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왜 공덕을 회향해야 하는가

담마다사 이병욱 2020. 1. 20. 14:16

 

왜 공덕을 회향해야 하는가

 

 

2019119일 일요일 오전에 성원정사에 갔다. 작년 크리스마스날 장인이 돌아가셔서 이대로 그냥 보낼 수 없다라고 하여 천도재를 지내기로 한 것이다. 사십구재기간이긴 하지만 장인이 무종교를 가졌기 때문에 장례하는 것으로 그쳤다. 그래서 자손들은 잘 가십시오.”라는 말을 했다. 자손 중에는 교회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불교를 종교로 하고 있는 입장에서 재를 지내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여 성원정사를 찾아 간 것이다.

 

고시생들을 위한 절

 

관악구 신림동 고시촌에 있는 성원정사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달 동지날에도 갔었고 그로부터 한달전에는 이전법회할 때도 갔었다.


성원정사를 처음 찾아 간 것은 아들 공무원시험 때문이다. 2017년 초가을 때의 일이다. 그때 당시 아들이 노량진 학원가에 다녔는데 안양에서 다니기에 너무 멀다고 하여 방을 얻어 달라고 했다. 마침 송위지선생이 생각났다. 신림동 고시촌에서 절을 운영하고 있다는데 혹시 고시생들을 위한 숙박시설도 겸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아내와 함께 찾아 간 것이다.

 

성원정사는 숙박을 겸한 기숙형 절은 아니다.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고시생들을 위한 절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고시촌에 절이 있는 것이 고시생들에게 편의도 보아주고 부처님 가르침으로 인도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무엇보다 집중력을 길러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공부는 집중을 요하는데 명상을 하면 집중력이 좋아 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서 본 성원정사는 상가 2층에 세를 내어 절을 운영하고 있었다. 작은 법당이다. 2층 너른 홀에는 주방도 있고 책상도 있어서 일종의 원룸형법당이었던 것이다.

 

성원정사는 고시생들을 위한 일종의 쉼터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또 고시생들을 위하여 기도도 해 주고 있다. 2011년 이래 그 자리에서 계속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송위지 선생과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런 인연이 있어서일까 아들은 다음 해 공무원시험에 합격했고 지금은 서울시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무료천도재 이야기를 듣고

 

송위지선생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글과 매스컴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사년전에 우연히 찾아 가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놀랍게도 천도재를 무료로 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아버지 천도재를 성원정사에서 하기로 했다. 모두 세 번 했다. 천도재라 하여 부정적 이미지가 앞섰지만 그런 것과는 달랐다. 시종 여법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장인천도재를 아내와 함께 준비했다. 이전에 해 본적이 있었기 때문에 능숙하게 준비했다. 과일과 나물위주의 준비인 것이다. 고기는 철저하게 배제된다. 어류도 허용되지 않는다. 계란이 들어가서도 안된다. 오로지 채식으로만 준비하는 것이다.

 

준비된 공양물을 싣고 신림동을 향해 달렸다. 자동차로 30분 밖에 걸리지 않는 짧은 거리이다. 안양 삼막사 들어가는 입구에서 터널만 지나면 신림동이다.

 

공양물을 불단에 올려 놓았다. 불단에는 스리랑카 상호를 가진 불상이 한기만 모셔져 있다. 울긋불긋 탱화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글씨로서 신중단임을 나타내고 있다. 테라와다식과 대승불교식이 절충된 불단이라고 볼 수 있다.

 




천 개의 염주를 돌리며

 

천도재는 크게 예불과 천도 두 가지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마치 일부에는 예불하고, 이부에는 천도하는 형식을 말한다. 일부 예불할 때는 스리랑카식으로 했다. 이부 천도재 할 때는 한국전통방식대로 했다.

 

예불을 스리랑카식으로 한 것은 송위지 선생이 스리랑카에서 칠년동안 유학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대학을 늦게 들어 갔기 때문에 나이 서른 두살에 스리랑카에 건너 갔다고 한다. 귀국후에는 한국외국어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송위지 선생을 보면 지금도 교수님이라고 부른다.

 

스리랑카 예불의식은 빠알리예불의식이라고 볼 수 있다. 법요집을 보면 빠알리어를 우리말로 음역해 놓은 것을 독송하는 식이다. 가장 먼저 나모땃싸 바가와도 아라하또 삼마삼붓다싸로 시작되는 예경문을 독송한다. 한국불자들에게는 생소한 것이지만 현재 빠알리경전이 널리 확산되고 있는 추세에 있어서는 점차 익숙해져 가는 것 같다. 삼귀의문 역시 붓당싸라낭갓차미로 시작되는 빠알리삼귀의문을 삼세번 하여 아홉번 독송했다.

 

법당안에는 세 명뿐이다. 법사복을 입은 송위지선생이 의식을 집전했고 아내와 함께 따라 한 것이다. 특히 석가모니불정근을 두 번 했는데 할 때 마다 천개의 염주를 돌려야 했다. 한번 하는데 약 15분가량 걸린 것 같다. 법사가 목탁을 치며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하며 정근할 때 따라서 정근하며 염주를 굴리는 식이다.

 

석가모니정근은 일종의 사마타라고 볼 수 있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사마타수행에는 마흔 가지 명상주제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불수념인 것이다. 석가모니불, 석가모니불 하며 정근하는 것은 부처님을 계속 생각하는 것이 되어서 불수념이라 볼 수 있다.

 

천개의 염주를 굴릴 때 집중되는 것 같았다. 석가모니불을 부르면서 그 소리에 집중하는 것이다. 소리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종종 잡생각이 치고 들어오긴 하지만 그럴 때마다 본래 대상으로 돌아오고자 노력했다.

 

석가모니불정근한다고 하여 부처님에게 소원을 비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집중하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자신의 목소리에 집중하면 번뇌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천개의 염주를 돌리며 석가모니불정근하는 것은 일부 예불에서 가장 하일라이트라고 볼 수 있다.

 

천도재를 하는 목적은


일부 예불행사가 끝나고 이부 천도재 행사가 시작되었다. 공양물을 모두 벽 한켠에 있는 작은 상으로 옮겼다. 향을 사르고 양초에 불을 붙였다. 천도재 의식은 법요집에 따라 진행되었다.

 

이부 천도재는 일부 예불의식과 달리 한국전통불교방식이라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천도재가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기는 하지만 성원정사에서 시행되고 있는 천도재를 보니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법요집에 실려 있는 내용을 보니 여법한 것이다. 아미타극락세계에 태어나기를 발원하는 것이긴 하지만 거래로 인하여 가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천도재 법요집을 보니 불교경전의 좋은 문구는 다 들어가 있는 것 같다. 마치 천수경에 실려 있는 게송과 주문을 보는 것 같다. 특히 이 몸과 마음은 무상한 것이기 때문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와 닿았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무상게(無常偈)’일 것이다.

 

무상게는 테라와다, 마하야나, 바즈라야나를 막론하고 애송되고 있다. 특히 추모경송용으로 사용된다. 게송은 형성된 것들은 실로 무상하여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들이니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들의 지멸이야말로 참으로 지복이다.”라고 되어 있다. 불교의 무상관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이부 천도재의 하일라이트는 장엄염불이라고 볼 수 있다. 법사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라며 낭송하면 참석자들도 따라 한다. 초혼 의식에서부터 시식에 이르기까지 전과정은 전통방식을 따른 것이다. 이렇게 천도재를 하는 것에는 목적이 있다.

 

천도재를 하는 첫 번째 목적은 아귀계에 떨어진 조상에게 시식케 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이는 “거기에는 농사도 없고 목축도 없고 장사도 없고 황금의 거래도 없이 보시 받은 것으로 연명하나니”(Khp.7)라 한 것에서도 알 수 있다. 굶주린 아귀를 위하여 먹을 것 등을 공양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법공양만한 것이 없다. 천도재를 하는 목적은 아귀가 되어 죽은 조상에게 가르침을 알려 주기 위한 것이다.

 

천도재를 하는 두 번째 목적은 자손들의 행복을 위해서일 것이다. 그것은 마음의 안정과도 관련이 있다. 추모의식을 함으로 인하여 인간의 도리를 다 했다라고 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또한 가족간의 화합이다. 천도재 의식을 함께 하면서 한마음이 되는 것이다.

 

보시는 자율적으로 능력껏

 

한번 천도재를 하면 수백만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비용이 크게 들어가다 보니 불자라고 하여 모두 천도재를 지내는 것은 아니다. 이럴 때 천도재를 무료로 지내 주겠다면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그렇다면 송위지선생은 왜 무료로 천도재를 해 주고 있을까?

 

천도재는 오전 11시에 시작하여 1시에 끝났다. 거의 두 시간 동안 쉼없이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하고 입으로는 염불과 독송을 했다. 모든 의식이 끝났다. 법사와 점심을 함께 했다. 점심도 일종의 공양이기 때문에 주변에 수험생을 불러서 함께 하는 것이 보통이다. 일종의 주변 사람들에게 공양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번에는 셋이서 근처 식당에 가서 식사를 했다.

 

송위지 선생과 식사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송위지선생이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한국불교에서 천도재를 무료로 해주면 사람들이 교회로 가지 않고 한국불교가 몰라보게 달라질 겁니다.”라는 말이다. 그래서일까 십년전 성원정사를 창립할 때부터 무료로 천도재를 해 주고 있다고 한다. 또 매달 셋째주 일요일에는 합동천도재가 있는데 이것도 무료라고 했다.

 

천도재가 무료라는 말에 성원정사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상 자율에 따른 것이다. 값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형편에 맞게 내면 되는 것이다. 봉투에 돈을 넣고 불전함에 넣으면 그만이다. 또 사십구재라 하여 반드시 일곱번 지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형편에 따라 처지에 따라 한번에 그칠 수도 있다. 모든 것이 자율적이다. 보시는 능력껏 하는 것이다. 이는 능력에 따라 보시하고 또한 즐기면 비난받지 않고 하늘나라를 성취하리.(S1.41)라는 가르침에 따른다.

 

공덕이 되는 제사

 

부처님은 제사를 부정하지 않았다. 이는 초기경전에서도 확인된다. 부처님은 동물이나 인간을 희생하는 피의 제사는 부정했다. 부처님은 희생제만 아니라면 제사는 지내도 좋다고 했다. 오히려 장려하기도 했다. 제사를 지내면 공덕이 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쿳다까니까야에 담장밖에 경’(Khp.7)이 있다. 불교에서 제사를 지내는 근거가 되는 경이라고 볼 수 있다. 경에 따르면 “담장 밖의 거리 모퉁이에 있으면서 가신 친지들이 자기 집을 찾아와서 문기둥에 서있나이다.(Khp.7)라는 구절이 있다. 천도재를 할 때 초혼(招魂) 하는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아귀계에 떨어진 조상을 초청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철에 나는 음식으로 정성스럽게 공양물을 준비해야 된다고 했다.

 

제사는 직계조상에게만 성찬을 베푸는 것이 아니다. 함께 따라온 베고푼 존재들에게도 베풀어야 함을 말한다. 그래서 천도재 가장 마무리 행사는 음식을 조금씩 한그릇에 모아서 밖에 내 놓는 것이다.

 

제사를 지내면 공덕이 된다고 했다. 이는 명백히 경전적 근거를 갖는다. 경에서친지들에 대한 의무가 실현되었고 가신 님들을 위한 훌륭한 헌공이 이루어지니 수행승들에게 크나큰 힘이 부여되었고 그대들에 의해서 적지 않은 공덕이 생겨났느니라.”(Khp.7)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다.

 

왜 공덕을 회향해야 하는가

 

천도재를 지내는 최종적은 목적은 공덕을 회향하는 것이다. 대가를 지불하여 선처에 나게 바라는 것이 아니다. 천도재가 거래가 되면 수백만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그것도 한두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니다. 오계를 어겨 악처에 떨어질 자에 대하여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좋은 곳, 하늘나라에 태어날지어다.”(S42.6)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마치 호수 바닥에 가라앉은 바위에 대하여 커다란 돌이여, 떠올라라. 커다란 돌이여, 떠올라라.”(S42.6)라고 기도하는 것과 같다. 

 

지은 업에 대한 과보로 자신이 지은 업에 적합한 세계에 태어난다. 그럼에도 선업을 지은 사람에게 몸이 파괴되어 죽은 뒤에 괴로운 곳, 나쁜 곳, 비참한 곳, 지옥에 태어날지어다.”(S42.6)라며 저주의 기도를 한다고 하여 악처에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악업을 지은 자에게 하늘나라에 태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고 해서 선처에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죽는 순간 다음 세계가 곧바로 결정된다. 따라서 죽은 다음에 선처에 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면 어리석은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아귀계 태어난 조상은 예외가 된다. 아귀계는 인간과 감응할 수 있는 존재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조상에게 제철에 나는 공양물을 올리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가르침을 알려 주는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지은 공덕을 회향하는 것이다. 물질적인 것은 나누면 나눌수록 줄어들지만 지은 공덕은 아무리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나누면 나눌수록 커지는 것이 정신적인 공덕이다. 그래서 모두 가져 가라는 것이다.

 

언젠가는 추모경송품을 읽는 것으로

 

절에서 천도재를 지내는 것은 공덕을 짓기에 좋은 일이다. 전통방식도 좋지만 이왕이면 부처님 가르침 그대로 여법하게 지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이는 빠알리성전협회에서 출간된 예경지송에 따른다.

 

예경지송 추모경송품을 보면 제9품에 추모경송품이 있다. 초기경전에 실려 있는 문구를 마치 천수경처럼 게송형식으로 모아 놓은 것이다. 순서를 보면 1)죽음에 대한 이치, 2)아라까의 경, 3)산의 비유의 게송, 4)담장밖의 경, 5)가신 님들을 위한 공덕회향, 6)고귀한 부의 게송, 7)원리의 결정에 대한 경, 8)세 가지 특징 등의 게송, 9)연기의 경송, 10)보리수 아래에서의 감흥의 게송, 11)한밤의 슬기로운 님의 게송 순으로 실려 있다.

 

천도재는 먼저 가신 님에 대하여 추모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한국불교에서는 극락세계에 태어나는 것을 발원하는 식으로 되어 있지만 예경지송을 보면 추모하는 식으로 되어 있다. 고인을 추모하며 가르침을 새기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무엇보다 자신의 마음이 편해진다. 세월이 흘러 언젠가는 추모경송품을 읽는 것으로 천도재가 대체되지 않을까?

 

 

제가 얻은 이 공덕을

가신 님들에게 회향하니

세상을 하직한 님들에게

행복이 깃드소서.

 

제가 얻은 이 공덕을

가신 님들에게 회향하니

세상을 하직한 님들에게

행복이 깃드소서.

 

제가 얻은 이 공덕을

가신 님들에게 회향하니

세상을 하직한 님들에게

행복이 깃드소서.”

(예경지송, 추모경송품, 가신님들을 위한 회향공덕)

 

 

2020-01-2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