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들, 지금 이대로가 좋은가?” 8.26 승려결의대회
절 돈은 먼저 본 자가 임자?
“절 돈은 먼저 가진 자가 임자이다.”언젠가 어느 스님으로부터 들은 말입니다. 도심 포교당을 운영하고 있는 스님은 신도들의 공짜심리를 꼬집어 이야기했습니다. 절에 와서 얻어 먹을려고만 했지 내 놓는 것이 없다고 빗대어서 하는 말이었습니다.
절돈은 눈먼 돈이라는 인식이 예전부터 팽배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현상은 ‘주지불교’체제하에서 더욱 노골화 된 것 같습니다. 사찰재정에 대해서는 주지 이외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입장료 수입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알 수 없고 국고보조금 공개하지 않으니 쓰임새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조계종에서는 분담금제도가 있습니다. 수입이 좋은 유명사찰 몇 개를 지정하여 일정금액을 총무원에 내게 하는 제도를 말합니다. 각 사찰에서 내는 분담금을 취합하여 예산을 편성하여 일을 하게 됩니다. 예산이 넉넉하면 신도시 포교당도 지을 것입니다. 그러나 조계종 일년 예산을 보면 대형교회 하나의 예산만도 못한 것이 현실이라 합니다.
조계종 일년 수입은 조단위로 천문학적 숫자라 합니다. 그러나 분담을 모아 놓으면 수백억원에 지나지 않습니다. 대체 그 많은 돈은 다 어디로 갔을까? 관광지로 전락한 유명사찰의 입장료 수입과 주차료 수입은 상당할 것입니다. 공개 된 것 이상 비공개 금액은 얼마가 되는지 이익을 공유하는 사람들 외에는 알 수 없습니다. 세상에 회자되는 말, ‘절돈은 먼저 본 자가 임자이다’라는 말을 실감합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8.26 승려대회가 승려결의대회로 막을 내렸습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습니다. 스님들은 또 한번 재가불자들을 실망시켰습니다. 어쩌면 스님들이 추진하는 불교개혁 운동의 한계일지 모릅니다. 언제 다시 승려대회가 열릴지 알 수 없습니다.
스님들은 왜 승려대회를 승려결의대회로 하루 밤 사이에 바꾸었을까? 수 많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가장 먼저 결집이 되지 않은 것이 큰 이유 일 것입니다.
해제가 끝나고 곧바로 서울로 향했다면 천명 이상 모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일날 모인 스님들은 고작 300여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승려대회를 추진하는 스님은 2천명 이상 공언했지만 ‘허언(虛言)’이 되고 말았습니다.
고작 3백여명 가지고서는 승려대회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최소한 천명은 모여야 합니다. 이런 이유로 하루 밤사이에 승려대회가 승려결의대회로 바뀐 큰 이유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스님들은 현실을 알고 있습니다.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선뜻 나서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아마 가장 큰 이유는 ‘불이익’ 때문일 것입니다. 주지를 맡고 있는 사판승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수좌스님이 침묵하는 것 역시 불이익 때문일 것입니다. 속된 말로 ‘찍히면’ 갈 데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어느 스님은 승가에도 갑을관계가 형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조직침묵은 공멸의 길로
이번 승려대회를 주도했던 스님들이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유는 바른 말 했기 때문입니다. 승려복지 등 해야 할 말을 했음에도 해종분자로 찍혀서 각종 불이익을 받는가 하면 징계까지 당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조계종에서는 바른 말 하면 확실히 불이익 받습니다. 이런 분위기라면 잘못 되고 있음에도 아무도 말하지 않습니다. 이야기해 보았자 들어 주지 않을 것이라 여겨 체념하고, 이야기하면 불이익 받을 것이라 하여 침묵합니다. 체념침묵은 결국 조직 전체의 침묵으로 이어집니다.
조직침묵은 공멸의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비행기가 이 길로 가면 추락함에도 기장이 독재형이라면 어떻게 될까? 사실을 알고 있는 부기장이 침묵한다면 대형참사로 이어집니다. 이십여년전 괌에서 KAL기 추락사고가 체념침묵과 조직침묵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돈 맛을 알아버린
더 이상 종단에 의존해서는 안됩니다. 종단에 기대해서도 안됩니다. 기득권을 쥐고 있는 그들이 스스로 개혁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돈맛을 알아 버린 그들이 이권을 내 놓을 리 만무합니다.
주지불교로 전락해 버린 조계종단입니다. 돈 맛을 알아버린 그들을 쫓아내려면 돈줄을 끊어야 할 것입니다. 재가의 인재들이 국회와 정부, 청와대 등에 압력을 가해야 합니다. 각 종교단체의 국고보조금을 투명하게 관리하도록 위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각종교단체의 문화재를 국가에서 관리하도록 위원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스님 아닌 자들이 머리깍고 승복을 입고 스님 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돈이 되는 사찰을 차지하여 입장료와 주차료를 받는가 하면, 기복을 조장하여 신도들로부터 돈을 받고 있습니다.
정부에 각종 위원회를 만들어 돈 줄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 신도들은 기복을 조장하는 행위에 넘어 가지 않아야합니다. 돈줄이 끊어지면 그들은 제발로 산문을 나가게 될 것입니다. 돈도 안되는 절에서 머리깍고 힘들에 살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스님들, 지금 이대로가 좋은가?
8.26 승려결의대회날 조계사길에서는 두 개의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조계사 안에서는 의자에 앉은 스님들이 있었고, 조계사길에서는 바닥에 앉은 스님들이 있었습니다.
의자에 앉은 스님들은 부유해 보이고 거만해 보였습니다. 길바닥에 앉은 스님들은 가난해 보이고 불안해 보였습니다. 사판승들은 마당에 있고, 이판승들은 거리에 있었습니다. 마치 주인과 고용인 같은 관계로 보였습니다
거리에 앉아 있는 스님들 일부는 마스크를 하는 등 채증에 대비했습니다. 스님들천명이 모였다면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천명이라는 숫자는 압도하기에 충분합니다. 조계사 마당에 들어가 승려대회를 열었을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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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앉아 있는 스님들 일부는 마스크를 하는 등 채증에 대비했습니다. 스님들천명이 모였다면 두려워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천명이라는 숫자는 압도하기에 충분합니다. 조계사 마당에 들어가 승려대회를 열었을지 모릅니다.
스님들은 지금 이대로가 좋은 것 같습니다. 세상사람들이 아무리 비난해도 나와 무관한 일이라 생각하는 듯합니다. 을의 위치에 있는 스님들도 지금 이대로가 좋은지 오지 않았습니다.
이권을 차지 하는 승려들은 지금 이대로가 좋은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들은 “지금 이대로 영원히!”를 외치며 변화를 요구하는 자들을 불온시 하고 있습니다. 스님들 모두가 지금 이대로가 좋은 것 같습니다. 스님들, 지금 이대로 좋은가?
더 이상 기대할 것 없다
재가불교단체에서 이구동성으로 더 이상 스님들에게 기대할 것이 없다고 합니다. 이제는 재가불교를 건설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본래 불교는 승가와 재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의 사부대중불교라 합니다. 그러나 한국불교에서는 오로지 비구승만의 일부 불교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국불교를 개혁하려면 스님들에게 맡겨 놓을 수 없습니다. 승가와 양립할 수 있는 재가불교가 성장했을 때 개혁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스님들 밑에 들어가서 무언가 해보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재가불교가 우뚝 섰을 때 승가에서는 긴장할 것입니다. 재가가 승가보다 더 여법할 때 그들은 위기를 느낄 것입니다. 결국 위기는 기회로 작용합니다. 스스로 개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재가는 재가의 길로
승가는 승가의 길이 있고, 재가는 재가의 길이 있습니다. 승가와 재가가 양날개가 되어야 하늘 높이 비상할 수 있습니다. 승가만 있는 불교, 비구승들만의 일부 불교에서는 추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추락하는 것에는 날개가 없습니다. 날개가 없어서 더욱 더 가속되어 추락할 뿐입니다. 한국불교의 추락을 멈추려면 재가불교가 성장해야 합니다. 재가단체마다 법회를 열고 계를 지키며 도덕적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한국의 기성 종단에서는 희망을 볼 수 없습니다. 출가자의 수준은 일반세상사람들의 평균치에도 미달합니다. 생계형과 도피형 출가자가 대부분인 현실입니다. 이제는 재가의 인재들이 이끄는 재가불교를 건설해야 합니다.
재가의 인재 1%만 활용해도
8.26 승려대회는 스님들이 모이지 않아 실패로 끝났습니다. 두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스님들이 살만해서 일 것이고, 또하나는 종권을 장악하고 있는 사판승들이 두려워서 일 것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방관자들일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재가불자들을 실망시켰다는 것입니다.
재가는 이제 재가의 길을 가야 합니다. 재가의 인재 1%만 활용해도 한국불교는 몰라보게 달라질 것입니다. 승가에서 하지 못하는 것을 재가에서 하면 됩니다. 한국불교는 재가불교의 성장에 미래가 달렸습니다.
2018-08-28
진흙속의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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