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빠알리어로 챈팅 해야 하는 이유, 아산 담마위하라 담마끼띠 스님과 함께

담마다사 이병욱 2019. 11. 6. 23:39

 

빠알리어로 챈팅 해야 하는 이유, 아산 담마위하라 담마끼띠 스님과 함께

 

 

선지식을 만난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자애경(mettasutta)에서도 인내하고 온화한 마음으로 수행자를 만나서 가르침을 서로 논의하니,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Stn.266)라고 했다. 감사할 줄 아는 마음으로 때에 맞추어 가르침을 듣는 것, 이것이야말로 더 없는 축복입니다.”(Stn.265)라고 했다.

 

수행자를 만나서 가르침을 듣고 가르침을 논의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꼭 만나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기쁘고 즐거운 일이다. 만나기를 바란다면 찾아 가야 할 것이다. 담마끼띠(Dhammakitti: 法稱)스님도 그런 분 중의 하나이다.

 

담마끼띠스님과의 인연

 

담마끼띠스님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블로그에 남긴 기록을 보니 2011년에 처음 보았다. 그때 당시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한국명상원에서 빠알리어 강좌를 하고 있을 때였다. 단 한번 듣는 것으로 그쳤으나 깊이 인상에 남았다. 그것은 스리랑카 불교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인상적인 말은 법구경외우기에 대한 것이다.

 

담마끼띠 스님에 따르면 스리랑카에서는 비구가 되려면 비구계를 받기전에 법구경을 빠알리어로 외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도 역순으로도 외워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무엇을 말할까? 중요한 빠알리경전을 모두 외울줄 아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스리랑카에서는 빠알리어가 매우 비중있게 다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때 담마끼띠 스님은 동국대 박사과정 학생이었다.

 

담마끼띠스님에 대한 글을 2014년에 또 한번 썼다. 그것은 다문화시대에, 담마끼띠 빅쿠의 겨울’(2014-02-21)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그때 당시 EBS에서 담마끼띠스님에 대한 방송을 했었는데 방송을 보고서 글을 쓴 것이다. 그때 불교문화원 설립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글의 말미에 다음과 글을 남겼다.

 

 

우리나라에는 스리랑카 출신 노동자들이 4만명이 머물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을 위한 종교시설은 열악하다. 그래서 한국절에 가서 법회를 보고 있다. 그래일까  스리랑카불자공동체에서는 여법한 스리랑카 불교문화원설립을 발원 하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리랑카전통양식으로 건립할 것이라 한다. 앞으로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복발형 스리랑카 전통사찰을 보게 될 지 모른다. 그럴 경우 스리랑카 불교, 즉 테라와다 불교가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에 뿌리를 내리게 될 지도 모른다.” (다문화시대에, 담마끼띠 빅쿠의 겨울, 2014-02-21)

 

 

방송에서는 스리랑카불교문화원 설립 불사이야기를 전했다. 그것도 스리랑카 전통불교양식에 따른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다고바(Dagoba)형식의 스리랑카전통사원을 기대했었다. 그로부터 5년이 흘렀다. 스리랑카양식의 전통사찰은 완성되었을까?

 

아산 마하위하라를 향하여

 

2019114일 아산을 항하여 차를 몰았다. 담마끼띠 스님이 머물고 있는 마하위하라(Mahāvihāra: 大寺)사원이다. 새로 건립한 사원은 어떤 모습일까? 스리랑카 마하위하라사원처럼 생겼을까? 테라와다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불교에 스리랑카 사원이 건립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담마끼띠 스님과 한번도 얘기 나눈 적이 있다. 강의만 한번 들었을 뿐 한번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초면인 셈이다. 이덕권선생이 연결해 주었다. 이덕권 선생은 이번 가을 까티나축제에 참석하고 난 다음에 한번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이에 기쁜마음으로 흔쾌히 동의했다. 한번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하위하라 사원은 어디쯤 위치해 있을까? 검색창에 마하위하라를 쳐 넣으면 충남 아산시 음봉면 음봉면로 297’이라는 도로명 주소가 나온다. 지도를 보니 평택시와 천안시 사이에 있는 농촌에 위치해 있다.

 



 

마침내 마하위하라에

 

마침내 마하위하라에 당도했다. 농촌이라고는 하지만 한적한 곳은 아니다. 주변에 공장도 보이고 시설물도 있어서 반농반도 같은 느낌이 든다. 큰 도로 가까이에 있고 평지에 있다. 처음 건물을 보았을 때 스리랑카풍임을 알 수 있었다.

 




건물은 3층 구조물로 되어 있다. 분명히 한국의 건축양식과 다른 것이다.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건축물이다. 경사진 지붕이 있는데 기와는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기와불사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큰 건물 옆에 작은 건물이 있고 콘테이너 하우스도 보였다. 이곳이 2004EBS에서 방영된 바 있는 불사 예고의 현장이다. 그러나 스리랑카 전통양식이라 볼 수 있는 다고바는 보이지 않았다.

 




이덕권선생에 따르면 마하위하라불사 하는데 있어서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 주변 마을에서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종교시설을 허용할 수 없다는 플레카드가 이곳저곳 붙어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일은 대한민국 도처에서 볼 수 있다.

 

강원도 춘천 인근에 설립된 제따와나선원도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쳐 난관에 처한 적이 있다. 도시에서도 이런 현상을 볼 수 있었다. 재개발된 곳에 아파트가 들어섰는데 아파트 입구에 절이 생긴 것이다. 설립된 것까지는 문제없었으나 일주문을 만든다고 울긋불긋 단청한 것이 화근이었다. 주민들이 플레카드를 걸며 철거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기독교가 득세하는 한국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라 볼 수 있다.

 

법당에 들어가서

 

큰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담마끼띠스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먼저 불상에 삼배를 했다. 테라와다식 삼배를 말한다. 무릎꿇고 앉은 자세에서 허리를 굽혀 이마가 바닥에 닿게 하는 자세이다. 두 손을 이마에 올리고 절을 할 때는 천천히 알아차림 하면서 오체투지했다.

 

불상을 보니 스리랑카식이다. 나라마다 불상의 상호는 다른데 그나라 국민들의 얼굴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주황색 가사를 입은 불상은 결가부좌를 하고 있다. 눈은 뜬 상태이다.

 




불상 양 옆으로 두 기의 상이 있다. 한국에서는 협시불로서 관세음보살상과 지장보살상이 있다. 불상이 아닌 인물상이어서 마하깟싸빠존자와 아난존자의 상인줄 알았다. 중국 용문석굴에 가면 불상을 중심으로 하여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의 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담마끼띠 스님에 따르면 사리뿟따존자와 목갈라나존자의 상이라고 했다.

 

본래 테라와다불교에서는 부처님 한분 밖에 모셔 놓지 않는다. 일체 보살상도 없고 신장상도 없다. 그런데 이곳 스리랑카법당에서는 놀랍게도 부처님의 두 상수제자인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존자의 상을 볼 수 있었다.

 

부처님을 바라 보았을 때 부처님의 오른편이 사리뿟따이고 왼편이 목갈라나존자상이다. 목갈라나존자상의 얼굴이 약간 검은 색이어서 구별된다. 이렇게 검게 표현된 것은 목갈라나의 전생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부모를 죽인죄로 수백생을 지옥에서 보냈는데 그 영향때문이라고 했다. 스리랑카에서는 푸른색으로 표현된다고도 했다.

 

사실적인 벽화를 보고

 

법당은 원룸시스템으로 되어 있다. 법당안에 주방도 있고 스님집무실과 거처도 있다. 3층 구조로 되어 있으나 위로 터져 있어서 천정이 매우 높다. 이런 구조도 아마 스리랑카 건축양식일 것이다.

 

집무실겸 거처가 있는 곳은 나무벽으로 막아 놓았는데 커다란 벽화가 그려져 있다. 그것은 부처님 열반상이다. 열반상은 매우 사실적이고 생동감 있게 그려져 있다. 벽화문구를 보면 스리랑카어, 빠알리어, 한글, 그리고 영어로 네 개의 언어로 쓰여져 있다.





네 가지 언어는 부처님이 열반할 때 최후로 당부한 말씀이다. 그것은 인과 연들이 모여 이루어진 것들은 소멸을 본성으로 한다. 안일하게 쉬지 말고 부지런히 노력하거라.”라는 문구를 말한다. 한자어로 불방일정진(不放逸精進)’을 뜻하는 이 문구는 매우 유명하다. 빠알리어로는 “압빠마데나 삼빠데타(appamādena sampādethā)(D16)라고 말한다.

 

하트모양으로 긴 꼬리를 가진 보리수잎은

 

법당에서 보리수도 볼 수 있었다. 깨달음의 나무로 잘 알려져 있는 보리수는 한국에서 자라기 힘들다. 밖에 심어 놓으면 겨울에 얼어죽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내에서 화분에 기르는 것 같다. 그런 보리수는 스리랑카에서 신앙의 대상이라고 한다. 무불상시대에 보리수나 족적을 신앙대상으로 삼은 것이 전통으로 이어져 왔기 때문일 것이다. 하트모양으로 긴 꼬리를 가진 보리수잎은 불교를 상징하는 것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세 가지 시물(施物)을 준비했는데

 

담마끼띠스님과 자리를 함께 했다. 법당 한견에 자리를 마련했다. 먼저 삼배의 예를 올렸다. 테라와다식으로 천천히 알아차림 하면서 삼배를 했다. 그리고 준비한 선물을 올렸다. 세 가지를 준비했다. 첫번째 시물로 봉투를 준비했다. 봉투에 돈을 넣어 올렸다. 많은 금액은 아니다. 많이 하고 싶었으나 여유가 되지 않아서 약간 넣었다.

 

사원에 갈 때에는 빈손으로 가지 말라고 했다. 사원은 신도들의 보시로 유지되기 때문에 사원에 갈 때는 반드시 보시금을 지참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원에 갈 때 기본적인 예의라고 볼 수 있다. 보시금액이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능력껏 마련하면 되는 것이다. 이는 “슬기로운 자여, 잘 알아 즐기며 또한 보시하세. 능력에 따라 보시하고 또한 즐기면 비난받지 않고 하늘나라를 성취하리.(S1.41)라는 가르침으로 알 수 있다.

 

두번째 시물로 음악씨디를 준비했다. 평소 선물용으로 늘 가지고 다니는 것이다. 일종의 명상치유음악씨디라고 볼 수 있다. 빠알리어로 된 경과 게송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듣고만 있어도 신심이 나고 환희심이 생겨나는 씨디를 말한다. 선물용으로 늘 준비하는 것이다. 세번째 시물로 책을 준비했다. 그것은 지난 7월초 직지사에서 템플스테이 했었는데 위빠사나 수행기에 대한 책이다. 그때 미얀마 우 에인다까 사야도가 56일동안 지도했는데 이에 대한 수행기를 작성한 것이다.

 

한국어가 유창한 스님

 

담마끼띠스님은 한국어가 매우 능숙하다. 2011년 처음 강의를 들었을 때도 한국어를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8년이 지난 현재 그때 보다 유창해진 것 같다. 오후 1시부터 3시 반까지 2시간 30분동안 쉼없이 말했기 때문이다.

 




외국인이 아무리 한국어가 능숙해도 틈은 보인다. 발음이나 억양에 있어서 약간 티가 나는 것이다. 그러나 담마끼띠스님은 이제까지 접해본 외국인 스님 중에서 한국어가 가장 훌륭했다. 한국사람이 말하고 생각하는 것과 거의 다름이 없어서 얼굴을 가리고 말한다면 구별하지 못할 정도라고 볼 수 있다.

 

다고바(Dagoba)는 언제 건립될까?

 

외국인이 한국어를 잘 하면 여러가지 이점이 있을 것이다. 특히 외국인 스님이 한국어를 잘하면 포교에 대단히 유리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테라와다불교 스님들은 나이가 어려서 출가했기 때문에 교학적 토대가 매우 탄탄하다. 여기에 수행까지 겸비했다면 금상첨화가 된다. 더구나 한국어를 유창하게 한다면 발전하고 번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늘날 아산에 여법한 스리랑카 양식의 사원이 건립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스리랑카사원을 보면 다고바가 가장 눈에 띈다. 스리랑카 마히위하라 사원의 다고바는 높이가 100미터가 넘는 거대한 것이다. 이런 다고바를 예상하고 왔으나 보이지 않았다.

 




담마끼띠 스님에 따르면 다고바는 불사가 마지작단계에서 건립되는 것이라고 했다. 다고바가 건립되면 불사가 완성됨을 말한다. 십년후에 다고바가 건립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난관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마을과 시에서 승인이 있어야 하는데 이는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과연 십년후 불사를 회향하는 의미에서 스리랑카식 다고바를 볼 수 있을까?

 

빠알리어 챈팅을 하는 두 가지 이유

 

담마끼띠스님과 2시간 반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국어가 유창해서 전혀 걸림이 없었다. 주로 듣는 입장이었다.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한국말은 한국의 말 잘하는 사람이 말하는 것과 같았다. 그런 것 중에 챈팅이 있다.

 

담마끼띠스님에 따르면 챈팅은 가급적 빠알리어로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왜 그런가? 힘이 있기 때문이다. 자국어로 번역하여 챈팅하는 것보다 빠알리원문 그대로 챈팅하면 두 가지 이점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보호의 의미가 있고, 또하나는 신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테라와다불교에서 챈팅하는 경 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라따나경(寶石經), 멧따경(慈愛經), 망갈라경(祝福經)이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고층경전이라 볼 수 있는 숫따니빠따에 실려 있는 경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세 개의 경은 예불문이자 동시에 수호경이라는 사실이다. 담마끼띠스님이 챈팅하면 보호의 의미가 있다고 했는데 이는 수호경으로서 역할도 있기 때문이다.

 

챈팅을 하면 신을 즐겁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빠알리어가 부처님 당시의 언어이고 부처님이 사용한 언어이기 때문일 것이다. 부처님당시에는 산스크리트어가 있었는데 바라문이나 왕족들만 쓰는 고급언어였다. 만일 수드라가 산스크리트어를 들으면 귀를 자르고, 산스크리트어로 말하면 혀를 자른다고 했다.

 

부처님은 민중어로 설법했다.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수 많은 사람들이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수 많은 사람들이 천상에 태어났다. 천신중에는 욕계천신도 있지만 색계나 무색계천신도 있다. 색계와 무색계를 합하여 범천이라고 하는데 범천이 된 천신도 많을 것이다. 부처님 말씀으로 천신이 되었다면 부처님이 사용하던 빠알리어로 챈팅하면 그들과 통할지 모른다. 그래서 빠알리챈팅을 하면 천신들이 소리를 듣고 즐거워할 것이라고 했다.

 

빠알리어란 무엇일까?

 

부처님은 지배층이 사용하는 산스크리트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대신 민중어라고 불리우는 마가다어로 설법했다. 부처님이 민중어로 설법한 것은 누구나 알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쉽게 알아 들을 수 있도록 민중들이 사용하는 말로 설법한 것이다. 그런 민중어가 오늘날 빠알리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빠알리어란 무엇일까?

 

빠알리어는 크게 두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성전(聖典)이라는 뜻이고, 또 하나는 언어체계를 말한다. , 빠알리라는 말은 테라와다 불교의 성전 그 자체를 의미한다. 3차 결집후에 테라와다가 불교의 정통으로 공인된 후 경장과 율장과 논장으로 구성된 삼장이 완성 되었는데, 이 삼장이 빠알리어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빠알리라는 말 자체가 삼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둘째, 빠알리어는 기원전 6세기에서 부터 기원후 11세기 경까지 인도에서 사용된 인도 아리안의 ‘민중어’인 쁘라끄릿뜨(Prakrit)어의 일종이다. 부처님 당시에 이 민중어로 설법한 것이다. 따라서 빠알리어는 처님의 원음을 고스란히 간직한 언어라 볼 수 있다.

 

예불문은 가급적 빠알리원문으로

 

한국불자들은 한문예불문에 익숙하다. 한글화된 예불문이 있기는 하지만 독송하는 맛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예를 들어 한문반야심경과 한글로 번역된 반야심경을 독송하는 것은 독송하는 맛에 있어서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빠알리 예불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른바 예불문이자 동시에 수호경이라고 볼 수 있는 라따나경(寶石經), 멧따경(慈愛經), 망갈라경(祝福經)을 빠알리어로 독송하는 것과 한글번역문으로 독송하는 것과는 차이가 난다.

 

담마끼띠스님에 따르면 예불문은 가급적 빠알리원문으로 독송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것은 보호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름 아닌 힘이다. 빠알리챈팅하면 보이지 않는 존재도 감응이 되기 때문에 수호경으로서 역할이 있음을 말한다. 그럼에도 각국어로 번역한 것을 독송한다며 뜻만 알뿐이지 챈팅으로서 의미가 상실된다고 했다.

 

스리랑카에서는 예불의식을 할 때 반드시 빠알리어로 챈팅한다고 했다. 스리랑카에서는 스님이 3만명 가량 되는데 그 중에 빠알리어를 할 줄 아는 스님이 만명 가량되고, 또 그 중에서 빠알리어 능숙한 스님은 이삼천명 된다고 한다. 빠알리어가 생활화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일까 스리랑카 언어에서 열에 다섯은 빠알리어서 유래된 단어라고 한다.

 

지방어를 고집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빠알리어로 챈팅하면 자연스럽게 그나라 언어로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인이 멧따숫따를 빠알리어로 까라니야 맛타 꾸살레나 얀땅 싼땀 빠담 아비싸멧짜라며 독송했을 때, 이 말이 널리 이로운 일에 능숙하여서 평정의 경지를 성취하고자 하는 님은이라고 뜻을 알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지방어로 챈팅하지 말라고 했다. 이는 각국어로 번역하여 챈팅하지 말라는 말과 같다. 가급적 빠알리 원문 그대로 챈팅하라는 말이다. 그래야 뜻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취지로 담마끼띠스님이 말했는데 이는 경전적 근거를 갖는다. 맞지마니까야 평화에 대한 분석의 경’(M139)은 부처님 가르침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지방어를 고집하지 말아야 하고 보편어를 침해해서는 안된다.’라고 가르친 것은 무엇을 두고 말한 것인가? 수행승들이여, 어떻게 하면 지방어를 고집하고 보편어를 침해하는 것인가? 여러 지방에서 같은 것을 두고 접시라고 여기고, 그릇이라고 여기고, 사발이라고 여기고, 받침이라고 여기고, 팬이라고 여기고, 옹기라고 여기고, 컵이라고 여기고, 대야라고 여긴다. 여러 지방에서 각각 그것을 무엇이라고 부르던지 각각 그것에 대하여 집착하여 고집하여 ‘이것만이 옳고 다른 것은 틀리다.’라고 말한다. 이와 같이 한다면 지방어를 고집하고 보편어를 침해하는 것이다.”(M139)

 

 

지방어는 요즘말로 세계각국어라고 볼 수 있다. 지구촌이 글로벌화 됨에 따라 부처님 가르침도 전세계로 퍼져 나갔는데 그 나라 언어로 번역되었다. 중국에 가면 한자어로 번역되었고, 한국에서는 한국어로, 일본에서는 일본어로 번역되었다. 가르침이 유럽에 전해졌을 때 영어, 독어, 불어 등 각국어로 번역되었다. 이렇게 각국어로 번역되면 뜻을 이해하기는 좋다. 그러나 말씀이 왜곡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열반을 뜻하는 닙바나(nibbāna)를 그나라 언어로 번역했을 때 닙바나라는 빠알리어를 잊어버릴 수 있음을 말한다. 그래서 부처님은 지방어를 고집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보편어를 침해서서는 안된다고 했다. 번역해서 의미를 아는 것은 좋으나 빠알리어를 버려서는 안된다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이 문장과 관련하여 한국빠일리성전협회 각주에서는 지방어를 고집하는 문제는 수행승들이 언제나 유행생활을 했고 지방어를 사용하는 많은 지역을 넘나들었으므로 승단 안에서 첨예한 문제였다. 일반적으로 부처님은 속어나 지방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잘못된 견해이다.”(2450번 각주)라고 했다. 부처님이 지방에 갔을 때 그 지방 사투리로 그 지방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언어로 설법했다는 것은 잘못된 견해라는 것이다. 부처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중부지방 표준어로 설법한 것이다.

 

왜 빠알리어를 고수해야 하는가?

 

지방어와 관련하여 주석에서는 또 하나의 사례를 전하고 있다. 그것은 율장소품에 실려 있는 수행승들이여, 깨달은 님들의 말씀을 운율적 언어로 바꾸지말라. 바꾸면 악작죄가 된다. 수행승들이여, 깨달은 님의 말씀을 그 자신의 언어로 배우는 것을 허용한다.”(Vin.II.139)로 알 수 있다. 왜 이런 계율이 나왔을까? 이는 부처님 당시 다양한 지역 출신의 수행승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도각지에서 온 수행승들이 자신이 사는 지방어로 가르침을 말했을 때 이는 부처님 말씀을 왜곡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비구는 차라리 부처님의 말씀을 산스크리트어 운률로 표현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런 제안을 거절했다. 그래서 깨달은 님의 말씀을 그 자신의 언어로 배우는 것을 허용한다.”(Vin.II.139)라고 했는데, 이 말에 대하여 독일 번역가 가이거는 나는 깨달은 님의 말을 그 자신의 언어부처님이 사용한 마가다어 로 배우는 것을 허용한다.”라고 해석했다.

 

가이거에 따르면 그 자신의 언어는 마가다어라고 했다. 그런데 가이거는율장소품에서 처음에는 그때그때의 방언에 따른 설교의 문제는 두 수행승에게서나 부처님에게서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다. 단지 범어로 설법을 해야하는가만이 문제시되고 있다.”라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부처님 말씀을 지방어로 번역하여 말할 수 있음을 말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운율이 있는 산스크리트어로 바꾸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가이거는 다음과 같이 결론적으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결정적으로 부정적인 형태로 이를 거절하고 다시 부정사를 사용하지 않고 그러한 처방을 내렸다. 이것은 부처님의 말씀이 스승 스스로가 선언한 것 이외에는 다른 형태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인도 지성들의 가르침의 전승에서는 모두 공통되는 일이다. 부처님이 살아 있을 당시에 벌써 사람들은 그의 가르침을 가능한 한 내용이나 형식에 관해서 정통적으로 전승시키려고 생각했다. 열반한 뒤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 외적인 형태는 마가다어, 즉 빠알리어였다.”(한국빠알리성전협회 율장소품 508번 각주)

 

 

부처님은 지방어로 부처님 말씀이 오염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부처님 말씀을 지방어로 이해하는 것은 좋지만 지방어로 전승되기를 바라지 않은 것이다. 마치 빠알리경전을 한글로 번역하여 이것이 부처님 말씀이다.’라며 전승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각국어로 번역하여 전승했을 때 후대로 갈수록 변질될 것이다. 그래서 뜻과 의미에 대하여 각국어로 파악할 수 있지만 전승하는 것에서만큼은 부처님이 사용하던 언어 그대로, 즉 빠알리어로 전승되어야 함을 말한다. 이에 대하여 맛지마니까야에서는 지방어를 고집하지 말아야 하고 보편어를 침해해서는 안된다.”(M139)라고 말한 것이다.

 

부처님은 부처님의 말씀이 빠알리어로 전승되기를 바랬다. 그래서 말씀이 그때 당시 귀족언어라고 볼 수 있는 산스크리트어로 바뀌어 전승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럼에도 후대에 가면 산스크리트어로 바뀌었다. 그러나 스리랑카로 전승된 제3차 결집본은 부처님당시의 말씀이 그대로 실려 있는 빠알리어였다. 이후 오늘날까지 빠알리어로 전승되어서 전세계로 퍼지게 되었다. 이렇게 부처님이 빠알리어 사용을 강조한 것은 부처님이 직접 사용한 언어였을 뿐만 아니라 그때 당시 영어처럼 보편적으로 사용된 언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빠알리어로 표현된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는 의미로 지방어를 고집하지 말아야 하고 보편어를 침해해서는 안된다.”(M139)라고 말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담마끼띠스님과 대화하다보니 몰랐다던 것을 많이 알게 되었다. 특히 빠알리어를 왜 사용해야 되는지에 대하여 알았다. 독송할 때는 빠알리원문으로 독송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빠알리원문으로 독송하면 힘이 있고 무엇보다 보호주로서 역할이 있다고 했다. 또 하나는 부처님도 빠알리어 사용을 장려했다는 사실이다. 각국어러 번역하여 뜻을 아는 것은 좋지만 전승은 빠알리어로 해야 함을 말한다. 그래야 말씀이 왜곡되지 않고 정확하게 전승될 수 있음을 말한다.

 

마하위하라사원 법회 및 행사일정을 보니

 

담마끼띠스님은 학승이다. 스님은 2016년 동국대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동국대에 강의도 나가고 있다고 한다. 스님은 한국에서 여러가지 일을 하고 있다. 가장 큰 일은 스리랑카 이주민을 위한 일일 것이다. 현재 한국에는 스리랑카 이주민이 4만명 가량 된다고 한다. 아산에 있는 마하위하라사원은 이주민들의 쉼터 역할도 하고 있다. 또 한국인들을 위한 포교도 하고 있다. 이는 홈페이지라 볼 수 있는 다음카페 담마프렌즈(http://cafe.daum.net/srilankahaviharaya)를 보면 알 수 있다. 카페에는 마하위하라사원 법회 및 행사일정이 소개 되어 있다.




 

한국불자들을 위한 포살법회가 매월 세 번째 토요일에 열린다. 스리랑카 이주민들을 위한 법회는 매주 일요일 열린다. 한국어 수업도 병행한다. 지역법회가 있는데 이는 찾아 가는 법회를 말한다. 이주민이 모여 사는 곳에서 초청하면 찾아가는 것이다. 주로 충청도, 경기도가 대상지역이다. 놀라운 것은 어린이법회도 있다는 사실이다. 매주 일요일에 열리는데 스리랑카 이주민자녀가 대상이다. 이밖에도 한국인을 위한 스리랑카언어 수업도 있고 스리랑카문화체험도 있다.

 

담마끼띠스님이 한국에 온 까닭은

 

담마끼띠스님이 한국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2014EBS에서 방영된 ‘담마끼띠 스님의 겨울’이라는 프로에서 잘 알 수 있다. 한국에 있는 4만명 가량 되는 스리랑카 이주민을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소위 3D업종에 종사하는 이주민노동자들에게 등불이 되어 주고자함일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아산에 마하위하라는 쉼터를 만들었다.

 




마하위하라 사원은 올해 붓다데이날에 개원했다. 아직 일년이 되지 않았다. 지붕에 기와도 올리고 스리랑카 전통건축양식인 다고바도 건립될 그날이 올것이다. 그런 담마끼띠스님은 매우 젊다. 2014EBS에 소개 되었을 때 31세라 했는데 5년이 지났으므로 올해 36세가 된다. 앞으로 10, 20, 30년이 지나면 한국불교에 스리랑카종단이 생겨날지도 모른다.

 

 

2019-11-06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