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불교를 잘 모르지만, 애국심으로..” 금강사를 지켜온 91세 노보살
(나가노 금강사순례3)
일본에서 부처님오신날은 양력으로 4월 8일입니다. 그러나 우리와는 달리 거리에는 연등도 보이지 않습니다. 지극히 안정화 되어 있는 사회에서 조용히 치루는 것 같습니다. 이날 나가노 금강사에서도 주지취임식과 동시에 부처님오신날 행사가 열렸습니다.
나가노 금강사를 향하여
4월 8일 이른 아침 ‘라코 하나노이 온천호텔(Rako華乃井ホテル)’을 출발했습니다. 목적지는 나가노 금강사입니다.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위성지도로 살펴 보니 66키로미터 거리로 1시간 10분 가량 걸립니다. 나고야 중부국제공항에서 부터는 300키로미터 거리에 3시간 가량 됩니다.
나가노현은 일본에서 네 번째로 면적이 넓은 현입니다. 그러나 인구는 고작 210만명 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가노현은 20년전 동계올림픽이 열린 곳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또 일본에서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나가노현은 내륙 깊숙한 곳에 있어서 우리나라로 말하면 강원도 같은 곳입니다. 그렇다고 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륙으로 들어 가면 의외로 넓은 벌판을 만나게 됩니다. 마치 강원도 철원평야를 보는 듯 합니다.
초록으로 둘러 쌓인 조용한 휴양지
금강사가 있는 곳은 나가노현 아즈미노시(安曇野市)입니다. 스와호에서 평야를 따라 북쪽으로 죽 올라가기만 하면 됩니다. 금강사를 알리는 팜플렛을 보면 전철도 가능합니다. 참고로 금강사홈페이지는 ‘http://www.azumino-kongoji.com/ ’입니다.
금강사는 아름드리 금강송으로 둘러쌓인 아름다운 곳입니다. 자연속에 있으면 저절로 힐링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산중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드넓은 평야지대 숲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메인화면에서는 “緑に囲まれた 静寂の安息地へ”라는 구호가 처음 나옵니다. 초록으로 둘러 쌓인 조용한 휴양지라는 뜻입니다.
(금강사홈페이지 http://www.azumino-kongoji.com/ )
순례팀은 금강사에 도착했습니다. 공기부터 다릅니다. 신선하고 청량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주변이 온통 숲이어서 쉬어가기에 적합한 장소입니다. 그래서일까 금강사는 천연온천이 있는 성수원이라는 숙방(宿坊)도 갖추고 있습니다.
금강사는 1977년 재일교포들의 원력으로 설립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내륙 깊숙한 곳 나가노에 설립되었을까? 이에 대하여 새로 주지로 취임한 법현스님은 인터넷신문에서 “이곳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들이 징병과 징용으로 많이 끌려온 곳인데 억울한 영혼들을 위로하고 그 후손들과 재일동포들의 소원성취를 위해 한국인들의 ‘마음의 고향’으로 삼고자 재일동포들이 뜻을 모아 세운 절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절이 교포들이 많이 사는 도시에 있지 않고 공기 좋은 나가노에 있는 것은 힐링하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입니다. 이는 절에서 숙방을 운영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수원(成穗院)이라는 이름을 가진 숙방은 일본여관과 비슷한 것입니다. 천연온천욕을 할 수도 있어서 쉬어가기에 적합합니다. 또 주변에는 온통 소나무밭이어서 한바퀴 돌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순례팀은 이곳 숙방 성수원에서 하루밤을 묵었습니다.
주지취임식 진산식(晉山式)
오전 10시부터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날 행사를 취재하기 위하여 BTN(불교TV)와 BBS(불교방송) 기자 두 분도 동행했습니다. 먼저 주지 취임식부터 거행했습니다. 이곳에서는 주지취임식을 진산식(晉山式)이라 합니다.
진산식이라는 말은 한국불자들에게는 생소한 말입니다. 그러나 신라시대 때 부터있어 온 말입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단순한 취임식의 의미 위에 경찬(慶讚)의 의미를 더한 의식이다. 의식절차는 행렬(行列)·개문(開門)·입당(入堂)·법요의식(法要儀式)·서원의식(誓願儀式) 등 5부로 나누어 행하는 고식(古式)이 있다.”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땅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진산식은 단순하게 주지 취임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단계별로 여법한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래서일까 절 입구에서 큰절하는 것으로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또 절 안으로 들어 와서는 이곳 지신(地神)에게 알리는 의식도 거행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에게 까지 일종의 신고식을 한 것입니다.
“땅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 이 말은 최근 종편방송에서 들은 것입니다. 제주에서 4.3항쟁이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사람은 갔어도 땅만큼은 역사를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현기영님은 “땅만이 그들의 죽음을 기억하고 있을 뿐이죠”라고 말했습니다. 부처님이 처음으로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렸을 때 가장 먼저 땅의 신이 알았듯이, 새로 진산하는 법현스님이 산문에서 부터 금강사 도량 곳곳에 주지취임을 고했을 때 이곳 땅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곳 금강사 땅의 신도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20여년 동안 수 많은 주지스님들이 이곳 금강사를 거쳐 갔지만 여의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경매로 넘어 갈 뻔 한 것이 이를 말해 줍니다. 금강사 신도회장의 간곡한 요청으로 법현스님이 주지직을 승락했는데 거는 기대가 무척 큰 것 같습니다.
150명 가량 사부대중이
금강사에서 4월 초파일 행사는 150명 가량 수용할 수 있는 법당 내부에서 열렸습니다. 1부는 주지취임식이 있었고, 2부는 부처님오신날 법요식이 있었고, 3부는 축하공연이 있었습니다. 점심식사를 하고 난 오후에는 4부라 볼 수 있는 조상천도영산재가 있었습니다.
이날 행사를 위하여 한국과 일본에서 150명 가량의 사부대중이 모였습니다. 스님들은 약 60명 가량 되었습니다. 주로 태고종스님들이지만 종파를 초월하여 인연있는 스님들이 함께 했습니다. 그 중에는 법현스님의 동국대 사찰최고위과정 동문스님들도 참석했습니다.
행사장에서 반가운 얼굴을 보았습니다. 지선스님과 덕암사 신도들입니다. 덕암사에 다니는 법우님 따라 덕암사에 종종 갔었는데 이렇게 먼 곳 이국 땅에서 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지선스님은 동국대 사찰최고위과정 동문들과 함께 왔습니다.
“저는 불교를 잘 모르지만, 애국심으로..”
행사는 시종 여법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참석자는 모두 한국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모두 한국말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재일교포들은 한국말을 거의 못합니다. 나이 드신 노보살님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니 모두 일본말을 합니다. 올해 나이 91세의 정정순신도회장도 축사를 일본어로 했습니다.
91세의 신도회장은 25년전에 금강사를 맡았습니다. 금강사가 재정적 어려움에 빠져 경매로 넘어 간 것을 정정순님 등 3인의 불자가 3억엔에 다시 사들인 것입니다. 현재 신도회장의 아들 문해룡님이 금강사와 성수원숙방의 대표역원을 맡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이사장입니다. 두 분 모두 한국어를 할 줄 알지만 유창하지 못합니다. 축사를 할 때 모두 일본어로 했습니다.
일본어가 사용되는 것을 보니 일본에 온 것이 실감납니다. 한국어와 일본어를 번갈아 했는데 통역은 이곳 금강사에서 머물고 있는 대진스님이 맡았습니다. 대진스님은 법현스님 상좌로 와세다대학 출신입니다. 그래서일까 통역을 매우 능숙하게 했습니다.
올해 91세의 정정순신도회장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정합니다. 축사에서는 “저는 불교를 잘 모르지만, 애국심으로 금강사를 지켜야 한다는 심정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금강사를 지켜 나가겠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태고종과 인연 깊은 절
현재 금강사에는 대진스님과 대우스님 두 분이 상주하고 있습니다. 법현스님은 한달에 한번 가량 오는데 약 일주일간 머물다 돌아 갑니다. 그런데 금강사는 태고종과 매우 인연이 깊습니다. 신도회장이 20년전 금강사를 맡게 되었을 때 이후 태고종 스님들이 주지로 와서 살았습니다. 그래서일까 홈페이지에는 “한국불교 태고종 사찰과 천연 온천이 있는 숙방”이라는 문구가 보입니다.
금강사는 태고종과 인연이 깊습니다. 이날 행사에서는 태고종 부원장스님도 참석했습니다. 부원장스님은 지난 20년 동안 금강사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점을 아쉽다고 했습니다. 그래서일까 새로 주지 취임하려면 태고종 종단의 합법적 절차를 밟아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금강사는 태고종 소유의 사찰이 아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태고종 소속의 절은 아닙니다. 다만 신도회장의 요청으로 태고종 스님들이 주지로 머물면서 관리해 온 것입니다. 이에 태고종 부원장스님은 다시는 경매에 들어 가는 일이 없도록 금강사를 잘 관리하여 발전시켜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교포 노보살의 관불식
2부 행사에서는 일본 부처님오신날을 맞이 하여 관불식이 거행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사월초파일을 양력으로 지내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달리 한달이 빠릅니다. 오랫만에 금강사에 온 재일교포 노보살들은 간절히 기도하며 아기부처님에게 감로의 물을 부었습니다.
오빠생각 동요가 울려 퍼졌을 때
3부 행사에서는 축하공연을 했습니다. 특히 한국에서 오신 지담스님은 기타를 치고 하모니카를 연주하여 동요를 불렀습니다. 법당에서는 ‘오빠생각’ 등을 불렀는데 모두 따라 불렀습니다.
이날 참석한 교포들 대부분은 고령자들입니다. 한국어를 하긴 하지만 더듬더듬합니다. 같은 교포들끼리 이야기할 때는 모두 일본어로 말합니다. 말하는 것으로만 판단한다면 일본사람들이나 다름 없습니다. 더구나 이곳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들은 현지인들이나 다름 없습니다. 그럼에도 동요가 울려 퍼졌을 때 향수를 자극하는 것 같았습니다.
민요에 어깨 춤을 추기도
축하공연 때는 가수도 초청 되었습니다. 현재 일본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숙님과 김남순입니다. 마치 한국에서 산사음악회처럼 노래를 부르기도 하지만 교포들 정서에 맞는 노래를 많이 불렀습니다. 특히 뱃놀이 민요를 부를 때 참석자들은 “에야노야 노야 에야노야 노야 어기어차 뱃놀이 가잔다.”라며 따라 불렀고 일부 교포는 어깨 춤을 덩실덩실 추기도 했습니다.
식당을 가득 매운 사람들
3부 축하공연이 끝나고 점심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숙방 성수원의 식당 다다미 방에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평소 사람들이 보이지 않다가도 밥 먹을 때는 모두 모이는데 이날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이 또 한번 모두 한자리에 모인 것 같습니다. 스님들은 법당에서 따로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할 때 옆사람과 대화했습니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우에다시에서 왔다고 합니다. 교포는 아니고 이곳 나가노에서 20년 이상 살고 있다고 합니다. 해마다 부처님오신날이면 이곳 금강사에 왔다고 합니다. 작년의 경우 음력으로 사월초파일날 왔었는데 10명 가량 왔다고 합니다. 이렇게 신도수가 줄어든 이유에 대하여 사찰관리가 잘못 된 점을 지적했습니다. 주지로 온 스님들의 여법하지 않은 행위도 있었고 또한 스님들이 제역할을 못한 것도 요인이라 합니다.
영산재는 자랑스런 문화유산
점심식사후 4부에 해당되는 행사는 조상천도재 영산재가 있었습니다. 영산재는 주로 태고종 스님들이 시연합니다. 현재 영산재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한국문화를 대표하는 자랑스런 문화유산입니다. 법당 밖과 법당 안에서 행사가 열렸는데 약 두 시간 가량 진행 되었습니다.
소나무 숲길을 산책하고
4부 행사가 끝나고 산책시간이 있었습니다. 금강사 주변의 소나무 숲길을 법현스님과 함께 걸었습니다. 지대가 높고 소나무가 많아서 인지 공기가 신선하고 청량했습니다. 특히 해발 2850미터 높이의 아리야케야마(有明山)에서 눈녹은 물이 내려 오는 계곡은 매우 맑고 깨끗해 보였습니다. 계곡에서 거북바위라 명명된 것도 보았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등을 들고
저녁이 되었습니다. 저녁식사를 마친 순례자들은 법당에 모였습니다. 관등회를 하기 위함입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 되자 별이 총총합니다. 불빛이 전혀 비추지 않고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고요한 숲속에서 어둠을 밝히는 등을 들고 법당 주변을 한바퀴 돌았습니다.
성수원(成穗院)에서 하루밤 템플스테이
숙방 성수원에서 하루 밤 템플스테이 했습니다. 사람이 많아서 작은 다다미 방에서 네 명이 함께 잤지만 크게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 온천욕이 되기 때문에 하루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 낼 수 있었습니다.
다음 날 새벽에는 5시 새벽예불에 참석했습니다. 일본 깊숙한 곳 나가노현 숲속에서 이른 아침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예불과 법회 등으로 여법하게 하루를 온전히 보냈습니다.
좋은 사람들,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
이번 나가노 금강사 순례는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이제까지 수 많은 사찰 순례를 다니고 템플스테이 해 보았지만 외국에서 사찰체험한 것은 처음입니다. 그러나 금강사는 재일교포들이 원력으로 만든 사찰입니다. 한때 재정난으로 경매에 넘어 갈 뻔 했으나 이번에 새로운 주지 취임으로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금강사는 편히 쉬어 갈 수 있는 곳입니다. 무엇보다 숙방이 있어서 템플스테이 하기에 적합합니다. 더구나 온천도 있어서 온천욕도 가능합니다. 주변에는 드넓은 소나무 숲이 있어서 숲을 걸으면 발걸음도 가볍습니다. 자연속에 있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청정해지는 것 같습니다.
무엇이든지 처음 경험한 것은 강렬합니다. 첫경험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금강사에서 템플스테이 한 것 역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 훌륭한 사람들과 함께해서 행복했습니다. 교포들의 원력으로 세운 도량이 더욱더 발전되기를 기원합니다.
2018-04-12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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