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빠사나 동굴, 미얀마 성지순례기11
2019년 1월 12일 오후
응아타치를 관람하고 난 후에 점심식사를 했다. 안내자 툰툰님과 운전자 윈뮌님과 함께 미얀마 식당에 갔다. 미얀마 현지식당이다. 미얀마에 왔으므로 미얀마식으로 먹어 보기로 했다. 식당이름은 ‘쉐비(Shwe Be)’이다. 우리말로는 ‘금할아버지’라는 뜻이다.
식당은 반부페식이다. 갖가지 나물과 여러 종류의 고기가 있어서 원하는 것을 말하면 식탁에 가져다 준다. 밥은 식탁에 있어서 떠 먹으면 된다. 미얀마식이라 하지만 한국식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쌀을 주식으로 하는 문화는 어느 나라를 가든지 비슷한 것 같다.
식당분위기는 왁자지껄하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활기가 넘친다. 모두 미얀마사사람들이다. 단체로 관광객들을 맞이 하는 큰 식당과 달리 미얀마 현지인들의 삶을 그대로 엿볼 수 있었다.
식사비를 계산했다. 세 명이서 17,000짯 나왔다. 우리 돈으로 11,300원 가량이다. 인당 3,800원 꼴이다. 미얀마에서 이 정도 식사는 미얀마사람들 보통식사 비용 보다 약간 비싼 것이라 한다.
인공동굴 마하빠사나구하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음 행선지로 향했다. 제6차 결집장소로 가는 것이다. 까바예파고다(Kaba Aye Pagoda)가 있는 곳이다. 파고다 바로 옆에 있는 인공동굴 마하빠사나구하(Maha Passana Guha)를 말한다.
동굴 입구에는 녹음이 우거져 있다. 햇살이 내려 쪼이지만 온도와 습도는 적당해서 쾌적하고 상쾌했다. 인공동굴 입구로 들어 가는 사람들 모두 맨발차림이다. 성지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한가롭고 여유로운 모습이다. 청명한 날씨만큼이나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마하빠사나동굴은 어디쯤에 위치해 있을까? 먼저 까바예파고다를 키워드로 구글지도를 찾아 보았다. 쉐다곤파고다에서 9키로미터거리이고 자동차로 20여분 걸린다.
축구장 하나 정도 되는 넓이
동굴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좁은 출입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니 엄청나게 큰 공간이 나왔다. 동굴이라기 보다는 큰 체육관 같다. 중앙에 너른 홀이 있고 좌우에는 계단식 자리가 있기 때문이다. 검색한 자료에 의하면 길이가 139미터이고 폭이 113미터라 한다. 축구장 하나 정도 되는 넓이에 해당된다. 1950년대 미얀마 국력을 엿볼 수 있다.
중앙 너른 홀은 시험장으로 꾸며져 있었다. 오늘 오전에 법사시험이 있었다고 한다. 일산과 탁자와 의자와 좌석이 세트로 갖추어져 있다. 이곳이 6차 결집이 열린 장소이었기 때문에 법사시험장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중앙홀 상단에는 두 명의 사야도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상이 있다. 밍군사야도와 마하시 사야도라 한다. 1954년부터 5월 17일부터 1956년 5월 24일까지 만2년동안 제6차 결집이 열렸을 때 두 명의 사야도는 삼장법사였다. 마하시 사야도가 묻고 밍군사야도가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삼장법사의 암송능력
현재 미얀마에는 13명의 삼장법사가 있다고 한다. 율장과 경장과 논장을 모두 빠알리어로 외는 법사를 말한다. 빠알리 삼장은 내용이 방대하다. 과연 삼장법사는 방대한 빠알리삼장을 다 외울 수 있을까? 2014년 서울시청 공개홀에서는 특별한 법회가 열렸다. 보리수선원 주관으로 ‘바른집중을 말하다’라는 주제를 가진 법회를 말한다. 그때 당시 미얀마의 ‘순다라’삼장법사가 초대되었다.
순다라 삼장법사는 미얀마에서 열 번째 삼장법사라 했다. 25년동안 공부해서 삼장법사가 되었다고 한다. 시험을 봐서 떨어지면 다시 도전해서 이룬 것이라 했다. 율경론 삼장과 주석서까지 모두 암기했다고 하는데, 미얀마본 경율론 40권, 주석서 52권, 부주석서 25권을 암기했다는 것이다.
사회를 본 붓다락키타 스님이 능력을 보여 달라고 했다. 대념처경에서 호흡과 관련하여 외울 수 있느냐고 묻자 거침없이 막힘없이 낭송했다. 다음으로 빳타나 100페이지를 지목했다. 이것 역시 거침없이 막힘 없이 낭송했다. 율장도 한부분 지목했는데 이것 역시 거침없이 막힘 없이 낭송했다. 이와 관련하여 ‘삼장법사 순다라빅쿠의 암송능력, 특별한 법회에 참가하고’(2014-06-14)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린 바 있다.
비법이 득세하기 전에
미얀마에서 제6차 결집대회가 열린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미얀마의 독립과 관련이 있다. 미얀마는 1886년부터 1948년 까지 62년동안 영국의 식민지배를 받았다. 독립후에 쇠퇴한 불교를 진흥하기 위해 결집대회를 연 것이다. 또한 부처님 입멸 2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표준 삼장을 편집하는 것이었다. 이는 1871년 민돈왕의 후원으로 열린 5차결집에서 편집된 삼장을 기본으로 하여 테라와다불교권 국가 8개국의 승려 2,500명과 함께 점검과 교정을 하여 표준 삼장을 편집한 것이다.
미얀마에서 제5차 결집과 제6차 결집을 주도할 정도의 힘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이는 불교역사와도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역사적으로 제1차 결집은 부처님이 입멸후에 마하깟싸빠 주도로 열렸다.
디가니까야 주석서에 따르면 늦게 출가한 수밧다라고 하는 수행승이 “벗들이여, 슬퍼하지 마시오. 비탄해 하지 마시오. 우리는 그 위대한 수행자에게서 해방되었소.”(Smv.3)라며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마하깟싸빠는 정법이 사라질 위기를 느꼈다. 그래서 마하깟싸빠는 “벗들이여, 우리는 가르침과 계율을 결집합시다. 예전에는 가르침이 아닌 것이 횡횡하고 가르침은 배제되었고, 계율이 아닌 것이 횡횡하고 계율은 배제되었습니다.”(Smv.3)라고 말하며 결집을 호소한 것이다.
제1차 결집에 대한 이유를 보면 정법을 지켜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비법이 득세하면 정법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따라 모임을 연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은 승가에서 ‘갈마(kamma)’에서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갈마는 승가에서 공식적인 절차를 밝아서 의식이나 의례나 범계를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계를 어긴 범계행위에 대하여 대중들이 결의를 하여 문제를 해결한다. 그중에서 백사갈마(ñatticatutthakamma)가 있다.
갈마를 하는 목적은
백사갈마는 비법에 대한 쟁사가 생겼을 때 세 번 갈마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한번 제안한 뒤에 다시 세 번 “찬성하면 침묵하고 이견이 있으면 말하라.”라고 하는 것이다. 쟁사가 생겼을 때 갈마를 하는 것은 비법을 가려 내고 정법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마하깟싸빠가 결집을 주도한 것은 정법을 지켜내기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런 말이 있다. 그것은 “대중들이 결의하면 소도 잡아 먹는다.”라는 말이다. 이는 대중공사를 두고 한 말이다. 승가에서 논쟁이 생겼을 때 모여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다. 이는 승가화합을 위해서이다. 때로 다수결의 원칙도 적용된다.
다수결의 원칙을 율장에서는 예부야시까(Yebhuyasikā)라 한다. 대중의 의견을 물어 다수결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말한다. 그렇다고 소를 잡아 먹을 정도로 법과 율에 어긋나는 결의를 하지 않는다. 이는 “가르침에 따른 원칙을 적용하면 그에 따라 쟁사를 그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난다여, 어떤 쟁사는 이와 같이 대중의 의견을 따름으로써 그쳐지게 된다.”(M104)라는 부처님 말씀으로 알 수 있다.
쟁사가 일어 났을 때 해결방법은 가르침에 따른 원칙을 적용하는 것이다. 부처님이 말씀 하신 가르침에 맞으면 적법한 것이고 맞지 않으면 비법인 것입니다. 이것이 갈마를 하는 목적인데 이는 다름 아닌 승가의 화합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6번 결집이 있었는데
불교역사에 있어서 모두 6번의 결집이 있었다. 제1차결집은 부처님 입멸직후 율장과 경장을 편집하여 확정한 것이다. 제2차결집은 부처님 입멸 약 백년 가량 되었을 때 금과 은을 받는 등 열가지 계율에 대한 문제가 보수파와 진보파간에 첨예 하게 대립 되었을 때 승가의 분열 조짐이 보이자 베살리에서 결집된 것이다.
2차결집은 보수파의 승리로 끝났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승가에서 갈마나 결집이 열린다는 것은 비법을 쳐내고 정법을 수호하기 위한 것이다. 금과 은을 보시 받는 등 열가지 계율에 대한 문제는 비법으로 간주 되었다.
제3차결집은 부처님 입멸후 250년가량 되었을 때 빠딸리뿟따에서 열렸다. 마우리아 왕조의 아소까 대왕의 후원으로 열렸는데 승단의 계율을 유지하고 승단을 정화하고자 열린 것이다. 그래서 비정통파 승려들을 승단에서 추방하고 이단적 견해를 승려들을 진압했다. 특히 논장이 집중적으로 논의 되어서 삼장이 확립되었다. 삼장이 확립되자 아소까대왕은 세계 각지에 담마사절단을 파견했다. 그 중의 하나가 스리랑카였다.
역사적으로 제4차결집은 두 곳에서 열렸다. 기원전 1세기경에 스리랑카에서 열렸고, 기원후 1세기에 카슈가르에서 열렸다. 이를 남방결집과 북방결집이라고도 한다. 어느 쪽이 정통인지 시비와 논란이 있다. 남방결집은 알루위하라에서 열렸다. 전승되어 오던 삼장과 주석서를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문자화 한 것이다. 북방결집은 설일체유부에서 산스크리트어로 편집했다. ‘설일체유부아비달마비바사론’이라는 주석서 등이 포함되어 있고 보살사상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이유로 테라와다불교권에서는 북방결집에 대하여 회의적이다.
미얀마 불교의 저력
제5차결집과 제6차결집은 모두 미얀마에서 열렸다. 제5차 결집은 1871년 민돈왕의 후원으로 만달레이에서 5개월 동안 열렸다. 스리랑카에서 제4차 결집이 열린이래 이천년 가까이 된다. 그 동안 전승되어 오던 삼장을 점검하고 교정하여 미얀마5차 결집본을 완성한 것이다.
제6차결집은 1954년부터 1956년까지 만 2년 동안 우 누 수상의 후원하에 열렸다. 부처님 입멸 25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그 동안 전승되어 온 삼장에 대하여 점검과 교정을 위한 목적도 있었다. 특히 복주석까지 완벽하게 결집했다. 그래서일까 한국에서의 두 번역서를 보면 공통적으로 ‘미얀마6차결집본’을 참고하여 번역했음을 밝히고 있다.
제5차결집과 제6차결집이 미얀마에서 열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다름 아닌 제3차 결집이후 스리랑카에서 열린 제4차결집을 계승했다는 사실이다. 미얀마불교가 테라와다불교를 계승했음을 말하고 미얀마불교의 저력을 말한다. 부처님당시부터 전승된 테라와다불교의 주도권이 미얀마로 넘어간 것이다. 미얀마불교에서는 삼장법사를 배출할 정도로 탄탄한 토대가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르침과 계율을 스승으로 삼아
불교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오래오래 전승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변질되고 만다. 이런 움직임은 역사적으로 많았다. 특히 진보적 부파에서 계율을 느슨하게 적용한다든가 가르침과 무관한 것을 넣기도 했다.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정법은 변질되어서 전혀 다른 종교가 되어 버릴 것이다. 그래서 결집 통하여 비법을 쳐내고 정법을 수호한 것이다. 제1차부터 제6차까지 결집이 이루어진 것은 정법수호의지에 따른 것이라 볼 수 있다.
북방불교에서는 카슈가르에서 1세기에 이루어진 제4차북방결집 이후에 지금까지 새로운 결집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새로운 결집이 이루어졌다면 비법이 발 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대승불교에서도 대승불교가 성립된 이후 결집이 한번도 이루어지고 않았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교리와 다양한 사상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테라와다불교에서는 정법이 훼손되려고 할 때 결집이 이루어졌다. 근세에는 미얀마에서 제5차결집과 제6차결집이 이루어져서 제1차결집 이후 맥을 이어가고 있다.
가르침을 오래 전승하려면 결집이 이루어져야 한다. 만일 결집이 없다면 가르침은 변질되어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정법이 사라지면 다음 부처가 출현할 때까지 암흑시대가 된다. 역사적으로 6차 결집까지 이어 오면서 정법이 수호되었다. 그것은 부처님이 “아난다여, 내가 그대들에게 선언한 가르침과 계율이 내가 가고 난 후에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D16)라고 부처님이 말씀 하신 것에서 알 수 있다. 그래서일까 미얀마에서는 법과 율을 스승으로 삼아 부처님 가르침 그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미얀마에서 두 번의 결집이 일어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결집의 현장을 마하빠사나동굴에서 보았다.
2019-03-03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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