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기

미얀마가 그립다

담마다사 이병욱 2019. 12. 9. 08:59

미얀마가 그립다

 

 

눈을 뜨니 새벽 3 17분이다. 참으로 애매한 시간이다. 더 잘 수도 없고 일어날수도 없는 시간이다. 잠은 잠이 와야 잠을 자는 것이다. 잠이 오지 않은데 억지로 잘 수 없다. 잠은 내마음대로 콘트롤할 수 없다. 흔히 일체유심조를 말하면서 사람은 마음먹기에 따라 달려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는 일은 별로 없다. 나의 의지대로 되지 않는다. 나의 의지대로 된다면 나는 마음의 주인이라고 볼 수 있다. 잠을 청하는 것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억지로 자려고 할 필요가 없다. 이럴 때는 차라리 잠이 오면 자지?”라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잠은 잠이 와야 자는 것이다. 잠이 오지 않을 때는 사유하는 것이 낫다. 사유하다보면 잠은 싹 달아난다. 어둠속 새벽에 가장 편한 자세로 떠 오르는 생각을 붙잡는다. 새벽은 명경지수(明鏡止水)’와 같아서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떠 오르는 생각을 놓치지 않으려고 스마트폰 자판을 똑똑 친다.

 

새벽이 되면 물을 한잔 마셔야 한다. 찬물을 들이키기 보다는 뜨거운 물이 좋다. 어제 밤에 마시던 오룡차를 한번 더 우렸다. 목줄기를 따라 내려가는 따뜻한 물이 목에 착 감긴다. 겨울에는 몸을 따뜻하게 하라고 했다.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면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 될 수 있으면 따뜻한 물을 들이켜야 한다. 몸이 따뜻하니 마음도 따뜻한 것 같다.

 

새벽 세 시대에 잠을 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간이 되면 선원에서는 일어날 시간이다. 선원에서 하루일과는 세 시대에 시작된다. 미얀마선원에서는 새벽 3 20분이 되면 종소리가 난다. 한국 절에서 듣는 장엄한 종소리가 아니다. 둔탁한 종소리이다. “, , …” 종소리가 나면 일어나야 한다. 하루일과가 시작되는 것이다. 일어나서 부리나케 명상홀로 달려가야 한다. 새벽 네 시부터 시작되는 첫 번째 좌선시간에 참석해야 한다.

 




담마마마까선원에서 짝수 시간은 좌선시간이다. 선원 시간표대로 한다면 하루에 좌선을 여덟 번 가량 해야 한다. 좌선은 쉽지 않다. 꼼짝 않고 한시간 동안 앉아 있어야 한다. 육체노동이 힘들다고 하지만 세상에 이런 노동이 없다. 마음의 밭을 가는 노동이다. 또 세상에 이런 중노동이 없다. 하루 여덟 차례 좌선하면 체력이 버텨나지 못할 것이다. 하루 너댓차례 앉아 있는 것이 보통인 것 같다.

 

선원에서는 좌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저것 할 것이 있다. 홀수시간에는 행선을 해야 한다. 마하시전통에서는 좌선 한시간에 행선 한시간 하는 것이 기본이다. 일과에는 아침식사도 있고 점심식사도 있다. 오후불식이기 때문에 오전에만 먹는다. 오후에는 먹지 않기 때문에 시간표대로 좌선하고 행선하면 몹시 힘이 든다. 세상에 힘든 일은 많다. 그러나 마음의 밭을 가는 것이 가장 힘든 것 같다.

 

좌선을 하다보면 다리가 저려오고 온갖 잡생각이 난다. 사야도는 종이 칠 때까지 자세를 바꾸지 말라고 말한다. 이때 하는 말이 인내가 열반으로 인도한다.”라는 말이다. 이렇게 한번 좌선을 하면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앉아 있는 것은 쉬워보인다. 그러나 자신과 싸우고 있다. 법구경에서는 전쟁에서 백만이나 되는 대군을 이기는 것보다 하나의 자신을 이기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전쟁의 승리자이다.”(Dhp.104)라고 했다. 백만대군을 이기는 것보다 자신을 이기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이다. 수행을 한다는 것은 자신과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다. 그래서 좌선하는 것에 대하여 가장 적극적인 삶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선원에 가면 당부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새벽좌선과 마지막 좌선시간은 빠지지 말라고 말한다. 이것이 선원에 사는 사람들의 기본예의라고 한다. 그래서 새벽 네 시에 시작되는 첫 번째 좌선과 저녁 여덟 시에 시작되는 마지막 좌선은 꼭 참석하라고 말한다. 마치 학교에서 등교시간과 하교시간을 지키는 것과도 같다. 직장에서 출근시간과 퇴근시간을 지키는 것과도 같다.

 

선원에서 하루일과는 새벽 네시에 첫 번째 좌선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저녁 아홉시에 마지막 좌선을 마치면 하루일과가 끝난다. 선원에서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제대로 수행하면 하루 에너지가 모두 소진되기 때문에 눕자마자 잠을 자야 할 것이다. 그래서일까 담마마마까선원 법요집을 보면 잠 잘 때는 시체처럼 뒤척이지 말고 자라."라고 했다. 잠 잘 때도 사띠하며 자라고 했다. 깰 때도 사띠하며 깨라고 했다. 잠 잘 때를 제외하고 하루종일 사띠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하루종일 마음의 밭을 가는 것이다.

 

집중수행의 계절이 돌아왔다. 해마다 12월이 되면 미얀마로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미얀마 선원으로 집중수행하러 가는 사람들이다. 마치 연례행사처럼 간다. 한번 가면 한달 또는 두달 머문다. 또한 미얀마에서는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전세계 각지에서 수행자들이 몰려온다. 지금 이때가 날씨가 가장 좋은 이유도 있다. 미얀마에서는 11월 부터 2월까지 3개월 동안 날씨가 가장 좋다. 1월 초의 날씨를 보면 밤에는 18도 가량이고 낮에는 27도 가량 된다. 한국의 오뉴월 날씨에 해당된다. 그래서일까 미얀마에 가면 초목은 푸르고 온갖 꽃이 피어 있다.

 




미얀마 수행센터는 수행을 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기후는 맑고 온화하다. 무엇보다 수행을 지도할 스승이 있다. 비행기 값만 있으면 누구나 갈 수 있다. 문제는 시간이다. 시간에 매여 있는 사람들은 미얀마행을 꿈도 꾸지 못할 것이다. 시간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이 미얀마를 찾는다. 은퇴한 사람들이거나 자유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이에 해당된다. 백수도 있을 것이다. 자신을 변화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주저없이 미얀미행 비행기를 탈 것이다. 선원에서는 매일 팔계를 받아지니며 수행승처럼 산다. 매년 이맘때가 되면 가슴 설레이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어제 민선생으로부터 전화를 한통 받았다. 민선생은 올해 1월초에 미얀마 담마마마까 국제선원에서 만났다. 작년 12월 끝자락에 김진태선생의 인솔하에 이십여명이 미얀마로 출발했는데 그 중의 한분이다. 민선생은 미얀마선원에서 머리를 깍았다. 단기출가한 것이다. 민선생에 따르면 이번에도 미얀마에 갈 것이라고 했다. 단체로 출발하는데 합류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마음은 이미 미얀마에 가 있다. 그러나 현실이 허락하지 않는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일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스리랑카를 생각하고 있다. 스리랑카 순례를 꼭 한번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미얀마 선원에 가면 ‘Retreat'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각국에서 온 단체수행자들을 위한 현수막에서 볼 수 있다. 사전을 찾아보니 피정이라는 뜻이다. 카톨릭에서 쓰는 용어이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집중수행이 될 것이다. 해마다 미얀마에서는 이맘때가 집중수행철이다. 전세계 각지에서 온 수행자들이 마음의 밭을 가는 것이다.

 

집중수행에 참여하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최고로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의 일에 매인 사람들이다. 정규직 사람들은 은퇴하기 전에는 꿈도 꾸지 못한다. 이럴경우 비정규직이나 자영업자 또는 백수가 유리하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시간이다. 돈은 벌면 되지만 한번 지나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다. 수행은 힘 있을 때 하라고 했다. 조금이라도 젊을 때 하라는 것이다. 늙고 병들면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이 수행이다. 이런 생각을 한다면 당장 미얀마행 비행기를 타야 한다.

 




작년 12 31일에 미얀마행 비행기를 탔다. 일인사업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을 낼 수 없었다. 보름 시간 낸 것이 최대였다. 그러나 그 보름 기간동안 미얀마불교 진수를 맛볼 수 있었다. 부처님당시의 불교가 살아 있었던 것이다.

 

미얀마에서 보름은 짧지만 강렬했다. 한국에서는 영하의 날씨였지만 미얀마에서는 오뉴월이었다. 미얀마는 남국의 정취가 물씬 풍긴다. 한국에서 볼 수 없는 야자수가 있다. 사람 머리통만한 야자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다. 정원에는 이름모를 갖가지 꽃이 만발해 있다. 선원에 있으면 천상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청정한 분위기이다. 매일 구계를 받아지니며 마음을 밭을 가는 그 곳이야말로 내가 꿈꾸던 이상향이다. 미얀마가 그립다. 마음은 벌써 미얀마에 가 있다.

 

 

2019-12-0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