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나는 남에게 기쁨을 주는 삶을 살고 있는가

담마다사 이병욱 2019. 10. 8. 09:06

나는 남에게 기쁨을 주는 삶을 살고 있는가

 



 

갑자기 추워졌다. 비가 내리고 난 이후 온도가 급강하 했다. 잠 잘 때 추위를 느낄 정도이다. 장롱 속에 묻혀 놓았던 전기장판을 꺼냈다. 작년에 산 극세사 전기장판이다. 등이 따스하니 세상이 따뜻한 것 같다. 가을이 깊어졌다.

 

바닥은 따스하지만 위가 허전하다. 새벽 어둠속에서 담요를 찾았다. 담요 비슷한 무릎요가 걸렸다. 기내 서비스용 담요같은 것이다. 양모이어서일까 남미 인디언식으로 어깨두르니 따스하다. 새벽 어둠에 앉아 있으니 이런저런 생각이 떠 올랐다. 영화 버킷리스트중에 한 대사가 생각났다.  “나는 남에게 기쁨을 주는 삶을 살고  있는가?"”라는 말이 생각에 생각을 꼬리물었다.

 

어제 아침 인간시대를 보았다나이가 97세 된 노인에 대한 이야기이다. 나이에 비해 20세 가량 젊어 보이는 남자는 혼자 살고 있다. 너무 오래 살아서인지 3년전 아내를 먼저 보냈다고 한다. 노인은 나이에 비해 건강하다. 방송에서는 축복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왠지 슬프고 측은해 보였다. 그 나이까지 살면서 주변에 많은 사람들을 먼저 보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 그린마일에서 주인공은 젊게 오래 살았다. 아마 120세 이상 살았던 것 같다. 그것은 초능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간수로 일하면서 초능력을 가진 죄수로 부터 온 것이다. 그런데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먼저 보내는 괴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모조리 먼저 보내고 홀로 남았을 때 즐거움 보다 괴로움이 더 많을 것이다.

 

누구나 건강하고 오래 살기를 바란다. 나이 든 사람들에게는 오래 사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이 예의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장수축원이 있다. 테라와다에서는 장로가 보시자에게 아유 반노 수캉 발랑!(āyu vaṇṇo sukha bala)”라고 축원해준다. 법구경에도 실려 있는 이 문구는 장수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건강하기를!”(Dhp.109)이라고 해석된다.

 

장로가 네 가지 축원을 해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하게 건강하게 행복하게 즐기며 살라는 것일까? 장로가 네 가지 장수축원을 해 주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오래오래 선업공덕을 지으라는 것이다. 죽어서 가져갈 것은 공덕밖에 없기 때문이다.

 

장수하는 노인을 보면 생존하기에 급급한 것 같다. 그래서 노인건강은 건강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오늘 건강해 보여도 내일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장례식장 가 보면 어제까지 밥 잘 잡숫던 노인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라는 말을 듣는다. 노인은 언제 죽을지 알 수 없다. 아니 사람은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다. 지금 이렇게 시퍼렇게 살아 있어도 내일 단절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인생은 즐기는 거야!”라며 막 살 수 없다. 종로3가 지하철 포스터에 청년이여, 이 순간을 즐겨라. 지나면 후회한다.”라는 구호는 잘못된 것이다

사람들은 천년만년 살 것처럼 착각한다. 지금 이 행복한 순간이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듯이, 이 건강 역시 오래 가지 않는다. 97세 노인을 보면서 나도 그때까지 건강하게 살 것 같지만 희망사항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남에게 기쁨을 주는 삶이다. 영화 버킷리스트에서도 즐기는 항목만 있지는 않다. 영화에서 시한부 삶을 사는 흑인 주인공은 역시 시한부 백인 부자친구에게 자네는 즐기는 삶만 살았는가? 남에게 기쁨을 주는 삶도 살았는가?”라며 물어 보는 장면이 있다.

 

사람들은 건강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불교교양대학 카톡방이 있다. 어느 법우님은 건강에 대한 글을 자주 올린다. 평소 대화할 때도 건강이야기를 주로 한다. 사람들이 건강이야기를 자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먹고 살만하다고 볼 수 있다. 애써 모아 놓은 재산을 그대로 두고 갈 수 없는 것이다. 최대한 오래 살아서 즐겨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한다.

 

부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건강인 것 같다. 부자들이 사회참여 보다는 개인적 건강에 관심보이는 이유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공중파방송을 포함하여 케이블채널을 보면 건강과 관련된 프로가 매우 많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되 즐기는 삶을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아유 반노 수캉 발랑!”누구나 장수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불교에서 사대축원은 즐기는 삶에 대한 것이 아니다. 오래오래 살아서 공덕을 많이 지으라는 것이다. 오래살면 오래살수록 그에 비례하여 공덕의 양도 늘어나기 때문이다. 즐기는 삶보다는 기쁨을 주는 삶이다. 나는 이제까지 살면서 남에게 어떤 기쁨을 주었을까?

 

 

2019-10-08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