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코로나가 뭐길래

담마다사 이병욱 2020. 5. 9. 17:21

 

 

 

코로나가 뭐길래

 

 

 

 

 

코로나가 뭐길래 일상을 흔들고 있다. 용산 이태원에서 또다시 발생했다. 밤새도록 술마시고 춤추고 노는 클럽에서 발생한 것이다. 슈퍼 전파자는 그날 새벽 온클럽을 쏘다닌듯하다. 그 결과 20명 이상 확진자가 발생했다. 그 중의 한명은 살고 있는 지역에서 발생했다. 그날 새벽 이태원에 있었다고 한다.

 

 

 

또다시 비상이 걸렸다. 우연히 돌린 채널에서는 서울시장이 노랑잠바를 입고 나와서 실시간 긴급방송을 했다. 오늘 이 순간부터 클럽 등 사람이 모이는 유흥주점은 사태가 진정될때까지 무기한 영업정지하겠다는 것이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노인들이다. 그동안 노인정에도 나가지 못하고 집에서 갇혀 지내다 시피 했는데 또다시 갇혀 지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적 거리두기로 전환됨에 따라 노인정에 갈 희망이 생겼으나 또다시 좌절된 것이다.

 

 

 

슈퍼전파자에 대한 비난이 거세다. 인터넷뉴스 댓글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까지 전화통화가 되지 않는 1,400여명에 대한 것이라고 한다. 이에 대하여 시장은 끝까지 추적하여 밝혀 내겠다고 했다. 그리고 자진신고해 줄 것을 당부했다.

 

 

 

미래는 바이러스와 전쟁의 역사가 될 것 같다. 대량살상무기 보다 더 무서운 것은 바이러스이다. 고교시절 생물시간에 배운 비루스(Virus)는 가장 기초적인 생명체였다. 놀랍게도 자가증식을 한다는 것이다.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는 등 숙주만 확보되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이다. 감기에 걸리면 바이러스에 걸리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불과 몇 년전까지만 해도 툭하면 감기에 걸렸는데 아마도 이름모를 바이러스에 걸렸던 것 같다.

 

 

 

한번 바이러스에 걸리면 면역이 생겨난다. 다음에 똑 같은 바이러스가 침투해도 막아 내는 것이다. 코로나19는 아직까지 한번도 겪어 보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항체가 없다. 그래서 걸리면 속수무책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전염성이 있어서 침을 튀기면 걸릴 수 있다.

 

 

 

가능하면 접촉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렇게 하려면 집에 꼼짝없이 갇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젊은 청춘들은 그 사이를 참지 못하는 것 같다. 그 대가는 너무 크다. 이번에 클럽 등 유흥점이 문을 닫게 된다고 하는데 어쩌면 잘된 일인지 모른다. 바이러스가 생활을 건전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역병은 왜 창궐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무절제한 생활의 영향이 클 것이다. 이태원 클럽에서와 같이 먹고 마시고 춤추며 노는 곳에서 걸리기 쉽다. 이는 젊음의 자만이고 건강에 자만에 기인하는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오계를 어기는 삶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에서도 술에 의한 영향이 크다.

 

 

 

술이 들어가면 절제가 되지 않는다. 술은 사람을 흥분하게 만든다. 술은 사람은 사람을 만용부리게 만든다. 그런데 바이러스는 술을 만나면 폭발적 성장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술이 몸 이곳저곳에 바이러스를 실어 나르기 때문이다. 또 술을 마시면 몸의 저항력이 약해져서 숙주로 삼고 있는 바이러스 입장에서 본다면 좋은 환경이 조성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이태원사건은 술로 인한 젊음의 자만과 건강의 자만의 결과라고 보여진다.

 

 

 

바이러스를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의사들은 몸을 따뜻하게 하라고 한다. 그리고 따뜻한 물을 자주 마시라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건전한 생활일 것이다. 술 마시고 춤을 추는 등 무절제한 행위로 일관했을 때 타겟이 되기 쉽다. 그래서 도덕적인 삶이 요청된다. 최소한 오계를 지키는 삶이다. 종교적인 삶도 요청된다.

 

 

 

젊음을 발산하는 곳은 클럽만 있는 것은 아니다. 종교적인 삶도 요청된다. 명상하는 것도 바이러스를 극복하는 좋은 방법중의 하나일 것이다. 접촉없이 비대면으로 자기계발 하는 것이다. 감각적 쾌락이 아무리 좋다고 하지만 내면에서 맛  보는 것만 못할 것이다. 그래서 이런 게송이 있다.

 

 

 

 

 

텅 빈 집에 들어가서

 

마음을 고요히 하고

 

수행승이 사실을 통찰하면

 

인간을 넘는 기쁨이 있다.”(Dhp.373)

 

 

 

 

 

마음을 고요히 한다는 것은 지멸(止滅)을 말한다. 사실을 통찰한다는 것은 원인과 조건에 따라 담마를 통찰하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인간을 넘는 기쁨이 있다고 했다. 사향사과의 팔성취를 말한다.

 

 

 

사람들은 감각적인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눈과 귀, , , 신체의 접촉에 따른 감각적 쾌락의 즐거움을 말한다. 클럽에서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는 것도 이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나 감각의 즐거움은 거친 것이다. 그리고 허망한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뭇삶이 최상의 즐거움과 만족을 누린다.’고 한다면 나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S36.19)라고 했다.

 

 

 

부처님은 오욕락과 같은 거친 즐거움 보다도 더욱 탁월하고 미묘한 즐거움이 있다고 했다. 어떤 즐거움일까? 부처님은 아난다여, 세상에 수행승이 감각적 쾌락을 버리고 불건전한 상태를 버리고 사유와 숙고를 갖추고 멀리 여윔에서 생겨나는 희열과 행복을 갖춘 첫 번째 선정에 든다. 아난다여, 그러한 즐거움 보다 더욱 탁월하고 더욱 미묘한 다른 즐거움은 이런 것이다.”(S36.19)라고 했다.

 

 

 

부처님은 선정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즐거움이라고 해서 같은 즐거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선정의 즐거움은 감각에 따른 오욕락과 비할 바 없다고 했는데 놀랍게도 그런 즐거움은 감각적 욕망을 버리는 데서 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잔잔하고 미묘한 즐거움을 만끽 하려거든 먼저 감각적 욕망을 버리라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세상의 흐름과는 반대로 가는 경향이 있다. 세상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에 대하여 괴로운 것으로 보는 것이다. 세상사람들이 감각적 욕망을 추구할 때 거꾸로 감각적 욕망을 버려서 즐거움을 찾으라는 것이다. 즐거움을 추구하려는 자는 눈과 귀 등 감각에 따른 오욕락 보다는 오욕락을 내려 놓았을 때 훨씬 더 수승하고 탁월하고 미묘하고 잔잔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는 것이다. 코로나19시대에 젊음의 자만과 건강의 자만으로 사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메시지로 본다.

 

 

 

코로나는 극복되어야 한다. 손씻기와 거리두기로 극복할 수 있지만 무엇보다 건전한 생활이다. 오계를 지키는 삶을 산다면 코로나는 저절로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술 마시는 것 하나만 자제해도 극복될 수 있다. 만악의 근원은 술이기 때문이다. 이번 이태원 사건도 어쩌면 술로 인한 것인지 모른다.

 

 

 

코로나 극복을 위한 좋은 게송이 있다. 라따나경이다. 보배경 또는 보석경이라고 한다. 부처님 당시 베살리에 역병이 돌았을 때 부처님이 베살리 사람들을 위해 법문해 준 것이다. 그래서일까 어느 테라와다불교선원에서는 매일 아침 라따나경을 독송한다. 그런 라따나경에는 후렴구가 있다. 삼보에 대하여 예경과 찬탄을 한 후에 항상 이 훌륭한 보배가 있으니, 이러한 진실로 모두 행복하여지이다.”(Sn.2.1)라며 축원해준다.

 

 

 

 

 

2020-05-09

 

담마다사 이병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