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팬데믹시대에 미래 패러다임은

담마다사 이병욱 2020. 3. 16. 09:08

 

 

 

팬데믹시대에 미래 패러다임은

 

 

 

 

 

골든크로스라는 말이 있다. 주식시장에서 쓰이는 용어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골든크로스가 났다고 한다. 확진자보다 완치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3일째 이런 현상에 대해 골든크로스가 난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나 신중론이 우세하다. 아직 안심할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주식시장에서는 한번 상승추세를 타면 왠만한 악재에도 불구하고 상승하는 것이 보통이다. 골든크로스가 발생했다는 것은 상승을 예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코로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조만간에 정점을 찍고 확진자숫자는 하락할 것이다. 확진자보다 완치자가 많아 졌을 때 골든크로스가 난 것으로 보아 희망을 갖는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이제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다. WHO에서는 3 11일 팬데믹(Pandemic)을 선언했다. 팬데믹은 두 개 대륙이상에서 유행하는 질병을 말한다. 이 말은 그리스어 ‘pan(모든)’과 ‘demos(사람들)’를 결합해 만든 것으로, 모든 사람이 감염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번 팬데믹은 1968년 홍콩독감과 2919년 신종 인플루엔자에 이어 사상 세 번째라고 한다. 팬데믹이라는 말은 우리말로 감염병 세계유행또는 범유행이라고 한다.

 

 

 

팬데믹이라는 말은 두려움과 공포를 주기에 충분하다. 팬데믹이라는 말은 패닉이라는 말을 연상케한다. 실제로 그렇다. 사상초유의 사태로 인하여 사람들은 두려움을 넘어 공포에 질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럽에서 들려오는 소식이 그렇다.

 

 

 

이탈리아에서는 천명 이상이 죽었다. 치사율이 6프로가량 된다고 하니 전국토가 패닉상태나 다름없다. 점차 확대되고 있어서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영국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면역에 의존하여 자연적으로 소멸되기를 바랄뿐이어서 인구의 5프로는 사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인구가 6,600만명이니 330만명은 죽어 나갈 것으로 보는 것이다.

 

 

 

중세시대때 흑사병이 있었다. 흑사병으로 인하여 역사가 바뀌었다고 한다. 그것은 무지로 인한 것이다. 흑사병이 돌자 사람들은 교회로 몰려 들었다. 기도하면 나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반대의 결과로 나타났다. 교회가 징검다리가 되어 더욱더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적 현실을 보는 것 같다.

 

 

 

교회에서는 모임이나 집회를 자제하는 사회적 분위기에 역행하고 있다. 일요예배를 강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구에서 최초 발원지가 된 교회에서는 그들의 믿는 신이 역병을 퇴치시켜 줄 것으로 믿었다. 중세 흑사병이 유행할 때 교회에 가서 기도한 것과 너무나 유사한 것이다.

 

 

 

흑사병으로 인하여 다수의 성직자가 죽었다고 한다. 특히 라틴어를 할 줄 아는 성직자가 대부분 죽었기 때문에 이후 자국어로 된 바이블을 만들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역병으로 인하여 종교개혁이 일어나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역병이 발생하면 시대도 바뀐다고 한다. 그것은 사람들이 많이 죽기 때문이다. 역병은 남녀노소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생명을 앗아가 버린다. 특히 기득권층 사람들이 죽었을 때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기회가 된다. 전쟁은 모든 것을 초토화시켜 버리지만, 역병이 발생하면 사람만 죽기 때문에 시설이나 재산은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역병과 관련하여 온갖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일본에서는 코로나바이러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참에 노인인구를 줄여 보자는 속셈도 있다는 것이다. 기저질환을 갖고 있는 노인이 감염되면 죽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게 되면 연금액도 줄어 들 것이고 모든 것이 긍적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말이다. 마치 중세 흑사병이 돌아 기득권층이 바뀐 것 같은 말 같기도 하다. 영국에서는 면역이 생겨날 때까지 내버려 두기로 했다고 하는데 어쩌면 어떤 음모가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의심을 하게 만든다.

 

 

 

주말에 밖에 나가 보았다. 서울대공원에는 사람들이 평소보다 십분의 일가량 되는 것 같다. 식물원과 실내관람장은 들어 갈 수 없다. 머리가 허연 노인들이 삼삼오오 이곳저곳에서 많이 보인다. 등산복 차림이다. 입장료가 무료이기 때문에 노인천국과도 같다.

 

 

 

거리는 썰렁한 편이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이 총총 다니는 모습에서 긴장감이 엿보인다. 그러나 전쟁중에도 아이들은 태어난다. 인구피라미드를 보면 한국전쟁당시 태어난 숫자가 평시와 비교하여 그다지 많이 차이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장례식장에서도 밥을 먹어야 하듯이, 전란중에도 사람들은 어떻게해서든지 살아간다. 그래서일까 카페에는 여전히 젊은이들이 노트북과 함께 커피를 마시며 담소하고 있다. 수산물을 파는 회집에는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대형마트에 가면 평소와 다름없이 사람들이 많다. 병란의 시대에 강한 자는 살아남아 승리자가 될 것이다.

 

 

 

 

 

 

 

팬데믹은 이번 한번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연례행사처럼 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코로나19’라는 명칭으로 알 수 있다. 숫자 19 2019년을 의미한다. 2019년에 발생한 신종코로나바이러스라는 것이다. 마치 윈도우제품이 출시할 때마다 연도가 붙는 것과 같다. 예전에는 V1.0이니 V2.0이니 하는 버전넘버로 관리했으나 매년 업그레이드되기 때문에 연도로 관리하는 것이다. 이와같이 연도로 관리하는 것은 세계적 추세이다. 축제도 그렇고 운동경기도 그렇다.

 

 

 

바이러스 명칭에 연도를 붙이는 것은 이번 한번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암시하는 것 같다. 내년에 더 센 것이 나타나면 바이러스명칭 뒤에 숫자 21이 붙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앞으로 변종 또는 신종바이러스 출현은 필연적이라 볼 수 있다. 연례행사처럼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 인류는 전혀 다른 상황에 직면하게 될지 모른다. 이번 코로나19는 어쩌면 미래 병란시대의 서막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병란의 시대에 어떻게 해야 생존할 수 있을까? 저항력이 약하거나 면역력이 없는 사람들은 생존하기 힘들 것이다. 노인들이 타격이 클 것이다. 아무리 조심한다고 하더라도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순간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 이번 코러나바이러스로 사망한 사람들 대부분이 기저질환을 앓고 있는 노령층에서 발생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건강하고 오래 사는 사람들은 점점 드물게 될 것이다.

 

 

 

니까야를 보면 4대축원이 있다. 법구경에도 실려 있는 아유 완노 수캉 발랑(āyu vaṇṇo sukha bala)”이라는 말이다. 이말은 "장수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고 건강하시기를!(Dhp.109)라는 뜻이다.

 

 

 

장수, 용모, 행복, 건강 이렇게 네 가지는 누구나 바라는 것이다. 오래 살되 이왕이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이 더 낫다. 여기에다 아름다운 용모와 즐겁고 행복한 삶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사업, 입시, 치유 같은 이기적 축원과는 비할 바가 아니다.

 

 

 

축원중의 최상의 축원은 장수축원일 것이다. 이는 인간의 수명은 정해져 있지 않음을 말한다. 한마디로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인간은 업생(業生)이기 때문이다. 과거에 지은 행위에 대한 과보가 익었을 때 언제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천상과 비교된다.

 

 

 

불교적 세계관에 따르면 천상은 정해진 수명이 있다. 이는 공덕행을 한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라고 볼 수 있다. 평소 보시, 지계 등 공덕을 많이 쌓으면 천상에 태어난다고 하는데 긴 수명과 함께 수명이 보장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과거 지은 행위로 인하여 언제 업이 익어서 과보를 받을지 모른다.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수명이 보장되지 않는 이유라고 볼 수 있다.

 

 

 

장로가 장수축원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단지 가늘고 길게 오래만 살라는 것이 아니다. 또 즐기기만 하며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오래 살면서 공덕지으라는 것이다. 오래오래 살면 그만큼 공덕지을 기회도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살아 있을 때 보시공덕, 지계공덕, 수행공덕을 많이 쌓아야 함을 말한다. 이러한 삶은 이세상에서 행복한 삶뿐만아니라 저세상에서도 행복한 삶을 보증한다. 또한 이러한 삶은 자연스럽게 소욕지족(小慾知足)의 삶이 될 것이다.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고 자원을 낭비하는 성장위주의 삶이 아니라 아끼고 절약하는 소박한 삶을 말한다.

 

 

 

코로나 팬데믹은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 모이는 것 자체가 감염요인이 되기 때문에 예배 등 종교활동이 약화될 것이다. 그 대신 혼자서 할 수 있는 수행이 각광받을지 모른다. 집단을 강조하는 유일신교적 패러다임이 약화되고 개인수행을 강조하는 불교적 패러다임으로 대체될지 모른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고전이 되어버린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의 저자 프리쵸프 카프라는 이미 30여년 전에 미래는 동양적 패러다임이 대안이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어쩌면 이제 매년 되풀이 되다시피할 팬데믹의 시대에 불교가 미래 인류를 구원할 대안이 될지 모른다.

 

 

 

 

 

2020-03-15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