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도파고다, 미얀마 성지순례기14
2019년 1월 12일 오후
미얀마 불탑을 ‘파고다(Pagoda)’라고 한다. 파고다라는 말은 어디서 유래 되었을까? 인터넷 검색을 해 보면 서양사람들이 동양의 탑을 보고서 부르는 말이라 한다. 여러가지 어원이 있지만 확실치 않다. 한국에서 탑을 ‘석탑(石塔)’이라 부르고 있다. 인도에서는 ‘스투파(Stupa)’라 한다. 스리랑카에서는 ‘다고바(Dagoba)’라 한다. 미얀마에서는 파야(Phaya) 또는 제디(Zedi)로 부르고 있다. 나라마다 호칭하는 명칭이 다른 것이다. 이러한 파고다는 기원전 2세기 산치대탑에서 유래한 것이라 한다.
양곤 불교도대학
2019년 1월 12일 오후 순룬명상수행센터를 보고 난 다음에 쉐도파고다(Swedaw Pagoda)로 향했다. 인터넷 검색을 하면 ‘Swe Taw Myat Pagoda’라고 안내된다. 우리말로는 쉐도파고다 또는 쉐도우파고다라 한다.
쉐도파고다는 어디쯤에 있을까? 구글위성지도를 찾아 보았다. 양곤 도심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바로 아래에는 양곤 ‘국제 테라와다 불교도 전도 대학(International Theravāda Buddhist Missionary University)’ 이 있다.
양곤 ‘국제 테라와다 불교도 전도 대학’을 줄여서 간단히 ‘승가대학’이라 한다. 미얀마 종교성이 관리하는 국립대학이라 볼 수 있다. 미얀마는 물론 전세계에서 온 불교도들이 공부하는 곳이다. 구역은 대단히 넓어서 하나의 타운을 형성하고 있다.
승가대학으로 진입하는 넓은 도로에는 커다란 황금색 아치가 설치 되어 있다. 이제까지 보던 구도심의 복잡하고 무질서한 모습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전개되었다. 녹음이 우거져 있어서 커다란 공원을 연상케 한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1998년에 설립되었다. 현재 학생수는 287명이다. 또 다른 명칭은 ‘불교도대학(ITBMU / Buddhist University)’이다.
학승을 만나고자 했으나
쉐도파고다를 가기 전에 불교도대학 기숙사에 가 보았다. 안내자 툰툰님이 만나 볼 사람이 있다고 했다. 이곳 대학에서 십년 가량 공부하는 ‘우뽕야’ 스님이라 한다. 한국인 스님이다. 연락 없이 가 본 것이다. 그러나 부재중이었다.
한가롭게 기다리는 동안 잠시 쉬었다. 녹음이 우거진 교정에 오후의 햇살이 비쳤다. 고양이들이 낮잠을 즐기는 모습이 평화로워 보였다. 이십여분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다. 인연이 닿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파고다를 향해 이동했다.
다보탑 같은 쉐도파고다
쉐도파고다는 이제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바간의 아난다파고다를 모델로 한 것이라 한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파고다는 우아한 귀족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규모이지만 오밀조밀 잘 장식되어 있어서 마치 한국의 다보탑을 보는 것 같다.
쉐도파고다의 역사는 오래 되지 않는다. 1997년에 완공 되었으니 이제 22년 밖에 되지 않은 성지이다. 그럼에도 미얀마 국민들뿐만 아니라 전세계 불교도들의 성지가 되었을까? 이는 부처님 치아사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짜는 아니다. 모조품을 모셔 놓은 것이다.
쉐도파고다는 1994년 중국에서 가져 온 부처님 치아사리 전시회를 인연으로 건립되었다. 그때 당시 미얀마 불교도들을 위하여 45일 동안 전시회를 가졌다. 두 개의 상아모조품 (ivory copies)을 만들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쉐도파고다에 보존 되어 있는 것이다.
국민을 통합하고 이념을 정당화 하기 위하여
쉐도파고다는 미얀마 군부독재시절 ‘딴 쉐’ 장군의 뜻에 따라 건립된 것이다. 미얀마에서는 예로부터 통치자들이 국민들을 통합하고 이념을 정당화 하기 위한 목적으로 파고다가 건립되었다. 미얀마 역대 왕들이 통치수단으로 파고다를 건립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쉐도파고다도 그런 것 중의 하나라 볼 수 있다
쉐도파고다가 짧은 역사임에도 성지로 부각된 것은 파고다의 아름다움도 한 몫하고 있다고 본다. 마치 다보탑을 보는 듯 미얀마의 파고다 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가장 멋진 모양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신심이 절로 나는 듯하다.
쉐도파고다는 대다수가 불교를 신봉하는 미얀마에서 국민통합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수단이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설령 거기에 진짜 사리가 없고 모조품 사리가 있을지라도 국가적 프로젝트로 불탑을 만들었다는 것은 미얀마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본다.
대불과 대탑을 조성하는 이유
전세계적으로 성소는 크고 웅장하고 화려하다. 유럽의 중세 성당을 보면 위풍당당하고 성스런 분위기이다. 불교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크고 화려하고 거대한 사찰을 보면 사람들로 하여금 압도하게 만든다. 거대한 대불을 보면 신심을 일으켜서 절을 하게 만든다. 불자들 신심을 일으키기에 대불과 불탑만한 것이 없다. 미얀마에서 보는 파고다 역시 신심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동아시아불교에서는 주로 대불이 신심을 불러 일으킨다. 그래서일까 중국에서는 엄청난 크기의 대불을 만들었다. 이런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서 중국 이곳저곳에서 대불 만들기가 크게 유행하고 있다. 한국 역시 대불 조성이 유행이다. 유명 사찰에 가면 거대한 대불을 볼 수 있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그런데 테라와다불교국가에서는 대불보다는 대탑이 더 유행인 듯 하다.
첨탑형식으로 솟아 있는 파고다를 보면 주위의 풍광과 잘 어울려 보인다. 이는 좌우 대칭과 균형이 맞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대불의 경우 가능하지 않다. 대불이 크면 클수록 주변과 부조화를 이루기 쉽다. 이런 면으로 본다면 대불 보다는 대탑이 불교적 정서에 더 맞는다고 볼 수 있다.
탑묘(cetiya)를 조성해야 하는 이유
부처님은 자신의 형상을 만들어 신앙의 대상으로 삼으라고 한 적이 없다. 초기경전 어디에도 불상조성이야기는 보이지 않는다. 그 대신 탑묘(cetiya)에 대한 이야기는 있다. 오늘날 대탑이나 파고다는 탑묘가 확장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부처님은 탑묘 조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 했다.
“아난다여, 이와 같은 네 종류의 탑묘를 조성할 가치 있는 님이 있다. 네 종류란 무엇인가?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은 탑묘를 조성할 가치가 있는 님이다. 연기법을 홀로 깨달은 님은 탑묘를 조성할 가치가 있는 님이다. 여래의 제자는 탑묘를 조성할 가치가 있는 님이다. 전륜왕은 탑묘를 조성할 가치가 있는 님이다.”(D16.113)
부처님이 열반에 들기 전에 하신 말씀이다. 부처님과 연각승, 그리고 부처님의 제자와 전륜성왕의 탑묘는 조성할 가치가 있다고 했다. 탑묘라는 것이 반드시 부처님의 것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여기서‘여래의 제자(tathāgatassa sāvaka)’는 성문승을 말한다.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들어서 성자가 된 제자들이다. 오늘날에는 사쌍팔배의 성자가 될 것이다.
사쌍팔배, 또는 사향사과 성자들의 탑묘는 조성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범부 수행승은 제외가 된다. 이에 대하여 주석서에서는 “왜 세존께서는 속가에 사는 죽은 왕의 탑묘의 조성은 인정하면서, 계행을 갖춘 범부 수행승의 탑묘의 조성은 인정하지 않았는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만약 범부 수행승을 위한 탑묘의 조성이 허락되면, 스리랑카 섬은 탑묘를 위한 장소로 가득 찰 것이다.”(Smv.583)라고 설명이 되어 있다.
오늘날 역사적으로 위대한 족적을 남긴 위인이나 영웅들의 동상을 볼 수 있다. 또한 커다란 무덤을 조성하고 기념탑을 세우기도 한다. 후세에 길이길이 알리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일반사람은 대상이 되지 않는다. 불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역사적으로 실재 하였던 부처님을 기리는 불탑이나 불상을 전세계 도처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범부 수행승들을 기리는 탑묘는 보기 힘들다. 작은 부도탑 정도는 볼 수 있다. 그런데 아주 뛰어난 제자가 출현하면 스승도 각광을 받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어느 절에 가면 성역화된 부도탑군이 있다. 선의 중흥조부터 시작하여 제자의 제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섯 기의 부도탑이 조성되어 있다. 이러한 탑묘도 경배의 대상이 된다.
불상보다는 불탑이 중심이 되어야
부처님 열반후에 약 오백년간은 무불상시대였다. 그 대신 탑묘가 신앙의 구심점 역할을 했다. 부처님의 사리가 모셔진 불사리탑을 말한다. 오늘날 테라와다불교에서 볼 수 있는 불탑은 탑묘에서 발전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절에서는 불상보다는 불탑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부처님은 탑묘를 조성하라고 했다. 부처님의 탑묘 뿐만 아니라 가르침을 실천하여 성자가 된 제자들의 탑묘도 조성할 가치가 있다고 했다. 오늘날 미얀마 가바에 파고다에 안치된 사리뿟따와 목갈라나 존자의 사리도 이에 해당될 것이다. 이렇게 탑묘를 조성하는 이유는 ‘청정한 믿음’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불상을 보면서도 청정한 믿음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자신의 형상을 만들어 예배하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부처님은 삼보에 의지하라고 했다. 그 중에서도 가르침이 핵심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가르침을 섬으로 하고 가르침을 귀의처로 하지 다른 것을 귀의처로 하지 말라.”(S22.43)라고 말씀 했다. 여기서 다른 것이란 부처님 가르침 외 다른 가르침을 의미한다. 그런데 부처님을 형상화 한 불상도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부처님이 “박깔리여, 진리를 보는 자는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본다. 박깔리여, 참으로 진리를 보면 나를 보고 나를 보면 진리를 본다.”(S22.87)라고 말씀하신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금강경에서도 “만약 형상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 나를 구하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함이니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한다.(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 不能見如來)”라고 했다. 형상으로 믿음을 내는 것 보다는 가르침을 통해서 믿음을 내는 것이 더 나음을 말한다.
오늘날 불자들은 이곳저곳으로 성지순례를 떠난다. 국내에 있는 절도 성지에 해당된다. 불탑이 있고 불상이 있는 곳이면 모두 성지에 해당된다. 요즘은 해외로도 많이 나간다. 중국이나 일본, 대만과 같은 동아시아 대승불교권 국가는 물론 저 멀리 동남아시아 테라와다불교권 국가도 대상이 된다. 그러나 가장 신심이 있는 곳은 부처님이 태어나고 정각을 이룬 인도일 것이다. 이러한 성지를 순례하다 보면 청정한 신심이 절로 나온다.
성지는 불탑과 불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일까 성지순례하는 것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 ‘어떤 승원의 탑묘를 예배하자.’라고 출발하여 청정한 믿음을 지니게 되면, 도중에 죽더라도 곧바로 천상에 태어난다.”(Smv.582)라고 되어 있다. 성지를 순례하면 청정한 믿음을 내게 되어 있는데, 이러한 믿음은 부처님을 포함하여 삼보에 대한 믿음이 되고, 더 확장하면 계행에 대한 믿음이기도 하다. 그래서 성지순례하면 ‘경외의 염’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는 ‘부끄러운 앎’을 수반하는 것이라 했다. 이렇게 본다면 불상보다는 탑묘가 부처님 가르침에 더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수인을 가진 아홉 부처님
성지에 가면 경건해진다. 불탑과 불상이 모셔져 있는 성지는 거룩한 곳이다. 이곳 쉐도파고다는 불탑형식으로 되어 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불상이 여러 개 있다. 모두 아홉 개의 불상이 사리를 중심으로 하여 조성되어 있다. 불상 앞에는 요일이 적혀 있다. 미얀마에서는 태어난 요일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아홉 개의 불상은 모두 다른 모습이다. 수인(mudra)이 다른 것이다. 어떤 불상은 석굴암 불상처럼 항마촉지인 수인을 하고 있다. 또 어떤 불상은 비로자나불처럼 지권인도 있다. 이밖에도 선정인, 전법륜인, 사무외인 등 다양하다.
불상
아홉 부처님은 부처님의 별호에 따른 것이라 한다. 동아시아불교권에서는 여래십호라 하여 ①여래, ②응공, ③정변지, ④명행족, ⑤선서, ⑥세간해, ⑦무상사, ⑧조어장부, ⑨천인사, ⑩불세존 이렇게 10가지를 말한다. 그러나 테라와다불교권에서는 ①응공, ②정변지, ③명행족, ④선서, ⑤세간해, ⑥무상사, ⑦조어장부, ⑧천인사, ⑨불, ⑩세존이라 한다. 여기서 여래가 빠진 것은 ‘여래라는 말이 부처님이 부처님을 지칭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래가 빠지고 그 대신 불세존을 불과 세존으로 분리 하여 열 가지 명호로 하는 것이다. 이는 청정도론 방식이다.
테라와다불교에서는 ‘구공덕게(Nava Guṇa Gāthā)’라 하여 부처님을 아홉 가지 명칭으로 부른다. 이는 경전적 근거에 따른다. 상윳따니까야 깃발의 경을 보면“이처럼 세존께서는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 명지와 덕행을 갖춘 님,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 세상을 아는 님, 위없이 높으신 님, 사람을 잘 길들이는 님, 하늘사람과 인간의 스승이신 님, 깨달은 님, 세상의 존귀한 님이다.”(S11.3) 라고 라고 되어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이를 불수념(佛隨念)이라 한다.
불수념에서는 부처님의 아홉 가지 덕성을 염한다. 이렇게 염하는 것에 대하여 “수행승들이여, 그대들이 진실로 나를 생각하면 공포나 전율이나 소름끼치는 두려움이 사라질 것이다.”(S11.3)라고 말씀했기 때문이다. 구공덕에서 불(佛)이 빠진 것은 붓다라는 말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로지 부처님에게만 부여되는 아홉 가지 덕성을 염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구공덕게는 다음과 같다. 영역과 청정도론을 참고하여 편집한 것이다.
구공덕게
(Nava Guṇa Gāthā , The Nine Virtues of The Buddha)
1) 거룩한 님(아라한, 應供)
Arahaṃ arahoti nāmena, 아라항 아라호띠 나-메나
arahaṃ pāpaṃ na kāraye, 아라항 빠-빵 나 까-라예
arahattapphalaṃ patto, 아라핫땁팔랑 빳또
arahaṃ namato namo. 아라항 나마또 나모
By name He is an Arahant as He is worthy
Even in secret He does no evil
He attained the fruit of Arahantship
To Thee, the Worthy one, my homage be.
공양을 받을만한 분이기에,
비밀이 없기에, 어떤 악의도 없기에,
그분을 거룩한 님이라 합니다.
거룩한 님, 오직 그 분께 귀의합니다.
2)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삼마삼붓다, 正等覺者)
Sammāsambuddha-ñāṇena, 삼마-삼붓다 냐-네나
sammāsambuddha-desanā, 삼마-삼붓다 데사나-
sammāsambuddha-lokasmiṃ, 삼마-삼붓다 로까스밍
sammāsambuddha te namo. 삼마-삼붓다 떼 나모
By wisdom He is Sammasambuddha
By teaching He is Sammasambuddha
A fully Enlightened one is He in the world
To Thee, the fully Enlightened one, my homage be.
지혜로서 모든 법을 바르게 깨달으신 분,
바른 가르침을 주신 분,
이 세상에서 위 없는 완전한 깨달음을 이룩하신 분,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 오직 그 분께 귀의합니다.
3) 명지와 덕행을 갖춘 님(윗자짜라나삼빤나, 明行足)
Vijjācaraṇasampanno, 윗자-짜라나삼빤노
tassa vijjā pakāsitā, 땃사 윗자- 빠까-시따-
atītānāgatuppanno, 아띠-따-나-가뚭빤노
vijjācaraṇa te namo. 윗자-짜라나 떼 나모
He is endowed with wisdom and knowledge
His wisdom is made known
The past, future and present He knows
To Thee who is endowed with wisdom and
knowledge, my homage be
지혜와 지식을 완전하게 갖추신분,
일체지를 원만하게 성취하신분,
삼세에 걸쳐 명지와 덕행을 구족하신 분,
명지와 덕행을 갖춘 님, 오직 그 분께 귀의합니다.
4)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수가따, 善逝)
Sugato sugatattānaṃ, 수가또 수가땃따-낭
sugato sundarampi ca, 수가또 순다람삐 짜
nibbānaṃ sugatiṃ yanti, 닙바-낭 수가띵 얀띠
sugato nāmato namo. 수가또 나-마또 나모
He is Sugata being self-disciplined
Being good He is Sugata
In the sense of going to the good state of Nibbāna
To Thee, the Sugata, my homage be.
오염원으로 다시 돌아 오지 않는 분,
행함이 아름다워 피안으로 잘 가신 분,
닙바나라는 멋진 곳으로 가신 분,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 오직 그 분께 귀의합니다.
5) 세상을 아는 님(로까위두, 世間解)
Lokavidūti nāmena, 로까위두-띠 나-메나
atītānāgate vidū, 아띠-따-나-가떼 위두-
saṅkhārā-sattamokāse, 상카-라- 삿따모까-세
lokavidū nāma te namo. 로까위두- 나-마 떼 나모
By name He is Lokavidu
He knows the past and future
Things, beings and space He knows
To Thee, the Knower of worlds, my homage be.
모든 방면에서 세상을 잘 아시는 분,
과거와 미래의 모든 일을 아시는 분,
세상의 끝에 도달 하신 분,
세상을 아는 님, 오직 그 분께귀의합니다.
6) 위없이 높으신 님(아눗따라, 無上士)
Anuttaro ñāṇasīlena, 아눗따로 냐-나시-레나
yo lokassa anuttaro, 요 로깟사 아눗따로
anuttaro pūjalokasmiṃ, 아눗따로 뿌-자로까스밍
taṃ namassāmi anuttaro. 땅 나맛사-미 아눗따로
By wisdom and conduct unrivalled is He
Who is the Unrivalled of the world
In this world He is revered as an Incomparable one
That Incomparable one, I salute.
지혜와 공덕에 있어서 경쟁자가 없는 분,
이 보다 더 높은 자가 없는 분,
더 이상 대적할 자가 없는 가장 존경 받는 분,
위없이 높으신 님, 오직 그 분께 귀의합니다.
7) 사람을 잘 길들이시는 님(뿌리사담마사라티, 調御丈夫)
Sārathī sārathī devā, 사-라티- 사-라티- 데와-
yo lokassa susārathī, 요 로깟사 수사-라티-
sārathīpūjalokasmiṃ, 사-라티뿌-자로까스밍
taṃ namassāmi sārathī. 땅 나맛사-미 사-라티-
O Charioteer, the King Charioteer
A charioteer, a clever trainer is He of Deva
Who is a clever charioteer of the world
And is a respectful charioteer in this world,
That great trainer, I salute.
길들여야 할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
가르쳐야 할 사람을 잘 가르치는 분,
이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조련사, 가장 존경 받는 조련사,
사람을 잘 길들이시는 님, 오직 그 분께 귀의합니다.
8) 하늘사람과 인간의 스승이신 님(삿타데와마눗사남, 天人師)
Deva-yakkha-manussānaṃ, 데와 약카 마눗사-낭
loke aggaphalaṃ dadaṃ, 로께 악가팔랑 다당
adantaṃ damayantānaṃ, 아단땅 다마얀따-낭
purisājañña te namo. 뿌리사-잔냐 떼 나모
To Devas, Yakkhas and men in this world
He gives the highest fruits
Among those taming the untamed
To Thee, O Remarkable one, my homage be.
신들과 인간을 열반으로 인도 하는 최고의 스승,
길들여진 존재나 길들여지지 않은 존재에게도,
최고의 과를 주는 분,
하늘사람과 인간의 스승이신 님, 오직 그 분께 귀의합니다.
9) 세상에 존귀하신 님(바가와, 世尊)
Bhagavā bhagavā yutto, 바가와- 바가와- 윳또
bhaggaṃ kilesa-vāhato, 박강 낄레사 와-하또
bhaggaṃ saṃsāra-muttāro, 박강 상사-라 뭇따-로
bhagavā nāma te namo. 바가와- 나-마 떼 나모
The Bhagava is repleted with fortune
He has destroyed all passions
He has crossed the ocean of Saṃsāra
To that Blessed one, my homage be.
행운으로 충만하신 분,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 모든 감각적욕망을 부순 분,
삼사라의 대양을 건너신 분, 축복받은 분,
세상에 존귀하신 님, 오직 그 분께 귀의합니다.
진지한 표정의 미얀마 불자들
안내자 툰툰님과 함께 성지순례를 했다. 안내자는 성지에 갈 때 마다 예배를 했다. 삼배를 올리고 난 다음 조용히 앉아 합장하고 눈을 감는 모습을 보았다. 입으로는 무언가 읊조리는 모습으로 보아 주문을 외는 것 같기도 하고 기도를 올리는 것 같기도 하다. 테라와다 불교권 국가이기 때문에 서원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 표정이 너무 진지 했다.
신심 있는 불자들은 황금으로 장엄된 전당에서 무언가 발원을 하는 듯 하다. 대단히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부처님이 모든 소원을 들어 주는 전지전능한 분은 아닐 것이다. 부처님은 전지(全知0하고 전선(全善)하지만 업장을 해소해 줄만큼 전능(全能)한 분은 아니기 때문이다. 불자들이 사리와 불상을 하염없이 바라 보는 것은 어쩌면 업이 자신의 주인이고, 자신이 업의 상속자임을 확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19-03-12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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