나 서 있거나

앉아있든 누워있든,

최후의 밤은 다가오니,

방일할 시간이 그대에게 없다.”(Thag.452)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방일하지 말고 정진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초기경전에서는 칼에 맞은 것처럼, 정수리에 불이 붙은 것처럼”(Thag.40) 알아차리며 수행할 것을 말씀 했습니다. 그런데 씨리만다 존자의 게송을 보면 매우 절박해 보입니다. 하루 하루 지나가는 시간에 대하여 아쉬워합니다. 하루도 낭비하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루 하루 의미 없게 흘려 보낸다면 결국 최후의 밤을 맞이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루 하루 알아차리며 사는 자에게 최후의 밤은 축복일 것입니다.

 

왜 팔만사천법문이라 하는가

 

흔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팔만사천법문이라 합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하면 팔만이천법문입니다. 나머지 이천법문은 제자들이 한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법문에서 종종 접합니다. 그런데 근거가 되는 게송이 테라가타에 있습니다. 부처님의 시자 아난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처님에게서 팔만이천,

수행승들에게서 이천을 받아

팔만사천의 법문을

나는 담지하고 있다.”(Thag.1030)

 

 

이 게송이 팔만사천법문의 진실입니다. 제자들의 이천법문이 합쳐져서 팔만사천법문이 된 것입니다. 테라가타 주석에서는 가르침의 창고지기라 일컫고 있는 아난다 존자가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가르침이 전승되어 왔습니다.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아난다가 이천을 받아라했는데 이는 테라가타 1,291수와 테리가타 521수도 포함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외 사부니까야에서 볼 수 있는 사리뿟따, 깟사빠 등의 제자법문을 합하여 이천법문이라 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 갑니다.  

 

주석에 따르면 아난다는 시자가 되는 조건으로 네 가지를 제시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세존께서 타인에게 한 설법을 제게 이야기해준다면 제가 세존을 모시겠습니다.”(3279번 각주)라는 내용입니다. 가르침의 창고지기로서 아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 뿐만 아니라 제자들의 설법까지 모두 기억하여 오늘날 팔만사천 법문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그 근거가 되는 게송이 테라가타에 있습니다.

 

진리가 검증되는 순간

 

부처님의 가르침은 방대합니다. 사부니까야 거의 대부분이 부처님 가르침으로 가득합니다. 일부 제자들의 가르침도 있습니다. 그런데 쿳다까니까야에서는 제자들의 가르침도 많습니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테라가타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가르침과 제자들의 가르침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정신과전문의 전현수박사의 불교TV ‘마음테라피2’에 따르면 부처님 자신이 깨닫고 난 뒤에 이것이 정말로 완전한 진리인가 보편적 진리인가 경험하면 누구든지 그렇게 되는가라며 의문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자신이 깨달은 것을 철저하게 검증했다고 합니다. 이는 초전법륜경에서 네 가지 진리를 열두 가지 형태로 굴린 것(三轉十二行相)’에서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진리를 검증하고 난 다음 제자들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제자들도 똑 같이 경험했습니다. 이는 초전법륜경에서 꼰단냐에게서 일어난 일로 알 수 있습니다. 경에 따르면 그 가르침을 설할 때에 존자 꼰당냐에게 무엇이든 생겨난 것은 그 모두가 소멸하는 것이다.’라고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진리의 눈이 생겨났다.”(S56.11)라 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은 진리가 검증되는 순간입니다.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일만세계의 진동과 무량하고 광대한 빛이 나타난 것으로 묘사 되고 있습니다.

 

테라가타는 제자들의 깨달음에 대한 오도송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가르침을 실천했을 때 부처님이 깨달았던 경지를 그대로 맛 본 것입니다. 그래서 테라가타에 대하여 해탈과 열반의 기쁨을 노래한 경전이라고도 합니다.

 

 

2016-11-24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