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 사람들을 위하여
일요일임에도 사무실에 밤 늦게까지 있었다. 주말에는 난방이 잘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몸이 시릴 정도는 아니다. 중앙난방시스템이기 때문에 춥지는 않으나 온기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밤 늦게까지 남아 있는 것은 밀린 일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익 때문이라면 못할 게 없다. 이익이 난다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그런 경우가 많았다. 업체에서 한번 들어오라고 하면 먼 길임에도 차를 몰고 간다. 오더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불러만 준다면 전국 어디에든 달려간다. 그래서일까 이익을 위해서라면 지옥에라도 갈 것이라고 했나보다.
요즘 기생충 이야기가 뜨고 있다. 2020년 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4개의 상을 받았다. 이로 인하여 기생충 열풍이 부는 것 같다. 전세계적인 관심사이기도 하다. 일본에서는 부제로 ‘반지하 가족’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고 한다. 패러사이트(parasite)라는 타이틀 보다는 현실적으로 더 와 닿는 제목이다.
반지하에 사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옥탑방에 사는 사람들도 있다. 소외된 사림들이다. 영어로는 아웃사이더라 할 것이다. 주류가 아닌 비주류 사람들이라 해야 할 것이다. A급이 아닌 B급이고, 일류가 아닌 이류 또는 삼류라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 속할까?
글을 쓸 때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 비주류로서 B급 삼류정신을 지향하겠다는 것이다. 요즘에는 한단계 상향해서 비주류, B급, 이류를 지향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실제로 그렇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주류는 아니다. 급으로 따져도 A급이 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이류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비주류를 위한 B급, 이류의 글쓰기를 지향하겠다고 했다.
매일매일 새로운 글을 쓰고 있다. 블로그와 페이스북에 동시에 올리고 있다. 블로그에서 글쓰기가 시작되었으므로 블로그는 일종의 홈페이지라고도 볼 수 있다. 블로그는 15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페이스북은 3년 밖에 되지 않았다. 놀랍게도 꾸준히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 힘으로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는 댓글로서 격려해 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답글을 할 만한 여유가 없다. 페이스북에서는 ‘좋아요’로 대신한다. 답글을 못하지만 매일 새로운 글 올리는 것으로 대신한다.
과거 올린 글을 pdf작업 하고 있다. 글을 쓸 때는 책을 낼 것을 생각해서 쓰고 있다. 그래서 글을 함부로 쓰지 않는다. 의미와 형식을 갖추고자 노력한다. 그래서 글에는 반드시 제목을 붙이고 글을 마칠 때에는 날자와 서명을 잊지 않는다. 서명하는 것은 글에 대하여 책임 지겠다는 것이다. 이런 기조는 블로그 초창기 때부터 시작되었다.
메일로 pdf를 발송하고 있다. 사연을 보면 “보내주시면 감사히 공부하겠습니다.”라는 글이 많다. 올린 글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도록 쓰고 있다. 그것은 경전을 근거로 한 글쓰기이다. 경전이나 주석의 문구를 인용했을 때 공감하는 것 같다.
블로그에 공감버튼이 있다. 예전에는 추천이라고 했다. 세월에 따라 용어도 변한 것이다. 왜 공감이라 했을까? 시대가 공감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다름아닌 소통이다. 페이스북에서 ‘좋아요’추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데 추천에 인색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이름이 알려져 있는 사람들이나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대체로 그런 것 같다. 공감능력이 떨어진다고 말하면 과한 것일까?
베스트셀러라고 해서 다 좋은 책은 아니다. 반짝인다고 해서 모두 금은 아니다. 유명하다고 하여 다 훌륭한 사람은 아니다. 페이스북에서는 이름 있는 사람, 지위가 있는 사람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소통에 인색한 것 같다. 그들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사는 것 같다. 그들끼리 소통하고 그들끼리 공감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어떤 이는 유명인이라 하여 다 친구맺기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소통하고 공감하는 사람이 친구임을 말한다. 무명인은 무명인 나름대로 삶의 방식이 있다.
작가 황석영의 책 중에 ‘사람이 살고 있었네’가 있다. 북한 기행에 대한 것이다. 지하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지상에서만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라 지하에도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 사는데 반지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비닐하우스에도 사람이 살고 있고 움막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해외여행 하다 들은 이야기가 있다. 자기소개 시간에 어떤 이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갈 집이 있어서 다행으로 생각합니다.”라고 말 했다. 누구나 돌아 갈 집이 있다. 그 집이 큰 집이든 작은 집이든 보금자리가 있는 것이다. 심지어 노숙자에게도 보금자리가 있다. 3년전에 을지로 굴다리에서 노숙자를 위한 음식봉사에 참여했다. 그때 어느 노숙자는 굴다리 밑에 살았는데 종이박스를 얼기설기 만들어 거처로 삼았다.
영화 기생충으로 인하여 반지하가 뜨고 있다. 심지어 반지하 투어코스가 생겨날 정도가 되었다. 비록 반지하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안은한 보금자리일 것이다. 하루 일과를 끝낸 다음에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런 반지하는 도시 도처에서 볼 수 있다.
사무실이 있는 빌딩 옆에도 반지하가 있다. 지면 바로 위에 창이 있는 것이 영화에서 보는 것과 똑같다. 차를 운전할 때 늘 지나치는 곳이다. 비가 오면 물이 들이칠 것 같다. 차가 지나가면 소음에 시달릴 것 같다. 무엇보다 밤에 헤드라이트 불빛에 힘들어 할 것 같다. 창문은 늘 닫혀 있다. 그러나 밤에 전등이 켜져 있는 것으로 보아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지상에서 산다. 고층에서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데 지하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다. 똑같은 사람들이다. 다만 가진 것이 없어서 두더지처럼 기생충처럼 살고 있다. 그러나 겉모습일 뿐이다. 불로소득의 성을 쌓고 사는 사람들 보다는 훨씬 나을 수 있다.
사람들은 오로지 앞만 보고 사는 것 같다. 때로 옆도 보고 뒤도 돌아보아야 한다. 멈추어서 자세히 보면 보인다. 이 세상은 사람만 사는 세상이 아님을 알게 된다. 하늘을 쳐다보면 새가 날아다니고, 땅을 내려보면 곤충도 있고 동물도 보인다.
도시의 지하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 그들은 어쩌면 비주류이고, B급이고, 이류 또는 삼류인지 모른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글을 쓰고 싶다. 살아오면서 남을 감동케 한 것은 없지만 글로서 희망을 주고 싶다. 네트워크만 잡힌다면 가능한 일이다.
2020-02-17
담마다사 이병욱
'진흙속의연꽃'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트는 도시 (0) | 2020.02.19 |
---|---|
생명체는 항상성이 있어서 (0) | 2020.02.18 |
“삽베 삿따 바완뚜 수키땃따!” 집 떠나 있는 자식을 위하여 (0) | 2020.02.16 |
왜 사느냐고 묻거든 (0) | 2020.02.14 |
죽음을 자유자재할 수 있을까? (0) | 2020.02.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