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의 거울

뭐? 구라경이라고? 강병균교수의 초기경전 농단

담마다사 이병욱 2017. 4. 1. 17:29

 

? 구라경이라고? 강병균교수의 초기경전 농단

 

 

종교는 구라라는데

 

과학과 종교는 상극일까요? 강병균교수의 환망공상시리즈를 보면 확실히 그런 것 같습니다. 비교적 과학적이라 볼 수 있는 불교 역시 강병균교수의 입장에서 본다면 거짓입니다. 불교경전은 과학적 사실에 전혀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과학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구라입니다. 강병균교수는 온갖 신화적 이야기로 가득하고 전혀 과학적이지 않는 종교경전에 대하여 구라라고 했습니다. 강병균교수가 말하는 구라경은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아무리 멋진 정교한 이론과 난해한 용어로 체계를 세워도 구라는 구라다주전원·천동설은 구라다창조설도 구라고 천인하강설(天人下降說) 구라다생명과 우주의 기원과 발생과 전개와 실상에 대한현대과학과 어긋나는 기독교·회교·불교 신학은  구라다.”(강병균교수, 하늘나라 사람들의 수명, 불교닷컴 2017-03-27)

 

 

과학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불교경전 역시 구라경입니다. 초기경전에 실려 있는 신화적 이야기는 전혀 과학적이지 않기 때문에 거짓으로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경을 거짓으로 보았다면 그 경전은 신뢰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동시에 부처님 가르침도 신뢰할 수 없어서 구라가 될 것입니다.

 

미륵부처도 구라?

 

강병균교수는 불교닷컴에 연재된 환망공상 시리즈에서 초기경전 위사카우포삿타경을 근거로 불교경전이 구라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찾아 보니 앙굿따라니까야에 실려 있는 포살의 덕목에 대한 경(uposathaagasutta, A3.70)’입니다. 부처님이 재가자 미가라의 어머니 비싸카에게 포살의 덕목에 대하여 설한 경입니다. 긴 길이의 경으로서 재가자가 포살일을 지켰을 때 어떤 과보를 받을 것인지에 대하여 여러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경의 말미에 사대왕천 부터 시작 하여 욕계육욕천의 수명과 비교하여 포살의 공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강병균교수는 거두절미하고 오로지 욕계육욕천의 위치와 수명이 과하적으로 맞지 않아 구라라고 합니다. 이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경전 위사카우포삿타 경에 의하면도솔천인의 수명은 (도솔천 해로) 4,000살이고도솔천의  년은 360일이고도솔천의 하루는 지상의 400년이므로도솔천인의 수명은 지구나이로 치면 576백만 년이다. (4,000x400x360=576,000,000원효 스님이 도솔천인의 수명을 567천만년으로  것은, (도솔천 시간 단위로 표시한도솔천인의 수명이나 (지구 시간 단위로 표시한하루길이를 10  잡고도솔천의 하루를 354일로 보았기 때문이다. (고대인도인들은  년을 354일로 잘못 알았다하지만  위사카우포삿타 경은 하늘나라의  년이 하늘나라 360일이라고 명시하고 있으므로하늘나라  년을 지구상의  년처럼 354일로  것은명백히 원효 스님의 실수이다.) 그러므로 도솔천으로 올라간 부처의 성문제자 미륵이 다시 지상으로 내려오려면이만큼의 시간인 567천만 년이 걸린다원효스님의 계산이다그래서 미륵부처는 567천만  뒤에나 지구에 환생한다하지만 그때쯤이면 지구는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태양이 지금 속도로자신의 주요구성성분인헬륨을 연소하면  연소하는  50  정도 걸린다). 이처럼천문학과 물리학의 발달은 근본주의적인 불교신자들에게 특히 미륵부처를 믿는 이들에게 재를 뿌렸다광신적인 불교신도들이 과학을 미워할 만하다어떤 이들은 입술과 (컴퓨터 자판 위의손가락을 부르르 떨면서 진실을 밝히는 이들을 혐오하기도 한다불교가 광신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강병균교수, 하늘나라 사람들의 수명, 불교닷컴 2017-03-27)

 

 

강병균교수는 수학자입니다. 수학자답게 경전에 묘사되어 있는 욕계육욕천의 수명을 지구에 사는 사람의 수명으로 환산하여 밝힌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도솔천(tusita)의 수명에 대하여 지구나이로 5 7천만년이라 합니다. 그런데 앞으로 도래할 미륵보살이 56 7천만년 후에 출현한다는데 이는 계산상 맞지 않아 구라라는 것입니다.

 

강병균교수의 초기경전 농단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도리천(도솔천: tusita)에서 하강하여 입태했다고 했지만 이것 역시 구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타까의 이야기가 다 구라로 변한다.” 라고 말합니다. 과거칠불에 대해서도 구라라고 합니다. 비바시불의 수명이 84천세인 점을 문제삼고 있습니다. 인간수명으로 환산해 보면 840만년이 되는데 이는 인류의 출현 보다 더 앞서는 것이어서 구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도들은 하루 빨리 이런 미신과 망상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라고 주장합니다.

 

포살에 대하여

 

경전에 대하여 과학의 잣대를 들이댄다면 모두 거짓이 됩니다. 그러나 빈데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될 수 있습니다. 신화적인 이야기, 전설적인 이야기는 가르침을 설명하기 위한 방편임에도 이를 문제삼아 구라라고 한다면 가르침을 부정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부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썼다면 커다란 구업을 짓는 것이고, 모르고 썼다면 초등학교 저학년이나 유치원생 같은 발상입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포살의 덕목에 대한 경에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을까요?

 

재가자는 출가자와 달리 오계를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각자 생업이 있어서 오계와 관련이 있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계속 오계를 어기는 삶을 살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달에 두 번 정도는 계를 지키는 삶을 살자는 취지에서 포살일이 만들어진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포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Uposatha : ()를 설하는 것, 혹은 그날. 재일(齋日), 포살(布薩)이라고 한역된다. 불경에 나타난 고대인도의 역법에 따르면, 인도의 일년은 겨울, 여름, 우기로 나뉘며, 각 계절은 4개월씩 계속된다. 4개월은 8개의 보름단위의 기간(pakkha)으로 나뉘고, 세 번째와 일곱 번째는 14일로 구성되고 나머지는 15일로 구성된다. 신월이나 보름달이거나 반달[상현이나 하현의 달]의 날이 특별히 길조인 것으로 여겨진다. 불교에서는 이런 날에 포살의식을 행한다. 보름날과 신월의 포살일에는 수행승들이 자신들의 의무계율[戒本]을 외우고, 일반신도들은 설법을 듣거나 수행을 하기 위해 승원을 방문한다.(성전협 앙굿따라니까야 3 308번 각주, 전재성님)

 

 

포살일은 본래 초하루, 보름, 상현, 하현 이렇게 네 번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초하루와 보름에 포살의식을 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것임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재가자에게 있어서 포살일은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은 이날 법회를 듣거나 승원을 찾아 수행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경에 따르면, 부처님은 포살일에 승원을 찾은 비싸카에게 포살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마치 포살의 취지와 목적 등 포살은 이런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가장 먼저 세 사지 포살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소치기의 포살과 니간타의 포살과 고귀한 님의 포살이라 했습니다.

 

소치기의 포살에 대하여

 

불자가 된다는 것은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준수함을 말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최소 한달에 두 번 정도는 승원에 와서 포살의식을 해야 합니다. 마치 오늘날 한국불교에서 초하루, 관음재일, 지장재일 등 각종 재일을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많게는 한달에 네 번 나와야 하지만 최소 두 번 나왔을 때 해야 할 일은 법문을 듣고 수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행위를 하는 것은 항상 부처님 가르침과 함께 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만일 수계 받는 날 하루만 승원에 나오고 일년 내내 얼굴을 비치지 않는다면 오계를 어기는 삶을 살아 갈 수 있습니다. 더구나 직업상 어쩔 수 없이 오계를 어기는 삶을 살아 가는 사람은 더욱더 많은 악업을 짓게 될 것입니다. 한달에 두번이라도 승원에 나와 참회하고 법문을 듣고 수행하여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면 어느 정도 악행은 줄어 들 것입니다.

 

일반사람들은 승원에 나올 일도 없고 법문들을 일도 없고 수행할 일도 없을 것입니다. 그저 하루하루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즐거움에 살아 갈 것입니다. 이런 삶은 소치기의 삶과 다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소치기의 포살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 했습니다.

 

 

비싸카여, 어떠한 것이 소치기의 포살입니까? 비싸카여, 예를 들어, 소치기가 저녁 무렵 주인에게 소를 돌려주면서 오늘 소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 물을 마셨는데, 내일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 물을 마실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비싸카여, 이 세상의 어떤 사람은 나는 오늘 이러저러한 단단하거나 부드러운 음식을 먹었다. 나는 내일 이러저러한 단단하거나 부드러운 음식을 먹을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 그는 탐욕에 의해서 탐착에 가득 찬 마음으로 하루를 보냅니다. 비싸카여, 소치기의 포살은 이와 같습니다. 비싸카여, 이와 같이 소치기의 포살에는 커다란 과보, 커다란 광명, 커다란 충만이 없습니다.”(A3.70, 전재성님역)

 

 

 

 

 

경에서 언급된 소치기는 일반사람으로서 수동적으로 살아 가는 사람의 대표적 예라 볼 수 있습니다. 주인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머슴으로 사는 자이기도 합니다. 주인의식이 전혀 없는 자는 그날그날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즐거움 외 다른 것은 없습니다.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할 뿐 자신을 넘어서기 위한 일을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성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이런 삶을 살아 갑니다.

 

흔히 말하기를 착하게 살면 되다고 말합니다.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이면 페끼치지 않고 살면 된다.’라고 말합니다. 착하게 살면서 폐끼치 않는 삶을 산다고 하여 선업이 쌓이는 것이 아닙니다. 지혜가 없이 착하게 산다면 언제든지 악행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나중에 인생의 대차대조표를 비교해 보면 악행이 선행보다 더 많을 것입니다. 결과는 악처에 떨어집니다.

 

착하게 살지만 대부분 탐, , 치로 살기 때문입니다. 마치 우리 안의 사자와도 같은 삶이라 볼 수 있습니다. 주인이 주는 고기만을 먹고 사는 사자는 야성을 잃어 버려서 사실상 돼지와 같은 삶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마치 머슴처럼 사는 소치기의 포살에 대하여 커다란 과보, 커다란 광명, 커다란 충만이 없습니다.”라 했습니다.

 

니간타의 포살에 대하여

 

포살은 불교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스승의 가르침에도 있습니다. 경에서는 자이나교도의 포살에 대하여 언급했습니다. 이를 니간타의 포살이라 합니다. 그렇다면 니간타의 포살은 어떤 것일까요?

 

부처님은 니간타교도의 언행불일치에 대하여 지적하고 있습니다. 니간타교도들이어떤 폭력도 행사하지 말라 하지만 이는 지켜 질 수 없는 약속으로 본 것입니다. 이런 정형구가 이보게, 오라. 모든 옷을 버리고 나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나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고, 나는 어떠한 것에도 속하지 않는다. 어떠한 곳도 나에게 속하지 않고, 누구도 나에게 속하지 않고, 어떠한 것도 나에게 속하지 않는다.”(A3.70) 입니다. 이런 정형구는 자이나교의 나체수행자들이 외는 진언이라 합니다. 하지만 이 말에는 모순이 있습니다. 누구도 지킬 수 없는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비판합니다.

 

 

그러나 부모는 그가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이들은 그들이 나의 부모라는 것을 압니다. 처자는 그가 우리의 가장이라는 것을 알고, 가장은 그들이 나의 처자라는 것을 압니다. 하인들과 노복들은 그가 우리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고, 주인은 그들이 하인들과 노복들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들은 이와 같이 진실을 권해야 할 때에 거짓을 권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그들의 거짓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밤이 지나면 주어지지 않은 소유를 사용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주어지지 않은 것을 빼앗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니간타의 포살은 이와 같습니다. 비싸카여, 이와 같이 니간타의 포살에는 커다란 과보, 커다란 광명, 커다란 충만이 없습니다.”(A3.70,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니간타의 포살에 대하여 언행이 일치 하지 않음을 지적했습니다. 마치 낮에 한말 다르고 밤에 하는 행동 다른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은 불일치의 포살입니다. 특히 니간타들이 포살일에 모든 것이 나의 것이 아니다.’라고 선언하였는데, 다음 날에는 침대에 다시 눕고, 의자에 앉고, 수프를 먹고, 밥을 먹는 등 주어지지 않는 것을 사용함을 말합니다.

 

니간타의 포살은 모순으로 가득합니다. 실천할 수 없는 것을 말로만 선언하는 것입니다. 진실된 것이라 볼 수 없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하여 도둑질하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말로는 모든 것이 나의 것이 아니라고 선언해놓고서는 다음 날 슬며시 사용한다면 도둑질과 다를 바 없음을 말합니다.

 

고귀한 포살에 대하여

 

니간타의 포살은 마치 계금취견을 보는 듯합니다. 잘못된 견해와 수행방법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니간타들의 포살에 대하여 거짓이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진실된 포살일까요?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고귀한 포살에 대하여 설합니다.

 

부처님은 고귀한 포살에 대하여 길게 설명합니다. 불교도들이 지켜야 할 포살의 취지와 목적을 잘 설명한 듯 합니다. 먼저 고귀한 포살에 대하여 오염된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입니다.”라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오염된 머리, 오염된 몸의 치유, 오염된 옷의 비유를 들어 설명합니다.

 

부처님이 말씀 하신 고귀한 포살에서 오염된 머리의 비유에 따른 정화는 불수념(buddhānussati)’에 대한 것입니다. ‘깃발의 경(S11.3)’에서 볼 수 있는 정형구에서 처럼 세존꼐서는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 등 열 가지 부처님 공덕을 새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새겼을 때 그의 마음에는 청정이 생겨나고 기쁨이 생겨나서 마음의 오염이 끊어집니다.”(A3.70) 라 했습니다. 다음으로 오염된 몸의 비유에 따른 정화는 법수념(dhammānussati)’에 대한 것입니다. 이는 세존께서 설하신 이 가르침은 현세의 삶에서 유익한 것이고,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며,…”로 시작되는 법수념 정형구입니다. 마지막으로 오염된 옷의 비유로 인한 정화는 승수념(saghānussati)’입니다. 이는 세존의 제자들의 모임은 훌륭하게 실천한다…”로 시작되는 승수념 정형구입니다.

 

부처님은 머리의 정화비유에 대하여 불수념으로, 몸의 정화비유에 대하여 법수념으로, 오염된 옷의 정화비유에 대하여 승수념으로 설명했습니다.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에 대하여 새겼을 때 몸과 마음이 정화되고 치유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포살은 탐욕으로 살아 가는 소치기의 포살과 다른 것이고, 또한 이루어질 수 없는 항목을 외는 니간타의 포살과도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고귀한 포살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삼보에 대하여 새기는 것뿐만 아니라 계행, 하늘사람에 대해서도 새깁니다.

 

계행에 대한 새김

 

계행에 대한 새김에 대해서는 오염된 거울이 치유 되어 정화 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마치 수건으로 얼룩진 거울을 닦으면 잘 보이듯이, 오염된 마음은 삼매로 이끄는 계행으로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이는 계수념(sīlānussati)’을 말합니다. 그래서 계행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새길 것을 말합니다.

 

 

파괴되지 않고, 균열되지 않고. 흠이 없고, 오점이 없고, 자유로 이끌고, 양식 있는 님들이 칭찬하고, 집착에서 벗어나게 하고, 삼매로 이끄는 계행을 갖추고 있다.”(A3.70, 전재성님역)

 

 

하늘사람에 대한 새김

 

하늘사람에 대한 새김에 대해서는 오염된 금이 치유되어 정화 되어 가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금을 하늘사람에 비유한 것입니다. 그래서 천상에 태어나려면 하늘사람들이 갖는 믿음, 계행, 배움, 보시, 지혜를 새겨야 함을 말합니다. 이렇게 새기면 청정이 생겨나고 기쁨이 생겨나서 마음의 오염이 끊어진 것이 마치 오염된 금이 치유되어 정화 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는 천수념(devatānussati)’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늘사람에 대하여 새겨야 할까요?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길게 설명합니다.

 

 

네 위대한 왕들의 하늘나라가 있고, 서른셋 신들의 하늘나라가 있고, 축복받은 신들의 하늘나라가 있고, 만족을 아는 신들의 하늘나라가 있고, 자신이 만든 것을 즐기는 신들의 하늘나라가 있고, 남이 만든 것을 즐기는 신들의 하늘나라, 하느님의 무리의 하늘나라와 그 이상의 하늘나라가 있다. 하늘사람들은 믿음을 갖추고 여기서 죽어서 거기서 태어난다. 그러한 동일한 믿음을 나도 갖추고 있다. 하늘사람들은 계행을 갖추고 여기서 죽어서 거기서 태어난다. 그러한 동일한 계행을 나도 갖추고 있다. 하늘사람들은 배움을 갖추고 여기서 죽어서 거기서 태어난다. 그러한 동일한 배움을 나도 갖추고 있다. 하늘사람들은 보시를 갖추고 여기서 죽어서 거기서 태어난다. 그러한 동일한 보시를 나도 갖추고 있다. 하늘사람들은 지혜를 갖추고 여기서 죽어서 거기서 태어난다. 그러한 동일한 지혜를 나도 갖추고 있다.” (A3.70,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욕계 6욕천 뿐만 아니라 색계와 무색계 천상도 언급했습니다. 천상에 태어나기 위한 조건으로 믿음(saddhā), (sīla), 배움(suta), 보시(cāga), 지혜(paññā) 이렇게 다섯 가지 덕목이 요청됩니다. 이는 욕계 뿐만 아니라 색계와 무색계 천상에 형성될 조건임을 말합니다. 만일 욕계천상이라면 보시와 지계만으로도 충분하리라 봅니다. 시계생천(施戒生天)이라는 말은 욕계에 해당되는 말일 것입니다.

 

오늘 하루만이라도

 

부처님은 재가여신도 비싸카에게 포살의 취지에 대하여 알려 주었습니다. 재가신자가 부처님과 담마와 상가에 공덕에 대해서 새기고, 또한 계행과 하늘나라의 공덕을 새기며 포살의식을 행하면 하늘나라에 태어나는 가르침을 알려 준 것입니다. 그렇다면 포살일에 무엇을 성찰해야 할까요?

 

재가의 삶을 살면서 출가자처럼 계행을 지키며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한달에 두 번이라도 출가자와 동등한 삶을 산다면 끈은 놓지 않은 것이라 봅니다. 그런데 재가자의 포살항목을 보면 모두 여덟 가지입니다. 이 여덟 가지는 사미나 사미니가 지켜야 할 항목과 동일합니다.

 

재가자의 포살일 참여는 사미와 사미니와 동등함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재가자의 포살은 어떤 것일까요? 먼저 불살생계에 대한 성찰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Sa kho so visākhe ariyasāvako iti paisañcikkhati: yāvajīva arahanto pāātipāta pahāya pāātipātā paiviratā nihitadaṇḍā nihitasatthā lajjī dayāpannā sabbapāabhūtahitānukampī viharanti. Ahampajja imañca ratti imañca divasa pāātipāta pahāya pāātipātā paivirato nihitadaṇḍo nihitasattho lajjī dayāpanno sabbapāabhūtahitānukampī viharāmi. Imināpaha agena arahata anukaromi, uposatho ca me upavuttho bhavissati.

 

거룩한 님은 목숨이 다하도록,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버리고,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몽둥이를 놓아 버리고, 칼을 놓아 버리고, 부끄러움을 알고, 자비심을 일으키고, 일체의 생명을 이롭게 하고 애민히 여긴다. 나도 바로 오늘 낮 오늘 밤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몽둥이를 놓아 버리고, 칼을 놓아 버리고, 부끄러움을 알고, 자비심을 일으키고, 일체의 생명을 이롭게 하고 애민히 여기리라. 이러한 성품으로 나는 거룩한 님을 따르며 포살을 지킬 것이다.” (A3.70, 전재성님역)

 

 

포살일 불살생에 대한 성찰을 보면 매우 구체적입니다. 거룩한 님은 아라한을 말합니다. 그런데 거룩한 님은 목숨이 다 하도록 살아 있는 생명을 죽이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아라한이라도 오계를 준수하고 포살의식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하는 대목이라 볼 수 있습니다. 재가신도들 역시 거룩한 님들처럼 따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오늘 낮 오늘 밤이라 했습니다. 포살일 당일만이라도 살생하지 않겠다는 것을 말합니다. 농사를 짓거나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단 하루만이라도 승원에 머물러 있다면 하루 동안은 살생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새겨야 할 항목

 

이어지는 일곱가지 포살은 다음과 같습니다.

 

 

2)

Yāvajīva arahanto adinnādāna pahāya adinnādānā paiviratā dinnādāyī dinnapāikakhī athenena sucibhūtena attanā viharanti. Ahampajja imañca ratti imañca divasa adinnādāna pahāya adinnādānā paivirato dinnādāyī dinnapāikakhī athenena sucibhūtena attanā viharāmi. Imināpaha agena arahata anukaromi, uposatho ca me upavuttho bhavisasati.

 

거룩한 님은 목숨이 다하도록, 주지 않은 것을 빼앗는 것을 버리고, 주지 않은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주는 것만을 취하고, 주어진 것만을 바라고, 도둑질하지 않고, 청정한 마음을 지닌다. 나도 바로 오늘 낮 오늘 밤 주지 않은 것을 빼앗는 것을 버리고, 주지 않은 것을 빼앗는 것을 삼가고, 주는 것만을 취하고, 주어진 것만을 바라고, 도둑질하지 않고, 청정한 마음을 지내리라. 이러한 성품으로 나는 거룩한 님을 따르며 포살을 지킬 것이다.

 

3)

Yāvajīva arahanto abrahmacariya pahāya brahmacārī ārācārī viratā methunā gāmadhammā. Ahampajja imañca ratti imañca divasa abrahmacariya pahāya brahmacārī virato methunā gāmadhammā. Imināpaha agena arahata anukaromi, uposatho ca me upavuttho bhavissati.

 

거룩한 님은 목숨이 다하도록, 순결하지 못한 삶을 버리고, 순결한 삶을 살고, 멀리 여읨의 삶을 살고, 천한 행위인 성적접촉을 삼간다. 나도 바로 오늘 낮 오늘 밤 순결하지 못한 삶을 버리고, 순결한 삶을 살고, 멀리 여읨의 삶을 살고, 천한 행위인 성적접촉을 삼가리라. 이러한 성품으로 나는 거룩한 님을 따르며 포살을 지킬 것이다.

 

4)

Yāvajīva arahanto musāvāda pahāya musāvādā paiviratā saccavādī saccasandhā thetā paccayikā avisavādakā lokassa. Ahampajja imañca ratti imañca divasa musāvāda pahāya musāvādā paivirato saccavādī saccasandho theto paccayiko avisavādako lokassa. Imināpaha agena arahata anukaromi. Uposatho ca me upavuttho bhavissati.

 

거룩한 님은 목숨이 다하도록, 거짓말을 버리고, 거짓말을 삼가고, 진실을 말하고, 진실과 관련된 것, 사실인 것, 신뢰할 수 있는 것, 세상을 속이지 않는 것을 말한다. 나도 바로 오늘 낮 오늘 밤 거짓말을 삼가고, 진실을 말하고, 진실과 관련된 것, 사실인 것, 신뢰할 수 있는 것, 세상을 속이지 않는 것을 말하리라. 이러한 성품으로 나는 거룩한 님을 따르며 포살을 지킬 것이다.

 

5)

Yāvajīva arahanto surāmerayamajjapamādaṭṭhāna pahāya surāmerayamajjapamādaṭṭhānā paiviratā. Ahampajja imañca ratti imañca divasa surāmerayamajjapamādaṭṭhāna pahāya surāmerayamajja pamādaṭṭhānā paivirato. Imināpaha agena arahata anukaromi. Uposatho ca me upavuttho bhavissati.

 

거룩한 님은 목숨이 다하도록, 곡주나 과일주 등 취하게 하는 것을 마시는 것을 버리고, 곡주나 과일주 등 취하게 하는 것을 마시는 것을 삼간다. 나도 바로 오늘 낮 오늘 밤 곡주나 과일주 등 취하게 하는 것을 마시는 것을 버리고, 곡주나 과일주 등 취하게 하는 것을 마시는 것을 삼가리라. 이러한 성품으로 나는 거룩한 님을 따르며 포살을 지킬 것이다.

 

6)

Yāvajīva arahanto ekabhattikā rattuparatā viratā vikālabhojanā. Ahampajja imañca ratti imañca divasa ekabhattiko rattuparato virato vikālabhojanā. Imināpaha agena arahata anukaromi, uposatho ca me upavuttho bhavissati.

 

거룩한 님은 목숨이 다하도록, 하루 한 끼 식사를 하고 저녁은 들지 않고, 때 아닌 때에 식사를 삼간다. 나도 바로 오늘 낮 오늘 밤 하루 한 끼 식사를 하고 저녁은 들지 않고, 때 아닌 때에 식사를 삼가리라. 이러한 성품으로 나는 거룩한 님을 따르며 포살을 지킬 것이다.

 

7)

Yāvajīva arahanto naccagītavāditavisūkadassanamālāgandhavilepanadhāraamaṇḍanavibhūsanaṭṭhānā paiviratā. Ahampajja imañca ratti imañca divasa naccagītavāditavisūkadassanamālāgandhavilepanadhāraamaṇḍanavibhūsanaṭṭhānā paivirato. Imināpaha agena arahata anukaromi, uposatho ca me upavuttho bhavissati.

 

거룩한 님은 목숨이 다하도록, , 노래, 음악, 연극을 보거나 화환, 향기, 크림을 가지고 단장하고 치장하는 것을 삼간다. 나도 바로 오늘 낮 오늘 밤 춤, 노래, 음악, 연극을 보거나 화환, 향기, 크림을 가지고 단장하고 치장하는 것을 삼가리라. 이러한 성품으로 나는 거룩한 님을 따르며 포살을 지킬 것이다.

 

8)

Yāvajīva arahanto uccāsayanamahāsayana pahāya uccāsayanamahāsayanā paiviratā nīcaseyya kappenti. Mañcake vā tiasanthārake vā. Ahampajja imañca ratti imañca divasa uccāsayanamahāsayana pahāya uccāsayanamahāsayanā paivirato nīcaseyya kappemi. Mañcake vā tiasanthārake vā imināpaha agena arahata anukaromi. Uposatho ca me upavuttho bhavissati.

 

거룩한 님은 목숨이 다하도록, 높은 침대, 큰 침대를 버리고 높은 침대, 큰 침대를 삼가고 낮은 침대 즉 안락의자나 풀로 엮은 깔개에서 잠을 청한다. 나도 바로 오늘 낮 오늘 밤  높은 침대, 큰 침대를 버리고 높은 침대, 큰 침대를 삼가고 낮은 침대 즉 안락의자나 풀로 엮은 깔개에서 잠을 청하리라. 이러한 성품으로 나는 거룩한 님을 따르며 포살을 지킬 것이다.” (A3.70, 전재성님역)

 

 

여덟 가지 포살에 대하여 팔관재계라고도 합니다. 한달에 두 번 행하는 포살은 하루 낮 밤이라 했습니다. 24시간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잠자는 것에 대해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한달에 두 번이라도 낮은 침대를 사용하거나 풀로 엮은 깔개에서 잠을 자야 함을 말합니다. 마치 노숙자의 삶을 연상케 합니다.

 

지난 1월과 2월 을지로 굴다리 따비에 매주 참여 했습니다. 지하차도에서 노숙자들을 위한 음식봉사를 말합니다. 노숙자 중에 봉사대가 있습니다. 그 중의 한분의 잠자리가 을지로 굴다리입니다. 물려 받은 것이라 합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없는 자리라 합니다. 추운 겨울날 잠자리는 별도로 보이지 않습니다. 단지 추위를 막을 종이박스 등 몇 개가 보일 뿐입니다. 포살일에 편안하고 안락한 침대 대신 바닥에서 자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입니다. 더 나아간다면 부처님 당시 숲이나 시체 있는 곳에서 두타행 하는 존자들을 떠 올리면서 노숙을 한번 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성적접촉은 천한행위

 

여덟 가지 포살 중에 천한 행위인 성적접촉을 삼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포살일 하루만이라도 성적접촉을 하지 않음을 말합니다. 이는 출가자와 동일한 삶을 의미합니다. 비록 포살일 당일 하루만이라도 성적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적접촉을 천한 행위라 했습니다.

 

성자는 성적접촉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성적접촉을 할 수가 없습니다. 고귀한 님, 아라한은 감각적 욕망이 소멸되었기 때문에 성적욕망이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이는 부처님이 “땅하와 아라띠와 라가를 보고 성적 교섭에 대한 욕망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stn835) 라고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부처님을 유혹하려는 악마의 세 딸들을 보면서 오줌과 똥으로 가득 찬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두 발조차 그것을 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stn835) 라 했습니다.

 

지나친 의역

 

경에 따르면 아라한에 대하여 순결한 삶을 살고, 멀리 여읨의 삶을 살고, 천한 행위인 성적접촉을 삼간다.”라 했습니다. 초불연에서는 독신자가 되어 성행위의 저속함을 멀리 여위었다.”라 했습니다. 번역에 차이가 나는 것은 멀리 여읨의 삶독신자입니다. 이 말은 ārācārī를 번역한 것입니다.

 

빠알리 사전을 보면 ārācārī‘living far from’ 또는 ‘Living far from sin’의 의미입니다. 멀리 여읨의 삶입니다. 그런데 초불연에서는 독신자라 했습니다. 빅쿠보디는 관련 구절에 대하여 A s long as they live the arahants abandon sexual activity and observe celibacy, living apart, abstaining from sexual intercourse,”라고 번역했습니다. 빠알리어 ārācārī에 대하여 living apart’의 뜻으로 번역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초불연에서 독신자라 번역한 것은 지나친 의역이라 봅니다.

 

왕권과 비교 되지 않는 포살공덕

 

부처님은 재가여신도에게 여덟 가지 포살에 대하여 설명했습니다. 비록 출가자는 아니지만 포살일 만큼은 출가자에 준하는 삶을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여덟 가지 포살항목을 지키는 삶을 살면 어떤 공덕이 있을까요? 이에 대하여 부처님은 비유를 들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Seyyathā'pi visākhe yo imesa soasanna mahājanapadāna pahūtasattaratanāna issariyādhipacca rajja kāreyya, seyyathīda: agāna magadhāna kāsīna kosalāna vajjīna mallāna cetīna vagāna kurūna pañcālāna macchāna sūrasenāna assakāna avantīna gandhārāna kambojāna, aṭṭhagasamannāgatassa uposathassa etassa kala nāgghati soasi. Ta kissa hetu: kapaa visākhe mānusaka rajja dibba sukha upanidhāya.

 

비싸카여, 예를 들어 많은 칠보를 소유하고 있는 십육대국, 즉 앙가, 마가다, 꼬쌀라, 밧지, 말라, 쩨띠야, 방싸, 꾸루, 빤짤라, 맛차, 쑤라쎄나, 앗싸카, 아반띠, 간다라, 깜보자에 대하여 왕이 왕권을 가지고 권력을 행사하더라도 여덟 가지 덕목을 갖춘 포살을 준수 하는 것의 십육 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비싸카여, 하늘나라의 행복에 비해서 인간의 권력은 저열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A3.70, 전재성님역)

 

 

포살의 공덕이 왕권보다 더 많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십육분의 일(kala pi) 의 비유로 표현했습니다. 후대에 와서 조금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왜  포살공덕으로 인한 행복이 왕권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다고 했을까요?

 

왜 왕권이 부럽지 않을까?

 

일국의 왕은 모든 것을 가진 자입니다. 왕국이 자신의 소유물이나 다름 없습니다. 물론 백성도 왕의 소유물이 됩니다. 이 세상에서 왕권만한 행복이 없습니다. 그런데 포살공덕을 닦으면 왕권은 십육분의 일에 지나지 않는 매우 미미한 것이라 했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이 왕권을 천상의 수명으로 비교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비싸카여, 인간의 오십 년이 네 위대한 왕들의 하늘나라의 하루 밤 하루 밤이고, 그 하루의 삼십 일이 한달이고, 그 한 달의 십이개월이 일 년이고, 그러한 일년의 오백 년이 네 위대한 왕들 하늘나라 신들의 수명입니다. 비싸카여, 세상의 어떤 남자나 여인이 여덟 가지 덕목을 갖춘 포살을 지키면,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네 위대한 왕들의 하늘나라 신들의 동료로 태어나는 것이 가능합니다. 비싸카여, 그러므로 하늘나라의 행복에 비해서 인간의 권력은 저열한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A3.70, 전재성님역)

 

 

부처님은 사대왕천의 수명이 5백천상년이라 합니다. 이를 인간으로 따지만 9,216만년이 됩니다. 많이 살아야 100세도 못되는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가까운, 바로 위에 있는 욕계천상인 사대왕천의 수명은 인간으로 따지면 9천만년입니다. 이러니 칠보를 소유한 왕권의 행복도 사대왕천에 사는 천신에 미치지 못함을 말합니다. 여덟 가지 포살을 닦으면 하늘나라에 태어나므로 왕권이 부럽지 않음을 말합니다.

 

과학적 잣대로 재단하여

 

부처님은 사대왕천(cātummahārājikā)부터 시작하여 차례로 삼십삼천(tāvatisā), 야마천(yāmā), 도솔천(tusitā), 화락천(nimmāaratī), 타화자재천(paranimmitavasavattī)의 수명을 들며 인간 왕권이 제 아무리 높아도 이들 천상의 행복과 비할 바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부처님이 이렇게 육욕천의 수명을 든 것은 포살공덕을 설명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강병균 교수는 거두절미하여 육욕천의 수명을 문제 삼아 과학적으로 맞지 않다고 합니다. 경전에 쓰여 있는 수치에 대하여 과학적 잣대를 대서 틀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초기경전이 구라, 거짓말이라 합니다.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고도로 발달은 물질문명은 과학적 발견의 산물입니다. 옛날에는 몰랐던 원리가 밝혀 지고 미신은 타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경전에 쓰여 있는 수치까지 들먹이며 구라라고 하는 것은 지나친 것 같습니다.

 

경전에 쓰여져 있는 초월적이고 신비적이고 신화적 이야기가 있다고 하더라도 경전을 접하는데 있어서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부처님이 사성제를 설하여 괴로움은 이것이다라 했을 때 수긍한다면 믿음이 생겨납니다. 이해에 바탕을 둔 이성적 믿음, 합리적 믿음입니다. 설혹 초월적이고 신비적인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이해 하기 쉽게 비유를 들어, 또는 방편으로, 대기설법한 것임을 알기 때문에 그러려니하며 넘어 갑니다. 그럼에도 과학적 잣대로 재단하려 했을 때 초기경전은 구라가 되어 버립니다.

 

유치원 아이와 같은 말

 

강병균 교수는 육욕천의 수명에 대하여 수학자의 잣대로 판단한 것입니다. 타화자재천의 수명이 지구나이로 93 1 6백만년이라 하는데, 이에 대하여 지구나이가 46억년이므로지금까지 타화자재천에 다녀온 사람(지구인) 존재하지 않는다. “라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경전이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지구의 나이가 45억년인데 타화자재천의 수명이 더 많은 것을 문제삼은 것입니다.

 

이처럼 초기경전에 실려 있는 숫자 개념에 대하여 과학적 검증의 잣대를 들이 댓을 때 초기경전은 거짓으로 가득한 구라경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나무만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것과 같고, 빈데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입니다. 경전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더 중요합니다.

 

포살의 경에서는 여덟 가지 포살공덕을 언급하면서 포살공덕을 닦으면 하늘나라에 태어날 것이라 했습니다. 이는 인간의 왕권과 비할 바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수명이 아무리 길어 보았자 100세 이기 때문에 천문학적 수명을 가진 하늘나라 존재들과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포살공덕에 대한 이야기는 빼 버리고 오로지 숫자만 문제 삼아 이렇게 주장합니다.

 

 

이처럼 경전 내에서도 뒤죽박죽인헛소리들을 무의식적으로 진리로 인정하면 무수한 괴이한 이론을 생산하게 된다종교경전에는 이외에도 헛소리들이 많다 곳의 헛소리가 다른 곳의 헛소리와 합치면 괴이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당사자는 자기 종교와 경전이 옳다는 선입관에 사로잡혀있으므로자기가 읽고 들은 경전이 옳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한다 결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괴이한 철학을 지니게 된다.” (강병균교수, 하늘나라 사람들의 수명, 불교닷컴 2017-03-27)

 

 

강병균교수는 부처님이 비유를 설명하거나 예로 든 신화적인 이야기에 대하여 헛소리또는 구라라고 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멋진 정교한 이론과 난해한 용어로 체계를 세워도 구라는 구라다.”라고 주장합니다.

 

강병균 교수의 말대로라면 육욕천의 수명이 나와 있는 포살의 경은 구라임에 틀림 없습니다. 설령 부처님이 이해 하기 쉽게 방편으로 설명했어도 거짓말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다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 강병균 교수는 두 가지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만일 경의 내용을 알면서도 구라라고 했다면 가르침을 부정하는 외도이고, 경의 내용을 모르고 구라라고 이야기 했다면 초등학생 수준도 안되는 유치원 아이와 같은 말을 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2017-04-01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