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코로나대응 선진국이라는 국뽕

담마다사 이병욱 2020. 3. 20. 09:08

 

 

 

코로나대응 선진국이라는 국뽕

 

 

 

 

 

전에 볼 수 없는 광경이 있다. 약국에 긴 줄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다. 마스크오부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전시나 다름없는 상황이다. 코로나19라는 병란을 맞이하여 전국민이 사투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까지 마스크를 약국에서 산 적이 없다. 마스크오부제에 따라 지정된 요일에 살 수 있으나 아직까지 줄 서 본 적이 없다. 이전에 사 놓은 것을 필요할 때만 쓰고 있다. 무엇보다 혼자 일하기 때문에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거리를 거닐 때도 마스크를 하지 않는다. 질병본부에서도 권유한 것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대부분 사람들은 마스크를 한다. 이런 점은 유럽사람들과 대조적이다.

 

 

 

코로나19가 유럽으로 확산되었다.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이른바 선진국도 예외가 아니다. 그런데 이들 나라들은 마스크 쓰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아마 문화의 차이일 것이다. 마스크 쓰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는 것이다. 범죄자나 환자나 쓰는 것으로 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역병이 더욱 확산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충격적인 것은 사재기이다.

 

 

 

뉴스에서는 독일에서의 사재기모습을 보여주었다. 수퍼마켓 문이 열리자마자 우르르 몰려가는 모습은 충격적이다. 선진국의 모습이 아니다. 진열대는 텅텅 비어 있다. 마치 전쟁 난 것 같다. 이런 모습은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이에 대하여 뉴스 자막에서는 코로나 대응 선진국으로 평가받는 한국이라고 했다.

 

 

 

 

 

 

 

 

 

 

 

국뽕이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을 알게 된 것은 일년이 되지 않는다. 사전적으로는 국가와 히로뽕(philopon)의 합성어다. 국수주의·민족주의가 심하며 타민족에 배타적이고 자국만이 최고라고 여기는 행위나 사람을 일컫는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요즘 국뽕이 된 것 같다. 매스컴에서는 코로나대응이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한다. 선진국들도 찬탄하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그런데 요즘 유뷰브에는 국뽕과 관련된 채널이 널려 있다는 것이다.

 

 

 

일뽕이라는 말이 있다. 일본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일본문화에 심취한 사람들도 해당된다. 이런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일종의 일본문화에 대하여 열등의식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일본 것은 무엇이든지 다 좋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일뽕이 되면 일드(일본드라마)를 즐기게 되는 등 마치 일본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처럼 된다. 동시에 한국문화에 대하여 열등한 것으로 본다. 몸은 한국인이지만 정신은 일본에 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가 여러모로 일본에 앞서게 됨에 따라 이제 국뽕이라는 말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과연 우리는 국뽕이 될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을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유튜브에서는 전국민 의료보험체계, 지하철과 버스의 편리한 환승시스템, 초고속인터넷 서비스, 빈틈 없는 치안 등을 들고 있다. 이런 시스템은 소위 지세븐(G7) 또는 지에잇(G8)국가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무엇보다 치안이다. 여성이 밤늦게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몇 안된다고 한다.

 

 

 

국뽕유튜브에서 종종 보여 주는 것이 있다. 그것은 양심냉장고 같은 것이다. 남의 물건을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의 후기를 읽어 주는 식으로 알리고 있다. 카페에서 노트북을 놓고 화장실에 가도 없어지지 않는 것을 대단히 신기하게 본다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상식인 것이 그들에게는 비상식으로 보인 것이다.

 

 

 

스스로 국뽕이 된 유명인도 있다. 문화평론가 김갑수가 그렇다. 꽁지머리를 특징으로한 평론가는 BTS를 보고서 국뽕이 되었다고 했다. 분석해 보니 한류가 세계적인 현상임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한류에 대해 시덥잖게 생각했으나 한순간에 바뀌었다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국뽕이 된 것처럼 자부심을 가져도 될까? 여러가지 정황으로 판단해 보건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특히 최근 코로나대응을 보면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한국은 코로나대응 선진국이라 하지만 이미 선진국이 되어 있다. 사재기도 없고 줄서기는 생활화되어 있고 남의 물건은 가져가지 않는다. 선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질서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 일본에 갔었을 때 문화충격을 먹었다. 거리는 깨끗했다. 어느 것 하나 흐트러진 것이 없었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줄서기에서 충격을 받았다. 작은 도시임에도 몇 명만 있어도 줄 선 모습이 문화충격으로 다가온 것이다. 1990년의 일이다.

 

 

 

문화충격은 외관에 있지 않다. 보통사람들의 의식수준에 있다. 이는 질서로 나타난다. 그때 당시 일본은 사회 모든 분야에서 질서가 잡힌 나라로 보였다. 거리는 깨끗하고 사람들은 단정해 보였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여유롭고 풍요로워 보였다. 이런 모습은 직접 보기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전에는 일본을 감정적으로만 보았는데 그것이 깨졌을 때 쇼크로 다가온 것이다. 문화충격을 받은 것이다. 선진국이 되는 것이 반드시 물질적인 것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그동안 선진국콤플렉스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머리를 들어보니 말끔히 사라진 것이다. 나도 국뽕이 된 것일까? 정말 국뽕이 된 것 같다. 우리나라도 물질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정신적 성장도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니 중진국이니 하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일본을 제껴 가는 것이 대견스럽다. 이제 우리나라는 30년 전의 우리나라가 아니다. 가장 극적인 것은 전자산업이다.

 

 

 

1985년 처음 회사에 들어 갔을 때 일본은 전자대국이었다. 그때는 데드카피(Dead Copy)라 하여 일본 것을 엎어 놓고 베끼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불과 30여년만에 따 돌렸다는 것이다. 이제는 전자산업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예전에는 일본을 전자대국이라 했으나 지금은 더 이상 아니다. 일본 컴플렉스에서 벗어난 것이다.

 

 

 

모든 것이 반듯하다. 건물도 반듯하고 간판도 반듯하다. 거리에는 흐트러진 것이 없다. 자동차도 험집 하나 없이 새것처럼 보인다. 사람들은 단정해 보인다.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보는 것들이다. 겉으로 보아서 선진국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내용이 중요하다. 그것은 다름아닌 질서의식이다. 질서가 잡힌 사회는 안정적이다. 이번 코로나19에서 드러나는 것 같다. 이제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 같다. 이번 코로나대응을 보면서 국뽕 맞은 것 같다.

 

 

 

 

 

2020-03-20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