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처의 조건, 담마마마까 수행기3
2019년 1월 1일 아침
새벽 종소리가 들렸다. 자는 둥 마는 둥 뒤척이며 깊은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종이 수십번 연타했다. 시계를 보니 새벽 3시 20분대이다. 늦어도 3시 45분까지는 대법당으로 가라고 했다. 머리를 감을 엄두는 나지 않았다. 이곳이 아무리 더운 나라라고 하지만 찬물에 감으면 감기 걸릴 것 같았다. 얼굴만 대충 씻고 숙소를 나섰다.
숙소에서 대법당까지의 거리는 대략 백미터 가량 된다. 어둠 속에서 왔다가 어둠에 일어나 어둠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 온지 24시간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선원이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다. 어둠 속에서 본 야자나무와 갖가지 나무가 어우러져 있다는 것만을 알 수 있다.
법복차림으로 법당에 들어 갔다. 이곳에서는 하루종일 명상만 한다고 들었기 때문에 앉아 있기에 편한 법복이 가장 좋을 것 같았다. 집에서도 늘 입고 있는 법복을 이곳에서 24시간 입기로 했다.
새벽 4시부터 4시 50분까지는 새벽좌선시간이다. 5시부터 5시 20분까지는 새벽예불시간이다. 5시 40분이 되면 식당에 들어간다. 식당에서는 5시 45분에 약 10분간 공양예불의식이 있다. 의식이 끝나자마자 사야도를 비롯한 빅쿠들이 입장한다. 아침공양은 6시부터 약 10분 내지 15분 가량 걸린다. 아침공양 주메뉴는 죽이다. 쌀죽과 국수가 나왔다.
아침공양을 하고 나니 6시 15분 가량 되었다. 식당 밖을 나오니 밖이 훤하다. 날이 샌 것이다. 한국에서는 아침 7시가 되어야 훤해 지는데 이곳은 위도가 낮아서인지 아침 6시를 기준으로 날이 훤해지고, 저녁 6시를 기준으로 날이 어두워진다. 어제 저녁 어둠 속에서 와서 오늘 새벽 어둠 속에서 일어났는데 이제 날이 새니 모든 것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다.
식당 밖을 나오니 날이 훤히 새어 있었다. 마치 캄캄한 밤에 전구를 켜면 일시에 보이듯이, 식당 밖을 나오니 모든 것이 한번에 드러나 보였다. 어둠에서 보았을 때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다. 비로서 전혀 다른 세계에 와 있음을 실감 했다.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열대지방에서나 볼 수 있는 야자나무 등 온갖 종류의 식물이다.
김진태선생의 안내로 선원투어를 했다. 김진태선생은 선원창립 때부터 매년 이곳을 찾고 있기 때문에 선원의 역사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 부지가 4만평 이상에 달한다는 선원은 한마디로 잘 가꾸어진 정원같기도 하고 온갖 나무와 식물이 어우려져 있어서 식물원같기도 하다.
김진태선생은 먼저 여자숙소동부터 안내해 주었다. 정문에서 보았을 때 대법당로를 중심으로 하여 좌측에 분포 되어 있는 꾸띠가 여자숙소동이고 우측에 분포되어 있는 꾸띠가 남자숙소동이다. 평소에 남자들이 여자숙소동 거리를 배회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이날만큼은 선원투어하는 날이기 때문에 둘러 보기로 한 것이다.
여자숙소동은 깔끔하게 잘 꾸며져 있다. 잘 가꾸어진 정원을 보는 듯하다. 숙소주변에는 온갖 열대식물들로 가득하다. 눈에 띄는 것은 야자나무이다. 야자나무가 열을 지어 쑥쑥 하늘로 뻗어 있는 모습이 시원시원해 보인다. 야자나무 종류도 다양하다. 미얀마 여자출가자라 불리우는 띨라신이 빗자루를 들고 낙엽을 쓸고 있는 모습이 평화로워 보인다.
담마마마까나는 잘 꾸며진 정원같기도 하고 식물원 같기도 하다. 담마마마까는 창립된지 13년 된다. 그 이전 3년전부터 선원이 운영되고 있었다고 하니 이와 같은 정원과 식물원이 된 것은 이만한 연륜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아마 아열대지역이라 기후조건이 좋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나무 못지 않게 갖가지 꽃도 많다는 사실이다. 산책하는 도중에 ‘페이퍼플라워’라 불리우는 꽃을 보았다.
김진태선생에 따르면 초기에는 작은 나무들이 불과 몇 년 만에 자라 나무숲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런데 나무 못지 않게 갖가지 꽃도 많다는 사실이다. 산책하는 도중에 ‘페이퍼플라워’라 불리우는 꽃을 보았다.
페이퍼플라워는 우리말로 ‘종이꽃’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미얀마에는 이런 꽃이 흔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산에 들에 피는 진달래 같은 것이다. 하늘하늘 피어 있는 빨갛거나 하얀 페이퍼플라워를 보니 확실히 다른 나라에 와 있음을 실감한다.
한국에서는 영하의 날씨이지만 이곳은 한국보다 무려 30도가 높은 늦봄이나 초여름 날씨이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5월말이나 6월의 날씨이다. 하늘은 높고 공기는 맑고 바람 한점 없이 따스하고 포근한 날씨이다. 추운 곳에 있다 이렇게 기후조건이 좋은 곳에 오니 천상이 따로 없는 듯하다. 더구나 우리나라 겨울에 보기 힘든 꽃이 이곳저곳에 만발해 있으니 마치 별세계에 와 있는 듯하다.
담마마마까는 마하시계통의 위빠사나수행처이다. 한국인들이 원력으로 건립한 미얀마사찰이다. 미얀마 사야도가 선원장이고 미얀마빅쿠들과 띨라신들이 사는 곳이다. 또한 미얀마재가불자들이 이곳에서 집중수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미얀마내에 수많은 국제선원이 있기는 하지만 시설로 따진다면 ‘톱클라스(Top Class)’에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양곤 외곽 평지에 자리잡은 담마마마까는 격자형으로 되어 있어서 잘 계획된 도시같고, 잘 꾸며진 정원같고, 잘 가꾸어진 식물원 같다. 무엇보다 숙소가 ‘일인일실일욕실’로 되어 있어서 최고의 시설을 자랑한다. 담마마마까는 숲속의 아름다운 수행처라 볼 수 있다.
초기경전을 보면 숲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이것들이 나무 밑이다. 이것들이 텅 빈 집이다. 선정을 닦아라. 방일하지 말라.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하라. 이것이 너희들에게 주는 가르침이다.”(S43.1)라고 했다. 숲속 빈오두막집에서 선정을 닦으라고 한 것이다.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는 번잡한 마을이나 도시보다는 인적 없는 곳에서 선정을 닦으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담마마마까에서는 묵언을 강조한다. 수행자끼리 잡담하는 등 말을 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말을 하는 순간 사띠가 깨지기 때문일 것이다.
담마마마까는 미얀마 내에서 최고의 수행환경을 자랑한다. 한국인 수행자들에게는 최적의 장소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여러가지 제약이 따른다. 몰려 다녀서는 안되고 둘 이상이서 말하면서 다녀서도 안된다. 조용히 산책하는 것은 허용된다. 숲속 나무 밑에서 명상 할 수 있도록 자리가 마련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다. 그러나 아무리 환경이 좋아도 훌륭한 스승이 없다면 결코 좋은 환경이라 볼 수 없다.
부처님 당시 출가자들은 숲에서 수행했다. 빈오두막집에서 홀로 정진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살지 않은 숲속은 위험도 있다는 사실이다. 모기나 파리, 독충은 물론 맹수도 출몰할 수 있다. 숲속에 사는 야차나 정령과 같은 비인간의 방해를 받을 수 있다고 초기경전에서는 설명되어 있다. 무엇보다 숲에 있으면 여인의 유혹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숫따니빠따 날라까의 경(Sn3.11)에 따르면 “가령 숲 속에 있더라도 불의 화염 같은 높고 낮은 것들이 나타나고, 아낙네는 해탈자를 유혹합니다. 아낙네로 하여금 유혹하도록 하지 마십시오.”(Stn703)라는 게송이 이를 잘 말해 준다.
초기경전에 따르면 숲은 번뇌를 야기하기 때문에 부정적 이미지이다. 이와 같은 숲은 마치 ‘무명초’ 같은 것이다. 삭발한 승려가 머리털이 길어지면 잡초가 난 것처럼 보이는 것과 같다. 모든 번뇌의 시작이 무명이듯이, 머리에 난 머리카락이 자라면 자랄수록 마치 숲이 무성해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일까 법구경에서는 “숲을 잘라버려라. 나무는 말고, 숲에서 두려움이 생기니 수행승들이여, 숲과 덤불을 자르면 그대들은 숲에서 벗어나리.”(Dhp.283)라 했다. 여기서 부처님은 나무를 자르지 말라고 했다. 숲을 자르라고 했다. 숲을 자르라고 한 것은 마치 쾌도난마식으로 지혜의 칼로 얼키고 설킨 번뇌를 쳐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무까지 쳐 낼 것을 염려하여 “나무는 말고”라 한 것이다.
숲은 번뇌 망상과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숲은 초기경전에서 번뇌를 상징하기 때문에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 이는 법구경에서 “남자의 여자에 대한 번뇌의 덤불은” (Dhp.284)라 되어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번뇌의 상징으로 숲은 또한 수행자가 살아 가야 할 곳이기도 하다. 숲속의 오두막집에서 살아가는 수행자에게 필수품 조달은 필수적이다. 이와 같은 숲의 오두막집 역할을 하는 곳이 오늘날 숲속의 선원이라 볼 수 있다.
맛지마니까야에 ‘우거진 숲의 경’(M17)이 있다. 출가수행자가 숲속에 사는데 어떤 조건이 수행하기에 좋은 조건인지 좋지 않은 조건인지에 대한 가르침이다. 오늘날로 말하면 ‘선원의 조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경에 따르면 필수품 조달 등의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스승이 없다면 떠나라고 했다. 이에 대하여 “그러나 이사람에 의지하여 지낼 때에 나는 아직 이루지 못한 새김을 새기지 못하고, 아직 집중하지 못한 마음을 집중하지 못하고, 아직 소멸하지 못한 번뇌를 소멸하지 못하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도달하지 못했다.”(M17)라고 생간한다면 떠나라고 했다. 수행환경은 좋지만 본받을 만한 스승이 없을 때는 “그 사람을 떠나는 것이 좋으며, 그에게 머물러서는 안된다.”(M17)라고 했다.
같은 수행처라도 수행환경이 좋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수행환경이 좋아도 스승이 없다면 있을 곳이 못 된다. 자는 것부터 시작해서 먹는 것, 입는 것 등 온갖 조건이 만족스러워도 수행이 향상되지 않는다면 당장 떠나야 한다. 이와 같은 수행처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그가 이 모든 것을 숙고하여 밤에 안다면, 바로 그날 밤에 떠나야 한다. 밤에 사나운 짐승 등의 위험이 있으면 일출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가 이 모든 것을 낮에 숙고하여 안다면, 바로 그 날 낮에 떠나야 한다. 낮에 위험이 있으면 일몰까지 기다려야 한다.”(Pps.II.72)라 되어 있다.
수행처의 시설이 좋으면 여러 모로 유쾌할 것이다. 마치 천상과 같은 아름다운 환경에서 먹는 것도 만족스럽다면 계속 거기에서 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스승이 없어서 향상이 없다면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했다. 반면 수행처의 시설이 열악하고 먹거리가 만족스럽지 않아도 스승이 있어서 향상을 이룰 수 있다면 머물러 있으라고 했다. 그 스승에 의지하여 그 스승에게 머물고 그 스승을 떠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수행처는 시설도 좋고 스승도 있는 곳이다. 이런 곳에 있으면 “그는 아직 이루지 못한 새김을 새기고, 아직 집중하지 못한 마음을 집중하고, 아직 소멸하지 못한 번뇌를 소멸하고, 아직 도달하지 못한 위없는 안온에 도달하고, 또한 출가생활에서 조달해야 할 의복, 음식, 처소, 필수약품을 조달하기 쉽다.”(M17)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곳이라면 마땅히 머물러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하여 경에서는 “수행승들이여, 그 수행승은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그 사람에게 머무는 것이 좋으며, 쫒겨날지라도 그 사람을 떠나서는 안 된다.”(M17)라 했다.
수행처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마치 유목민처럼 이곳저곳 수행처를 찾아 다니는 ‘수행방랑자’라 볼 수 있다. 한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떠나는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처소나 먹을 것 등 수행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도 있을 수 있고 무엇보다 스승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행환경도 좋고 스승도 있다면 설령 잘못을 저질러 쫓겨날 처지에 있다고 하더라도 끝까지 버티라고 했다. 과연 담마마마까는 그런 조건을 갖춘 곳일까?
2019-01-18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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