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이면 썩는다
불자라면 누구나 실천해야 할 덕목이 있다. 베풀고 나누는 삶을 말한다. 이를 불교에서는 보시(布施)라고 말한다. 청정도론에 따르면, 보시는 원한 맺힌 자의 마음도 녹일 수 있는 것이라 하여 11가지 자애수행의 최종단계로 소개되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소원해졌을 때도 마음을 돌리게 하는데 있어서 선물만한 것이 없다. 보시를 하면 마음을 너그러워지게 한다. 시물을 받는 자는 시주(施主)에게 고개가 숙여지게 되어 있다.
수입의 5프로는 보시하고자 노력한다. 월급생활자라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수입이 들쑥날쑥하면 쉽지 않다. 그럼에도 고정적으로 후원하는 곳이 있다. 가능하면 잘게 쪼개서 보내는 것이다. 대개 만원이상이다. 이런 것을 노리는 단체도 있다. 이른바 공익광고라 하여 아프리카나 인도 등 제3세계를 대상으로 한 국제구호단체를 말한다.
국제구호단체의 특징이 있다. 먼저 비참한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와 어머니가 먹지 못해서 말라비틀어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끔찍한 장면이다. 그리고서는 “도와주세요.”라는 말로 감성에 호소한다. 금액은 삼만원 또는 이만원이다. 요즘은 만원짜리도 있다.
대표적인 구호단체가 있다. 이름만 들으면 익숙한 단체들이다. 이들 단체들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특정한 시간에 매일 광고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말도 자주 들으면 질린다. 구호단체에서 영상과 음성으로 후원을 호소하지만 자주 들으면 식상한다는 것이다.
구호단체들은 비참한 영상과 함께 오늘도 내일도 그 시간에 후원광고를 한다. 벌써 몇 년 째인지 모른다. 이제 후원광고가 나오면 눈을 감거나 고개를 돌린다. 채널을 돌려 버리기도 한다. 마치 ‘앵벌이’ 하는 것 같은데 나만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일까?
터질 것이 터졌다. 대표적 국제구호단체에 대한 내부자의 폭로에 따르면 후원금 상당액이 후원대상에게 쓰여 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후원금 대부분은 운영비로 사용됨을 말한다. 아프리카나 인도 등 후원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사용되는 금액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대부분 급여와 운영비, 활동비 등으로 지급되어서 본래 취지에서 크게 벗어나 있음을 말한다.
방송에서는 끊임없이 후원해 달라고 한다. 듣고 있다 보면 “주세요.”라는 말만 들리는 것 같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했다. 매월 3만원 또는 2만원 또는 만원씩 이렇게 한푼 두푼 모이면 금액은 엄청나게 커질 것이다. 이런 금액이 백프로 본래 사업목적에 맞게 사용될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반 이상은 기대하는 것 같다.
후원비는 극히 일부가 직접 후원비로 사용된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면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하다는 것이다. 단체구성원들이 결의만하면 쉽게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개인계좌로 모금됐다면 사실상 그 사람 것이나 다름없다. 감사도 없고 감독하는 사람도 없다면 사고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제대로 관리할 수 있을까?
2017년 1월과 2월 두 달 동안 노숙자 봉사를 한적이 있다. 매주 일요일 저녁 8시 을지로 굴다리에서 음식봉사를 한 것이다. 그때 당시 김광하선생이 대표로 있었던 봉사단체 ‘작은 손길’에서 했었다. 황학동에 있었던 ‘사명당의 집’이 거점이었다.
사명당의 집을 찾아 간 것은 전재성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나서 부터였다. 2016년 말 니까야강독모임에서 들은 것이다. 그때 당시에는 전재성 선생의 홍제동 아파트 거실에서 강독모임이 한달에 한번 있었다.
전재성생은 ‘지행합일(知行合一)’의 행자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광하선생 이야기를 했다. 알고 있는 것과 실천하는 것이 일치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김광하선생은 이미 알고 있었다. 테라가타 출간회 때 인사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김광하선생은 테라가타 공동교정자였다.
김광하 선생은 전재성 선생의 친구이자 후원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전선생은 강독모임에서 최소한 두 차례 이상 지행합일의 행자라고 극찬했다. 그래서 찾아 가 보기로 했다.
봉사단체 ‘작은 손길’의 거점은 황학동에 있었던 ‘사명당의 집’이었더. 오래되고 허름한 양옥집을 빌린 것이다. 2017년 새해 첫달 첫번째주 일요일에 찾아 갔다. 찾아 갔을 때는 봉사가 끝물이었다. 하나씩 회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당시 작은 손길에서는 크게 세 가지 사업을 했었다. 독거노인 반찬봉사, 탈북청소년 지원봉사, 그리고 을지로노숙자 음식봉사를 말한다. 특히 독거노인반찬봉사는 평일날 일주일일 두 번 시행했다. 황학동에서 음식을 만들어서 독거노인을들을 일일이 찾아가서 전달한 것이다. 아쉽게도 2016년 12월 말에 회향되어서 참여할 수 없었다. 탈북청소년봉사도 이미 회향되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을지로노숙자 음식봉사였다.
노숙자봉사도 곧 회향할 것이라고 했다. 길게는 15년 동안 봉사한 것이라고 했다. 놀랍게도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도 받지 않았다고 했다. 이렇게 ‘작은 손길’은 순수하게 자원봉사자들로만 이루어진 단체였다. 그래서일까 재정은 열악했다.
두 달 동안 노숙자 봉사를 하면서 김광하 선생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궁금했던 것은 왜 사업을 확대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유사한 단체로서 목사가 운영하는 ‘밥퍼’가 있다. 밥퍼에서 하는 것처럼 정부지원을 받고 후원광고를 해서 사업을 키우는 것에 대해 얘기했다. 그러나 김선생은 사업을 키울 생각이 없다고 했다. 또 정부지원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종단의 지원도 받지 않는다고 했다. 순수하게 자원봉사자들로만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무주상보시’를 얘기했다.
김광하 선생은 무주상보시를 실천하고 있었다. 금강경에 써 있는 그대로 아무 상도 내지 않고 주는 행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상을 냈다면 지원도 받고 후원광고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번듯한 건물도 마련하고 상근 봉사자도 여럿 두었을 것이다.
정부지원을 받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 정부에 예속될 것이다. 후원금으로 건물을 사고 상근자를 두면 운영비와 급여가 나갈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본래 취지와 멀어지게 된다. 결국 ‘사업을 위한 사업’을 하게 된다. 대부분 봉사단체가 이런 길을 걷는다. 더구나 국제구호단체로 확장되었을 때, 마치 앵벌이 하는 것처럼 비참한 영상을 보여주면서 후원광고를 할지 모른다.
김광하선생은 세 가지 사업을 십년 이상 했다. 순수하게 자원봉사자에게 의존했다. 김선생은 봉사가 끝나면 카페에 후기를 올렸다. 그리고 입출금 내역을 공개했다. 놀라운 것은 적립금이 없다는 사실이다. 항상 제로인 상태인 것과 같다.
왜 적립금이 없을까? 매주 독거노인반찬봉사, 탈북청소년지원봉사, 을지로노숙자봉사를 하는데 있어서 자발적 봉사자로부터 후원금이 들어 온다. 들어오면 그 주에 모두 써 버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적자인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럴경우 김선생 본인이 메꾸어 놓는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자원봉사자들 중 일부는 평소보다 더 큰 후원을 한다. 그러다보니 항상 제로금액 상태가 되는 것이다. 이를 ‘플러스마이너스제로’라 할 것이다. 후원금이 축적되지 않는 것이다.
어느 모임이나 단체이든지 회비가 있다. 회비를 한푼 두푼 모아서 키워 나가는 것이 보통이다. 비록 만원짜리 회비라도 쌓이고 쌓이면 나중에 큰 돈이 된다. 그런데 금액이 많아질수록 돈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돈문제로 모임이 깨지는 경우도 있다.
돈 문제로 모임이 깨질 뻔한 일도 있었다. 아무리 관리를 잘한다고 해도 누군가 의심하면 분란이 나게 되어 있다. 작은 법회 모임에서도 그런 사건이 있었다. 총무가 돈관리를 불투명하게 하는 바람에 모임이 두 쪽 나다시피 했고 일부가 떠난 것이다. 이후 철저하게 감사를 하여 재발하지 않았다.
회비나 후원금이 쌓이면 사업목적에 맞게 사용되야 한다. 그러나 단체임원들이 결의만 하면 다른 용도로 사용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할 공간을 만들고 상근자를 두었을 때 이미 다른 길로 가는 것이다. 운영비와 급여가 나갈 때 본래 취지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래서 사업을 위한 사업을 하게 된다. 또 지원금을 노리거나 후원광고를 하게 된다. 대부분 이런 길을 걷는다.
김광하 선생은 편하고 쉬운 길을 거부했다. 적립금이 쌓이지 않도록 한 것이다. 그 주에 들어온 후원금은 그 주에 다 써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계좌는 늘 제로상태인 것과 같았다. 이는 의도적인 것이다.
을지로 노숙자 봉사를 두 달했다. ‘사명당의 집’에서 먹을 것을 준비하여 김광하선생의 스타렉스에 가득싣고 현장으로 가는 것이다. 현장에 도착하면 어둠 속 이곳저곳에서 노숙자들이 나타난다. 무표정하게 긴 줄이 서 있다. 백명 이상 된다.
첫날 배식 담당했다. 백설기와 바나나를 나누어 주었다. 바나나는 세 개씩 비닐포장했다. 그냥 건네 주면 자존심을 상하게 할 것이라 하여 봉사자들이 일일이 포장한 것이다.
배식하던 첫날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내가 이들에게 줄 수 있는 자격이 되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그것은 한마디로 부끄러운 것이었다.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켠에서는 커피를 제공했다. 믹스커피를 종이컵에 제공하는 것이다. 전재성 선생의 담당했다. 둥굴레차도 제공된다. 큰 솥에서 만든 것이다. 제영법사가 담당했다.
을지로 노숙자 봉사장에 가면 늘 봉사자가 바뀌었다. 왜 그럴까? 김광하 선생에 따르면 자율적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만일 상근봉사자가 있다면 늘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것이다. 상근자 없이 순수한 자원 봉사자만 있다보니 시간 날 때 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날은 너댓명 됐다가도 또 어떤 날은 열 명가량 있기도 했다.
전재성 선생은 커피담당으로 빠짐없이 나왔다. 김열권 선생도 종종 나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김광하선생과 전재성선생, 그리고 김열권선생은 서로 친구지간이었던 것이다.
봉사단체 ‘작은 손길’은 2017년 3월에 회향 되었다. 15년 봉사활동을 마친 것이다. 단체를 이끈 김광하 선생의 체력적 한계도 있었고 무엇보다 할만큼 했다는 것이다. 단체를 키워서 더 크게 했으면 하는 바램이 있었으나 김광하선생의 평소 소신대로 ‘아름다운 회향’을 한 것이다.
적립한 것이 없으면 단체를 해산하기도 쉽다. 끝물에 들어 가서 본 것이기는 하지만 “봉사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해 준 것 같았다. 분명한 사실은 쌓이면 썩는다는 것이다. 후원금으로 건물을 사고 상근자를 두었을 때 전혀 다른 길로 가게 된다. 운영을 위해서 사업을 하고 급여를 위해서 사업을 하게 되는 것이다. 비참한 영상을 보여주면서 앵벌이 하는 것이다. 쌓이면 썩는다.
“마을에서 떠날 때에
아무것도 살펴보지 않고,
미련없이 떠납니다.
그 때문에 저는 그들이 사랑스럽습니다.”(Thig.282)
“창고에도 항아리에도 바구니에도
자신의 소유를 저장하지 않고,
줄 준비된 것만을 구합니다.
그 때문에 저는 그들이 사랑스럽습니다.” Thig.283)
2020-06-04
담마다사 이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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