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속의연꽃

어쩌다가 일인사업자가 되어

담마다사 이병욱 2019. 11. 29. 12:56

 

어쩌다가 일인사업자가 되어

 

 

모든 거래는 전자세금계산서를 발행함으로써 종료가 된다. 두 건의 계산서를 발행했다. 백만원 이하이기 때문에 중작 정도되는 작품이다. 회로패턴설계도 일종의 작품일 것이다. 업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인쇄회로기판(PCB)’ 패턴설계하는 것에 대하여 아트워크(artwork)’라는 말을 사용해 왔다.


왜 아트워크라 했을까? 그려 놓으면 마치 작품처럼 보인다. 마치 도시설계해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부품은 건물처럼 보이고 신호선은 도로처럼 보인다. 회로가 복잡하면 할수록 거대한 도시처럼 보인다.

 




똑같은 것이 두 개, 세 개 된다면 작품이라 할 수 없다. 오로지 한 고객에게만 제공되기 때문에 작품이 된다. 고객은 이 아트워크 작품을 이용하여 대량생산할 것이다. 대량생산품은 물건이라고 불리운다. 오랜 만에 손 맛을 보았다. 그 동안 놀다시피 하다가 주문이 밀려서 겹치기로 진행했다. 그런데 한가지 특징이 있다. 고객은 늘 급하다는 것이다. 납기를 맞추기 위해서는 밤낮없이 주말없이 작업해야 한다. 마침내 계산서를 발행함으로 인하여 작업이 종료되었다.

 

전자세금계산서 발행으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결재가 이루어져야 완전히 종료되는 것이다. 대게 익월(翌月)’결재가 업계관행이다. 납품을 하고 이번 다음 달에 입금이 되는 시스템을 말한다. 이를 선납품후결재시스템이라고도 볼 수 있다. 월급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일을 한다음에 급여를 받는 것이다. 공사를 하고 난 다음 대금을 받는 것도 후결시스템이다. 만일 먼저 돈을 지급하면 어떻게 될까? 태만해질 것이다. 무엇보다 공수가 바뀌게 된다. 돈을 먼저 받았으니 아쉬울 것이 없다. 돈을 준 사람은 사정하게 된다. 그래서 먼저 일을 하고 돈은 나중에 주는 것이다.

 

세상사가 모두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익월결재가 관행이긴 하지만 어기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신용에 타격을 받는다. 둘 중의 하나일 것이다. 태만으로 인해 결재 못한 경우도 있고 자금이 없어서 결재 못하는 경우가 있다. 대게 후자일 경우가 많다. 익월에 결재를 못하면 경계해야 한다. 거래를 계속 해야 할지 말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재 능력이 안되면 부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경계경보를 발령하는 것이다.

 

한번 결재가 밀리면 계속 밀리는 특징이 있다. 결재가 두 달, 세 달 미루어 지면 확실히 문제가 있는 업체라고 생각해야 한다.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육개월 밀린다면 어떻게 보아야 할까? 포기단계라고 볼 수 있다. 대게 세 달 밀리면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사업을 하면서 이런 경우를 종종 본다.

 

현재 육개월 결재가 밀린 업체가 있다. 매달 월말에 한번 독촉하는 메일을 발송해 보지만 육개월이 지나면 의미가 없다. 거의 회생 가능성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런 경우 손실이 된다. 사업하면서 약 10%가량은 못 받는 돈이라고 보면 틀림없다. 지금 전자세금계산서를 발행했다고 하여 돈을 받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럼에도 계산서 발행은 일을 끝마쳤다는데는 의미가 있다. 계산서 발행으로 홀가분해진 것이다.

 

누구나 사기꾼이 될 수 있다. 결재 능력이 없으면 사기꾼이라는 소리 듣기 딱 알맞다. 제아무리 피에치디 타이틀을 가진 자라도 제 때에 결재하지 못하면 신용이 추락된다. 두 달, 세 달 밀리고 육개월이 넘어도 결재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사기꾼이 된다. 사기꾼은 사기꾼이 되고 싶어서 사기꾼이 되는 것이 아니다. 상황이 사기꾼을 만드는 것이다. 사업을 하다 보면 이런 사례는 수 없이 많다.

 

어쩌다가 사업자가 되었다. 월급생활자로만 살다가 사업이라는 것을 해보니 최전선에 있는 것 같다. 마치 전쟁터와 같다. 치열한 생존경쟁의 현장이다. 더구나 일인사업자로 살다보니 모든 것을 나홀로 다 처리해야 한다. 견적서 작성부터 시작하여 전자세금계산서 발행에 이르기까지 모두 혼자 처리해야 한다. 청소도 혼자해야 하고 쓰레기통도 혼자 비워야 한다. 이런 생활을 십여년 하다 보니 이제 익숙해졌다.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아니다. 근근이 유지하는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일하는 날 보다 노는 날이 더 많다. 시간이 많이 남으니 시간부자라고 볼 수 있다. 이 많은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할까? 사업하면서부터 글쓰기를 했다. 일단 써 놓으면 남기 때문이다. 그것도 웹에 올려 놓아야 남는다. 컴퓨터에 보관되어 있는 글은 영원하지 않다. 컴퓨터가 망가져서 사라질 수 있고 바이러스 먹어서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인터넷에 올려진 글과 사진, 동영상은 살아 남았다.

 

돈은 벌어도 남아 있지 않지만 돈도 되지 않는 글은 남아 있다. 이런 생활이 가능한 것은 사십대 중반에 직장을 그만 두었기 때문이다. 만일 지금까지 직장을 다니고 있다면 이런 자유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십사년전에 퇴출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더 이전에 퇴출되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직장이라는 감옥에 갇혀 노예처럼 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나고 보니 정규직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월급을 받는 조건으로 매여 있다면 감옥에 갇힌 노예나 다름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고전평론가 고미숙선생은 백수를 예찬한다. 백수로 지내는 것이 그다지 나쁘지 않음을 말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자유롭게 사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정규직으로 정년까지 가는 것에 대하여 정규직으로 잘 나가시는 분들, 운이 좋아서 그 사이에 짤리면 다행인데 중간에 그러면 빨리 자기를 변환하는데, 운이 나빠서 정년까지 쭉 가시는 분들이 있어요.”( [고려대학교 Korea University] University Plus 6월특강(열하일기)_고미숙 화평론가)라고 유튜브에서 말했다.

 

직장에 다니다가 중간에 퇴출되어서 다행으로 생각한다. 고미숙선생에 따르면 운이 좋아서 그 사이에 짤리면 다행이라고 말했다. 자기변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운이 나빠 정년까지 주욱가서 육십이 되었을 때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하여 고미숙선생은 경직된 몸과 빈곤한 언어 등으로 설명했다. 한마디로 유연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백세시대에 남은 세월을 어떻게 살아 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정규직으로 이제까지 잘 살긴 했지만 자기인생을 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백수로 살아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일인사업자의 삶은 사실상 백수의 삶과 다를 바 없다. 일이 있으면 일을 하고 일이 없으면 놀기 때문이다. 시간이 너무 남아 돌아서 금전적으로는 쪼달릴지 모르지만 시간적으로는 부유하다.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시간은 자신의 것이다. 시간부자가 된 것이다. 그 시간에 자신을 변화할 수 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 백수와 같은 일인사업자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어쩌다가 운이 좋아 중간에 퇴출되어서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2019-11-29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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