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언제나 그 자리에

담마다사 이병욱 2017. 10. 7. 09:15


언제나 그 자리에

 

 

37년된 세탁소

 

“37년 저의 업소를 찾아 주신 고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 글은 세탁소이전 문구입니다. 지역이 재개발구역으로 지정됨에 따라 부득이 인근 지역으로 옮긴다는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세탁소는 한장소에서만 37년 있었습니다. 늘 지나다니며 본 세탁소입니다. 그 세탁소를 20년 가량 이용한 고객이기도 합니다. 그 세탁소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세탁소가 37년 되었다면 1980년에 오픈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파트가 1978년에 지어 졌다 하니 거의 아파트 역사와 같습니다. 세탁소가 이전하는 것은 재개발과 관련 있습니다. 재개발 지역으로 공시되면서 서서히 이주가 시작된 것입니다.

 

백년 갈 것 같은 아파트를

 

아파트가 지은지 40년 되지만 100년은 갈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10년 전부터 재건축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지금은 추진위와 비대위 간의 갈등이 심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고소와 고발이 난무합니다. 재건축이 10년째 표류하면서 난항을 겪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 아파트에서 12년째 살고 있습니다. 같은 지역에서만 20년 살고 있습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는데 주변환경이 많이 변했습니다. 아파트가 재건축되고 주택이 재개발 되어 온통 고층아파트천지가 되었습니다. 지은지 40년 가량된 살고 있는 아파트단지는 재건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늘 그 자리에 있는 약국

 

지역이 재건축되면 사라질 것들이 많습니다. 지난 12년 동안 늘 보아 왔던 것, 익숙했던 것들이 없어질 것입니다. 그 중에 약국도 있습니다.

 

그 약국은 늘 그 자리에 있습니다. 밤늦은 시간에도 불이 꺼지지 않고 주말도 없습니다. 늦은 시간에 약이 필요하면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가면 역시나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습니다. 고마운 약국입니다.

 



 

12년된 홈페이지

 

12년된 홈페이지가 있습니다. 키워드 광고를 해야 하기 때문에 싸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설계한 아트웍(Artwork) 작품을 다수 올려 놓았는데 연륜이 쌓이다보니 이제 조회수가 만회에 육박한 것도 있습니다. 검색하면 걸리기 때문에 이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큰자산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일인사업자로 살면서 가장 반가운 것은 잊지 않고 찾아 주는 고객입니다. 칠팔년전 고객에게서 전화가 왔었을 때 정말 반가웠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바람처럼  대개 일회성 고객이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실수가 있었음에도 또다시 찾아 주는 고객이 있습니다. 만일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았다면 연결이 되지 않았을 겁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기 때문에 또다시 인연이 된 것입니다.

 

언제나 만날 수 있는 블로그

 

블로그도 12년 되었습니다. 2005년 블로그를 만들었고, 2006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글이라고는 기안서 밖에 써 본적이 없지만 매일 쓰다 보니 느는 것 같습니다. 이제는 매일 한편의 글은 의무적으로 작성합니다. 그런데 종종 글을 쓰지 못하는 날도 있습니다. 일이 많아 매우 바쁜 날이거나 행사가 있는 날입니다.

 

장기간 글을 못 쓸 때도 있습니다. 해외여행을 가거나 특별한 사정이 있을 때 입니다. 삼사일 글을 올리지 못하자 염려의 글이 올라 옵니다. 무슨 일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일이 있어서 못 올리는 것입니다. 살다 보면 그럴 때가 있습니다.

 

매일 찾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일이년도 아니고 칠팔년, 아니 십년된 법우님들도 있습니다. 글을 쓰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글을 보아서 공감해 주는 법우님들이 있기에 힘을 받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가면 만날 수 있듯이 매일매일 새로운 글을 올립니다

 

저 높은 바위산은 변함없이

 

늘 그 자리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10년이고 20년이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람입니다. 한번 찾고 두 번 찾다 보면 단골이 됩니다. 세탁소도 단골이고 약국도 단골입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사람 사는 곳은 변화무쌍합니다. 그러나 저 높은 바위산은 변화 없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저 높은 바위산은 인간세상에서 일어난 변화를 모두 지켜 보고 있습니다. 도시의 스카이라인이 변화 된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고 있습니다.

 



 

도시가 아무리 변화무쌍해도 저 높은 바위산은 변함없이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아니 백년전, 천년전에도 변함 없이 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가르침은 마음의 고향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부처님 가르침입니다. 이천오백년전이나 지금이나 가르침은 항상 있어 왔습니다. 다만 모르고 살았을 뿐입니다.

 

법화칠유중에 계주유(繫珠喩) 가 있습니다. 옷 속에 보배 구슬을 매다는 비유입니다. 어떤 사람이 친구집에 놀다가 술이 취해 잠이 들었습니다. 급한 일이 생긴 친구는 잠든 친구를 위해 옷 안에 구슬을 매달아 주었습니다. 필요할 때 활용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모른 친구는 여전히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먼 훗날 친구를 만나 그런 사실을 알았습니다. 누구나 귀중한 보배를 지니고 있음에도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 계주유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계주유와 같습니다. 이미 우리 곁에 있음에도 사람들은 있는 줄 조차 모릅니다. 부처님 원음이 번역되어 유통되고 있음에도 사서 보려 하지 않습니다. 보배가 바로 옆에 있음에도 가지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르침은 가르침은 항상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 왔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세탁소처럼, 늦은 밤까지 불을 밝히는 약국처럼, 무엇 보다 흔들림 없는 저 높은 산위의 바위처럼 늘 그 자리에 언제나 그 자리에 가르침이 있습니다. 변함 없이 옛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고향처럼, 가르침은 언제든지 접할 수 있어서 마음의 고향과도 같습니다.

 

 

2017-10-0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