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이렇게 정진하면 되겠구나!” 직지사 위빠사나 집중수행18

담마다사 이병욱 2019. 8. 15. 12:18

 

이렇게 정진하면 되겠구나!” 직지사 위빠사나 집중수행18

 

 

6일차 2019 7 7일 오전, 간담회

 

새벽 회향법문이 끝났다. 이제 집에 가는 일만 남았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6일 일정에서 이제 오전일정만 남은 것이다. 아침식사가 끝나면 법당 청소를 해야 한다. 5 6일 동안 대부분을 보낸 곳이다. 법당청소가 끝나면 오전 9시 반부터 좌담회가 예정되어 있다. 동그랗게 앉아서 그동안 보고 듣고 느꼈던 것을 한사람씩 돌아가며 이야기하는 시간이다.

 

법당에 앉아 있으면

 

2019 7 7일 오전 아침식사가 끝나고 다시 만덕전 명상홀로 갔다. 그러나 이전과 다르게 파장 분위기가 나는 것 같다. 사람들도 몇 보이지 않고 집중이 되지 않는다. 바로 옆에 있는 직지사로 향했다. 직지사 경내를 걸으면서 산책할 생각이었다.

 

이른 아침 직지사는 한가하고 한산했다. 7월초의 날씨이기 때문에 온도와 습도는 적당하여 쾌적했다. 녹음은 우거지고 적재적소에 배치된 가람은 산뜻해 보였다. 일요일 이른 아침이기 때문에 사람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대웅전에 들어갔다. 그동안 5 6일 동안 살면서 산책길에 종종 들이다.

 




법당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안하다. 왜 그럴까? 그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등 육근이 모두 청정해지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이는 것은 불상과 골동품을 보는 듯한 예술품들이다. 법당에 앉아 있으면 마치 천상에 있는 듯하다. 이럴 때 반야용선을 타는 듯 하다고 말한다. 법당자체가 반야용선이기 때문이다.

 

귀로 들리는 것은 풍경소리이다. 바람에 댕그렁거리는 풍경소리는 고요한 산사를 잘 특징짓는다. 코로는 향내를 맡는다. 누군가 향불을 피웠을 때 향내가 가득하다. 법당에 앉아 있으면 육근이 청정해진다. 그래서일까 어느 노보살은 법당에 앉아 있으면 편안하다고 했다.

 

통증을 지켜 보았는데

 

오전 6 50분에 삐걱거리는 법당 한켠에 자리 잡았다. 잠시 5분 가량 입정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앉아 있다 보니 집중이 잘 되었다. 온도와 습도가 적당하여 공기는 상쾌하고 쾌적했다. 보이는 것은 온통 불상과 탱화, 그리고 오래 묵은 단청 뿐이다. 더구나 대웅전은 가장 명당자리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집중이 잘 되는 것 같았다.

 

방석 없이 마루바닥에 평좌를 하고 앉았다. 배에 움직임에 집중했다. 배운대로 하는 것이다. 호흡과 관련하여 배의 움직임이 있는데 불러오고 꺼지는 것이다. 배가 부를 때는 부름이라고 알고, 배가 꺼질 때는 꺼짐이라고 아는 것이다. 이것을 놓치지 않고 계속 관찰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집중이 된다.

 

밖에서 소리가 났다. 어느 스님과 신도들이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젊은 스님인 듯한 사람이 사야도에 대하여 말했다. 수행하러 온 사람들에게 하는 말 같았다.  고승을 만난 것은 전생부터 큰 인연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고승으로부터 지도받은 것은 로또 맞은 것과 같다고 했다. 이런 기회가 자주 없음을 말한다. 그런 소리도 잠시후에 잠잠해졌다.

 

계속 맨 마루바닥에 앉아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맨바닥에 앉아 있으면 엉덩이가 배겨서 오래 버티지 못하는데 삼십분이 지나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슬슬 다리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평좌한 오른쪽 다리가 저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럴 때 늘 듣는 말이 있다. 자세를 바꾸지 말고 종칠 때까지 지켜 보라는 것이다. 인내가 닙바나로 인도한다는 말이 . 끝까지 통증을 관찰하라는 말이다.

 

다리에 통증이 생겨나면 두려운 마음이 든다. 이렇게 하다가는 불구가 되는 것 아닌지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럴 일은 없다고 한다. 통증을 지켜 보다 보면 사라진다는 것이다. 통증의 생멸을 보는 것이다. 통증처럼 법의 성품을 관찰하는데 있어서 좋은 것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초기에는 통증을 잘 관찰하라고 말한다.

 

통증을 지켜 보았다. 발생부터 사라질 때까지 지켜 보았다. 통증이 발생 했을 때는 몹시 저리고 쑤시고 결리는 등 온갖 현상 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통증 그 자체는 영원한 것이 아니다. 마치 파도가 밀려 오듯이, 일파 다음에 이파, 그리고 이파 다음에 삼파 식으로 끝없이 밀려 오는 것이다. 그 중간중간에 잠시나마 휴지기도 있다. 아무리 심한 통증이라고 끝임이 없는 것이 아니다. 잘 관찰하면 끊임이 있다.

 

통증은 처음에는 격렬했다. 마치 굴복시키려 하듯이 맹렬했다. 그러나 지켜 보기 시작하자 점차 약화 되었다. 오른쪽 다리가 마치 피가 통하듯이 쏴아하는 시원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시간이 이삼십분 지나자 통증은 현저하게 약화되었다. 통증은 저절로 왔다가 저절로 사라지는 듯 했다.

 

지켜 보면 사라진다

 

수행자는 달리 해야 할 것이 없다. 일이 없는 수행자는 일을 하지 않는다. 수행자는 지켜 보기만 할 뿐이다. 지켜 보는 것이 일하는 것이다. 저절로 일어났다가 저절로 사라지는 것을 단지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조건발생이다. 일어날 만하기 때문에 일어나고 사라질만하기 때문에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 조건도 무상한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물질은 무상한 것이다. 물질을 생겨나게 하는 원인도 조건도 무상한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무상한 것에 의해 생겨나는 물질이 어찌 무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S22.18)라고 말씀했다.  물질뿐만 아니라 느낌, 지각, 형성, 의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통증이 사라졌다. 관찰하여 통증이 사라진 것이다. 5 6일 집중수행 마지막 날 6일차에 직지사 대웅전 법당에서 관찰한 것이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이번 집중수행 의미가 있다. 사야도가 하라는대로 해서 관찰 했기 때문이다. 느낌을 관찰하여 성품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객관적으로 죽 지켜 보았기 때문이다. 기쁨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런 기쁨도 알아차림의 대상이라고 했다.

 

모든 것은 조건 발생하는 것이다. 통증도 조건 발생한 것이다. 통증이 발생할 만한 조건이 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수행자는 단지 관찰하면 그만이다. 관찰하는 것이 수행자의 일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아난다여, 느낌은 무상하고 조건지어지고 연기된 것으로 부서지고야 마는 것, 무너지고야 마는 것, 사라지고야 마는 것, 소멸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곳이 소멸하면 소멸이라고 한다.”(S22.21)라고 말씀했다.

 

좌선할 때 복부의 움직임이나 행선할 때 걸음의 움직임을 관찰 할 때 아는 마음이 생겨난다. 주의 깊게 관찰하면 신체의 움직임과 이를 아는 마음 두 개만 있게 된다. 그것 외 다른 것은 없다. 움직임과 아는 마음의 주체가 되는 나라는 것이 없음을 알게 된다. 오로지 명색과정, 즉 정신과 물질과정만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명색과정은 생멸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우 꾼달라 사야도는 위빠사나 수행자의 근기를 돕는 아홉요인에서 배의 일어남을 알아차릴 때, ‘일어나는모양이 바로 사라질 뿐만 아니라, 그것을 아는 마음도 따라서 사라진다. 두 가지가 모두 사라지며, 두 가지가 모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329)라고 말했다. 지켜 보면 사라짐을 말한다.

 

끊임 없는 명색과정일 뿐

 

나라는 존재는 끊임 없는 명색과정일 뿐이다. 이를 달리 말하면 오온의 생멸과정일 뿐이라는 것이다. 좌선이나 행선을 하여 명색과정을 관찰할 때 전체적으로 아는 마음이 있다. 이 마음을 자아라고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오온에서 의식(viññāa)도 생멸한다. 명색이 정신-물질적 과정의 연속체이기 때문에 생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이를 전체적으로 아는 마음 역시 생멸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초기경전에서 부처님이 수행승들이여, 의식은 무상한 것이다. 의식을 생겨나게 하는 조건도 무상한 것이다. 수행승들이여, 무상한 것에 의해 생겨나는 의식이 어찌 무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S22.18)라고 말씀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명색도 무상한 것이고 의식도 무상한 것이라면 집착할 것이 없다. 나의 것, 내 것, 나의 자아라고 집착할만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수행승들이여, 의식은 무상한 것이다.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이다. 괴로운 것은 실체가 없는 것이다. 실체가 없는 것은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올바른 지혜로 관찰해야 한다.”(S22.15)라고 말씀했다.

 

직지사 대웅전에서 오전 6 50분부터 한시간 가량 앉아 있었다. 그 동안 통증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지켜 보았다. 5 6일 동안 집중수행하면서 제대로 관찰한 것이다. 마치 대단한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마음이 기쁘고 흡족했다. 그러나 가장 기초단계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마치 제멋대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 들에 대하여 제 3자가 보듯이 객관적으로 관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법당청소를 하고

 

오전 8시부터 법당 청소가 시작 되었다. 수행자들은 각자 자신들의 방에 가서 청소를 하는 등 집에 갈 준비를 한 다음에 법당에 모였다. 마치 작은 초등학교 운동장처럼 넓은 만덕전 대법당을 청소하기 위한 것이다. 어느 수행자는 바닥을 청소기로 돌리고, 어느 수행자는 걸레질을 했다. 서로 합심해서 아니 금방 끝이 났다. 보기에도 한결 깨끗해 보였다.

 

 



조상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청소가 끝나고 간담회를 가졌다. 법당에 빙 둘러 앉았다. 우 에인다까 사야도도 자리 잡았다. 혜송스님을 비롯하여 직지사 포교국장 스님도 참석했다. 모두 참석하지는 않았다. 바쁜 일이 있어서 먼저 뜬 사람도 있었다. 모두 40명 가량 참석했다.

 




사야도가 말했다. 직지사 도량을 보면 과거 조상과 스승과 승가의 노력이 보인다고 했다. 나라가 발전하고 융성했던 것을 짐작케 해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불교세는 매우 약하다고 했다. 약화된 원인은 조상이 물려준 물적 정신적 유산에 대하여 책임완수를 못한 것과 같다고 했다. 한때 빛나던 시대가 있었지만 후손이 약해서 조상의 기대를 저 버린 것이다.

 

사야도는 조상에 대한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다시 옛날처럼 불국토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도 알려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만 알고 있을 것이 아니라 널리 알려서 불교의 저변을 확대해야 함을 말한다. 그래서 사야도는 불교가 옛날대로 융성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전도 잘 하기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사야도에 따르면 불교는 불멸후 삼백년 가량부터 약화 되었다고 한다. 아소까 대왕 시절에 전성기를 누렸으나 고작 삼백년 가량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아소까 대왕은 전세계에 전법사를 파견했는데 자신의 아들과 딸, 권속들 보냈다는 것이다. 스리랑카에 최초로 불교를 전파한 마힌다장로와 상가밋따 장로니를 말한다. 아소까의 전법에 대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동남아시아에까지 불교가 퍼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사야도는 불교가 약해지는 원인으로 반드시 외부의 요인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내부적 요인도 있음을 말한다. 잘 계승하고 발전시키지 못했을 때 약화된다고 했다. 그런데 미얀마는 외부적 요인을 매우 지혜롭게 극복했다고 말했다. 영국으로부터 백년 동안 식민통치를 받았지만 미얀마 불교를 유지했음을 말한다. 그렇게 한 데에는 상가와 신도단체가 합심하여 힘을 모으고 갖가지 노력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상들이 물려준 이 고귀한 가르침과 유산에 대하여 책임완수를 한 것이다.

 

사야도는 근본불교, 대승불교 등으로 분별하지 말자고 했다. 대승불교는 대승불교 나름대로 노력에 의해서 오늘날까지 있는 것이고, 근본불교 역시 근본 불교 나름대로 노력에 있어서 여기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모두 부처님 가르침을 기본으로 한 것이다. 그래서 사야도는 우리는 일불제자입니다.”라고 말했다.

 

사야도는 일불제자로서 우리들은 내 주변과 가족들과 같이 가고 데려와야 한다고 말했다. 가정이 화목하면 주변으로 부처님 가르침을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고 내 아들 대에서 불교가 약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한사람에 열명씩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고 본인도 실천하는 불자, 수행하는 불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 계신 분들은 복이 많은 분들이구나!”

 

사야도의 모두 발언에 이어 직지사 포교국장의 인사말이 있었다. 이후 참석자들이 돌아 가면서 한마디씩 했다. 일종의 삼분스피치인 것이다. 스피치가 끝나면 싸두! 싸두! 싸두!”라며 서로가 칭찬해 주었다.

 

A스님은 여름에 미얀마에 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자리가 마련되어서 참가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사야도의 법문을 듣고 한마디로 위리야(노력)”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아무리 법문을 많이 들어도 수행력이 없으면 내것이 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B스님은 10년전에 만덕전에 왔다고 한다. 그때 당시 수계를 받기 위해 한달 가량 살았는데 몸무게가 15키로 빠진 이야기를 했다. 만덕전 생활이 힘들었음을 말한다. 스님은 우 에인다까 사야도에 대하여 이제까지 만나본 사야도 중에서 가장 친절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대부분 스승들이 자세하게 알려주지도 않고 지도해주지 않았는데 우 에인다까 사야도는 세세한 것까지 친절하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여기 계신 분들은 복이 많은 분들이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담마의 향기에 흠뻑 취해서

 

A수행자는 아들과 함께 왔다. 대학교 1학년 된 아들과 함께 왔기 때문에 가족제도가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위빠사나 집중수행은 처음이라고 했다. 사야도 법문이 좋았다고 했다. 사야도 말 대로 자기 전까지 사띠가 끊이지 않게 하려고 노력했으나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해 보겠다고 했다.

 

B수행자는 사야도의 법문과 수행지도를 받은 것에 대하여 만족함을 표현했다. 그래서“2600년 전의 부처님은 없지만 그 부처님이 여기에 계셨구나!”라고 생각했는 것이다. 이어서 사야도가 말한 그대로 따르면 되겠구나.”라고 말했다.

 

C수행자는 담마의 향기에 흠뻑 취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수행을 돌아 본 계기가 됐다고 했다. 장애 없이 극복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D수행자는 이런 기회를 열망했는데 혜송스님과의 인연으로 이런 기회를 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최상의 조건을 만들어 준 것에 대해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사야도 말대로 정진과 포교 잊지 않겠다고 했다.

 

미얀마 수행자의 격려 메시지

 

미얀마 사람도 한마디 했다. 이번 집중수행에 미얀마 사람들 네 명이 참가 했다. 남자 두 명과 여자 두명이다. 남자 한명은 사야도 주치의 겸 깝삐야(淨人) 역할을 했다. 또 다른 남자 한명은 키가 큰데 미얀마에서 성공한 사업가라고 한다.

 

미얀마 사람들은 아침 저녁 법문시간에 빠지지 않았다. 좌선과 행선도 함께 했다. 특히 둘 째 날에는 공양제자로서 수행자들을 위하여 아침과 점심을 제공했다.

 

키 큰 미얀마 수행자는 먼저 불법승 삼보에 감사하고 혜송스님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특히 미얀마 양곤 외곽에 담마마마까 국제선원을 창건하여 우 에인다까 사야도를 모시고 후원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감사한다고 말했다. 또 혜송스님이 정통위빠사나를 한국에서 실천수행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것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그는 직지사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좋은 환경과 훌륭한 선방에서 수행할 수 있도록 허락한 직지사 주지스님과 운영진에 대하여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한국에서 다시 불법이 융성하여 불법이 꽃필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만남의 기회를 갖도록 후원하자고 말했다.

 

이렇게 정진하면 되겠구나!”

 

E수행자는 이전에 위빠사나 수행한 적이 있다고 했다. 알아차림 한다고 노력은 했지만 이번에 정밀하게 몸관찰하여 통증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 보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정진하면 되겠구나!”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사띠 끈을 놓치지 않고 일상에서도 아침 저녁으로 1시간 이상 정진할 것을 서원했다고 말했다.

 

F수행자는 직지사 백련암 신도이다. 어제 9시에 왔다고 했는데 아침에 합류했다고 한다. 15년전에 혜송스님으로부터 지도받은 것이 인연이라고 했다. 그때 3 4일 일정으로 수행했다고 한다. 엄마에 대한 애착, 남편에 대한 원망 같은 것이 위빠사나를 하면서 사라졌다고 한다. 이제 어떤 것이 행복인지 알았으니 이 좋은 것을 실천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G수행자는 대구에서 왔다. 언젠가 이곳 만덕전에서 혜송스님의 지도를 받아 정진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이전에는 세속의 번뇌 속에서 살았으나 이제는 이 공부를 받아들이고 난 후부터는 실체가 없다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모든 것이 무상한 것임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래처 사람들이 싫은 소리 해도 더욱더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그 결과 사업도 날로 발전했다고 한다. 사띠를 늘 잊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불법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H수행자는 호두마을에서 사야도로부터 지도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십삼사년전의 일이라고 한다. 그때 당시 사야도의 법문을 듣고 환희심이 났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 집중수행에 참가하여 다시 법문을 들어 보니 목소리가 그대로라고 했다. 목소리에 환희를 느낀 것 같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서인지 목소리도 늙은 것 같아 안타까워하는 것 같았다. 목소리도 무상함을 말하고자 한 것이다. H수행자는 직지사에서 수행하니 너무 좋았다고 했다. 호두마을 등 여러 수행처를 다녀 보았지만 이런데서 위빠사나 수행하니 너무너무 행복했습니다.”라고 말했다.

 

I수행자는 직지사 백련암 공양주 보살이라고 소개했다. 혜송스님이 사띠하라고 노래 부르듯이 항상 말했는데 자리에 앉아 보니 진심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이 밖에 수행자들이 보고 듣고 느낀 소감을 짤막하게 말했다.

 

미얀마에 있는 것과 똑 같은 효과

 

간담회가 끝났다. 헤어지기가 아쉬워 기념촬영을 했다. 남는 것은 사진 밖에 없다고 한다. 입재할 때 80명 가량 되었으나 기념사진 촬영할 때는 40명 가량 되었다. 한때 만덕전 명상홀에서 치열하게 정진한 증거사진이 될 것이다.

 




이런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마가스님은 서울 동국대 대각전 특별법회 마지막 날에 마이크를 잡고 이번 직지사 템플스테이 하면 미얀마에 간 것과 똑같습니다.”라고 말했다. 마가스님이 말한 그대로이다. 미얀마에 가지 않고서도 미얀마에 있는 것과 똑 같은 효과를 보았다. 이런 기회가 오면 잡아야 한다.

 

이번 집중수행에서 보고 듣고 느꼈던 것을 기록했다. 요즘은 인터넷시대이기 때문에 네트워크만 깔려 있으면 모든 정보는 오픈되고 공유된다. 비록 5 6일이라는 짧은 일정이지만 십일 또는 그 이상 일정을 압축한 것이기 때문에 사야도가 한 말을 한 개도 빠지지 않고 기록하려고 노력했다. 수행기를 쓰다 보니 18편이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2019-08-1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