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산행을 행선하듯이

담마다사 이병욱 2020. 4. 28. 15:58

 

 

 

산행을 행선하듯이

 

 

 

 

 

그제 일요일 오랫만에 산행을 했다. 목적지는 관악산이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즐겨 찾는다. 아파트앞 관악대로에서 너댓정거장만 가면 관악산 산림욕장 입구에 도착한다. 수도군단사령부가 있는 곳이다. 관악산 남단에 있는 내비산산림욕장 입구를 말한다.

 

 

 

이번 산행에서는 국기봉 근처까지 가기로 했다. 늦은 오후여서 관악산 종주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올해 들어 첫 산행이다. 코로나19로 인하여 두 세 달 칩거하다시피 했다. 마침 일요일 오후 날씨도 화창해서 다리운동도 겸해서 길을 나선 것이다.

 

 

 

확실히 코로나철이다. 산에서도 마스크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좁은 산갈에서 서로 스치고 지나갈 때 감염을 우려해서일 것이다. 그러나 공기가 좋아서 마스크를 하지 않았다. 최대한 거리를 두고 걸었다. 오랜만에 오르니 다리가 뻐근하고 숨이 가빴다. 운동부족임을 실감했다.

 

 

 

산행하는 것도 수행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다. 오를 때 발에 집중했다. 마치 행선하는 것처럼 왼발, 오른발하며 걸은 것이다. 그러나 너무 빨라 알아차림하기가 쉽지 않다. 이번에는 발바닥 감촉에 집중했다. 닿는 느낌이 딱딱한지 가벼운지 아는 것이다. 발을 들면 가벼운 느낌이고 딛으면 무거운 느낌이다. 사대 중에서 지대와 풍대를 함께 알아차림 하는 것이다.

 

 

 

산행할 때 발에 집중하면 그다지 힘들지 않다. 이는 모양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발모양을 보지 않고 발바닥의 감촉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발바닥의 감촉과 알아차림하는 마음만 있게 된다.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그럼에도 저 먼 산을 쳐다보며 언제 저기까지 가지?”라며 생각하면 힘만 들 뿐이다.

 

 

 

생각에도 무게가 있다. 이는 좌선을 해보면 알 수 있다. 좌선하면 호흡 등 강한 대상에 집중하는데 단지 알아차리는 마음만 있을 뿐이다. 이때 생각이 치고 들어오면 그것을 계기로 망상이 일어난다. 알아차림을 놓쳤을 때 허공에 거대한 집을 짓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알아차림하면 모두 허물어진다. 그런데 생각이 꼬리를 물었을 때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언어화 하여 분별하는 것에 힘이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생각을 하면 힘이 든다. 말 하는 것도 힘이 든다. 언어에는 무게가 있다는 것이다.

 

 

 

위빠사나 수행처에서 늘 하는 말이 있다. 행선을 할 때 발모양을 보지 말고 감촉을 느끼라는 것이다. 발을 옮겼을 때 가벼운지 무거운지, 발을 딛었을 때 딱딱한지 부드러운지 알아차리라는 것이다. 발모양을 보지 말라는 것은 개념화하지 말라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서라도 언어적 개념이 들어가면 그것은 실제가 아니다. 그래서 수행인터뷰할 때 관념을 말하지말고 느낌을 말하십시오.”라고 지도법사는 주의를 준다.

 

 

 

모양이라는 말은 언어적으로 개념화된 것을 말한다. 그래서인지 나마루빠, 즉 명색에 대하여 이름-형태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모든 것을 이름과 명칭으로만 해석하는 것이다. 브라만교의 우파니샤드 방식 해석을 말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명색에 대하여 정신-물질이라고 말한다.

 

 

 

명색에 대해 이름-형태로 보는 것과 정신-물질로 보는 것에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있다. 명색에 대하여 이름-형태로 보면 수행이 없다. 개념타파만 하면 깨닫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명색에 대해 정신-물질로 보면 수행이 있다. 우리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여 그것이 무상하고 괴로운 것이고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알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있는 그대로 알고 보았을 때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대자유인이 되는 것이다.

 

 

 

수행은 대자유인이 되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상이 모두 수행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산행하는 것도 수행이다. 한발한발 발모양을 보지 않고 옮길 때 마다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렇게 알아차림하면서 올라가면 그다지 힘든 줄 모른다. 그렇게 올라가다 보니 목적지에 이르렀다. 국기봉 못 미처 아래에 있는 전망대를 말한다.

 

 

 

 

 

 

 

관악산은 뒷산과도 같은 곳이다. 1995년 안양으로 이사 온후 사시사철 다니고 있다. 도시의 스카이라인은 자꾸 변해 가지만 산세는 늘 그대로 있다. 아무리 개발광풍이 몰아쳐도 관악산을 통째로 날리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변함없는 관악산을 보면서 변한 것은 사람인 것을 실감한다. 20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관악산이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예전에 보지 못하던 전망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전망대에서 세상을 내려다 보았다. 안양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저 멀리 군포가 보이고 더 멀리 수원이 보인다. 아스라이 동탄신도시도 보인다. 온통 백색의 아파트단지 뿐이다. 관악산은 그대로 있는데 아파트단지만 늘어난 것 같다. 앞으로 십년, 이십년 후에는 세상은 또 어떻게 변할까? 수원 부근에서 산불이 났는지 연기가 자욱하다.

 

 

 

 

 

 

 

땀에 푹 젖었다. 잠시 좌선이라도 하려 했으나 찬바람이 불어 그만 두었다.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서둘러 하산했다. 오를 때와 달리 다리가 풀려 있어서 발걸음이 경쾌했다. 산행하면 반드시 깔딱고개가 있기 마련이다. 산행초입에서 볼 수 있다. 일단 가파른 곳만 지나면 그 다음은 능선길이라 편하다. 속된말로 빡시게올라가면 그 다음 부터는 수월하다. 내려 갈 때는 날아가는 것 같다. 수행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처음에 집중하기가 힘들지 일단 집중이 되고 나면 그 다음 부터는 수월하다. 나중에는 지혜가 이끌어간다고 말한다.

 

 

 

하산길에 보아 두었던 노점에 들렀다. 산림욕장 안에서 소규모로 농사짓고 사는 사람들이 등산객을 대상으로 먹거리를 파는 곳이다. 미나리도 있고 쑥도 있다. 계절에 따라 제철에 나는 먹거리를 판다.

 

 

 

 

 

 

 

쑥을 샀다. 된장국 끓여 먹으면 좋다. 쑥 한바구니에 2천원 했다. 묵 같은 것이 보여서 묵도 주세요.”라고 말 했다. 아주머니는 두 개에 3천원 드릴테니 가져 가세요.”라고 말 했다. 두 말 없이 샀다. 이런 곳에서는 깍으면 안된다. 달라는 대로 주어야 한다. 노점 농산물은 사는 것이 아니라 팔아 주는 것이다.

 

 

 

묵인줄 알고 샀던 것은 염장무였다. 무를 묵으로 착각하고 묵을 달라고 했더니 무를 준 것이다. 염장무 맛은 어떨까? 마치 소금덩이처럼 짠 맛이다. 그러나 깊고 그윽한 맛이다. 오래 묵혀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묵이라면 한번에 먹고 말 것이지만 염적무는 두고두고 먹을 만하다. 이번 산행에서 최대의 수확이라고 본다. 이를 두고 득템했다고 하는 것일까?

 

 

 

 

 

 

 

 

2020-04-28

 

담마다사 이병욱

 

 

 

'코로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난기본소득 카드를 받았는데  (0) 2020.05.08
감기에 좋은 목련꽃차  (0) 2020.05.01
고욤잎차 예찬  (0) 2020.04.22
사회적 거리두기와 중도(中道)  (0) 2020.04.09
바이러스가 새시대를  (0) 2020.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