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야도 상견례, 담마마마까 수행기2
2018년 12월 31일 저녁
하노이에서 환승한 비행기는 미얀마로 향했다. 인천에서 하노이까지는 대형비행기이지만 하노이에서 양곤까지는 중형비행기로 이동했다. 약 한시간 반가량 걸린 것 같다. 이동 중에 저녁식사를 위한 기내식이 제공되었다.
양곤공항에 도착 했을 때는 저녁 여섯 시가 약간 넘었다. 미얀마에서는 여섯 시를 기준으로 어두워진다. 우리나라 보다 삼십여분 빠른 것 같다. 짐을 찾아 공항을 나서니 후꾼하다. 한국과는 온도차가 무려 20도 가량 차이가 난다. 날씨예보를 보니 이곳 양곤지역 날씨는 밤에는 20도 가량이고 낮에는 30도이다. 한국의 늦봄이나 초여름 날씨이다. 그래서일까 공항에서는 반팔 차림도 볼 수 있다.
담마마마까에서 빅쿠가 마중 나왔다. 옆에는 낡은 미니버스가 보였다. 열네 명이 타기에는 몹시 비좁다. 마치 꾸겨 넣듯이 짐을 싣고 탑승하니 꽉 찬 느낌이다. 칠십년대 만원버스를 연상케 한다. 목적지를 향해 버스는 출발했다. 다들 말이 없다. 입영버스에 탄 것처럼 모두 무표정하고 긴장된 모습이기도 하다. 놀러 가는 것도 아니고 즐기러 가는 것도 아니고 수행하러 하는 길이기 때문일 것이다.
공항을 빠져 나온 버스는 어두운 밤길에 어디론가 달렸다. 거리의 풍경은 확실히 우리와는 달랐다. 몹시 낙후 된 모습이 우리나라 70년대를 연상케 한다. 교통수단 중에 눈에 띈 것이 있다. 작은 트럭을 개조한 버스이다. 마치 군용트럭이 연상된다. 열 명 가량 탑승할 수 있는데 창도 없고 문도 없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은 미얀마특유의 복장이다. 여자나 남자나 긴 치마를 입은 것이 눈길을 끈다. 대부분 슬리퍼를 신고 있다. 기후로 인한 지역적 차이일 것이다. 불과 몇 시간 만에 전혀 다른 세상에 온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순박한 것 같다. 겉보기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엿보이기도 한다.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그것은 이 나라가 불교국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국민의 대다수가 불교를 신봉하고 특히 수행의 나라로 잘 알려져 있어서인지 모른다. 겉으로는 우리보다 훨씬 못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신적으로는 선진국처럼 보이는데 나만 그런 것일까?
공항에서 약 삼십분 가량 걸려 선원에 도착했다. 커다란 아치형의 정문에는 ‘담마마마까 고려사 국제선원’이라고 쓰여 있다. 미얀마 특유의 동글동글한 모양의 미얀마 글씨도 보인다. 미얀마에서 한글을 보니 반갑다. 한국절에 들어 가는 기분이다.
선원에는 일곱시 반 가량 도착했다. 선원의 취침시간이 아홉 시부터라 하니 최대한 빨리 도착하고자 한 것이다. 일요일 오전 일찍 출발하여 하루 종일 걸려서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먼저 사야도를 찾아 뵈었다.
담마마마까 선원장은 에인다까 사야도이다. 일행 열 네명은 김진태선생의 인솔하에 선원장 실에 들어갔다. 카페트가 깔려 있는 너른 홀이다. 홀에는 미얀마식 불상이 꽃으로 장엄되어 있다. 벽면 한쪽에는 커다란 사야도의 초상화가 있고 담마마마까 조감도가 붙어 있다. 사야도 옆에는 혜송스님이 앉아 있었다. 혜송스님이 통역해 주었다.
혜송스님은 1996년 미얀마에 처음으로 수행왔었다고 한다. 이후 수행에 전념 했는데 2006년 담마마마까 건립에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일까 선원의 모든 일에 대하여 관여 하는 것처럼 보였다. 비구니 스님임에도 미얀마 빅쿠들이 입는 검붉은 가사를 가사를 입고 있는 것이 특이했다.
혜송스님은 미얀마어가 유창하다. 미얀마에 이십여년 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언어를 배우고자 하는 노력이 없다면 한마디도 하지 못할 것이다. 미얀마를 현지인들과 다름 없이 할 정도라면 엄청나게 노력했을 것임에 틀림 없다. 혜송스님의 안내로 먼저 에인다까 선원장에게 삼배를 했다. 그리고 김진태 선생이 한명 한명 상세하게 소개 했다. 혜송스님은 선원장에게 역시 상세하게 통역했다. 이번 수행자 그룹은 쟁쟁한 멤버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에인다까 사야도는 상견례에서 세 가지를 강조했다. 그것은 위리야(정진)와 사띠(정념)와 빤냐(지혜)에 대한 것이다. 사야도는 사띠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정진이라 했다. 또 사띠가 성성하게 유지 되는 것이 정념이라 했다. 마지막으로 오온에 대하여 심, 수, 신, 법으로 일어나고 사라짐을 알고 보는 것이 지혜라 했다. 이 모든 것이 사띠를 중심으로 해서 돌아가고 있음을 강조했다.
담마마마까는 위빠사나 수행처이다. 그것도 마하시계통의 수행처이다. 위빠사나 수행처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사띠이다. 에인다까 사야도는 상견례에서 사띠를 강조했다. 정진도 정념도 지혜도 사띠를 기반으로 한다고 했다. 정진이 없으면 사띠도 없고, 사띠가 없으면 위빠사나 지혜도 없음을 말한다. 그런데 정진하여 위빠사나 지혜에 이른 자는 만명 중의 한사람에 불과하다고 했다.
만명 중의 하나라면 0.0001%에 해당된다. 위빠사나 수행을 한다고 하지만 그 중에 한사람 정도만 위빠사나 지혜에 이른다고 한다. 이런 말을 듣자 맥이 풀리고 힘이 빠진다. 로또복권이 연상되기도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근기가 없는 자는 지혜에 이를 수 없다는 말 아닌가! 사야도는 상견례에서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차라리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지혜에 이를 수 있다’라고 격려했어야 맞지 않을까?
이번 집중수행에 참가한 사람들 대부분은 초심자들이다. 위빠사나 수행은 물론 교학도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사야도에 따르면 위빠사나지혜를 성취하는 것은 로또 맞을 확률보다 더 낮은 것이다. 사야도가 그렇게 말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아비담마논장에 명백히 실려 있기 때문이다. 이번 생에 한수행 하려면 지혜를 가지고 태어나야 함을 말한다. 이른바 ‘생이지(生而知)’를 말한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전생에서부터 지혜수행한 자를 말한다.
아비담마에 따르면 세 가지 원인, 즉 무탐, 무진, 무치라는 세 가지 원인을 가지고 태어난 자가 이 생에서 선정을 성취할 수 있고 도와 과를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이런 내용은 초기경전에서도 볼 수 있다. 상윳따니까야 ‘매듭의 경’을 보면 “계행을 확립하고 지혜를 갖춘 사람이 선정과 지혜를 닦네. 열심히 노력하고 슬기로운 수행승이라면, 이 매듭을 풀 수 있으리.”(S1.23)라는 게송이 있다. 여기서 ‘지혜를 갖춘 사람’은 생이지자를 말한다. 지혜를 갖추고 태어난 자가 선정에 들 수 있고 도와 과를 이룰 수 있음을 말한다. 그런데 한번도 수행을 해 본적이 없는 사람이 앉아만 있는다고 해서 위빠사나 지혜가 생겨날 리 만무할 것이다.
위빠사나 지혜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교학적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지혜’(如實知見: 야타부따냐나닷사나)를 말한다. 무엇을 알고 보는 것일까? 그것은 오온의 생멸에 대한 것이다. 몸과 마음, 즉 물질, 느낌, 지각, 형성, 의식에 대하여 나의 것이 아니라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고,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아는 위빠사나지혜를 말한다. 이런 사실을 알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잘 관찰 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신, 수, 심, 법으로 관찰하라고 말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늘 사띠를 유지해야 한다.
사띠를 유지하려면 정진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좌선과 행선, 일상에서 사띠를 강조하는 것이다. 위빠사나 수행자라면 어느 경우에서든지 사띠가 끊어지지 않아야 하는데 과연 초보자들에게 가능하기나 한 것일까? 더구나 이전 생에 수행이라고는 해 본적이 없는 사람에게 위빠사나 지혜가 있을 리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위빠사나 지혜에 이른 자는 만명에 한명에 불과하다고 했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이번 생에서 수행은 다음 생을 위한 공덕이 될 것이다.
사야도 상견례에 이어서 방배정을 받았다. 어둠 속에서 숙소를 찾아 갔다. 어둡기는 하지만 분위기는 파악할 수 있었다. 마치 작은 단독주택 같은 수많은 숙소가 연이어 있었다. 선원이 주택단지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멋진 야자나무가 인상적이었다. 갖가지 나무에는 초록의 잎이 있어서 이곳이 아열대 지역임을 실감했다. 한국에서는 가로수가 앙상하고 날씨도 영하이지만 이곳에는 모든 것이 풍요로워 보였다.
숙소는 원룸형태이다. 약 사오평정도 되는 꽤 너른 방이다. 별도로 분리된 세면실이 있고 또 별도로 분리된 화장실 겸 샤워실이 있다. 방바닥은 원목으로 되어 있어서 시원하고 경행하기에 알맞다. 에어컨도 설치 되어 있다. 침대에는 모기장이 설치 되어 있어서 모기가 많은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시설은 미얀마국제수행센터 중에서는 수준급이라 한다. 아마도 가장 최근에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담마마마까 창건주라 볼 수 있는 혜송스님의 원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곳이든지 새로 간 곳에의 하루는 길기만 하다. 군대에서도 첫날은 무척 길게 느껴진다. 회사를 옮겼을 때 첫출근날 역시 길게 느껴진다. 이곳 수행처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하루 종일 이동하고 사야도 상견례를 하고 방배정을 받으니 하루가 길게 느껴졌다.
내일은 새벽 3시 20분경에 일어나야 한다. 새벽 4시에 시작되는 좌선과 5시에 시작되는 새벽예불이 있기 때문이다. 일찍 일어나려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밤 9시에는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길고 긴 하루이다. 억지로 잠을 청했다.
2019-01-17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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