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내가 내일 서초동촛불에 나가는 이유

담마다사 이병욱 2019. 10. 4. 08:49

내가 내일 서초동촛불에 나가는 이유

 

 

새벽에 잠이 깼다. 스마트폰을 보니 4시 이전이었다. 다시 잠을 청하려 했으나 오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속이 불편했다. 어제 늦게 식사했기 때문이다. 늦게 일을 마치고 허겁지겁 이것저것 먹은 것이 탈 난 것이다.

 

속이 불편하니 모든 것이 불편했다. 시간 지나면 괜찮아 질것이다. 그러나 당장 불편하니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앉아도 보고 걸어도 보았다. 매실액기스를 찬물에 혼합하여 먹어도 보았다. 속수무책이었다. 이것도 저것도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속을 제압할 수 있을까? 한가지 방법이 떠 올랐다. 차를 마시는 것이다.

 

집에 보이차가 있다. 선물로 받은 것이다. 집에서 차 마실 일이 없지만 차문화를 즐기기 위해 가져다 놓은 것이다. 차기도 준비되어 있다. 물만 끓이면 된다. 속이 안좋을 때 보이차를 마시면 쑥 내려가는 듯한 경험이 있다. 이번에도 그렇게 했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뜨거운 찻잔을 두 손으로 잡았다. 손바닥으로 뜨거운 기운을 느끼기 위해서이다. 손바닥은 배와 관련이 있다. 뜨거운 찻잔이 손바닥에 닿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따가왔다. 이번에는 뜨거운 찻잔을 배에 대었다. 종종 차기를 배에 대는 경우도 있다. 손바닥과 배로 뜨거운 기운이 전달 되었다. 다음은 목구멍으로 넘기는 일이다.

 

차를 천천히 마셨다. 마실 때 입에 댐, 입에 댐” “넣음, 넣음” “넘김, 넘김하는 식으로 싸띠 하며 마신 것이다. 뜨거운 찻물을 두 세 차례 걸쳐 삼켰다. 넘길 때 감촉을 느꼈다. 소리가 날 정도로 꾸룩꾸룩 삼켰다. 보이차 특유의 향과 함께 뜨거운 물이 식도를 타고 위까지 주루룩 내려갔다. 그때 내려가는 소리기 나는 듯 했다. 이렇게 몇 차례 반복했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나았다. 속이 평정된 것이다.

 

속이 불편하면 괴롭다. 어서 벗어나고픈 생각밖에 없다. 그럴 때 내가 고통에서 벗어 나기를!”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몸과 마음이 고통스럽고 괴로울 때 주변과 이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내가 편안해야 남도 편안하길 바라는 것이다.

 

내가 지복을 누리고 있다면 남들도 나와 같이 지복을 누리는 것을 바라는 마음이 생겨난다. 마치 해외여행 가서 맛있는 것을 먹을 때 가족생각 나는 것과 같다. 좌선을 하여 욕망과 분노가 사라져 편안한 상태가 되었을 때 남들도 그렇게 되길 바리는 것과 같다. 가까운 사람부터 시작하여 먼 사람에 이르기까지, 나와 무관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모두 행복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속이 편안해지자 비로소 남들이 생각났다. 나와 관련 없는 먼 사람들도 떠 올랐다. 특히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떠 올랐다. 조국과 조국의 가족들이 떠 오른 것이다. 그들이 당하는 고통이 내고통처럼 느껴졌다. 나만 그런 것일까?

 

저쪽 사람들은 잔인한 것 같다. 별거 아닌 것을 큰 죄인 것처럼 뒤집어 씌어 조리돌림하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크게 부풀려서 죄인 취급하는 것이다. 더구나 가학(加虐)하고 있다. 욕먹은 자를 욕하고 맞은 자를 또 때리는 식이다. 마치 집단으로 분노를 즐기는 것 같다. 그들의 가학성은 변태적이다.

 

조국과 조국가족은 덫에 걸렸다. 중상모략과 권모술수의 희생양이 되었다. 언론으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다. 사람들은 검찰과 언론의 말만 믿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눈 밝은 사람, 귀 밝은 사람들은 알고 있다. 서초동에 모인 사람들이 이를 증명한다. 근거없는 중상모략의 덫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

 

정의는 책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웃이 고통 받을 때 함께 하는 것이 정의로운 일이다. 불의에 저항하는 것이 정의이다.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정의는 승리하게 되어 있다. 정의롭지 않은 일을 보고 가만 있을 수만은 없다. 내가 내일 서초동촛불에 나가는 이유이다.

 

 

2019-10-04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