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백년대계

초월의 길(parami)을 가는 자들은

담마다사 이병욱 2018. 5. 17. 10:57

 

초월의 길(parami)을 가는 자들은



 

 

저 교수는 왜 맨날 저렇게 바쁠까?”

참으로 이상했습니다.

안락한 삶이 보장되어 있음에도

늘 현장에서 보았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교수라는 직위는 기득권입니다.

학생들에게는 스승으로서 권위가 있고

사회적으로도 존경받는 위치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촛불현장에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교수는 교수답게 행동하라고.

아마도 보수적이고 기득권의 입장에서

바라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장활동가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왜 현장에 꼬박꼬박 나올까?

그것도 빠짐 없이 매번 나옵니다.

참으로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할 일이 없어서 나오는 것일까?

누가 돈 주는 것도 아닌데

제발로 참여하여 힘을 실어줍니다.

분명히 생각이 있어서일 것입니다.

 

촛불법회가 다시 시작 되었습니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입니다.

철이 바뀌었기 때문에

요즘말로 시즌2’라 합니다.

 

오늘 보신각에서 촛불법회가 열립니다.

오늘 법회는 108배 할 것이라 합니다.

물론 참여자에 한합니다.

좌복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불교 개혁에 재가불자들이 나섰습니다.

스님들은 여전히 침묵중에 있습니다.

아무도 나서지 않음에도

재가자들이 무명을 밝히는 불을 켰습니다.

 

여기 깨어 있는 불자들이 모였습니다.

불교지식인들과 현장활동가들,

그리고 힘을 실어 주기 위한 불자들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보살행입니다.

 

세 가지 보살행이 있습니다.

일반적 초월의 길(dasapāramī),

우월적 초월의 길(dasaupapāramī),

그리고 승의적 초월의 길(dasaparamatthapāramī)입니다.

 

가장 아끼는 것을 내 놓는 것이

일반적 초월의 길입니다.

자신의 신체 일부를 내놓다면

우월적 초월의 길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바친다면

승의적 초월의 길입니다.

 

대부분 인색하게 살아갑니다.

돈 나가는 것에 대하여 살점 떨어져

나가는 것보다 더 아깝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초월의 길을 가는 자들은

가장 아끼는 것을 보시하고,

자신의 신체의 일부를 보시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내 놓습니다.

 

부처님은 보살로 살 때

보시, 계행, 출리, 지혜, 정진,

인내, 진실, 결정, 자애, 평정이라는

승의적 초월적의 길을 갔습니다.

그 결과 부처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자식들인 불자들은

부처님의 길을 따라 갑니다.

 

이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수들이 안락한 삶을 뒤로 하고

현장에 나오는지를.

현장활동가들이 불편을 감수하고

동참하는지를.

그것은 초월의 길(pāramī)을 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2018-05-17

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