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안온이 미안할 때
전기장판이 뜨뜻하다. 아파트가 중앙난방식이라 바닥이 따뜻하지 않다. 11월도 끝자락인 시점에서 아직 영하는 아니기 때문에 온기만 있을 뿐 시골 구들장 같은 따뜻함을 기대하기 힘들다. 전기장판에 등짝이 따스할 때 안락함을 느낀다. 그러나 한편으로 미안한 느낌도 있다. 노숙자들을 생각하면 이런 안락이 미안한 것 같다.
삼년전의 일이다. 노숙자 봉사를 한적이 있다. 전재성선생의 니까야강독모임에서 들은 것이 계기가 되었다. 김광하선생이 노숙자봉사를 하고 있는데 지행합일(知行合一)이 된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그 말을 듣고 ‘사명당의 집’으로 찾아 갔다. 이후 두 달간 매주 일요일 저녁 7시에 을지로 굴다리 노숙자봉사모임에 참여했다.
새벽 세 시에 잠에서 깨었다. 지금 스마트폰을 똑똑 치고 있는 시각은 네 시가 거의 다 되었다. 지금 이 시각에도 군대에서 병사들은 보초를 서고 있을 것이다. 비가 오나 추우나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근무나간다’라고 한다. 지금 이불속의 안락함을 누릴 때 추위에 보초서는 병사들을 생각해 본다. 또한 이 추위에 노숙하는 사람들을 떠 올려 본다. 그들을 생각하면 이 작은 안락은 미안한 것이다.
새벽에 오룡차를 끓였다. 대만에서 사온 것을 선물 받은 것이다. 너무 자극적이지 않아서 좋다. 그래서일까 대만에서는 보리차처럼 마시는 것 같다. 텁텁했던 입이 가시고 꾸륵꾸륵했던 속이 내려 가는 듯하다. 뜨거운 물이 목구멍을 넘어 갈 때 또 다시 안락함을 느낀다. 또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해 본다. 선원에서는 지금 이 시각이 새벽좌선 시간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다보면 시간이 금방금방 지나간다. 잠깐 몰두하다 싶었는데 한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그 사이에 차기에 가득 채운 물도 바닥이 났다. 생각한 것을 사유해서 붙들어 맨다는 것은 시간을 매는 것과 다름없다. 이 순간을 붙들어 매는 것이다. 이렇게 써 놓으면 남는다. 새벽에 차를 마시며 가장 편한 자세로 똑똑 치는 것도 작은 행복이다.
지금 이 시각에도 고통으로 보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철책에서 길바닥에서 보내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 작은 행복도 미안한 것이다. 수행처에서 새벽좌선 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이 안락은 게으른 것이다.
오늘은 토요일이다. 주말에 해야 할 일이 있다. 모처럼 일이 생겼다. 일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수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일인사업자에게 일이 있으면 밤낮이 따로 없고 주말이 따로 없다. 내 일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새벽은 평안한 사간이다. 전날 잘 살지 못했다면 괴로운 시간이 될 것이다. 음주를 하지 않는 것은 맑은 정신으로 새벽을 맞기 위해서이다. 날이 새면 새벽같이 일터로 달려 가야 한다.
밀린 일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쓴다. 일이 없어도 쓰고 일이 있어도 쓴다. 일이 없으면 일없이 쓰는 것이고, 일이 있으면 시간을 내서 쓰는 것이다. 이래도 쓰는 것이고 저래도 쓰는 것이다. 훔친사과가 맛있다는 말이 있다. 아무래도 바쁜 와중에 쓰는 글이 짜릿하다. 시간을 정해 놓고 속도전을 벌이는 것이다. 초분을 다투는 것처럼 요란하게 자판을 두들겨댄다. 마감시간이 다가올수록 집중이 최고조에 이른다.
단번에 써 내려간 글이 생명력 있다. 마침내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동시에 올려 놓았을 때 일시적으로 강렬한 성취감을 맛본다.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값어치가 있다. 한존재의 몸부림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새벽에 나만 안락 누리기가 미안하다. 자애명상 할 때는 자신부터 하라고 했다. 내가 먼저 편안해야 한다. 내가 불편하면 남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내가 편해 졌을 때 가장 먼저 가까운 사람들이 떠 오른다. 가족이기 쉽다. 다음으로 먼 사람들이다. 나와 인연 있는 사람들이 편안하기를 바란다. 그 다음으로 나와 무관한 사람이다. 나와 인연 없는 사람들도 편안하기를 바란다.
2019-11-30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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