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떠나는 여행

가지가 싹둑싹둑 잘린 나목(裸木)을 보고

담마다사 이병욱 2019. 12. 4. 10:57

 

가지가 싹둑싹둑 잘린 나목(裸木)을 보고

 

 

오늘 아침 일터로 가는 길에 참상을 보았다. 나목(裸木)이 된 나뭇가지가 모조리 잘려 있는 것이다. 마치 봄날 덧난 가지를 전지한 것처럼, 벌거숭이가 된 나뭇가지가 싹둑싹둑 잘려 있었다.

 




아파트단지는 본래 삭막한 곳이다. 각진 것을 특징으로 하는 아파트에서 그래도 자연스런 것은 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나무가 우거지면 마음도 풍성해지는 것 같다. 그러나 잎이 모두 져 버렸을 때 더욱 더 삭막해지는 것 같다. 여기에 나뭇가지가 모두 잘려 있으니 처참해 보였다.

 

글을 쓰다보니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다. 지난 십여년간 주욱 지켜 온 바에 따르면 대게 1120일 전후에서 낙엽이 졌다.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어제 비가 왔다. 눈이 날리다가 비로 바뀐 것이다. 어제 저녁 눈을 돌려 주변을 보니 세상이 바뀌어 있었다. 나뭇가지가 앙상해져 있는 것이었다. 불과 며칠전까지만 해도 간신히 매달려 있었으나 비바람에 나목이 된 것이다

 

낙엽이 지면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된다. 날씨는 추워지고 옷은 두꺼워진다. 롱패딩을 보면 마치 이불을 두른 것 같다. 이럴 때 눈()을 기다린다. 삭막한 나뭇가지에 눈이 내리면 헛헛한 마음이 어느 정도 누구러진다. 눈이 내리면 온 세상이 백색의 세상이 된다. 특히 시골에서 눈이 내리면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것 같다.

 

눈내린 농촌풍경을 페이스북에서 보았다. 귀촌하여 농사짓고 살아 가는 이선생이 페이스북에 올린 것이다. 사진을 보니 보니 나도 언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는 삭막한 곳이다. 겨울이 되면 더욱더 삭막해진다. 나뭇잎이 모두 져 버렸을 때 헛헛한 마음이 든다. 여기에 가지가 싹둑싹둑 잘렸으니 비참해 보였다. 마치 죽은 자의 유품을 모조리 갖다 버린 것처럼 보였다.

 

나뭇가지 치는 것은 봄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사무실 근처에 있는 플라타너스는 잎이 피기 전인 사월에 전지를 한다. 그럼에도 아파트 단지에서는 낙엽이 지자마자 전지해 버렸다. 춥고 을씨년스런 날씨 만큼이나 스산한 느낌이다.

 

재작년의 일이다. 사무실 근처에 구청이 있다. 구청 마당에는 크고 작은 나무가 있다. 마당을 작은 공원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가 보니 나무에 옷이 입혀져 있었다. 나목이 된 나무 밑둥마다 털실도 된 옷을 입혀 놓았던 것이다.

 




나무도 옷을 입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앙상한 나무가 추워 보여서일까 누군가 옷을 입혀 놓은 것이다. 나무가 옷을 입은 것을 보니 따스해 보였다. 마음까지 따스해 보이는 것 같았다.

 

오늘 아침 나뭇가지가 잘려 있는 것을 보고 처참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욕먹은 자를 욕하고, 때린 자를 또 때리는 듯한 가혹함을 보았다. 나목이 되어 센티한 마음이 되었는데 더욱 더 심적 타격을 가하는 것 같았다.

 

겨울이 되면 사람들은 눈을 기다린다. 아마도 헛헛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일 것이다. 나목이 된 나무에 눈이 내리면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그래서일까 자연은 낙엽지 지고 얼마 안 있어 곧바로 눈을 선물하는 것 같다.

 




잘린 나뭇가지를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처참한 나뭇가지를 언제까기 보고 있어야 할까? 눈이라도 내리면 좋을텐데. 이제 꼼짝없이 내년 봄까지 기다려야 한다. 잘린 나무에 옷이라도 입혀 주면 얼마나 좋을까? 따뜻한 커피를 마시며 마음을 달래본다.

 

 

2019-12-04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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