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괴로움을 철저하게 이해하게 되었을 때

담마다사 이병욱 2018. 11. 28. 09:15

 

괴로움을 철저하게 이해하게 되었을 때

 

 

인간들이 갑자기 모두 사라졌을 때 애완견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대부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생존하지 못할 것이라 합니다. 요즘 애완견의 특징은 다리가 짧고 몸뚱이가 긴 것이 특징입니다. 이런 구조로는 야생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온실속의 화초처럼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도시에서 삶은 편리 그 자체입니다. 농경시대와 달리 물질문명의 혜택을 받아 안락한 삶의 극치라 볼 수 있습니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것은 전자제품에 맡기는 것이 현실입니다. 자동차로 이동하고 컴퓨터로 업무를 봅니다. 네트워크가 연결되어 있어서 어느 곳이나 실시간 소통이 가능합니다. 전기와 수도, 교통, 통신 등 온갖 편의의 시대에 있어서 어느 한 것에 결함이 생긴다면 어떻게 될까?

 

며칠전 전화국에서 불이 났습니다. 마치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전선줄이 불에 타 버렸습니다. 그 결과 해당지역에서는 전화가 불통되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바코드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아 업소에서는 매출에 타격을 입었습니다. TV가 나오지 않고 인터넷이 먹통되었습니다. 응급환자가 발생해도 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른바 통신대란이 일어난 것입니다.

 

전국민 대다수가 몰려 사는 도시에서 전기가 끊기고, 수도가 끊긴다면 대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더구나 통신이 마비된다면 고립무원에 빠져 산간오지에 있는 것이나 다름 없게 됩니다. 전기와 수도, 그리고 통신은 당연한 것처럼 여깁니다. 마치 공기와도 같습니다. 그러나 하루라도 공기중의 산소를 마시지 않으면 살 수 없습니다. 물고기가 물의 고마움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인간의 힘으로 이루어낸 전기와 수도, 통신은 공기와도 같은 것이고 물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마움을 잘 모릅니다. 중단 사태가 일어나야만 그때서야 필요성을 실감하게 됩니다.

 

어느 것 하나 영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 시스템과 제도가 영원히 계속되리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마치 지금 살고 있는 가족과 천년만년 영원히 함께 살 것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언젠가 종말이 옵니다. 믿을 것은 자신밖에 없습니다. 하나 더 하면 가르침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네이버에 가면 다 있다라고 합니다. 검색창에 키워드만 집어 넣으면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합니다. 그래서일까 책을 보지도 않고 사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네이버나 구글이 모든 것을 다 해결 해 준다면 그것들에 의존하는 삶이 됩니다. 마치 전기, 수도, 통신에 의존하는 삶과 같습니다. 온실의 화초와도 같고 좀더 가혹하게 말하면 애완견과도 같은 신세입니다. 야생에 내 놓으면 모두 죽고 말 운명인 것입니다.

 

편리한 것이나 익숙한 것으로부터 탈출이 필요합니다. 전기와 수도, 통신이 없어도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합니다. 애완견처럼 다리는 짧고 몸뚱이는 길게 되어 있다면 야생에서 적응할 수 없습니다. 야생에 적응하려면 지식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네이버에 의존하기 보다는 책에 의존해야 합니다. 책을 읽는 것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글을 써 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에 정리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책도 책 나름입니다.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반드시 좋은 책은 아닙니다. 삶의 지혜를 줄 수 있는 책이 좋은 책입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경전일 것입니다. 그것도 초기경전입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빠알리경전입니다.

 

빠알리경전을 접하면 지식은 물론 지혜를 접할 수 있습니다. 한방 가득 수많은 책이 있어도 빠알리대장경만 못합니다. 빠알리대장경은 지혜의 보고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란 무엇일까?

 

 

‘일체의 형성된 것은 무상하다’라고

지혜로 본다면,

괴로움에서 벗어나니

이것이 청정의 길이다.”(Dhp.277)

 

‘일체의 형성된 것은 괴롭다’라고

지혜로 본다면,

괴로움에서 벗어나니

이것이 청정의 길이다.”(Dhp.278)

 

일체의 사실은 실체가 없다’라고

지혜로 본다면,

괴로움에서 벗어나니

이것이 청정의 길이다.”(Dhp.279)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는 무상, , 무아를 아는 것입니다. 그냥 막연히 아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아는 것입니다. ‘철저히 안다라고 하여 빤냐(paññā)’라 하는데 이를 지혜라 합니다.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을 아는 것이 지혜이고, 변화하는 모든 것은 괴로운 것이라고 아는 것도 지혜입니다. 변화하기 때문에 실체가 없다고 아는 것도 지혜입니다. 이런 사실을 알았을 때 더 이상 오온으로 형성된 나에 집착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이 말씀하신 가르침입니다.

 

종종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온갖 편리가 있는 문명의 사회에서 뚝 떨어진 곳에나홀로 있는 것입니다. 전기도 수도고 통신망도 없는 곳입니다. 당연히 책도 없습니다. 오로지 자기자신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강을 건너가야 합니다. 강을 건너 저 언덕에 도달해야 합니다. 그런데 강을 건너갈 지식도 지혜도 없습니다. 평소에 네이버에 의존했으니 당장 꺼내 볼 수 있는 지식이 없습니다. 경전을 읽어 보지 않았으니 지혜도 없습니다. 언덕에 건너가기 전에 폭류에 휩쓸려 떠내려 가고 말 것입니다.

 

가르침이 뗏목입니다. 가르침의 뗏목을 타면 힘들지 않고 저언덕으로 건너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빠알리경전입니다. 빠알리 경전에는 폭류를 건너게 할 수 있는 지혜가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사성제로 요약됩니다. 괴로움을 철저하게 이해하게 되었을 때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는 버려지게 됩니다. 존재하는 것 자체가 괴로움이라 알았을 때 더 이상 오온에 집착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이른바 고와 고의 소멸의 가르침입니다. 거센 물살을 가로질로 저 언덕에 우뚝 선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Abhiññeyya abhiññāta,

bhāvetabbañca bhāvita;

Pahātabba pahīna me,

tasmā buddhosmi brāhmaa.

 

나는 곧바로 알아야 할 것은 곧바로 알았고,

닦아야 할 것을 이미 닦았으며,

버려야 할 것을 이미 버렸습니다.

그러므로 바라문이여, 나는 깨달은 자입니다.” (Stn.558)

 

 

2018-11-28

담마다사(진흙속의연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