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장통합본이 나왔다, 세계최초최대복원번역 빠알리율장
블로거로서 삶은 글을 남기는 것이다. 남긴 글을 책으로 엮으면 삶의 결실이 되는 것 같다. 번역가의 삶의 결실은 무엇일까? 번역된 책을 출간했을 때일 것이다. 이번에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 출간된 율장통합본 ‘비나야삐따까’ 역시 번역가의 삶의 결실일 것이다.
책을 하나 받았다. 인조가죽케이스로 된 두툼한 율장통합본이다. 니까야 금요강독모임에 참석했더니 전재성회장이 주었다. 이렇게 책을 받게 된 것은 강독모임 멤버이기도 하지만 교정작업에도 참여했기 때문이다. 모두 다섯 권으로 이루어진 율장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번역된 부기(parivāra) 교정작업에 참여했다.
부기라고 일컬어지는 빠리바라는 일종의 부록이라고 볼 수 있다. 네 권으로 이루어진 율장, 즉 율장대품, 율장소품, 율장비구계, 율장비구니계가 있는데 목차와 간략한 내용을 기입한 부속서가 부기인 것이다.
한국빠알리성정협회에서는 율장을 단권으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부기까지 포함하여 완역했다. 한국불교역사에서 처음 있는 일이고 전세계적으로도 최초라고 본다. 전재성 한국빠알리성전협회 회장은 5월 15일 강독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통합본을 나누어 주고 사인을 해 주었다.
율장통합본은
율장통합본을 열어 보았다. 주황색 인조가죽 케이스로 된 것인데,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는 주황색은 율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참고로 지금까지 발간된 것을 보면 상윳따니까야는 검붉은색이고, 맛지마니까야는 백색, 디가니까야는 연두색, 앙굿따라니까야는 노랑색, 니까야는 청색으로 구분해 놓았다.
율장통합본으로 인하여 한국빠알리성전협회에서는 쿳다까니까야를 제외한 전 경전이 단권화 되었다. 인조가죽케이스로 단권화 된 것은 상윳따니까야, 앙굿따라니까야, 율장통합본이다. 디가니까야와 맛지마니까야, 그리고 청정도론은 가죽케이스가 아닌 일반책으로 단권화 되었다.
방대한 경전을 단권화 한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제까지 관행을 깨는 것부터 시작된다. 마치 바이블을 보는 것처럼 2단 칼럼에 종이 재질을 얇은 것을 사용하는 것이다. 폰트사이즈도 작다.
단권화 했을 때 상윳따니까야는 이전에 7권이었던 것이 통합본으로 2,800페이지가 되었다. 앙굿따라니까야는 이전에 9권이었던 것이 통합본으로 2,780페이지가 되었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율장통합본은 이전에 4권이었던 것이 부기를 합하여 3,582페이지가 되었다.
통합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경전을 가까이하기 쉬운 것이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인조가죽케이스로 되어 있어서 마치 바이블처럼 옆구리에 끼고 다닐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지 열어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출판비용도 싸게 먹힌다. 여러권의 책을 출판하는 비용과 통합본으로 출간하는 비용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추천사와 발간사를 보니
가죽케이스를 열어 보니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있다. ‘세계최초최대복원번역’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써 놓은 것은 아직까지 이런 사례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추천사와 발간사를 읽어 보았다.
추천사는 성우스님이 썼다. 성우스님은 추천사에서 계율을 지키는 것에 대하여 교통법규를 지키는 것에 비유했다. 그래서 “계율이 없이는 우리는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보리심에 한발자국도 다가설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율사스님으로서 성우스님은 이번 통합본 출간하는데 있어서 출판비용을 전액부담했다. 출판비용을 내면 가장 첫페이지에 추천사를 쓰는 것은 관행인 것 같다.
발간사는 혜능스님이 썼다. 혜능스님은 발간사에서 구족계의 ‘지범개차(持犯開遮)’를 강조했다. 계율을 지키고(持), 범계를 참회하고(犯), 예외규정(開)과 금지규정(遮)을 이해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계율은 삼보가운데 하나인 승가의 목숨이고 생명입니다.”라고 했다.
혜능스님은 꼼꼼히 교정작업에 참여했다. 니까야 금요강독모임 멤버들도 교정작업에 참여 했지지만, 특히 혜능스님은 율사스님으로 매우 꼼꼼하게 철저하게 교정본 것으로 알고 있다.
머리말에서
머리말을 읽어 보았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회장이 쓴 것이다. 전재성회장은 지금까지 전승되어온 빠알리경전에 대하여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장 불가사의한 역사적 현상”이라고 말했다.
전재성회장은 빠알리 경전에 대하여 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장 불가사의한 역사적 현상이라고 했을까? 이는 “불교가 케케묵은 신화가 아니라, 2500년 전의 말씀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잘 개간된 논밭처럼 논리적으로 잘 짜인 언어적 사유의 극치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상상해왔던 모든 시공간을 초월하게 한다는 점을 발견하고는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라고 했다. 빠알리삼장을 거의 다 번역해 본 번역가로서의 말이다.
빠알리삼장을 읽어 보면 그 사유의 폭과 깊이를 알 수 있다. 이전에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인식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 같다. 이런 면으로 보았을 때 빠알리삼장은 케케묵고 낡은 것이 아니다.
스마트폰시대에 초월적인 이야기나 신화적인 이야기가 실려 있다고 해서 배척한다면 크나큰 손실일 것이다. 오로지 자신의 눈과 귀로 보고 들은 것만 믿으려 한다면 많은 것을 놓칠 것이다. 빠알리경전에 초월적이고 신화적인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가치가 홰손되지 않는다. 그저 “그러려니” 하면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한다. 그런 이야기를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있기 때문이다.
전재성회장은 머리말에서 율장에 대하여 촘촘한 그물망적 서술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기록될 수 있는 것은 모두 기록되어 있음을 말한다.
율장은 수범수제(隨犯隨制)의 전형
흔히 율장에 대하여 수범수제(隨犯隨制)라고 한다. 죄를 먼저 짓고 제도가 생겨나는 것을 말한다. 율장이 대표적이다.
율장을 보면 음계에 대한 것이 반 이상이다. 승당추방죄법 제1조에 해당되는 성적교섭에 대한 학습계율을 보면 전형적인 수범수제형식으로 되어 있다. 출가한 비구가 어머니의 청에 못이겨 아들하나 낳아 달라는 말을 듣고 전처와 성적교섭한 사건을 말한다. 마치 짤막한 단편소설을 읽는 듯한 이야기로 되어 있는데, 수행들의 비난이 일자 부처님은 “수행승이여, 수행승이 성적교섭을 행한다면, 승단추방죄를 범하는 것이므로, 함께 살 수 없다.”(Vin.I.21)라고 하여 최초로 학습계율이 만들어진 것이다.
율장은 경장과 달리 표현에 있어서 적나라한 면도 있다. 이는 율장이 출가한 수행승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일 것이다. 부처님은 성적교섭을 한 수행승을 나무라면서 “어리석은 자여, 오히려 맹독을 지닌 독사뱀의 아가리에 그대의 성기를 집어넣을지언정, 결코 여인의 성기에 집어넣지 말라.”(Vin.I,20)라고 했다. 이처럼 율장에서는 적나라하고도 노골적인 표현이 많다. 그래서일까 재가불자에게는 금서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재가불자도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전세계적으로 율장을 보는 것에는 제한이 없다. 다만 출가승과 함께 독송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율장이 이렇게 방대해진 것에는 이유가 있다. 죄를 지을 때마다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율장이 그물망식으로 촘촘하게 서술되어 있는 것에 대하여 전재성회장은 “당연히 수행승들이 수행승들에게 또는 재가신자나 일반사람에게 비난받는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있는 그대로 기술하고 있습니다.”라고 머리말에 썼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출가수행승들의 범계행위에 대하여 적극적인 비난이 있었기 때문에 율장이 방대해졌음을 말한다.
스님이 수염을 길러도 될까?
율장을 보면 갖가지 범계행위를 볼 수 있다. 그럴 때 마다 양식 있는 수행승이나 재가불자, 심지어 일반사람들도 비난했다. 이는 율장에서 “사람들이 혐책하고 분개하고 비난했다.”라는 정형구로 나타난다.
스님이 수염을 길러도 될까? 요즘 어떤 스님들은 수염을 멋지게 기르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머리는 삭발했지만 수염기르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분명한 사실은 율장에서는 금하고 있다는 것이다.
율장소품에서는 잡다한 것을 금하는 ‘사소한 일의 다발’이 있다. 수염과 관련하여 “그런데 한때 여섯 무리의 수행승들이 수염을 다듬고, 수염을 기르고, 염소처럼 긴 수염을 만들고, 사각모양의 수염을 만들고, 가슴에 털모양을 만들고, 배위에 털 모양을 만들고, 구레나룻을 만들고, 음부의 털을 잘라냈다. 사람들이 혐책하고 분개하고 비난했다.”(Vin.II.133)라고 표현되어 있다.
수행승이 비난받을 만한 행위를 하면 동료수행승이나 재가불자, 일반사람들의 비난이 따르게 되어 있다. 이는 다름 아닌 적극적인 비난이다.
요즘 한국불교에서는 스님이나 승가를 비난하는 것에 대하여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승가의 문제나 불교의 문제에 대하여 외부에 발설하는 것에 대하여 불교의 수치 또는 불교의 망신으로 보는 것이다. 내부에 일어난 문제는 내부에서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것이다. 이는 아마도 대승보살계의 영향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대승보살계 10중대계를 보면 여섯 번째에 “사부대중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가 있다. 또 일곱 번째에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비방하지 말라.”라는 항목이 있디. 이런 영향이어서인지 재가자가 출가자를 비난하는 것에 대하여 불편하고 북쾌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율장을 보면 출가자가 범계행위를 했을 때 “혐책하고 분개하고 비난했다.”라고 재가불자의 적극적인 비난이 있었다. 방대한 율장이 성립된 이유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스님이 수염(massu)을 기르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그래서 율장에서는 “수행승들이여, 수염을 다듬어서는 안된다. 수염을 길러서는 안된다. 염소처럼 긴 수염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사각모양의 수염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가슴의 털 모양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배위에 털 모양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구레나룻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음부의 털을 잘라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악작죄가 된다.”(Vin.II.133)라고 했다.
출가승이 노래를 부르면
율장소품 사소한 일의 다발을 보면 수염만 금한 것은 아니다. 노래도 금했다. 수행승들이 가르침을 외울 때 길게 끌듯이 노래하듯이 하며 외우는 것을 보고서 혐책하고 비난하고 분개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 노래하는 스님들이 있다. 산사음악회에서도 볼 수 있고 방송에서도 볼 수 있다. 성악을 하는 스님이 감정을 실어서 노래하는 모습을 좋게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불교를 포교하고 중생을 구제하는 방편의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길게 끄는 가락에 맞추어 가르침을 노래해서는 안된다. 노래하면 악작죄가 된다.” (Vin.II.108)라고 했다.
부처님은 왜 노래하지 말라고 했을까? 이는 다섯 가지 위험으로 요약된다. 부처님은 출가수행승이 노래하는 것에 대하여 “1)자기가 그 음성에 집착하고, 2)다른 사람이 그 음성에 집착하고, 3)재가자들이 비난하고, 4)음조를 추구하여 삼매를 방해하고, 5)후인들이 사견의 길에 떨어지는 것이다.”(Vin.II.108)라고 했다.
출가수행승이 노래(gāyana)하는 것은 한마디로 말하면 해탈과 열반의 길에 도움이 되지 않음을 말한다. 이렇게 본다면 출가수행승이 춤을 추는 것도, 그림을 그리는 것도, 음식을 만드는 것도 재가자의 적극적인 비난을 받을 일이다.
감사의 메시지를 보고
전재성 한국빠알리성전협회 회장은 머리말에서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번 율장통합본 출간에 도움을 준 사람들을 열거한 것이다. 그 중에는 본인 실명 이병욱도 보인다. 니까야강독 금요모임 멤버 장계영 샘과 선덕 샘 이름도 보인다. 이번 통합본 교정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통합본에서 부기만 교정 작업에 참여했다. 율장의 부록이라 볼 수 있는 부기는 읽는 재미가 없다. 율장대품, 율장대품, 율장비구계, 율장비구니계의 목차를 나열해 놓은 듯하고 반복구문이 많기 때문이다. 인내를 가지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초벌번역을 교정하는 도중에 완성된 번역이 나왔을 때는 두 번 보게 되었다. 그래 보았자 오자와 탈자 등을 점검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
진정한 교정자를 보았다. 정신과전문의 전현수원장을 말한다. 어느 날 금요강독모임에 갔더니 전재성회장은 전현수원장이 교정본 것을 보여주었다. 기 출간된 율장에 빼곡히 적혀 있는 글씨를 볼 수 있었다. 밑줄 친 것에는 자신의 생각이 담긴 것을 적어 놓았다. 영어로 쓴 것도 볼 수 있었다. 그 방대한 율장에 대하여 페이지마다 뻬곡히 잉크자국을 남긴 것이다. 이에 대하여 전재성회장은 몰랐던 것을 많이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이번 통합본 머리말에서 “정신과의원 전현수 원장님의 마하박가 노트를 참고하게 되었는데, 율장용어를 좀 더 명확히 정립하는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라고 써 놓았다.
전현수원장의 교정과 비교하면 오자나 탈자나 점검하는 교정은 유치원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협조를 해 준 사람들에 대하여 “또한 인내와 지성으로 통합본교열에는 참여해주신 혜능 스님과 카이스트의 장계영 교수님, 이병욱 거사님과 홍석화 거사님, 선덕 보살님께도 감사 드린다.”고 했다. 이 중에서 장계영 샘과 선덕 샘은 금요니까야강독모임 멤버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재성회장은 “본회 금요모임의 회원님들과 후원자와 독자 여러분들께도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했다. 금요모임 멤버들은 강독모임 멤버들일뿐만 아니라 후원자들이기도 하다.
전재성회장과의 인연은 4년 되었다. 2016년 봄에 처음 만나뵈었다. 그해 8월 처음으로 강독모임에 나갔다. 그때 당시 전재성회장 홍제동 아파트 서재에서 진행했다. 그때 테라가타를 번역중에 있었는데 교정제의를 받았다. 그래서 테라가타를 시작으로 테리가타, 앙굿따라니까야통합본, 청정도론, 율장부기 순으로 교정작업에 참여했다. 그래서일까 출간된 책을 보면 편집자로 등재되어 있다.
전현수 원장의 교정과 비교하면 교정이라 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운 것이다. 고작 오자나 탈자나 잡아 내는 정도에 그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 남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것도 잡아 내는 경우도 있다. 이는 니까야를 근거로 오랫동안 글을 써 왔기 때문에 발견한 것이다. 지금도 니까야에서 오자나 탈자 등 오류가 발견되면 스마트폰 카메라로 찍어서 메시지로 전송한다.
방대한 니까야번역서에 오류가 없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 지적해 주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래서 책이라는 것은 판본이 높아질수록 점점 완성도가 높아져 간다. 이렇게 본다면 교정작업에서 놓친 것도 독자들이 발견하여 알려 준다면 점점 더 완성되어 갈 것이다. 그래서 전재성 회장은 머리말 말미에 “독자 여러분들께도 심심한 감사를 드립니다.”라고 했을 것이다.
소소계의 폐지에 대하여
통합본 율장은 매우 방대하다. 더구나 생략된 것을 복원해 놓았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세계최초최대복원번역’이라는 타이틀이 붙게 되었다. 그렇다면 출가수행승들은 이렇게 방대한 율장을 다 읽어 보아야 할까? 특별히 시간 내지 않는다면 아마 평생가도 다 읽어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한번쯤 읽어 볼 필요가 있다고 전재성원장은 말한다.
율장을 읽어 보면 부처님 당시의 사회생활을 엿볼 수 있다. 율장을 통하여 그 시대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갖가지 수범수제에 대한 이야기를 통하여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간 것처럼 그 시대로 돌아 간 것 같다. 이렇게 본다면 율장은 일종의 역사서와 같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율장에 명기 되어 있는 그 많은 조항을 반드시 지켜야 할까?
부처님은 열반에 들기 전에 아난다에게 율장에 대하여 말한 것이 있다. 부처님은 “아난다여, 내가 간 뒤에 승단은 원한다면 사소한 학습계율을 폐기해도 좋다.”(D16.123)라고 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어떤 학습계율을 폐기해도 좋은지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았다. 이에 대하여 후대사람들은 아난다를 비난했다. 그때 자세히 물어보았어야 했다는 것이다.
부처님은 소소계에 대하여 폐기해도 좋다고 했다. 그러나 조건부 폐기이다. 이는 “승단은 원한다면”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주석에서는 “왜 폐지하라고 단언하지 않고 사유의 언어로 시설한 것일까? 마하깟싸빠 장로의 힘이 보이기 때문이다.”(Smv.592)라고 했다. 부처님께서 폐기하라고 말씀하시더라도 결집시에 마하깟싸빠 장로가 폐기하지 않을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하깟싸빠 장로는 두타행으로 유명하다. 부처님으로부터 가사를 물려 받았기 때문에 법제자로 알려져 있다. 부처님이 열반했을 때 제1차 결집을 주도했다. 부처님이 소소계를 폐지해도 좋다고 했지만 결집에서는 폐지되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율장이 전승되어 오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출가수행승이 노래를 하는 것 등을 금하는 소소계는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무한정정적 계율에 대하여
출가수행승이 율장에 있는 항목을 다 지키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구족계라 하여 2백개가 넘는 항목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지키기 힘들 것이다. 그래서 학습계율이라고 한다. 어기면 참회하고 또다시 받아 지니는 것이다. 자자와 포살이 있는 이유이다.
불법승 삼보 중에 승보를 승가라고 한다. 스님들이 아니다. 승가공동체가 승보인 것이다. 그런데 자자와 포살이 있는 승가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무엇을 말하는가? 계율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계율을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보름마다 포살법회를 열어 다시 받아 지는 것이다. 만일 계를 지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계가 파한 상태로 있을 것이다. 이럴 경우 포살법회에 참여하여 계를 복원해야 한다. 이처럼 평생 걸쳐서 완성되기 때문에 학습계율(sikkhāpada: 学処, 学則)이라고 한다.
율장은 수범수제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이는 사람들의 적극적인 비난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소소한 것까지 율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만일 계속 이런 식으로 수범수제식으로 진행된다명 율장항목은 천문학적인 숫자가 될지 모른다. 그래서 청정도론에서는 무한청정적 계행을 말한다.
율장에 방대한 계율이 있지만 무한청정적 계행에 비하면 손톱끝에 먼지정도로 적은 것이다. 아직까지 시설되지 않은 계율이 “구천 하고도 또한, 백팔십 꼬띠와 오백만하고도 또한, 삼만육천이 있다.”(Vism.1.132)라고 했다. 이렇게 천문학적으로 많은 계율은 대기중에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무한정정적 계율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 이는 단서가 있다. 디가니까야 ‘수행자의 삶의 결실에 대한 경’을 보면 계행의 다발을 설명하기 전에 이런 구절이 있다. “그는 이와 같이 출가해서 의무계율을 수호하고 지켜서 행동범주를 완성하고, 사소한 잘못에서 두려움을 보고 학습계율을 받아 배웁니다.”(D2.40)라고 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여기서 키워드는 “사소한 잘못에서 두려움을 보고”라는 말이다.
계행의 향기는
사소한 것에서 두려움을 본다면 의무계율이라 볼 수 있는 구족계는 자연스럽게 지켜 질 것이다. 또한 사소한 것에 두려움을 본다면 아직 시설되지 않은 무한청정계율도 자연스럽게 지켜지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 최상의 향기는 계행의 향기이다.
“아주 티끌이 없는 계행을 지니면
그가 발우와 가사를 수하는 것은
청정한 믿음을 주는 것이며
그의 출가는 결실이 있는 것이다.
청정한 계행을 지킨다면
수행승의 마음에는
태양에 어둠이 잠입하지 못하듯,
자책 등의 두려움이 잠입하지 못한다.
계행의 성취로 인해서 수행승은
고행의 숲에서 빛나니,
광명의 성취에 의해서
달이 허공에서 빛나는 것과 같다.
계행을 지난 수행승의
몸의 향기조차
천신들에게 기쁨을 만드니
계행의 향기는 말해 무엇하리요.
모든 향기의 종류 가운데
성취에서 탁월하니
계행의 향기는 장애없이
일체의 방향으로 퍼져나간다.”(Vism.1.159)
2020-05-17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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