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성지순례기

함평 용천사 가는 길에

담마다사 이병욱 2020. 7. 14. 16:59

함평 용천사 가는 길에

 

 

불갑사에서 문장까지 거리는 12키로가량 된다. 차로 16분 거리이다. 고향집으로 가려면 일단 문장까지 가야한다. 문장은 함평군 해보면에 속한 교통의 요지이다. 사거리로 되어 있는데 면 정도의 규모이다.

 

흔히 문장사거리라고 말한다. 송정에서 영광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남서쪽으로는 함평읍으로 향하고 북동쪽으로는 장성방향이다. 문장사거리에서 장성쪽 방향인 북동쪽으로 4키로 거리에 고향마을이 있다.

 

문장은 유년시절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별로 없다. 간판이 현대식으로 바뀐 것 외 그대로이다. 문장을 보면 마치 서부영화에서 타운을 보는 것 같다. 황량한 벌판에 살롱도 있고 은행도 있고 작은 호텔도 있는 그런 모습이 연상된다.

 

사촌 큰형님에 따르면 일제시대 문장에는 일본인들 집단거주지가 있었다고 한다. 일본인 아이들만 다니는 일본인 학교도 있었다고 한다. 아마도 교통의 요충지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문장 인근에는 3.1운동 기념탑이 있다. 문장삼일운동만세기념탑이다. 오일장이 열렸을때 만세운동을 한 것이다. 희생자도 있었다. 추모동상 뒤편에는 명단도 적혀 있다. 후대 사람들이 그날의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해 기념탑과 기념공원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1990년대에 만든 것이다.

 

문장은 오일장이 열렸던 곳이다. 유년시절 어머니의 손을 잡고 십리길을 걸어 문장 오일장에 간 기억이 있다. 어느 곳이든지 장이 서면 볼거리로 가득하다. 마치 모든 것이 정지된 듯 조용한 곳에 있다가 시장에 가니 전혀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요즘도 시장에 가면 삶의 활력을 느끼는데 그때 당시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한국전쟁당시 문장은 최후의 보루였다. 교통의 요충지에 자리한 문장은 경찰과 군대가 주둔해서 치안지역이었다. 반대로 문장을 벗어나면 치외법권지역이 된다. 문장을 벗어나면 빨치산의 세력권에 들어 가는 것이다.

 

불갑사에서 문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한다. 영광과 함평을 가르는 고개이다. 길재라고 한다. 유년시절 고향마을에서 길재를 바라보면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거의 8키로 되는 먼거리이지만 육안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버스가 흰색이었고 움직이는 물체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정한 시간에 다녔기 때문에 시간을 알 수 있었다. 시계가 없던 시절에 시계와 같은 역할을 한 것이다. 광주로 가기 위해서는 시간에 맞추어 가면 되는 것이었다.

 

밀재는 이제 옛날길이 되었다. 요즘 새로 터널이 뚫렸기 때문이다. 마치 고속도로같은 국도가 밀재를 거침없이 관통하여 순식간에 문장사거리로 데려 놓은 것 같았다.

 

문장사거리에 거의 다 왔을 때 이정표를 보았다. 용천사가 보였다. 많이 들어 본 것 같다. 함평에서 몇 개 안되는 전통사찰이라고 볼 수 있다.

 

함평은 너른 평지로 되어 있다. 그래서 함평천지라고 하는지 모른다. 판소리 호남가를 보면 함평천지(咸平天地) 늙은 몸이로 시작된다. 함평이 호남의 여러 지명 중에서 가장 첫번째로 등장하는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어떤 이는 “‘()’은 가득차고 원숙함을 뜻하며()’은 평탄할 평, 바를 평, 다스릴 평, 화할 평, 고를 평, 쉬울 평, 거듭 풍년들 평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 태평성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고 말헸다.

 

함평은 너른 평지로 되어 있어서 절을 보기가 힘들다. 절은 산에나 가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함평에 용천사와 같은 전통사찰이 있었다는 것은 큰 발견에 속했다.

 

 

시간을 보았다. 11시까지 가기로 했는데 불과 이십여분 밖에 여유가 없었다. 불교인으로서 지나칠 수가 없었다. 핸들을 과감하게 오른쪽으로 꺽었다. 이때가 아니면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빨리 다녀오고자 했다.

 

불갑산은 노령산맥 끝자락에 있다. 불갑산을 기준으로 남쪽에는 용천사가 있고 북쪽에는 불갑사가 있다. 두 사찰 모두 유서깊은 전통사찰이다. 용천사는 문장에서 9키로 거리로 차로 14분 걸린다.

 

 

용천사에서 산 하나만 넘으면 불갑사이다. 사촌형님 말에 따르면 불갑사에 갈 때 용천사를 들렀다가 갔다고 한다. 불갑사로 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용천사에서 불갑사까지는 4키로 거리이다. 도보로는 50분가량 걸린다. 옛날 어른들이 불갑사에 갈 때 이 길을 걸어서 갔을 것이다.

 

용천사 가는 길은 매우 상쾌했다. 인적이 드문 호젓한 길이기 때문이다. 주변은 개발되지 않아서 원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도로에는 차를 보기 힘들다. 용천사길 9키로 거리는 아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일 지 모른다. 온통 초록의 세상에서 모든 것이 청정해 보인다. 도중에서 만난 저수지는 원시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찾고 싶은 길이다. 드라이브코스로 최고의 길이라 여겨진다.

 

 

 

용천골이라는 말이 익숙하다. 안양 평촌중앙공원에서 지자체 축제가 열리면 먹거리장터가 형성된다. 동시에 전국 각지역 특산품이 전시된다. 그 중에 함평군 코너에 용천골된장이 있었다. 그때 용천골된장을 팔아 주었다.

 

용천골된장이 왜 유명할까? 그것은 아마 물과 관련 있을 것이다. 이름이 말해 주듯이 용이 살았던 곳이라 하여 용천골이라고 한다. 용이 살았던 샘이 있는 곳이라해서 용천이라고 했을 것이다. 산좋고 물좋은 곳에서 용천골된장이라는 특산품이 나왔을 것으로 본다.

 

용천사는 불갑산 깊숙한 곳에 있다. 구비구비 산길을 지나자 입구에 다다랗다. 플레카드가 눈에 띄었다. 놀랍게도 "군민을 위한 관광지개발 역행하는 용천사는 각성하라"라는 문구였다. 개발을 반대하는 지역주민들이 걸어 놓은 것이다. 지역주민과 용천사와 갈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역주민들은 왜 개발을 반대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용천사꽃무릇축제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용천사 입구에는 꽃무릇공원이 있다. 용천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인공호수에는 용이 물속에서 솟구쳐 나오는 동상도 있다. 공원에는 행사를 하기 위한 무대도 있다. 너른 주차장도 있고 상가도 형성되어 있다. 꽃무릇축제가 지역축제가 아닌 절의 축제로 되었기 때문에 지역주민들이 반발하는 것 같다.

 

 

시간이 없다. 빨리 보고 나와야 한다. 주마간산격으로 용천사를 둘러보았다. 불갑사와 비교해 보았을 때 비교대상이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절이다. 그럼에도 여법한 가람이다. 갖출 것은 다 갖추었다.

 

일주문도 있고 사천왕문도 있다. 만세루와 같은 전각도 있는데 이름을 상사루라고 했다. 꽃무릇을 상사화라고도 하는데 꽃이름과 관련된 전각이다. 마당에 서니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전각이 펼쳐져 있다. 대웅전 뒤로는 천불전과 산신각도 있다.

 

용천사는 무엇으로 유명할까? 최근에는 꽃무릇축제가 열리는 장소로 잘 알려져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본래는 물과 관련이 있다.

 

용천사 대웅전 앞에 샘이 있다. 이곳이 함평 용천사 용천이다. 용천사라는 절 이름이 있게 된 유래가 되는 샘이다. 대웅전 정면 오른쪽 돌계단 밑에 있다. 예전에 이 샘은 황해로 통했는데 이곳에서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

 

 

본래 용과 관련된 설화는 바닷가 쪽에 많다. 바다 가까이에 있는 절에는 용왕과 관련된 전각이 있다. 용천사는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에 있다. 그럼에도 용과 관련된 전설이 있는 것은 물 때문일 것이다. 물이 풍부해서 용천이라 했을 것이다.

 

 

 

용천사 가는 9키로 거리는 상쾌하기 그지없다. 칠월 녹음이 우거진 여름철인 영향도 있지만 사시사철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용이 승천했다는 용천사는 이제 꽃무룻축제로 유명한 절이 되었다.

 

절 아래 꽃무릇공원은 관광지화 되었다. 축제가 열리면 떠들썩할 것이다. 그러나 지역주민이 소외된다면 반대할 것이다. 개발하는 것보다는 자연 그대로 보전하는 것이 더 나을지 모른다. 시간을 내서 마음먹고 찾아간 용천사이다. 주민들과 갈등을 보는 것 같아서 씁쓸했다.

 

 

 

2020-07-14

담마다사 이병욱