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도둑이 되어
“꽃이 벌어지면 못써요.”
어떤 이는 만개한 꽃보다
봉오리진 꽃이 더 좋다고 합니다.
벌어진 꽃은 질 날도 머지 않겠지요.
장미의 계절입니다.
아파트 담장에 컬러풀한
장미가 활짝 피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스마트폰 대기 바쁩니다.
달도 차면 이지러집니다.
절정의 순간이 지나면
허(虛)와 무(無), 텅 비어 남는 것이 없습니다.
벌어진 꽃에서 슬픔을 봅니다.
향기도둑이 있습니다.
꽃이 좋아 향기가 좋아
매일 그 꽃을 찾아갑니다.
그는 꽃도둑이자 향기도둑입니다.
몰카범이 붙잡혔습니다.
허락되지 않은 것을 가져 가는
그는 형상 도둑놈입니다.
한번 보면 되지만 자꾸 보면 탐욕입니다.
꽃과 향기에 취해 있습니다.
장미와 와인의 나날입니다.
탐욕과 분노의 세월입니다.
미혹한 자들의 세상입니다.
저 언덕으로 건너가야 합니다.
그러나 폭류에 휩쓸려 버립니다.
욕망의 폭류, 존재의 폭류
견해의 폭류, 무명의 폭류입니다.
“언제나 계행을 갖추고
지혜를 지니고 삼매에 잘 들어
노력하며 정진하는 님이
건너기 어려운 거센 흐름을 건너네.”(S2.15)
계학, 정학, 혜학을 갖춘 자만이
저 덕에 우뚝 설 수 있습니다.
초월의 길(paramī)을 가는 자들만
저 언덕으로 건너 갈 수 있습니다.
꽃만 바라보고 살순 없습니다.
지고 말 꽃만 좇아 다닐 순 없습니다.
꽃이 피면 열매 맺어야 합니다.
도를 닦으면 과(phala)가 따라야 합니다.
장미꽃이 아름답습니다.
훔쳐보듯이 자꾸 쳐다 봅니다.
알아차림이 없을 때 장미도둑이 됩니다.
열매가 보잘것없는 장미에 눈이 팔렸습니다.
2018-05-21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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