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성지순례기

모비찬먜 수행센터, 미얀마 성지순례기3

담마다사 이병욱 2019. 2. 13. 17:28

 

모비찬먜 수행센터, 미얀마 성지순례기3

 

 

2019 1 11일 오후

 

미얀마 성지순례 세 번째는 찬먜(chanmyay)수행센터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얀마어는 발음하기가 쉽지 않다. 영어로 ‘chanmyay’라 했을 때 발음은 우리말로는 ‘찬먜’가 된다. 이런 발음은 어렵기도 하거니와 좀처럼 보기도 어렵다.

 

모비찬먜 수행센터를 향하여

 

삿담마란시(따담마란디) 수행센터를 출발하여 모비찬먜 수행센터로 향했다. 주변의 풍광을 유심히 살펴 보았다. 1월의 건기이어서일까 덥지도 습하지도 않은 쾌적한 날씨이다. 거리에는 야자수가 있어서 아열대지방임을 실감하게 한다.


어느 지점에서 찬먜수행센터 입구가 보였다. 찬먜선원은 문이 두 개 있다. 도로를 중심으로 하여 우측에는 숙소구역이고 좌측에는 수행구역이다. 먼저 수행구역으로 들어가 보았다.





 





 

너무나 사실적인 밀랍형상

 

수행구역으로 들어 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이 좌측에 있는 식당홀과 우측에 있는 접견홀이다. 식당홀을 들여다 보았다. 동그란 테이블이 보인다. 앉아서 식사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더 들어가 보니 찬먜사야도의 젊은 시절 밀랍으로 된 형상 보였다. 너무 사실적으로 묘사 되어 있어서 마치 산 사람 .

 








아쉰 자나까 비왐사 찬몌사야도

 

찬먜 사야도의 명함을 보면 ‘아쉰 자나까 비왐사(Ashin Janaka bhivamsa)’ 라고 되어있다. 찬먜 사야도라 부르는 것은 미얀마 전통에 따른 것이다. 법랍이 오래된 훌륭한 스님은 거주하는 지역 이름을, 한 센터의 초대 원장인 경우에는 그 센터 이름을 붙여서 부른다고 한다. 사야도 아쉰 자나까 비왐사께서는 찬몌센터의 초대원장이기 때문에 찬먜 사야도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것이다. 우리말로는 ‘찬몌센터 원장 큰스님’정도 될 것이다. 찬먜사야도는 위빠사나 수행법을 세계적으로 대중화한 스승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것은 다른 스승들과는 달리 영어가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날 미얀마의 마하시수행 전통은 전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해마다 겨울철이 되면 세계각국에서 수많은 수행자들이 미얀마 수행센터를 찾는다. 수행을 하면 반드시 인터뷰를 하게 되어 있는데 영어가 되는 스승이 있다면 대단히 도움이 될 것이다. 찬먜사야도가 그런 분 중의 하나이다.





 

찬먜사야도가 영어를 잘 구사하게 된 것은 스리랑카에서 공부했기 때문이다. 스리랑카에서 6년 동안 영어, 싱할리어, 산스크리트어, 힌디어 등을 공부한 것이다. 이후 1967년부터는 마하시 수행센터에서 지도법사가 되어 수행지도를 했다. 이와 같은 언어능력이 있어서일까 찬먜사야도는 세계각지로부터 찾아오는 수행자들을 지도했고, 또한 세계 각지에 나가 위빠사나 수행지도를 했다. 찬먜사야도의 인터뷰 통역을 담당했던 한국인 수행자 케마 선생에 따르면 1990년부터 한국을 여덟 번 방문했다고 한다.

 

나무아래에서 좌선하는 모습을 보니

 

찬먜센터는 온통 숲으로 둘러 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숲속 이곳 저곳에 명상홀이 있고 숙소가 있다. 특히 수행구역안에는 야외 좌석도 보인다. 보통 나무 아래에 좌대가 있는 것이 보통인데 이곳에서는 지붕이 있는 좌대를 가지고 있다. 수행자들이 개인 모기장을 치고 나무아래에서 좌선하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초기경전을 보면 부처님 제자들은 숲에서 살았다. 탁발을 끝내고 돌아와서 숲에서 명상하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경에 따르면 “싸밧티 시에서 탁발을 마치고, 식사를 마친 뒤, 탁발에서 돌아와 대낮을 보내기 위해 안다 숲으로 갔다.(S5.2)라는 정형구가 자주 등장한다.

 

부처님 당시 수행자들은 탁발이 끝난 다음에 숲속 깊숙이 들어가 나무 밑에 앉아 좌선수행을 했다. 그래서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수행승들이여, 이것들이 나무 밑이다. 이것들이 텅 빈 집이다. 선정을 닦아라. 방일하지 말라.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하라. 이것이 너희들에게 주는 가르침이다.(S43.1)라며 정진할 것을 강조했다. 찬먜수행센터에서 수행자들이 나무아래에서 수행하는 모습을 보니 경전 속의 한장면이 연상되었다.

 

방법을 알고 수행한다면

 

수행처에서는 좌선과 행선, 그리고 일상수행을 병행하고 있다. 이는 수행센터에서 8계를 지키며 오후불식하며 살기 때문이다. 선원에 사는 것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수행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방법을 알면서 수행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찬먜센터에서는 사야도의 법문 테이프를 제공하고 있다.





 

사야도 카세트 테이프는 모두 26개이다. 첫번째의 것을 보니 ‘Taking Percepts & Basic Meditation Instruction’이라 되어 있다. 일종의 오리엔테이션 자료라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26번째의 것은 ‘The Seven Purification’이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아비담마와 청정도론 등 논서와 주석서에 근거한 법문임을 알 수 있다.

 

찬먜사야도의 ‘위빳사나 수행 28일’

 

찬먜사야도의 수행방법은 어떤 것일까? 귀국하여 전재성선생의 니까야강독모임에 참석했다. 전재성 선생은 책을 하나 주었다. 케마(김도희) 선생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찬먜사야도가 지도한 위빳사나 수행방법에 대한 책이다. 책이름은 ‘위빳사나 수행 28일’이다. 이 책은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발행되었는데 옮긴이는 케마선생이다.

 

케마선생은 찬먜수행센터에서 수행한 바 있다. 특히 한국수행자들을 위한 인터뷰 통역자로서 역할도 했다. 찬먜사야도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인터뷰 뿐 아니라 법문도 영어로 통역했다. 찬먜사야도의 가르침이 온전히 담겨 있는 ‘위빳사나 수행 28일’은 찬먜사야도가 1991 12월과 1992 1월에 걸쳐 28일간 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에서 법문한 것이다. 영어로 된 녹음 테이프를 일일이 녹취, 편집한 후 한국어로 번역한 역작이다. 전세계 위빠사나 수행자들을 위한 일종의 수행지침서라 볼 수 있다.



 



책을 열어 보았다.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이 배에 관한 부분이다. 마하시전통에서는 배의 움직임을 기본 관찰대상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사야도는 “자세를 잡았으면 마음을 수행의 기본대상인 복부의 움직임에 주의하십시오. 그런 다음 바깥쪽으로의 움직임과 안쪽으로의 움직임을 관찰하십시오.(42p)라고 말씀했다. 위빠사나 수행이기 때문에 대상에 집중하는 수행이 아닌 관찰수행임을 알 수 있다. 그것도 움직이는 대상이다. 복부의 움직임이 기본 관찰대상인 것이다.

 

사야도는 복부움직임과 관련하여 배가 불러오면 마음속으로 ‘불러옴’이라고 명명하며 그 움직임을 관찰하고, 꺼질 때도 마음속으로 ‘꺼짐’이라고 명명하며 그 움직임을 관찰하라고 했다. 이렇게 명명하며 관찰하는 것은 수행초기에 마음을 수행대상에 모으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호흡과 배의 움직임과의 관계는 어떤 것이며 좌선시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하여 사야도는 “배의 움직임은 호흡과 연관되어 발생하는 풍대요소(바람요소)입니다. 호흡은 자연 그대로 내버려 두고 복부의 움직임만을 마음 속으로 ‘불러옴-꺼짐-불러옴-꺼짐…’이라고 명명하며 관찰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점차적으로 마음이 복부의 움직임에 모아 질 것입니다.(43p)라 했다.

 

마하시수행전통은 복부의 움직임만 관찰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이든 두드러진 대상이 인지되는 순간 관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복부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도중, 생각이 복부의 움직임보다 두드러지게 인지되는 때가 있다. 그럴 경우 찬먜사야도는 복부의 움직임은 내버려두고 ‘생각함, 생각함…’이라고 명명하며 생각하는 마음을 관찰해야 합니다.(43p)라고 말씀했다. 생각을 생각인줄 아는 것이다. 그런데 언제까지 생각을 관찰 또는 알아차려야할까? 찬먜 사야도께서는 생각이 사라질 때까지 알아차리라고 하셨다고 한다. 그 이유는 케마님이 찬먜 사야도께 배운 바에 의하면 다음과 같다.

.

첫째, 일어난 생각은 반드시 사라지고 괴로운 것이며 내 것이 아닌 즉 무상 고 무아를 아는 지혜를 얻기 위해서이다. 어떤 수행자들은 생각을 사라지게 하기위해 사라질 때까지 관찰하는 것으로 알고있는데, 그것이 아니라는 거다.

 

둘째, 산만하고 들뜨지 않은 상태로 수행을 할 수 있다. 생각을 사라질 때까지 끈덕지게 관찰하지 않고 기본대상으로 돌아오면 그 생각은 여러번 반복해서 수행자를 공격한다고 한다. 그 결과 기본대상이나 다른 대상을 제대로 관찰할 수 없게 된다.

 

이와같은 두가지 이유로 생각은 사라질 때까지 관찰해야한다. 사라진 후에는 기본 대상인 복부의 움직임을 다시 관찰한다.

 

통증이 두드러지는 경우도 있다. 초보자의 경우 앉은지 이삼십분이 지나면 다리가 저리거나 통증이 시작된다. 그때도 기본 대상을 내버려두고 저림이나 통증을 관찰해야한다. “다리의 감각에 마음을 모으고 마음속으로 ‘저림-저림…’, 또는 ‘통증-통증…’ 이라고 명명하며 그것을 관찰해야 합니다.”라고 사야도는 말씀했다. 저림이나 통증 역시 사라질 때까지 관찰한 후 기본관찰대상인 복부의 움직임을 다시 관찰한다. 그러니까, 마하시 전통 위빠사나 수행, 좌선시 요점은 좌선 시작시나 두드러진 대상이 인지되지 않을 경우에는 기본 대상인 복부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기본대상보다 두드러진 대상이 있을 경우에는 그 두드러진 대상이 사라질 때까지 관찰한다. 그리고는 기본대상으로 돌아온다.’로 정리할 수 있겠다.



마하시 전통에서는 어느 수행처에서든지 복부의 움직임을 관찰하라고 한다. 이는 다름 아닌 ‘생멸하는 성품’을 보기 위해서이다. 복부의 움직임은 풍대, 즉 바람의 요소라는 성품을 보기 위해서이다. 통증을 관찰하는 것은 느낌이라는 성품을 보기 위해서이다. 결국 우리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하여 신, , , 법이라는 사념처로 관찰하는 것이다. 이는 대상에 집중하는 사마타수행과는 다른 것이다. 대상을 관찰함으로 인하여 그것이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고 무아라는 위빠사나 통찰지혜를 얻기 위함이다.

 

공원 같은 숲속의 명상센터

 

도로를 건너 숙소구역으로 가 보았다. 숙소구역에는 숲속 이곳 저곳에 꾸띠가 산재해 있다. 넓은 대지 이곳 저곳이 잘 가꾸어져 있다. 마치 공원 같기도 하고 잘 가꾸어진 정원 같기도 하다. 나무도 우거지고 조용해서 쾌적한 분위기이다. 숙소구역에는 수계관도 있고 사야도관도 있다. 특히 둥그런 사야도관 앞에는 늘씬한 모습의 야자수가 돋보인다. 숙소구역을 돌다가 한국사람들도 만났다. 회색승복을 입은 스님도 보았다.






 






숙소구역에는 수계관도 있고 사야도관도 있다. 특히 둥그런 사야도관 앞에는 늘씬한 모습의 야자수가 돋보인다. 숙소구역을 돌다가 한국사람들도 만났다. 회색승복을 입은 스님도 보았다.

 




 

열대과일 잭프룻

 

숙소구역을 돌다가 열대과일을 발견했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처음 보는 과일이다. 안내자 미금님에 따르면 잭프룻이라 한다. 노랑색을 띠고 있고 겉에는 오돌토돌 돌기가 나 있다. 이곳 선원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 한다.

 





 

잭푸룻에 대하여 인터넷검색을 해 보았다. 뽕나무과의 상록교목이라 한다.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아프리카, 브라질 등에 재배되고 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국가 과일이라 한다. 요즘은 한국의 마트에서도 판매하고 있다고 한다.

 

모비찬먜는 어디에

 

숲속의 명상센터는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을까? 검색을 해 보니 ‘CHANMYAY YEIKTHA’(http://chanmyaysayadaw.org/ )라는 홈페이지를 발견했다. 찬먜에 대한 모든 것이 실려 있다. 본원은 양곤에 있고 브랜치로서 ‘Hmawbi, Hinthada, Leiway, Pyin Oo Lwin (May Myo), Taunggyi and Tamu’가 있다. 이곳 숲속의 명상센터는 모비(Hmawbi)찬먜라 한다.

 

모비찬먜에 대하여 구글지도를 찾아 보았다. 양곤에서 북서쪽으로 42키로미터 떨어져 있고 차로는 1시간 15분 거리이다. 지도를 보면 작은 도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명상센터는 숲으로 둘러 쌓여 있어서 숲속의 명상센터라 볼 수 있다.

 

 



 


 

자애수행을 강조하는데

 

홈페이지를 보니 “Teachers recommend metta meditation for about 3 days before a meditator starts his vipassana practice .”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자애수행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집중수행할 때 먼저 3일간 자애수행을 하고 다음에 위빠사나 수행한다는 것이다. 이는 케마님의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케마님에 따르면 찬먜 사야도가 위빳사나수행 지도하러 한국을 일곱 번째와 여덟번째로 방문했을 때 처음 3일간은 자애수행을 지도했다고 한다. 2003년도 8월 천안 호두마을에서 총 20일 지도 했는데 그 중에 3일은 자애수행을 지도하고 17일은 위빠사나 지도를 했다는 것이다. 2005년도 남양주 봉인사 2주 수련회에서도 역시 처음 3일간은 자애수행을 지도했다. 미얀마 모비 센터에서는 2010년 초반쯤 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외국인이 선호하는 계절인 겨울에, 두달 동안이나 자애수행만을 지도한다니 찬먜에서는 자애수행을 엄청나게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과 한국에서 온 단체 수행팀

 

길을 건너 다시 수행구역으로 돌아 왔다. 수행구역에는 이곳 저곳에 명상홀이 분포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수행환경이 좋아서일까 외국수행자도 많다. 매년 12월과 1월 두 달 동안은 외국에서 수행자들이 많이 찾아 온다고 한다.

 

모비찬몌에서 가장 많은 외국인은 중국인이다. 이번에 중국수행자들이 단체로 52명 왔다고 한다. 그 다음이 한국수행자들로 이번에 단체로 29명이 참가 하고 있다. 이들 단체 수행팀은 ‘Metta(Loving-Kindness) & Vipassana(Mindfulness/insight) Meditation Retreat’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자애수행과 위빠사나 수행을 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 수행자들은 김재성 선생이 이끄는 팀이다. 입구에 플랭카드가 붙어 있는데 ‘메따(자애)와 위빠사나(마음챙김/통찰) 집중수련’이라 쓰여 있다. 기간은 2018 12 28일부터 2019 1 25일까지 한달 가량 된다. 김재성 선생이 원장으로 있는 ‘자애통찰명상원’에서 29명이 한달 일정으로 단체로 수행하러 온 것이다.










모비찬먜에는 이곳 저곳에 작은 명상홀이 있다. 나라마다 달리 사용하는 듯 하다. 한국의 단체수행자들은 수행구역 정문 입구 바로 오른편에 있는 접견실을 명상홀로 사용하고 있다. 정진 중에 있는 김재성선생을 만났다. 안내자 미금님의 소개에 따른 것이다.

 

김재성선생에 따르면 매년 이맘 때쯤이면 단체로 명상수행하러 온다고 한다. 이곳저곳 명상센터가 있지만 특히 찬몌에서는 자애명상이 강조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자애수행을 끝마치고 위빳사나수행만을 하는 경우에도 좌선시간에는 약 10분 가량 자애명상시간을 갖는다고 한다.

 

모비찬먜에서는 일주일에 세 번 인터뷰가 있다고 한다. 지도 스님들이 여럿인 관계로 수행자들마다 해당되는 인터뷰 스승이 모두 다르다. 찬먜사야도는 나이가 고령이라 수행지도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찬먜사야도는 1928년 생으로 올해 나이가 91세에 이른다. 마하시 사야도의 상수 직제자들은 대부분 작고했는데 생존해 있는 두분의 제자 중 한분이라 볼 수 있다. 예전처럼 사야도께 영어로 직접 인터뷰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쉽지만, 이처럼 직제자가 생존해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될 것이다.

 





미얀마에는 한국과 다른 그 무엇이 있다

 

한국의 수행자들은 왜 머나먼 미얀마에 까지 가서 수행하는 것일까? 그것도 한두달도 아니고 몇 년 동안 수행하는 것일까? 거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수행환경을 들 수 있다. 선원생활을 하면 자동적으로 팔정도가 닦여지게 되어 있다. 선원에서 살며 8계를 지키고 살기 때문이다. 선원에서는 의식주가 해결되기 때문에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오로지 명상만 하면 되는 것이다. 더구나 대개의 경우 일인일실이어서 장기간 머무는데 지장이 없다.

 

둘째, 스승을 들 수 있다. 수행지도 할 수 있는 스승이 있다는 것은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미얀마의 어느 수행센터이든지 인터뷰시간이 반드시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수행자는 수행도 열심히 해야 하지만 보고해야 할 의무도 있는 것이다.

 

셋째, 교학을 들 수 있다. 지도하는 스승들은 교학도 매우 뛰어나다. 어려서부터 교학을 배웠기 때문이다. 특히 아비담마논장과 청정도론과 같은 지침서에 따라 체계적으로 배웠기 때문에 수행과 교학을 병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일까 어느 수행처이든지 나른한 오후 2시가 되면 스승의 법문이나 녹음 테이프를 듣는 시간으로 되어 있다.

 

미얀마에는 한국과 다른 그 무엇이 분명히 있다. 그것은 수행방법에 대한 것이다. 사띠빳타나위빠사나라 하여 몸과 마음을 대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이런 수행법은 한국불교전통에서는 없는 것이다.






우리 몸과 마음에서 끝장을 보아야

 

미얀마의 수행센터에서는 단순히 관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끝장을 본다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몸과 마음을 관찰해서 끝장을 보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은 “그러나 벗이여, 세계의 끝에 이르지 않고서는 괴로움의 끝에 도달할 수 없다고 나는 말합니다. 벗이여, 지각하고 사유하는 육척단신의 몸 안에 세계와 세계의 발생과 세계의 소멸과 세계의 소멸로 이끄는 길이 있음을 나는 가르칩니다.(S2.26)라고 말씀 했다.

 

우리 몸과 마음에서 끝장을 보아야 한다. 진리는 우리 몸과 마음을 떠나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우리 몸과 마음 안에 있다.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목적도 우리의 몸과 마음을 관찰하여 끝장을 보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위빳사나 수행 향상을 위한 중요 요인들

 

끝장을 보기 위해서는 수행에 있어 향상을 생각지 아니할 수 없다. 케마님에 의하면, 위빳사나 수행 향상을 위해 찬먜 사야도께서 수행자에게 늘 강조하시는 요인들이 있다고 한다.

 

첫번째, 생각을 빠짐없이 관찰하는 것이다. 이 생각 관찰은 향상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인이기에 좌선에서 뿐 아니라 행선에서도 반드시 적용해야 한다. 행선시 주관찰 대상은 발걸음의 움직임 또는 동작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생각이 일어날 때는 걸음을 반드시 멈추고 선채로 생각을 관찰해야한다. 생각이 사라짐을 보고 난 후에 다시 천천히 걸으며 발걸음의 동작을 관찰한다.

 

두번째, 중요 향상 요인은 일상행위를 중단없이 알아차리는 것이다. 일상행위를 하면서 하나하나 세심히 알아차리지 않으면, 좌선과 경행에서 잘 형성된 사띠와 삼매가 깨어진다. 그 결과 관찰 대상의 고유한 성품과 일반적 성품인 무상 고 무아를 알게되는 통찰 지혜가 일어나기 어렵게 된다.

 

일상행위를 세심히 잘 알아차리려면 천천히 행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한다. (행선 때도 천천히 걷는 것이 요구된다.) '위빳사나 수행 28' 책에도 나와 있듯이, 선풍기가 빠르게 돌아갈 때는 세 날개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보기 어렵다. 천천히 돌아갈 때 비로소 세 날개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듯, 천천히 일상행위를 하며 알아차리면, 어느정도의 삼매가 보다 쉽게 형성되어 행위를 일으키는 원인인 의도도 알게되고 관찰 대상의 무상 고 무아의 성품을 빠르게 이해하게 된다.

 

그러나 집중수행을 마치고 가정이나 직장생활로 돌아왔을 때는 좀 다른 룰을 적용하라고 한다. 다른 룰이란 천천히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처럼 하면서 가능한만큼만 알아차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적 상태들은 반드시 알아차림이 필요하다고 한다. 즉 화가 일어났다면 화가 난 그 마음을 알아차려야하고, 탐욕이 일어났다면 그 탐욕심을 알아차려야한다는 것이다.

 

자애관과 무상관을 닦으면

 

주마간산 격으로 선원을 둘러 보았다. 불과 한시간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선원에서 살아 보지 않고서는 선원에 대하여 자세히 알 수 없다. 마하시 전통이 모두 같은 것이라 하지만 직제자에 따라 강조하는 것은 조금씩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이곳 찬먜에서는 어떤 점이 다를까? 그것은 위에서 다루었듯이, 일상행위를 천천히 하며 알아차리는 것과 멧따(慈愛)라고 하겠다.

 

찬먜에서는 집중적인 위빳사나 수행을 한다 할지라도 3일 가량 먼저 자애수행을 하게한다. 그 다음 위빠사나 수행을 한다. 이런 방식은 고엔카방식과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 고엔카 방식은 3일동안 느낌 보는 수행을 집중적으로 하고 난 다음 위빠사나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왜 이토록 멧따를 강조할까?

 

김재성 선생이 찬먜 사야도께 여쭈어 보았더니,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한 때 일부 수자들 사이에 위빳사나 수행을 제대로 하기 어려울 정도의 다툼이 있었 습니다. 그들에게 메따 수행을 하게 했더니 분노가 가라앉아 다시 위빳사나 수행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지요. 이런 연유로 그 뒤로는 위빳사나 수행을 하기 전에 자애수행을 하게 했습니다.라고.

 

불교를 흔히 지혜와 자비의 종교라고 한다. 불교도가 지혜만 있고 자비가 없다면 교활하게 보일 것이다. 반면 자비만 있고 지혜가 없다면 우둔하게 보일 것이다. 그래서 지혜와 자비를 동시에 닦아야 한다. 그래서일까 부처님은 앙굿따라니까야 ‘벨라마의 경’(A9.20)에서 “단지 스치는 향기처럼이라도 자애의 마음을 닦는다면, 그것이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A9.20)라 했다. 아무리 큰 보시를 하고 오계를 지키는 삶을 살더라도 한순간이라도 자애의 마음을 내는 것이 더 수승함을 말한다. 이는 다름 아닌 수행의 공덕이다.

 

자애의 마음을 내는 것 보다 더 큰 공덕이 있다. 그것은 지혜를 계발하는 것이다. 그래서 경에서는 “단지 스치는 향기처럼이라도 자애의 마음을 닦는 것보다, 단지 손가락 튕기는 순간이라도 무상에 대한 지각을 닦는다면, 그것이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A9.20)라 했다. 한순간이라도 무상을 자각한다면 이 세상의 어떤 공덕보다 수승하다는 것이다.

 

한순간이라도 무상을 지각한다는 것은 지혜를 닦는 것을 말한다. 이는 다름아닌 위빠사나 지혜이다. 이로 알 수 있는 것은 자애관과 무상관을 함께 닦아야 한다. 그런데 자애관 보다 무상관이 더 큰 과보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동시에

 

수행을 하는 목적은 열반을 실현하기 위해서이다. 열반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여러 단계의 위빳사나 지혜를 거쳐 도-지혜에 의해 성취된다 그런데 열반을 이루기 위해서는 힘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공덕의 힘이다. 공덕에는 보시공덕, 지계공덕, 수행공덕 이렇게 세 가지가 있다. 이 중에서 수행공덕이 가장 수승하다.

 

앙굿따라니까야 ‘벨라마의 경’의 경은 보시공덕, 지계공덕, 수행공덕 세 가지를 설명하고 있다. 가장 수승한 공덕은 수행공덕이다. 여기서 수행공덕은 사마타 수행공덕과 위빠사나 수행공덕으로 나뉜다. 경에서 “단지 스치는 향기처럼이라도 자애의 마음을 닦는다면, 그것이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라고 했는데 이는 사마타 수행공덕을 뜻한다. 또 “단지 손가락 튕기는 순간이라도 무상에 대한 지각을 닦는다면, 그것이 커다란 과보를 가져올 것입니다.” 라고 했는데 이는 위빠사나 수행공덕에 대한 것이다.

 

찬먜에서 강조한 3일 자애수행은 사마타수행이라 볼 수 있다. 사마타 수행을 3일 동안 한 다음 나머지 기간은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마하시 전통에서는 어느 수행처이든지 자애를 강조한다는 사실이다. 담마마마까에서도 매일 자비관을 하며 매일 자비계를 받아 지닌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마하시 전통에서는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동시에 닦고 있음을 말한다.




 

2019-02-13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