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아 두면 썩는다
오늘은 무엇을 쓸까나? 아침에 눈을 뜨면 최대의 고민입니다. 글쓰기를 생활화 하고 있지만 매일 맞는 아침에 늘 생각하는 고민입니다. 그렇다고 생각이 억지로 떠 오르지 않습니다. 그대로 내버려 두었을 때 저절로 떠 오릅니다. 떠오른 생각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눈으로 본 것에서 좋은 글쓰기 소재가 떠오를 수 있습니다. 아침 뉴스를 보고 떠 오르기도 하고 학의천 가는 길에 떠 오르기도 합니다.
학의천 가는 길에
집에서 일터까지는 걸어갑니다. 2키로 가량되니 20여분 걸립니다. 이른 아침 간단히 먹고 일찍 출발합니다. 요즘은 해가 늦게 떠서 게을러졌습니다. 오전 7시가 되도 날씨에 따라 컴컴할 때도 있습니다. 해뜨기 전, 새벽에, 또는 여명에 일찍 문밖을 나선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입니다.
1월도 중순이니 한겨울입니다. 걷기에는 손이 시리고 귀가 시릴 정도로 추운 날씨입니다. 두툼한 외투를 입고 장갑을 끼어야 합니다. 모자가 달린 겉옷을 입으면 추위를 견딜만한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목도리를 머리에 둘러 맵니다. 남들이 보기에 피난민처럼 보일지 모릅니다.
학의천변을 보면 마치 폭격을 맞은 듯 초토화 된 모양입니다. 갈대에 꽃이 피면 시든다고 하는데 하천 주변에는 초록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추운 날씨에 잔뜩 움추려 있는데 주변 풍광 또한 삭막하기만 합니다. 모든 것이 스러진 가혹한 겨울날씨 입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생명’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새들입니다.
학의천에는 많은 새들이 삽니다. 이 세상에 오로지 사람들만 사는 곳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도심의 하천에는 여러 생명체들이 살고 있습니다. 먹을 것 하나 없어 보이는 하천을 터전으로 하여 새들이 살고 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청둥오리와 백로입니다. 청둥오리는 주로 모여 있고, 백로 또는 왜가리라고 불리우는 새는 홀로 서 있습니다.
청둥오리편대와 나홀로 백로
요즘 조류독감(AI)로 인하여 닭과 오리가 대량으로 살처분 되고 있습니다. 약 3천만 마리가 살처분 되었다 하니 역사상 최대라 합니다. 비좁은 공간에서 공장식으로 사육되는 가금류는 면역력이 약해서 전염병이 돌면 집단 폐사 합니다. 이에 반하여 학의천에서 노니는 청둥오리는 조류독감과 무관한 듯합니다. 누가 모이를 주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 먹습니다. 청둥오리 떼가 편대를 이루어 나아가는 모습이 추운 겨울에도 여유롭게 보입니다.
청둥오리가 떼를 이루어 산다면 백로는 나홀로 사는 것 같습니다. 늘 물 가운데혼자 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도망가 버립니다. 목이 긴 것이 특징인데 목을 움추리면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합니다. 백로라 하여 반드시 흰색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 회색도 보입니다. 그럴 경우 왜가리라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 듯합니다. 왜가리라는 말이 의미하듯이 백로의 특징은 늘 ‘나홀로’ 이미지입니다.
청둥오리는 학의천에서 한가롭게 노닐고 있습니다. 백로는 물 가운데서 고고한 자태를 뽑냅니다. 삭막한 도시의 겨울하천에서 그나마 삶의 여유를 갖게 해주는 풍경입니다. 그런데 한편으로 새들은 ‘무엇을 먹고 살까’에 대한 의문입니다. 그러나 우문에 지나지 않습니다. 스스로 알아서 먹이를 찾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건강한지 모릅니다. 사료를 주어서 키우는 공장식 닭공장이나 공장식 오리공장과는 다릅니다. 조류독감 무풍지대가 야생의 새들이 사는 곳입니다.
축적함으로 인하여
백로가 작은 물고기를 물고 있는 모습을 종종봅니다. 청둥오리는 물고기 사냥을위해서 열심히 두리번 거립니다. 그렇다고 이들 조류가 먹이를 축적해 두지 않습니다. 설령 많이 먹는 다고 하더라도 위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먹고 나면 그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만은 먹을 것을 축적해 둡니다. 그것도 많이 축적합니다. 축적해 둔 것도 모자라서 남의 것을 빼앗습니다.
디가니까야 ‘세계의 기원에 대한 경(D27)’을 보면, 인간들이 축적함으로 인하여 모든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시초는 맛을 알고 나서 부터입니다. 맛에 대한 갈애로 인하여 세상이 생겨나고, 남녀가 구분되고, 계급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매우 수승한 존재이었습니다. 경에 따르면 기쁨을 먹고 지내고, 스스로 빛을 내고 하공을 나는 존재라 했습니다. 맛에 대한 갈애로 인하여 현재와 같은 거친모습의 탐욕스런 존재로 변한 것이라 합니다.
동물들은 축적하지 않습니다. 먹을 만큼 먹으면 더 이상 먹지 않습니다. 배고프면 다시 먹이를 찾아서 먹으면 됩니다. 원시밀림의 사람들 역시 축적하지 않습니다. 언젠가 자연다큐에서 필리핀 원주민은 “지금 이대로 행복합니다.”라 했습니다. 그러나 문명화된 인간만큼은 많이 축적해 둡니다. 그 결과 다툼이 끊이지 않습니다. 전쟁도 불사합니다. 그 끝은 어디일까요?
청정도론에 따르면 탐욕이 치성할 때 ‘겁화(劫火)’가 일어난다고 했습니다. 공장식 사육으로인하여 가금류 수천만 마리가 살처분 되는 것도 인간의 탐욕의 산물입니다. 조류독감과 같은 전염병이 언제 인간에게도 덮칠지 알 수 없습니다. 만일 병에 의한 겁화가 일어나면 ‘병겁(病劫)’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인간의 끝 없는 욕망에 기인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결국 뺏기고 말 것을
사람들은 불안한 미래를 위하여 축적합니다. 노후를 위하여 가급적 많이 모아 놓으려 합니다. 그런 한편 즐기는 삶을 살아 갑니다. 사실상 즐기기 위해 축적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노후가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천문학적 재산을 모아 놓았다고 하더라도 내 것이 아닙니다. 다섯 도둑이 가져 간다고 했습니다.
다섯 가지 도둑은 무엇일까요? 경에서는 “나의 재산을 왕들이 빼앗지 않을까, 도둑들이 빼앗지 않을까, 불이 태워버리지 않을까, 홍수가 휩쓸지 않을까, 사랑하지 않는 상속자가 빼앗지 않을까”(M13) 라 했습니다. 평생 일군 재산을 왕, 도둑, 불, 홍수, 상속자가 빼앗아 간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맹목적으로 노후를 위하여 미래를 위하여 오늘도 내일도 축적하는 삶을 살아 갑니다. 결국 쓰지도 못하고 다섯 도둑들에게 강탈당하고 말 것입니다.
미래를 위하여 저축하는 것은 바람직합니다. 노후를 대비하여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자금을 마련해 두는 것은 장려 해야 합니다. 그러나 재물의 노예가 되어 축적하는 삶만을 산다면 동물만도 못한 삶입니다. 동물은 자연에서 필요한 만큼만 취합니다. 배가 부르면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만은 축적된 삶을 살아 갑니다. 누구나 하루 세 끼 이상 먹을 수 없음에도 마치 열 끼, 백 끼, 천 끼를 먹을 것처럼 자꾸만 쌓아 두려 합니다. 결국 다섯 가지 도둑에게 뺏기고 말 것입니다.
쌓아 두면 썩는다
수행자는 욕망에서 떠난 자들입니다. 하루 한끼만 먹어도 얼굴이 맑은 것은 욕망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날 먹을 것만 것 취할 뿐 축적하는 않는 삶을 살아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일까 숫따니빠따에서는 수행자를 코뿔소로 비유했습니다. 뿔 하나를 가진 코뿔소가 오로지 한길로 우직하게 나아가듯이, 욕망에서 떠난 수행자는 오로지 한길로 나아갈 뿐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흐름과는 반대로 가는 길입니다. 세상사람들이 욕망으로 살아 갈 때 욕망을 내려 놓는 삶을 살아 갑니다.
수행자의 삶은 고독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흐름과는 반대로 살아 가기 때문에 세상사람들과 함께 살아 갈 수 없습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은 사람들과는 함께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질고 단호한 동료수행자, 현명하고 성숙한 벗을 얻지 못한다면 왕이 정복한 나라를 버리고 가듯,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stn46) 라고 했습니다.
축적하면 부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고인물이 썩는다고 자꾸 쌓아 두면 언젠가는 썩어 버립니다.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말이 있듯이, 절대 부는 반드시 부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쌓아 놓으면 썩게 되어 있습니다. 청정한 수행자는 소유하려 하지 않습니다. 마치 동물들이 그날 그날 자연에서 먹이를 취하듯이, 수행자는 그날 취한 음식으로 살아 갑니다. 소욕지족의 삶입니다.
“모든 맛에 탐착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부양해야 하는 동료 없이, 집마다 차례로 밥을 빌되
이 집안이나 저 집안에 마음이 묶이지 않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stn60)
2017-01-19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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