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지인에서 친구로

담마다사 이병욱 2020. 6. 7. 11:28

 

지인에서 친구로

 

 

페이스북 댓글이 하나 올라왔다. 정재호선생이 관악산 등산한다고 했다. 이에 “좋습니다.”라고 짤막하게 글을 남기고 메신저를 날렸다. 관악산 연주암에서 만나자고 했다. 저쪽 시간대를 보니 서울대입구에서 출발하면 대략 12시 반쯤이 될 것 같았다. 안양 내비산산림욕장 입구에서 출발하면 더 일찍 출발해야 했다.

 

목표는 정해졌다. 약속장소는 연주암이고 만나는 시간은 12시 반이다. 시간을 역산하면 10시에는 출발해야 한다. 비산동코스가 서울대코스보다 길이가 두 배가량 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여유를 부리다가 늦게 출발했다.

 

촌각을 다투었다. 먹거리가 필요했다. 먼저 김밥을 사야 했다. 오늘은 불음주계를 어기는 날로 정했다. 이마트에 들러서 막걸리와 족발, 오이를 샀다. 집에 들러서 등산복으로 갈아 입고 배낭을 챙겼다. 이렇게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내비산이 차고지인 5626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렸을 때는 이미 11시가 되었다. 1시간 반 만에 연주암에 도착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여러차례 다녀서 알고 있다. 1시간 늦을 것이 분명했다.

 

일단 신속히 출발했다. 산행을 시작한지 30분만에 능선을 탔다. 능선을 타니 갑자기 한줄기 솔향이 스쳐지나갔다. 마치 깔딱고개를 넘은 보상처런 여겨졌다.

 

 

관악산 남사면의 특징은 능선길이다. 능선을 타면 산행이 지루하지 않다. 산꼭대기 길만 타고 가다 보니 풍광이 좋다. 옆을 보아도 좋고 뒤를 보아도 좋다. 오로지 골짜기길만 타는 서울대코스나 과천코스와 비교된다. 관악산에서 가장 사랑스런코스는 아마도 비산동 능선길 코스일 것이다.

 

이정표가 보였다.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는 곳이다. 국기봉까지 660미터라고 했다. 수도 없이 다닌 길이다. 너무나 익숙한 길이어서 어느 곳에 어느 바위가 있는지 대략 알 수 있다. 시계를 보니 11시 43분이다. 12시 반까지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늦을 것이라고 메신저를 날렸다.

 

 

관악산을 악산(岳山)이라고 한다. 산이름에 악자가 들어가는 산을 악산이라고 한다. “악”소리가 나서 악산(惡山)이라는 말도 있다. 4년전 치악산을 가족등반 했었는데 그때 악소리가 날 정도로 심했다. 이에 비하면 관악산은 악산이 아니다. 다만 바위가 많은 산일뿐이다. 특히 관악산 남사면은 능선길이기 때문에 산행을 하는 맛이 난다.

 

국기봉까지는 바위만 타야 한다. 바위능선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두발이 아니라 네 발로 타기도 한다. 오랜만에 타니 숨이 가쁘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가다 쉬다를 반복했다. 이럴 때 스틱이 큰 의지가 되었다. 다리의 힘을 분산 시켜 주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힘들게 올라가는 것일까? 평소 혼자 등반한다면 산이 있어서 올라간다고 해야 할 것이다. 게으른 자들은 이런 산행의 맛을 모른다. 이 세상에서 가장 허망한 말이 있다. 그것은 “뭐하러 힘들게 올라가는가? 올라 갔다가 내려올 것을.”이라는 말이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산이 있어서 산에 간다. 건강 유지를 위해서도 가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도 간다. 산행을 하여 너댓시간 걸으면 다리가 뻐근하다. 요즘 속된말로 “빡세게” 걷다 보면 일석삼조, 일석사조의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게으른 자가 아무리 안락을 즐긴다고 해도 산행을 해서 맛보는 성취감만 못할 것이다.

 

 

이번 산행은 ‘산이 있어서 산에 간다’라기 보다는 ‘친구가 있어서 산에 간다’라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약속장소와 시간은 정해졌다. 친구를 만날 욕심에 악산을 온 힘을 다해 올랐다.

 

지인이 친구로 격상되었다. 흔치 않은 일이다. 지인과 친구는 다르다. 지인은 단지 알고 지내는 사람일 뿐이다. 이해관계로 맺어진 사이다. 그래서 이해가 틀어지면 볼 일이 없다. 그러나 친구는 이해관계를 초월한다.

 

친구의 조건이 있다. 디가니까야에 따르면 “도움을 주는 친구, 즐거우나 괴로우나 한결같은 친구, 유익한 것을 가르쳐 주는 친구, 연민할 줄 아는 친구.”(D31)라고 했다. 이런 사람이 친구일 것이다.

 

친구 중에는 절친도 있을 것이다. 절친의 조건은 어떤 것일까? 역시 디가니까야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다. 절친의 조건은 아마도 “비밀을 털어놓고, 비밀을 지켜주고, 불행에 처했을 때에 버리지 않고, 목숨도 그를 위해 버리는 친구.”(D31)일 것이다. 나에게 이런 친구가 있을까? 비밀을 털어 놓고 비밀을 지켜 주는 친구는 아직까지 없다. 부부사이에서도 비밀은 공유되지 않는다.

 

정재호선생을 일방적으로 친구로 격상시켰다. 이번 산행을 함께 함으로 해서 지인 보다는 친구가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재가불교활동을 하면서 여러 차례 만남의 기회를 가졌는데 한결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재호선생은 필요할 때 마다 도움을 주었다. 머리숫자를 채워야 하는 모임에도 와 주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연민인것 같다. 페이스북에서 늘 격려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김밥을 준비하고 막걸리를 샀다. 그러나 연주암은 너무 멀리 있다. 국기봉 정상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관악산 송신탑이 아득하다. 바위능선을 수도 없이 넘어야 한다. 메신저로 30분 늦을 것 같다고 했다.

 

 

국기봉에서 송신탑까지 길은 그야말로 악산이다. 때로 네 발로 기어가야 한다. 그러나 정상길에서 보는 초여름의 관악산은 설악산 못지 않은 비경을 자랑한다. 힘들게 산에 오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그러나 마음이 급하다. 약속시간이 많이 지났기 때문이다.

 

아무리 속도를 내도 체력이 받쳐 주지 않는다.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무거운 등짐도 한몫 했다. 평소보다 무거운 3키로가량 되는 짐을 졌기 때문이다. 최고급 막걸리인 홍삼막걸리가 750미리리터이다. 이 밖에도 먹을 것이 잔뜩 있어서 배낭의 무게 때문에 체력소모가 심했다. 이럴 때 생각나는 시가 있다. 등짐을 소재로한  시이다. 시인은 등짐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내 등에 짐이 없었다면

나는 세상을 바르게 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내 등에 있는 짐 때문에

조심하면서 바르게 성실하게 살아 왔습니다.

이제 보니 내 등의 짐은

나를 바르게 살도록 한 귀한 선물이였습니다.”

 

 

시인은 등짐이 없었다면 세상을 바르게 살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세상 사람들에게 등짐은 무엇일까? 다름 아닌 ‘가족’일 것이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힘겨운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어쩌면 스스로 채운 족쇄로 살아간다고 볼 수 있다.

 

연애는 잠시에 지나지 않고 생활만 남았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 인생의 자물쇠를 채워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무거운 등짐을 지고 힘겹게 살아간다.

 

관악산 송신탑이 점점 가까워져 온다. 악산 길이 낯설지 않다. 예전에 여러차례 와 보았기 때문이다. 작은 협곡길도 그대로이다. 세월이 흘렀음에도 산은 변함이 없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점점 노쇠하여 기력을 잃어 가지만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내가 태어 나기도 전에 그대로 있었고 내가 죽고 나서도 그대로 있을 것이다. 마치 옛길 보듯이 기억이 난다. 상윳따니까야 ‘도시의 경’에 이런 구절이 있다.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광야의 숲속에서 방황하다가 옛날 사람들이 다니던 옛 길과 옛 거리를 발견하고 그 길을 따라 가다가 정원을 갖추고 원림을 갖추고 연못을 갖추고 제방을 갖추고 분위기가 좋은 옛날 사람들이 살았던 옛 성과 옛 도시를 발견했다고 하자.”(S12.65)

 

 

어떤 사람이 잃어버린 고대도시를 발견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이다. 그 고대도시는 한때 번성했는데 잊혀졌다. 그러다가 어떤 사람이 정글을 해치고 나가다 보니 잃어버린 고대도시를 발견한 것이다. 그분이 석가모니 부처님이다. 잃어버린 아름다운 고대도시는 팔정도를 말한다. 과거 부처님들이 발견했던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수행승들이여, 전생에 올바로 깨달은 분들이 거닐던 그 옛 길과 옛 거리는 무엇인가? 그것은 여덟 가지의 올바른 견해, 올바른 사유, 올바른 언어, 올바른 행위, 올바른 생활, 올바른 정진, 올바른 마음새김, 올바른 집중의 길이다. 이것이 수행승들이여, 과거의 올바로 깨달은 분들이 거닐던 그 옛 길과 옛 거리이다. 나는 그 길을 따라 갔다. 그 길을 따라 가서 나는 늙고 죽음을 깨달았고 늙고 죽음의 원인을 깨달았고 늙고 죽음의 소멸을 깨달았고 늙고 죽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을 깨달은 것이다.”(S12.65)

 

 

악산 능선을 타다 보니 옛기억이 떠 올랐다. 거의 10년만에 타 보는 것 같다. 그때도 이런 협곡길이 있었다. 다시 보니 하나하나 새록새록 기억 나는 것이었다. 10년 전에도 이 길을 가고 있었다. 이 길이 지나면 어떤 길이 나올지도 알고 있다. 익숙한 길이다. 경전 속에서 말하는 고대도시를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송신탑에 이르니 다 온 것 같다. 연주암은 내리막길로 300미터 거리에 있다. 오후 1시 반에 연주암에 도착했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반 걸렸다. 약속시간에서 1시간이 늦었다. 정재호선생은 이미 1시간 전에 도착했다. 서울대 코스는 계곡길로 오로지 오르막만 있어서 1시간 반밖에 걸리지 않는다. 막판에 있는 깔딱고개가 가장 어려운 코스이다.

 

 

천신만고 끝에 연주암에 도착했다. 이전에 여러차례 왔던 곳이다. 1997년 IMF가 터졌을 때 갈 곳 없는 사람들이 찾던 곳이기도 하다. 그때 점심을 공짜로 주었다. 2000년대 초반의 일이다. 그때 당시 정식으로 불교에 입문하기 전이다. 그때 연주암에 자주 갔었다. 관악산 산행하게 되면 꼭 종착지가 연주암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해 오월이었던가 연주암 마당에서 법회가 열리고 있었다. 법사는 권기종 교수였다. 권교수는 시국에 대해서도 얘기를 많이 했다.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노조에 대한 비판이었다. 대기업노조를 귀족노조라고 했기 때문이다. 툇마루에 앉아서 여러 차례 들었다.

 

정재호 선생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마음 속으로는 지인에서 친구로 격상된 상태였다. 정재호 선생은 한시간 일찍 도착해서 책을 읽었다고 했다. 먼 길 오느라고 수고했다며 아이스크림을 사 주었다.

 

 

법당에 들어가 참배했다. 대웅전에 있는 불상에는 협시불이 없다. 오로지 석가모니 부처님 한분만 모셔져 있다. 전통사찰에서 이런 케이스는 드물다. 연주암을 처음 찾았을 때도 그랬을까? 2007년에 방문한 기록을 찾아보았다. 블로그를 보니 대웅전 불상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그때도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세월이 흘러서 또 찾게 되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른다. 항상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일기일회이다.

 

 

정재호 선생과 늦은 점심식사를 했다. 배낭에 잔뜩 싸온 것을 풀었다. 오로지 정선생을 위해 싸 온 것이다. 그 중에는 막걸리도 있다. 오늘만큼은 불음주계를 어기기로 했다.

 

계는 파하지만 다시 받으면 된다. 다행히도 6월 첫번째 금요니까야강독모임이 6월 12일에 열린다. 6일 후에 다시 계를 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강독모임 시작하기 전에 예경문과 삼귀의, 오계를 빠알리어로 합송한다. 그때 받으면 된다.

 

불음주계를 어겨서 파계하면 복원해야 한다. 법회에 참석하여 다시 받아지니면 계가 복원되는 것이다. 만일 계를 받지 않는다면 계가 파괴된 상태로 있게 된다. 그래서일까 출가승들은 보름에 한번 포살법회을 열어 구족계를 다시 받아 지니는 것이라고 본다.

 

 

정재호 선생과 막걸리를 나누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그것은 “왜 오계에서는 예외조항이 없을까?”에 대한 것이다.

 

율장을 보면 수많은 예외조항이 있다. 불음주계가 있지만 예외조항을 보면 아픈 사람에 한해서 약으로서 먹어도 된다고 했다. 그러나 재가불자에게는 예외조항이 없다. 오로지 오계만 있을 뿐이다. 이는 율장이 출가승을 위해 시설된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부처님이 재가불자를 위해 불음주계에 대한 예외조항을 만들었다면 비즈니스를 위한 음주를 허용했을 것이다. 또 모임이나 친구를 만났을 때도 예외조항을 두었을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계가 파했을 때 곧바로 복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막걸리를 마셨으니 하루 빨리 계를 복원해야 한다.

 

둘 만의 시간을 갖기가 쉽지 않다. 모임에 가면 여러 명이 어울린다. 그러다 보니 깊은 이야기,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나누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둘 만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지 대화를 하게 되어 있다. 그것이 개인사적인 얘기이든 공적인 얘기이든 소재에 제한이 없다. 그런데 여성과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여성과 만날 때는 둘이 만나지 않는다. 반드시 세 명 이상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과천방향으로 하산했다. 계곡길로서 오로지 내리막길이다. 시간은 단축되지만 지루한 길이다. 등산에서 능선길 타는 것 만한 재미가 없다.

 

헤어 지기가 섭섭했던 것 같다. 식당가에서 국수를 먹기로 했다. 시원한 열무국수이다. 막걸리도 하나 시켰다. 한번 계가 파하니 계속 파하게 된다. 그러나 파한 채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된다. 다시 계를 받아 지녀야 한다. 그래서 학습계율이라 했을 것이다.

 

학습계율은 정언명령이 아니다. 그래서 “곡주나 과일주 등의 취기있는 것을 삼가는 학습계율을 지키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어기면 참회하고 다시 받아 지니면 된다. 본래 계는 지키기 어려운 것이다. 평생 걸려서 완성되기 때문에 학습계율(sikkhapada)라고 하는 것이다.

 

산에 오를 때 땀으로 범벅이 되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오랫만에 다리가 뻐근하게 걸었다. 요즘말로 “빡세게” 걸은 것이다. 한가지 확인된 것이 있다. 아직 두 다리는 녹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기를 쓰고 오른 것은 산이 있어서 간 것이 아니라 친구가 있어서 간 것이다.

 

 

2020-06-07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