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보문사 마애석불 418계단을 오르며

담마다사 이병욱 2020. 1. 15. 14:01

보문사 마애석불 418계단을 오르며

 

 

번뇌를 없애는 확실한 방법이 하나 있다. 그것은 명칭을 붙이는것이다. 행선할 때 한발 한발 내딛을 때 마다 들어서 놓음이라 하는 것이다. 더 천천히 하면 , 올림, 놓음이라고 한다. 행선 사단계는 , 올림, 나감, 놓음이다. 행선 육단계는 , 올림, 나감, 내림, 닿음, 누름이다.

 

행선은 단계가 높아질수록 집중이 잘 된다. 동시에 번뇌도 사라진다. 명칭을 붙여 행선하다 보면 재미도 있고, 집중도 되고, 번뇌도 사라져서 일석삼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산에 오를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새해가 시작되는 첫번째주 일요일 보문사에 갔다. 강화도 석모도에 있는 보문사는 이제 자동차로 곧바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예전에는 배 타고 갔었으나 연육교가 건설되어서 손쉽게 다녀올 수 있다.

 

서해 끝자락에 있는 보문사는 한국의 대표적인 관음도량이다. 자동차를 타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달리다 보면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곳에 이르는데 그곳이 보문사이다.

 

보문사는 한두번 온 곳이 아니다. 수도권에 있어서 부담없이 올 수 있는 곳이다. 보문사는 불자들뿐만아니라 일반사람들도 즐겨찾는 관광지이다. 그래서일까 사하촌은 활기가 넘친다. 경내에는 사람들로 붐빈다. 그러나 끝까지 가는 경우는 반의 반도 안되는 것 같다. 그 끝은 어디일까?

 

보문사에 가면 바위산에 올라가야 한다. 보문사의 진산이라 볼 수 있는 낙가산 중턱에 커다란 암벽이 있는데 거기에 관세음보살상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보문사 마애석불이라 한다. 끝까지 가야 볼 수 있는 곳이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에 있다. 대체 몇 계단이나 될까? 한번 세어 보기로 했다.

 

한계단 한계단 세면서 올라 갔다. , , 삼 하면서 한발 디딜때마다 숫자를 세니 별로 힘든지 몰랐다. 산행에도 행선의 원리를 적용한 것이다. 백번이 네 번 바뀌었다. 목적지에 도달하니 정확하게 418계단이다.

 




기도는 간절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마애석불 앞에서 간절한 것 같다. 두 손을 합장한 모습에서 진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막다른 곳까지 오게 했을까?

 

한국불자들에게는 사대기도가 있다고 말한다. 건강, 시험, 사업, 치유의 기도를 말한다. 그래서일까 어느 유명 기도처에 가면 한가지 소원은 꼭 이루게 해줍니다.”라고 쓰여 있다. 나뭇가지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사람들에게는 희망의 메세지나 다름없다.

 

기도는 간절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충대충 설렁설렁 기도하면 효과가 나타나지 않다는 것이다. 막다른 곳에 내몰린 자들이 마지막으로 의지할 곳이라고는 자신이 믿는 신앙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유명기도처는 막다른 곳에 있나보다.

 

막다른 곳에 내몰린 자들이 막다른 곳에 앉아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더 이상 물러 설 수 없는 사람들이다. 한발 더 나가면 절벽이다. 그래서일까 유명기도처는 절벽에 있다. 또 동굴처럼 막장과 같은 곳에도 있다. 해안가도 더 이상 나아 갈 수 없는 곳이다.

 

우리나라 유명 관음성지는 해안가에 있다. 동해 낙산사, 남해 보리암, 서해 보문사가 대표적이다. 낙산사에 가면 홍련암에 가야 한다. 법당 바닥에는 파도가 치고 있다. 더 이상 나아 갈 수 없는 곳이다. 보문사 마애석불 역시 커다란 바위로 막혀 있어서 더 이상 나아 갈 수 없는 곳이다.

 




더 이상 나아 갈 수 없는 그곳, 한발 더 디디면 낭떨어지인 그곳에 불보살이 있다. 인생의 막장에 이른 사람들이 막장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다.

 

기도는 간절하게 해야 하듯 수행도 역시 간절하게 해야 한다. 우 에인다까 사야도는 목숨걸고 하라고 했다. 좌선할 때 자세를 바꾸지 말고 한시간 동안 버티는 것을 예로 들었다. 다리가 저려와도 참으라고 한다. 통증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진을 강조한다. 대상에 대해 집중하여 사띠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기도는 일종의 사마타수행이라고 졸 수 있다. 대상에 집중하면 지금 겪고 있는 괴로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 법당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사마타는 일시적으로 번뇌를 억누룰 수 있다. 그러나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절망적 상황에 이른다. 일상에서도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자신을 객관화하는 것이다. 자신의 행위를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그 사람으로 인하여 분노가 일어날 때 , 나에게 분노가 일어났구나!”라고 알아차림 하는 것이다. 매사에 알아차림하면 괴로움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위빠사나 지도자는 이제 고통의 끝을 봅시다.”라고 말한다.

 

보문사 마애석불 418계단을 오르니 저 아래 세상이 펼쳐졌다. 오후 은빛바다는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다. 인생의 끝자락에 이른 사람들이 벼랑에서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다. 기도는 이미 이루어졌다. 마음이 청정해졌기 때문이다.

 



 

2020-01-1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